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722화


722화. 시련의 탑, ’50층 자유 출입권’ (1)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은 진혁이 청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청하 역시 진혁을 발견하고 두 귀를 쫑긋거렸다.

“당신이… 강진혁?”

워낙에 폐쇄적인 십이지들답게 진혁의 신상 역시 제대로 파악이 안 된 모양이다.

“맞아. 내가 강진혁이야. 당신이 묘족의 대표로 온 거야?”

“청하라고 해. 흐음. 듣던 것과는 약간 다르긴 하네. 뭔가… 우마왕 같이 우락부락한 괴물이 올 거라 예상했거든.”

대체 뭘 기대하고 있던 건진 모르겠지만, 슬림한 체형에 청하가 약간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뭐, 강함에 꼭 근육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 부분은 내가 참고 넘어가줄게!”

청하가 혼자 무언가 납득한 듯 양 손을 허리춤에 갖다 댔다.

묘족들이 좀 멍청하고 순진한 편이긴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발군인 것 같다.

“베리엘 말로는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했다던데?”

“아… 맞아! 이미 들었겠지만, 너를 포함해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우리 세력으로 들어오길 제안하려고 해. 어때, 영광이지?”

“그다지 들을 가치도 없는 제안이네. 영양가가 1도 없어.”

“뭐어어어? 진심이야? 우리는 탑의 정상에 완전 가까운 층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우리가 아니라 너희 중에서 그 원숭이와 우마왕 덕분이겠지.”

“그, 그건….”

정곡을 찔린 청하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구에게 훨씬 더 유리한지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받고 온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내 말을 듣는 게 좋을걸? 우리가 꼭 너희하고만 함께 할 거란 보장은 없어. 보아하니 루시퍼나 에덴 쪽도 나름 힘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도 이 제안을 하면 어떨 것 같아?”

마계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중에 십이지가 개입한다면 그건 커다란 변수가 된다.

만에 하나 루시퍼 쪽에 가세할 경우 성의 공략이 몇 배는 족히 올라가버릴 터.

무엇보다 후방에 있는 에덴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전력이 분산되고 있는 와중에. 그 전력을 또 다시 쪼개야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흐음. 그건 좀 곤란한데….”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 밑으로 들어와! 좋은 말로 할 때!”

“알겠어. 대신, 그 전에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래?”

“뭔데?”

“조금 있다가 내가 어디를 좀 갔다 와야 하는데, 거기가 나름 험난한 곳이거든. 꽤나 민첩성을 가진 가이드가 있다면 훨씬 더 든든할 텐데. ‘가장 날렵한 발’을 가진 묘족이 동행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은근히 추켜 세워주는 게 포인트다.

십이지 중에서도 가장 약체에 속하는 묘족은 언제나 칭찬에 목말라 있었으니까.

“흐으응! 인간 주제에 뭘 좀 아네. 좋아. 까짓거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그것만 해주면 우리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거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게.”

진혁이 청하에게 악수를 건넸다.

청하가 아무 의심도 없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일행들한테 이야기만 하고 바로 올 테니까.”

“알겠어.”

청하를 내버려둔 진혁이 다시 베리엘과 아누비스에게 갔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던 두 신격이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됐나?”

“마왕도 한 수 접어주는 내 사도라면 당연히 이야기를 잘 풀고 왔겠지?”

명색이 신격이란 것들이 무게감도 없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땐 나름 근엄하던 놈들이었는데.

“응. 이제 저 녀석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공성전을 계속 이어가도 될 거야. 다만. 난 이번 일을 도와줄 순 없어. 따로 들려야 할 곳이 있거든.”

품 안쪽에 잘 보관되어 있던 초대장.

기묘한 언어로 적힌 인장은 초대장 안의 내용물을 완벽하게 봉인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그대가 빠진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텐데….”

“동감이다. 우리 애들도 한껏 사기가 올랐었는데, 다시 어려운 길을 가야겠군.”

“너무 걱정하진 마 대신, 내 동료들이 내가 올 때까지 남아서 전쟁을 도와줄 테니까.”

“저 멍청한 놈보단 단언코 내가 도움이 될 거라 장담하지.”

“열심히 해볼게요!”

천유성과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의 힘을 습득한 검성. 그리고 두 개의 인격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성녀.

두 명의 최상위 랭커는 1만의 군대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에덴과의 전쟁.

시련의 탑 상층부의 운명을 결정 짓는 첫 번째 전투가 발발했다.

* * *

흥미진진한 하루였다.

모처럼 묘족이 가득한 익숙한 세계를 떠나 다른 층계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이미 판은 다 마련되어 있었고. 외웠던 대로 상대를 협박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임무였다.

그리고 실제로 일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무시무시한 협박에 굴복한 인간이 빠르게 백기를 들어올린 것이다.

단지, 완전히 꼬리를 말기 전 어딘가에 함께 가주기만 한다면 밑으로 들어오겠노라 약속했다.

숨 쉬듯 쉬운 일이다.

인간들에게야 어려울 수 있겠지만, 위대하고 발 빠른 묘족에게 있어 위험지역을 주파하는 것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분명 그럴진대….

“믱?”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청하는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시련의 탑 ’50층의 자유 출입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시스템 조작’과 ‘잃어버린 언어’를 통해 초대장의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입장 제한이 ‘3명’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보통 생각이라는 걸 한다.

불완전한 미래를 두고 가능성 있는 경우의 수들을 상정하여 우선 순위를 매기게 된다는 소리다.

그러나 단언컨대.

청하가 예상하던 경우의 수 중에 이런 경우는 없었다.

입에서 영혼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묘족을 뒤로한 채. 진혁이 기지개를 길게 켰다.

“흐음. 여기 공기는 진짜 소름이 돋는다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오게 된 50층이다.

단순히 이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감각이 곤두서고 심장이 빠르게 두방망이질 친다.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곳은 시련의 탑 50층.

태고의 존재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곳은 아직까지 완전히 전체를 파악한 존재가 없었다.

한 번 탑을 클리어했던 진혁은 물론, 이곳에 살고 있는 태고의 존재나 심지어 탑의 운영을 관장하는 이들조차도 말이다.

‘한 번의 방심이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지.’

특히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빠른 타이밍에 50층에 진입한 상태다. 스펙이 훨씬 떨어지는 만큼 리스크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갈 수밖에.

‘그게 더 스릴 넘치는 부분이겠지만.’

요즘 들어 목숨이 아슬아슬할 정도의 위기를 느낀 적이 손에 꼽는데, 최고 헬 난이도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귀했다.

꾹꾹.

진혁이 청하의 어깨를 찔렀다.

“정신 차려. 계속 여기 있으면 위험해.”

“빨리… 날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줘. 헤헤헤. 맞아. 이게 현실일 리가 없잖아. 갑자기 50층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으음.

이제 보니 이 아이.

공포와 절망의 단계를 넘어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고작해야 묘왕의 대리인일 뿐인데, 너무 충격이 과했나?

‘벌써 이러면 좀 곤란한데.’

50층에 온 건 청하가 겪게 되는 거대한 파도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파도가 모여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버릴 것이다.

바로 그때.

츠츠츠….

지면을 타고 얇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기척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접근이다.

당연히 패닉에 빠져 있는 청하가 그런 은밀함을 눈치채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촤촤촤촤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식물들이 청하를 노렸다.

그 순간.

서걱!

진혁의 단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태고의 언어’가 각인됩니다!]

‘퍼스트 블레이드’의 표면을 따라 빛나는 은은한 문자. 잘린 식물들 사이에서 보라색 체액이 뿜어져나왔다.

치이이익!

빠르게 녹는 땅.

식물의 줄기에 돋은 가시들에서도 같은 체액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뭐, 뭐야?”

청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1초만. 아니. 0.1초만 늦었더라면 자신은 저 체액에 흐물흐물 녹아버렸을 게 틀림없었다.

“살려주는 건 이번 한 번이 전부야. 다음부터는 알아서 피하도록 해.”

“나, 날 버리겠다는 거야?”

“우리를 품으려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부하에게 보호받는 상위 세력의 거주자라니.

그런 멍청한 소리가 어디에 있나?

아니면….

“네가 우리 밑으로 들어오든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인턴으로서 주제파악 잘 하고 제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구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나 하나 살자고 우리 거래를 완전히 엎어버리란 거야? 주, 죽으면 죽었지 일족에게 피해가 가는 짓은 못 해! 그리고. 내가 꼭 이곳에서 죽으란 법도 없잖아? 네 말대로 민첩한 것 하나는 자신 있어.”

“쯧쯧.”

애써 자신감을 되찾으려는 청하에게 진혁이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찼다.

“왜!”

“아니, 그냥 안쓰러워서.”

포인트를 전혀 못 잡고 있는 게 불쌍하다 못해 슬퍼질 지경이다.

“미안하지만, 네가 여기서 아무리 잘 도망쳐 봐야 네가 남긴 흔적들을 완전히 지울 순 없어.”

50층에 들어온 순간, 태고의 존재 중 일부는 침입자에 대해 인지할 수 있었다.

묘족의 체취에 대해서도 눈치채겠지.

다시 말해.

“너흰 50층에 찍힌 거야.”

손오공이나 우마왕은 어찌어찌 생존이 가능하다지만, 고작 묘족 따위가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하루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쎄.

그런 도박이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배팅하고 싶어진다.

“하하….”

청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렇다.

그녀에겐 처음부터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묘족이 태고의 존재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진혁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 *

50층에서의 생존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그 유명한 베어 형님의 생존기도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지만, 이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DNA에 새겨져 있는 근원적인 공포.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두려움.

경계와 경계가 허물어지며 오감이 뭉그러지는 감각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버텨낼 수 없는 종류였다.

단 하나.

“오! 이야. 이것도 있었지. 그리워라. 참 추억이었는데.”

그런 지옥 같은 마경을 구경하면서 산책하고 있는 고인물을 제외하고는.

진혁이 주위에 결계를 펼치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괴하게 생긴 절벽에선 푸른빛깔 액체가 흐르고 있었는데, 너무나 달짝지근하고 매력적인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위험해 보이는데.”

청하가 귀를 쫑긋거리며 진혁의 뒤에 숨었다.

이곳에 온 지 1시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벌써 10번 넘게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명을 빼앗아 버릴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저건 여기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료수 중에 하나니까.”

너무 매력적이기에 오히려 수상하지만, 영양분도 높고 맛도 좋은 액체다.

그러고 보니 저기에 탄산을 넣어서 팔면 재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곤 했는데,이제 현실이 되었으니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쪼르륵.

진혁이 수통에 액체를 한가득 담았다.

“그래서 최종 목표라도 알려주면 안 돼? 여기서 해야 할 것만 끝내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워낙 추억에 젖어 있느라 그만 깜빡 잊고 있었네.

“여기를 임시거점으로 삼아 눈치를 좀 보다가 왕궁에 갔다 와야 해.”

“왕궁?”

“응. 왕궁.”

“누가 사는 곳인데?”

“음 아자토스라고 하는 50층의 지독한 놈이 잠든 곳 있어.”

깨어나면 즉시 데드 엔딩이긴 하지만, 50층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안에 침투해야만 한다.

“…….”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하의 가냘픈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계약자. 저 토끼 녀석 울고 있느니라.

“냅둬. 토끼에겐 울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야.”

마지막으로 코인 거래소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그 안에는 50층 안에 들어와서 틈틈이 모아둔 각종 재료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어.’

2개의 태양이 저물고.

첫 번째 달이 뜨려고 한다.

이제 아자토스의 영역에 갈 시간이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