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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732화


732화. 순백(純白)의 격류 (1)

[연합 함대가 항해를 시작합니다!]

배들이 소용돌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위협적인 소용돌이가 금방이라도 배를 삼키려 했지만, ‘해류의 의지’ 덕분에 그런 불상사가 나는 일은 없었다.

순조로운 항해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번뜩하고.

순백의 격류 속에서 붉은 빛이 점멸했다.

저건 설마?

“……피해!”

진혁이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콰아앙!

선두로 가던 배가 크게 휘청였다.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안에 있던 전사들이 그대로 튕겨나갔다.

“아아악!”

“우와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배가 반파되었다.

급조로 만든 배가 버틸 만한 충격이 아니다.

“크오오오!”

쩌렁쩌렁 울려 퍼진 짐승의 포효 소리가 절망의 시작을 알렸다.

설마하니, 이런 격류 속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터무니없는 게 숨어 있었다.

[심연의 ‘쇼거스’가 현현합니다!]

50층에 서식하는 개체.

수많은 입과 눈이 달린 5m 크기의 괴물이 구름 아래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눈이 간신히 그림자를 쫓아갈 정도다.

‘빌어먹을.’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50층에 있는 원류가 아니었다.

신성력이 넘쳐나는 에덴에 최적화되게 개량한 형태. 본래의 힘은 반감되었지만, 오히려 구름 속에서 속도를 살리는 이 모습이 훨씬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런 뗏목으로는 도저히 쇼거스를 따돌릴 수 없었다.

퍼퍼퍼퍼퍽!

퍼어억!

“쳇! 더럽게 빠르구나.”

붉은 꼬챙이들을 던지던 엘리스가 약이 잔뜩 오른 표정을 지었다.

짙은 구름 때문에 시야 확보가 쉽지 않다.

진조에게 있어 상극인 신성력 특유의 힘 역시 조준을 어렵게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콰콰콰쾅!

또 다시 500명 이상이 탄 배에 구멍이 뚫렸다.

“치, 침몰한다!”

“배를 버려라!”

“으아아! 도워줘!”

비명소리와 피비린내가 한 곳에서 어우러진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처절하게 울려퍼졌지만, 저들을 구조했다가는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쇼거스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쇼거스 뿐만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중이었다.

파츠츠…!

진혁의 손 끝에 얼음가루들이 모여들었다.

속도를 늦춘 다음에 하나씩 각개 격파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뿌우우우….

짙은 운무 너머로 뿔나팔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타고 이어졌다.

동시에.

쿠쿠쿠쿠쿠!

반대편에서 엄청난 수의 함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혁!”

왼쪽 측면을 담당하던 천유성이 즉시 진혁을 불렀다.

“오른쪽 막혔어요!”

오른쪽을 담당하던 테레사 쪽에서도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쇼거스에게 시선을 빼앗긴 틈을 노리고 안개 속에 숨어서 접근했다는 건가.’

설계도 설계지만, 마력의 기척을 완전히 숨긴 채 저 많은 숫자의 함선을 운용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지를 말해주는 장면이다.

“전초전도 없이 벌써 이 정도 전력을 투입하려는 거냐.”

너무 쉽게 헤븐즈 도어를 넘겨줬을 때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바로 다음이 진짜 관문이었을 줄이야.

진혁이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애써 진정시켰다.

신중해야 한다.

당황해선 안 된다.

지금부터 하는 대응 하나하나가 전력의 절대 손실과 직결될 테니까.

⁕⁕⁕

“제대로 걸렸군.”

천세의 주신 중 하나. ‘무루간’이 가장 화려하고 큰 함선 위에서 적진을 바라봤다.

각진 얼굴에 탄탄한 체구.

몸에서 풍기는 기운에선 백전노장의 경험이 여과없이 뿜어져 나왔다.

“철저하게 포위해서 섬멸해라. 놈들의 급조된 배로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예!”

천세의 전사들이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철컹!

배 위에 있는 거대한 쇠뇌들이 장전되었다.

굳이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다.

한 방씩만 적중시켜도 서서히 침몰해버릴 테니까.

물론.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주신들도 가만히 당해주고만 있지 않았다.

일반적인 전사들이야 지금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지만, 온갖 종류의 전장을 경험해온 신격들은 당황스러운 와중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해나갔다.

“전열을 가다듬으세요! 흩어지지 말고 일점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그리스의 헤스티아가 나섰다.

화르륵!

화로에서 뿜어져나온 연노란색 불꽃이 배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쇠뇌와 마력이 깃든 화염이 그대로 화로의 불꽃에 가로막혔다.

“오라버니.”

“그래. 알고 있다.”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이 힘을 개방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궁’을 발동합니다!]

[아르테미스가 ‘달의 신궁’을 발동합니다!]

은은한 달빛이 쏟아지며 한 줄기 섬광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위로.

태양을 머금은 섬광이 새로운 궤적을 그렸다.

츠츠츠츠… 콰콰콰콰콰콰!

두 줄기의 빛이 천세의 함선들 한 복판에서 폭발했다.

구름 위로 희고 붉은 빛줄기가 솟구쳐 오르며 버섯구름의 형태로 이뤘다.

저릿저릿!

무시무시한 마력의 후폭풍이 뒤를 이었다.

방금 저 한 방에 함선 수십 척이 잿더미로 변했다.

“부상자들을 돕겠습니다.”

“저도 도울게요…!”

[가브리엘이 ‘대천사의 포옹’을 발동합니다!]

[테레사가 ‘별들의 부름’을 발동합니다!]

가브리엘이 이끄는 소수의 천사들과 테레사는 후방 지원을 맡았다.

아예 구름 속에 가라앉은 이들을 구조하는 것까진 불가능했지만, 전투 중에 다친 전사들을 치료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따스한 별빛과 황금빛 운무가 부상자들 위로 쏟아졌다.

“으으으….”

“컥! 쿨럭….”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 하던 이들의 신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그렇게.

기습을 당한 와중에도 조금씩 대응이 이뤄지고 있을 때였다.

구름 속에서 검은색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 위로 오른 놈이 노린 것은 헤스티아였다.

가장 성가시게 대규모 방어를 해대는 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콰직!

검은 입이 단숨에 먹잇감을 물어뜯었다.

아니, 물어뜯으려 했다.

헤스티아에게 닿기 바로 직전 또 다른 신격이 끼어들었으니까.

“킥킥킥…!”

쇼거스다.

간신히 헤라클레스가 막아서긴 했지만, 헤라클레스의 팔에 선명한 이빨자국이 남아 있었다.

치이익!

상처 부위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무식한 강아지로고.”

투콰아앙!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쇼거스의 얼굴 중 하나가 움푹 파였다.

투콰앙! 콰아앙!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헤라클레스가 미친 듯한 괴력으로 몽둥이를 재차 내려쳤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그보다 너무 안심하지 마십쇼. 이 자식.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았으니까.”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쇼거스의 형태가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완력으로도 죽이지 못한다는 건. 힘으로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다는 소리.

전사들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 순간.

“태민아!”

“다 됐어요 형!”

[이태민이 고유능력 ‘기계군주’를 발동합니다!]

항해를 시작한 직후부터 배 아래에서 마력을 모으던 이태민이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에 들어갈 때는 기습을 염두해둬야 하는 법.

플랜 B 정도는 진즉에 준비해놨다.

[고유성창 ‘라스트 마이스터’가 발동됩니다!]

이태민과 진혁의 고유성창이 동시에 겹쳐졌다.

배 밑에서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특수 기체 ‘U보트’가 잠항을 시작합니다.]

배가 아니다.

물은 물론 기체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잠수함이 고속으로 움직였다.

추적기능이 있는 어뢰가 구름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쇼거스들을 요격했다.

퍼퍼펑!

퍼어엉!

여기저기서 구름 기둥이 생겨났다.

‘시스템 조작’을 통해 쇼거스로부터 신성력에 저항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해뒀으니. 효과가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재생력이 지독한 놈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입니다!”

잠깐의 시간을 번 이 때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진혁이 모든 병력을 강의 반대편으로 인솔하고자 했다.

[페시스가 ‘다차원 네비게이션’을 발동합니다!]

최적의 길을 파악할 수 있는 페시스가 천세의 벽이 가장 얇은 곳을 노렸다.

콰아앙!

쐐기추 대형의 배들이 전함 사이로 돌파했다.

속도와 위력.

그리고 타이밍까지.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 한 방이었다.

그런데.

침몰하는 배들을 본 신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뭐…?”

“무슨?”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배 안에 타 있는 병력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아예 한 명도 안 타있다고 하기엔 배가 움직이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게다가 전함 위에는 주인을 잃은 갑옷과 무기. 방어구 같은 것들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었다.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멍청하게 일렬로 줄지어서 와주는구나.”

“한 놈도 남김없이 태워버려주겠어요.”

기다리고 있는 건 각막마저 새하얗게 타오르게 만드는 빛이었다.

쿠쿠쿠쿠!

[알테라와 아덴이 ‘나선 브레스’를 발동합니다!]

일전에 상대한 적이 있는 놈들.

두 마리의 드래곤이 본신으로 돌아간 채로 계속해서 이 한 번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평범한 브레스와는 다르다.

오직 쌍둥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이중파동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으니까.

[고구마가 성명절기 ‘단죄의 검’을 소환합니다!]

“모기이이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고구마가 겁화로 타들어가는 검을 소환했다.

성체 때와는 달리 훨씬 작고 미지근한 불꽃.

그럼에도 고대룡이 가진 격은 부족한 힘을 그 혈통으로 메웠다.

콰콰콰콰콰콰쾅!

서로 다른 빛줄기가 한 점에서 충돌했다.

수십 개의 파장이 구름을 모조리 걷어냈다.

소용돌이와 파도가 더욱 널뛰기를 하며 요동쳤다.

작은 뗏목들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집어졌지만, 숫자는 많지 않았다.

상쇄.

가까스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고구마가 만들어준 틈을 이용해 이번에야 말로 포위망을 벗어나 반대편을 향해 나아갔다.

‘해류의 의지’와 ‘바람의 영역’을 이용해 속도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리스와 북유럽의 신격들 역시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서 이를 도왔고.

하지만.

그게 오히려 미끼였다.

“놈들이 완전히 빠져나간 건가?”

무루간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 연합측 배들을 바라봤다.

“예. 동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무루간 님께서 의도하신 대로입니다!”

“크하하! 이제 계획대로 몰이사냥만 하면 되겠군요.”

“너무 들뜨지 마라.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게다가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몇 번이고 역전의 수를 마련한 명장. 끝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이제 겨우 적을 굴의 입구에 몰아넣었을 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무루간이 ‘전장의 메아리’를 발동합니다!]

손에 쥔 긴 창은 무루간의 성유물인 벨(Vel)로 3개의 특수한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탁! 탁!

창이 나무 판자를 두드렸다.

그러자.

쿠쿵!

구름 저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태동.

쇼거스 보다 더 끔찍하고 불길한 태고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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