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723화


723화. 시련의 탑, ’50층 자유 출입권’ (2)

보글보글 보그르…,

썩어가는 늪지에서 짙은 녹색 기포들이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악!”

“키에에!”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와 각종 생물들이 서로를 포식하며 이질적인 마경을 자아냈다.

바로 그때.

쿠웅! 쿠웅! 쿠웅!

지축을 흔드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럽던 늪지가 그 순간 적막에 휘감겼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르르….”

낮게 깔린 포효성.

100m가 넘는 몸체에선 수많은 촉수들이 달려 있었다.

각각의 촉수의 끝엔 외눈이 번뜩였는데,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들키는 순간 끝이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있어 공통된 생각이었다.

다행히 거대한 존재는 늪지에 별 다른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위화감을 쫓으며 걸음을 옮겨갈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존재가 안개 너머로 사라졌을 때.

풀썩.

“히이익….”

다리에 힘이 풀린 청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숨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나무 뒤에 숨어 있었지만, 세포 하나하나까지 전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위험했어.”

진혁 역시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 땀을 훔쳤다.

방금 지나간 것은 ‘소그란투’.

아자토스의 궁전을 지키는 일종의 경계병들이다.

저 녀석 하나하나의 전투력도 엄청났지만, 진짜 큰 문제는 저 녀석에게 발각되었을 경우 궁전 전체가 전투 태세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당연히 슈브니구라스나 니알라토텝 같은 최상위 신격들도 침입자의 존재에 대해 눈치 챌 터.

그 즉시 이쪽의 죽음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 진짜로 저 안에 들어갈 거야? 우리들 사이에서도 50층에 들어오는 건 금기 중에 금기란 말이야.”

“그래? 그럼 여기 혼자 있을래?”

진혁이 싱긋 웃었다.

“크오오오!”

“케에에엑!”

콰직! 우드득! 콰드득!

소그란투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한 번 늪지의 생태계가 활성화됐다. 피와 살점이 난자하며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이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따라갈게. 제발 따라가게 해주세요.”

청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불쌍한 묘족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물 속으로 들어가서 움직일 거야. 이걸 입에 물고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실수로라도 뱉거나 삼키지 말고 잘 따라와.”

진혁이 입구가 3개짜리인 달팽이 껍데기를 건넸다.

[‘트리뷴 스네일’과 ‘짙은 계곡의 이끼’. ‘아트라파스 물고기의 허파’가 융합됩니다!]

호흡은 물론, 기척까지 늪지 생물로 바꿔주는 특성.

오직 이 3가지를 동시에 융합했을 때에만 나타나는 효과였다.

탁하고 묵직한 늪지로 들어가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다. 청하가 진혁의 뒤를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먹이사슬의 피라미드에 끼어든 존재에 늪지의 생명체들이 반응했다.

“크오오오!”

동서남북.

입이 4갈래로 쪼개지는 악어가 대번에 먹잇감을 포착했다.

집채 만한 아가리가 청하를 노렸다.

“우우웁!”

청하가 사력을 다해 발장구를 쳤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날랜 묘족이라도 물 속에서 악어를 상대로 달아날 순 없었다.

그것도 평범한 악어가 아니라 50층에 서식하는 악어라면 더욱더.

대신 나서준 건 진혁이었다.

[고유능력 ‘해류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콰콰콰콰콰콰콰!

물속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사방으로 갈라진 물살 속에서 진혁의 검이 빛났다.

“이쪽에서 살고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긴 해.”

그래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누구인지 구분할 줄은 알아야지.”

어디서 신격도 아닌 놈이 주제 파악도 못하고 나서나?

콰지지직! 콰자작!

늪지 악어의 몸이 그대로 소용돌이에 갈가리 찢겨졌다.

누가 위인지 늪지에 있는 놈들에게 똑똑히 각인시켜준 건 덤이었다.

늪지의 생물들이 적대감을 접어둔 채 진혁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이, 이렇게나 세다고…?”

청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시에 진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이나마 달라졌다.

* * *

7

같은 시각.

50층의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변수가 일어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가시들과 수정들이 가득한 방에선 네 명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JJ와 1인2닭.

수리부엉이.

새영언환.

탑의 균형을 수호하고 어긋나버린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움직이는 운영자들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요.”

1인 2닭이 회복 마법을 시전하며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고쳐잡았다.

험난한 길이었다.

운영자들조차도 목숨을 걸어야만 할 정도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안은 통칭 ‘무한의 관문’이라 불리는 곳이다.

정확히는 태고의 신격 중 하나인 ‘요그소토스’ 몸 속으로. 놈은 신격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문지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이 안에 오래 있으면 우리도 영원히 갇혀버릴 거야.”

JJ도 한 마디 거들었다.

운영자의 고유권한인 ‘시스템 조작’을 한계까지 사용한 상태. 목적을 달성하는 즉시 마련해둔 탈출구로 향해야만 하리라.

수리부엉이와 새영언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딘가에 ‘차원의 기둥’이 있다.

50층의 존재들을 봉인할 수 있는 히든 피스. 그것만 확보한다면 앞으로의 판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테니까.

남은 시간이 고작 1시간 남짓이었기에,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위대하신 운영자들께서 그런 치트 아이템까지 손에 넣으면 너무 사기 아니야?”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

운영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허를 찌른 목소리에 거리까지 지나치게 크게 벌렸다.

알고 그런 게 아니다.

무언가 알 수 없이 흉흉하고 불길한 기운에 몸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인 것이지.

“웬 놈이야!”

1인 2닭이 목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촤촤촤촤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채찍이 수정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하지만, 정작 목소리에 채찍이 닿는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버렸다.

터엉!

튕겨나간 채찍이 다시 2닭 쪽으로 되돌아갔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다니. 어지간히 놀라긴 했나 봐?”

“넌….”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수리부엉이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일명 ‘남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정체를 특정할 순 없었지만, 운영자들에게도 상태창이 완벽하게 차단된 이레귤러 중에 이레귤러였다.

……어쩌면 아자토스보다도 위험한 변수.

통제되지 않는 존재는 진혁은 물론 시련의 탑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차라리 잘 됐어. 저 놈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진혁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그래. 그 녀석은 한 번 아자토스를 넘어서 탑의 정상에 올랐으니까.”

“나도 동의한다. 무엇보다 이 이상의 조건으로 싸울 수 있는 무대는 더 이상 없을 거야.”

이곳에 모인 운영자는 무려 넷.

게다가 만에 하나 상위 태고의 신격들과 싸울 경우를 대비해 그에 걸맞는 성유물과 히든 피스들을 챙겨왔다.

제 아무리 상대가 적대 운영자들을 이끌던 괴물이라곤 하지만, 이 모두를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스릉!

척!

우우웅!

아공간을 통해 다양한 무기들이 나타났다.

전부가 보라색 등급에 해당되는 최상급 성유물들이었다.

“대화도 안 하고 바로 시작하려고? 나름 최종전 무대 같은데. 너무 삭막하지 않아?”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명의 운영자들이 대놓고 적대심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화라….”

새영언환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럼, 네 녀석의 정체가 뭔지 말해 줄 수 있는가?”

“처음부터 훅 들어오네. 아무것도 없이 너무 마지막 히든 카드를 보려고 하는 것 아니야?”

문답에 대가가 없을 순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줘야 한다는 소리다.

새영언환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남자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아니, 아주 조금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이곳에서 히든 피스를 확보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뭘 지불하면 되는 거지?”

“으음. 뭐 그 정도라면 그쪽도 꽤나 값비싼 걸 내놔야하지 않겠어? 예를 들면…. 엘리스라든가.”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응. 개인적으로 내 취향이라서 말이야. 꼭 컬랙션에 넣고 싶거든.”

“우리로서는 들어주기 힘든 요구로군. 그녀는 진혁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료라서 말이야.”

새영언환이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타깝군. 협상이 결렬되어서.”

남자가 짧게 혀를 찼다.

얼핏보면 얻는 게 없어 보이는 문답이었지만, 새영언환의 생각은 달랐다.

‘엘리스가 열쇠라는 건가.’

남자는 모든 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런 녀석에게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존재했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어쩌면 단순히 강력한 진조를 넘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새영언환이 말을 이었다.

“안타깝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일세. 허면, 지금부터는 그냥 혼잣말을 할 테니 들어만 줄 수 있겠나?”

“내 반응을 보고 판단할 생각이야? 그것도 재밌겠네. 어디 한 번 해봐.”

“처음엔 그대가 언노운의 데이터라 생각했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그것 외에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언노운은 아니다.

과거 탑의 정상을 정복했던 데이터는 이미 진혁의 손에 의해 소멸했으니.

그렇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더욱 좁혀진다.

진혁에게 육박하는. 어쩌면 그 보다 더한 힘을 보유할 수 있는 건 전 세계를 통틀어서 그야 말로 한 줌에 불과할 터.

“우리가 알기론 강진혁은 고아였다. 어렸을 때 버려져 홀로 성장해왔지. 그대는… 그와 관련된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혈육(血肉).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바로 그쪽이었다.

진혁은 물론, 자신들마저 정체를 알 수 없던 이유 역시 이 예측이 맞다면 한꺼번에 해소될 수 있었다.

“흐음.”

남자가 턱을 긁적였다.

그러면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반응을 내보였다.

“혈육일 수도. 아니면 혈육보다 더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다른 종류일 수도 있고.”

파츠츠.

검을 따라 검붉은 강기가 일어났다.

[고유성창 ‘검극일신’이 발동됩니다!]

쿠쿠쿠쿠쿠쿠쿠!

남자의 몸이 검은 기운에 휘감겼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불길함이 공간 전체를 잠식해 나갔다.

……무시무시하다.

단순히 고유성창을 발동시킨 것만으로도 태고의 존재를 넘어서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조심해라.”

“알고 있다.”

“젠장. 진짜이긴 진짜네 보니까.”

“……온다!”

JJ가 앞으로 나섰다.

카가가가가앙!

인지를 아득히 넘어선 검격이 쏟아졌다.

물 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태풍을 머금은 듯한 거칠고 유려한 검술이었다.

“큭!”

순식간에 전신에 생겨난 수많은 자상들.

“내가 왜 엘리스나 다른 일들에 대해서 힌트를 줬을 거라고 생각해?”

남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장난기 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살기가 가득 흘러나오는 검귀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너희 중에 한 명도 이 자리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어.”

운영자들은 여기서 전부 퇴장이다.

탑의 마지막을 볼 수 있는 건 오롯이 강진혁 그 녀석 하나 뿐이었다.

* * *

늪지를 통한 샛길을 이용했다곤 해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늪지의 끝에 도착했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육안으로 이 세계의 정점이 사는 곳이 보였다.

-계약자.

브라함의 반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엘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을.

바로 그때.

띠링!

진혁과 청하의 앞에 보라색을 띤 상태창이 나타났다.

“호오 이것봐라?”

진혁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