나 혼자 만렙 뉴비 721화
721화. 대전쟁을 위한 준비 (2)
육각형 형태의 기묘한 건물 앞에선 할로윈 퍼레이드가 한창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쿵! 쿵! 쿵!
퍼퍼퍼펑! 퍼어엉!
행진과 불꽃. 그리고 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축제!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본고장의 할로윈이 얼마나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일은 잘 마무리된 건가?”
후드를 뒤집어쓴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럭저럭. 갚아줄 건 갚아주고 얻을 건 얻었어.”
“서정희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단순히 복수심만으로 제거하기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거야.”
“뭐, 그거야 내가 걱정할 문제지.”
“하하. 정말이지 배짱 하나는 인정해줘야겠군. 하긴, 그래야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거겠지만.”
“입 발린 소리는 됐고 시간 끌기만 잘 부탁해. 화려하게 시선을 끌어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아무리 나라도 30분 이상은 무리다. 알고 있겠지?”
“그 정도면 충분해.”
진혁이 가볍게 관절을 풀었다.
지금부터 시련의 탑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에 침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각자가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 * *
우우웅!
스타X즈 코스프레를 한 불한당들이 협회가 보유한 ‘헥사 타워’ 정문에 모였다.
“쉬익. 쉬익.”
검은색 투구를 쓴 그레이와 흰색 전투복을 입은 드레드로어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은 제다이 코스프레를 한 이들이 행진을 하는 타이밍이었다.
제국에 맞서는 제다이.
실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오오오! 뭐야, 주최측에서 준비한 건가?”
“이번 할로윈은 아주 제대로네!”
“좋아. 한껏 어울려주자고!”
“메이 더 포스 비 위드 유!”
두 개의 물결이 도로 위에서 뒤엉켰다.
“와아아!”
“밀어붙여!”
거대한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삽시간에 퍼레이드 가운데서 대규모의 전쟁 이벤트가 발생했다. 워낙에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프랜차이즈가 등장한 여파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헥사 타워의 보안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릴 만큼 말이다.
물론, 협회도 바보가 아닌 게 이런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해두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소란이 일어나는 편을 선호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8성급 대결계 ‘폭풍의 중심부’가 발동됩니다!]
[‘소음’과 ‘군중’의 효과가 강할수록 거점의 은밀함에 추가 어드벤테이지가 주어집니다!]
시끌벅적할수록 더욱 촘촘해지고 단단해지는 방벽의 특성. 그렇기에 협회는 일부러 이곳에 헥사타워를 만들고 메인 아이템들을 끌어 모아뒀다.
하지만.
누군가 고의적으로 결계의 기틀이 되는 주춧돌들을 골라 파괴하고 있었다.
[결계의 주춧돌(동쪽 B-3)이 파괴됩니다!]
[결계의 주춧돌(남쪽 D-8)이 파괴됩니다!]
협회 내부자나 7대 길드의 고위 랭커가 아니라면 말이 되질 않는다.
문제는 너무 많은 인파들이 얽히고설킨 탓에 그 누가 주춧돌을 파괴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CCTV 돌려!”
“마법사랑 결계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상황 파악부터 하지 않고.”
“혹시 모르니 금고 쪽도 다시 한 번 체크해라.”
알람마법과 각종 결계와 실드.
그런 것들을 점검하는데 모든 인력을 총동원했다.
그렇기에.
저벅.
그들은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말았다.
[10성급 결계 ‘멀티 버스’가 발동됩니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물병자리’가 발동됩니다!]
똑같은 금고와 그 위에 펼쳐진 똑같은 방어 마법들.
정확히는 헥사 타워에 있는 보안 요원들은 원류를 모방한 가짜 금고를 진짜라고 믿으며 철통같이 지키려 한 것이다.
이걸로 추가 방해꾼이 올 확률은 전부 사라졌다.
다시 말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보물들을 도굴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냈다는 소리다.
‘안 됐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고 생각해.’
진혁이 진짜 금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레이가 시선을 분산시키며 주춧돌들을 파괴해준 덕에 장난질을 할 여유를 만들었다. 결계사의 극에 이른 진혁으로서 이 정도 결계는 한 끼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일들이었다.
바로 그때.
진혁의 눈앞에 붉은 문구가 떠올랐다.
[금고의 가디언이 깨어납니다!]
결계들이 모두 박살나자 이번에는 정령사와 소환사들이 준비해둔 함정이 발동되었다.
그래. 진짜 금고 안에는 아직 보안 장치들이 더 남아 있었지.
“크오오오!”
“그오오오!”
전신을 철갑으로 감싼 기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외에도 각종 골렘들이 침입자들에 반응해 깨어났다.
한 눈에 봐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병력.
협회에서 상층부 공략을 위해 대규모 가디언들을 제조하고 있다더니. 이 정도 규모면 어지간한 유적 공략도 가능해 보였다.
“그레이가 미친 짓이라고 말한 게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네.”
결계와 방벽들 외에도 준비한 카드가 그득했다.
물론.
꽤나 오랜 세월 시련의 탑을 오르면서 쌓아둔 인맥은 이쪽도 만만치 않다. 대신 싸워줄 든든한 지원군을 충분히 불러뒀다는 뜻이다.
“킥킥!”
“마음껏 죽여버려도 된다는 거지?”
케이시와 주드로가 기다란 헬버드와 낫을 쥐었다.
“후우. 미국으로 효도관광 여행을 시켜준다고 하더니. 전부 사기였던 건가?”
“난 방학기간이라고! 무엇보다 어째서 내가 매월 소환용 조각품 100개를 의무적으로 만들고 있어야 하는 건데!?”
민정우와 이유리 역시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 탑승한 꼴이 되었다.
“그래서 퇴사가 마려우신 건가요?”
진혁이 단검을 슬쩍 움켜쥐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요즘 통 안 싸웠더니 몸이 근질근질했구만. 이유리 양.”
“조오치! 방학 땐 깽판이다. 헬조선 대학생이 어떤 식으로 노는지 보여줄게!”
[민정우가 ‘불의 정령’을 발동합니다!]
[이유리가 ‘홍해의 군대’를 발동합니다!]
쿠쿠쿠쿠쿠쿠!
불로 만들어진 전사들과 이집트의 가호를 받는 조각상들이 거대화됐다.
두 사람 모두 대군전에 특화된 플레이어들!
이번에는 아주 밥값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곧바로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콰콰콰쾅!
콰아앙!
대군과 대군이 기다란 선으로 충돌하면서 마력과 폭발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진혁은 그 사이를 여유롭게 가로질러 협회의 금고에 도달했다.
약 10m에 이르는 티타늄 도어.
두께 역시 30cm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피식 웃은 진혁이 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오랜만에 무공을 좀 써볼까.”
무림에서 주로 사용할 때와는 마력의 질이 아예 달라진 상태.
[흑천마황공 제9식.]
우우웅!
체내에 모인 마력이 시계 역방향으로 거칠게 회전했다.
[‘구천강림’이 발동됩니다!]
검붉은 폭풍으로부터 흉흉한 스파크가 폭발했다.
그러자 그 순간.
콰드드드득!
손바닥을 중심으로 철문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금고의 문이 개방됩니다!]
쿠웅!
콰아앙!
문의 양쪽이 각각 앞뒤로 쓰러졌다.
자욱한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뿌옇던 시야가 돌아왔을 땐 목구멍을 따라 군침이 흘러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야, 이것들 봐라?”
금고 안에 들어온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무리 뉴비들이라고 해도 70억이란 인간들이 사력을 다해 긁어 모은 보물들이다.
심지어 금고 안에 있는 아이템들 중에는 진혁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도 제법 있었다.
그래도 최우선은….
곧 있을 에덴과의 대전쟁에서 필요한 핵심 재료들을 쓸어담는 거겠지.
[‘아르첼라의 황금 고삐’를 습득하셨습니다!]
[이트클르사막의 꿀벌밀랍 1kg을 습득하셨습니다!]
진혁이 매의 눈을 한 채 닥치는 대로 금고 내부를 누볐다.
핵심 재료들 외에도 쓸 만해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아공간 인벤토리에 쓸어담았다. 시간이 워낙 촉박했기에 핵심 위주로 선별하는 것도 제법 큰일이었다.
“젠장.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그레이가 시간을 끌어주는 것도 30분이 고작이다.
가짜 미끼를 만들어둔 것도 금세 들통날 터.
괜히 도적질을 한 게 알려졌다간 모두의 이목이 단번에 집중될 게 뻔했기에 그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소환됩니다!]
“주인!”
“불렀어?”
아공간이 개방되며 친숙한 정령수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는 고구마와 말랑흑두루미 그리고 하벨리안과 후라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 시간 없으니까 다 필요 없고. 너희들이 봤을 때 비싸 보이는… 아니다. 너희 기준에서 맛있어 보이는 것들 위주로 죄다 모아서 가져와.”
고급품들에 반응하는 신수와 환수의 습성. 그걸 이용한다면 가장 값비싼 것들 위주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철저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루시드 드림 알약’을 습득했습니다!]
[‘최상급 강화서 10장을 습득했습니다!’]
[‘황금향 구름 생성기’를 습득했습니다!]
[……습득했습니다!]
우르르.
모두가 양손 가득 모아온 아이템들을 쏟아붓자 진혁의 입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대박이다.
아니, 이건 초대박이다.
그야말로 강대국들의 각성자 협회에서 가장 알토란 같이 모아온 것들만 골라왔으니까. 유일하게 메인 이벤트의 최종 상품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쉽긴 했지만, 99%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지.
만족하던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다가 99%에 만족하게 되었을까?
남은 시간은 15분.
아직 뽕을 뽑을 수 있는 구석은 더 남아 있었다.
100%까진 안 되어도.
…99.99%까진 채워야 고인물의 직성이 풀릴 것이다.
“얘들아.”
진혁이 고생한 모두를 불러모았다.
“지금부터 만찬의 시간이야. 특별히 특식을 배급해주는 거니 앞으로 10년은 오늘 일을 기억하며 이 몸의 은혜를 갚아나가도록. 괜히 불평 불만이나 제기하지 말고. 알겠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각종 마정석들을 앞에 두고 진혁이 마치 제 것을 나눠주는 것마냥 양 팔을 활짝 벌렸다.
“모기이이이!”
고구마가 입을 쩍하고 벌렸다.
“흐음. 웬일로 고귀한 이 몸을 위해 걸맞은 밥상을 차렸구나.”
“미요오오!”
“크르릉!”
말랑흑두루미와 후라이드 그리고 환수인 하벨리안부터.
“오오! 주인 고마워!”
“잘 먹을게!”
“헤헤. 알고 보면 우리 주인 착한 거 아닐까?”
“그럼! 우릴 챙겨주는 건 주인밖에 없지.”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5대 원소의 정령수들도 입맛을 다시며 마정석 더미에 달려들었다.
우걱우걱!
오독오독!
마정석이 부서지고 갉아먹히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그렇게 정확히 30분이 지났을 때.
금고는 폐허와 다름없는 꼴이 되어버렸다.
* * *
다사다난했던 현대에서의 이벤트가 모두 정리되었다.
협회에서는 자신들의 금고를 털어간 할로윈 절도범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완전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애초에 주요 참고인인 드레드로어 길드가 대놓고 수사를 방해하며 정보를 원천 차단해버린 탓이었다.
-불만이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증거도 없이 자꾸 꼬투리를 잡는 걸 가만히 넘겨줄 생각은 없으니까.
EX급 랭커인 그레이가 으름장을 놓는데 어떤 협회의 수사관이 맘 편히 수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정희 이사를 수사하기도 벅찹니다. 장보경 플레이어도 조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버린다고 했고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탄 길드나 테레사에게 박살이 나버린 바티칸 역시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덕분에 진혁은 자유롭게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한창 마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말이다.
“잘들 지냈어?”
이집트와 베리엘의 연합군이 모여 있는 거점에 진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왔군.”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베리엘과 아누비스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워낙에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번 전쟁에서 그 누구보다 진혁이 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 탑 밖에서 이래저래 처리할 일들이 많아서 말이야. 루시퍼가 있는 성을 공략 중이라고 했던가?”
“그래.”
“흐음. 저기는 탑 내에서도 난공불락으로 악명이 높은 곳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도 나름대로 공략이 가능한 히든 카드 몇 개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부분이 아니야.”
베리엘이 한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곳엔 십이지에서 온 묘족의 ‘청하’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호오. 하긴, 이 타이밍이면 슬슬 십이지 쪽과도 관계 정립을 하긴 해야지.’
12개의 종족으로 구성된 제3세력.
어떻게 계획을 그려야 가장 재밌고 짜릿할지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때마침.
‘어라 그러고 보니. 이걸 사용해볼 수 있겠는데?’
세력 구도를 혼돈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악마적인 계획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