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02화
802화. 고인물이 유사(流)를 이용하는 법 (3)
입에 달달한 꿀이 듬뿍 발린 것 같은 설명.
재료를 어떻게 모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재료들을 통해 어떻게 맛있는 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호오.”
처음에 조금 수긍하던 여왕은….
“과연. 제법이야. 이해가 가는구나.”
어느새 진혁의 감언이설에 푹 빠져 있었다.
무너져가던 왕국을 다시 한 번 부흥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완벽하게 구현해냈으니, 당연히 희망에 부풀 수밖에.
이걸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아픈 아이들을 모조리 치유할 수 있는 건 물론, 극한의 맛을 추구하는 미식의 영역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냉소적이기만 하던 아트리사의 반응이 이 정도로 뜨거운 건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그럼, 그 다음은 이걸 대량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기까지.”
진혁의 말이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멈췄다.
“거기까지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신뢰의 증표로는 충분히 제공해줬다고 생각합니다만?”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나머지를 얻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걸 내놔라.
물론.
“어설픈 협박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 재료를 대량으로 채굴하는 방법과 그걸 재련하는 방법은 오직 저만이 알고 있으니까요.”
“건방진.”
“누구 앞에서 감히…!”
친위대가 벌침을 곤두세우려던 찰나.
아트리사가 가볍게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나서지 말라는 명령.
무례를 범하는 걸 단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우선, 먹이 창고에 갇혀 있는 제 동료들을 전부 풀어주시죠.”
아델과 서리혼령이 저 어딘가에 있다.
그 둘이라면 자력으로도 빠져나갈 수 있긴 할 테지만, 괜히 쓸데없는 손실을 만들 필요는 없으리라.
“바로 풀어주도록 하지. 다음은?”
“성유물 한 가지를 받고 싶습니다. 또한, 단 한 번, 친위대와 병력을 제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싶군요. 워낙에 착하게 살다보니 이래저래 뒤통수를 노리는 놈들이 많이 늘었지 뭡니까?”
말이 끝나는 순간.
오싹하고,
주위의 공기가 급변했다.
쿠쿠쿠쿠쿠쿠!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알현실 전체를 짓눌렀다.
“흐으음.”
진혁의 입에서 얇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력을 끌어올리는 게 조금 늦은 탓에, 살짝 내상까지 입고 말았던 것.
그 정도로 아트리사와 친위대가 뿜어낸 살기는 무거웠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과민반응이네.’
하기야, 한낱 먹잇감으로 보던 인간이 자신들을 부려먹겠다고 선언했으니까.
비록 한 번 뿐이라는 조항이 붙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이성의 끈을 날려버리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뭐 어쩌려고?”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상, 아무리 협박해봐야 무용지물이다.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순리지.
진혁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트리사의 시선을 받아냈다.
“선을 함부로 넘지 말거라 인간.”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걸 제안하는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이곳에 50층의 마력이 흘러나온다고 해도 이곳은 49층. 절대 50층의 대안이 될 순 없습니다.”
이것조차도 임시방편일 뿐.
수백, 수천 년을 놓고 봤을 때 근원적인 대책이 될 순 없었다.
“설마….”
진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아트리사가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예. 저와 동맹을 맺으면.”
단순히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
50층에서의 영역을 확보해주겠노라.
진혁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멍청한 소리!”
“망상도 정도껏이지. 그런 허무맹랑한 걸 믿으라는 건가?”
“50층이 어떤 곳인지 상상도 못할 미물 주제에 말은 아주 쉽게도 하는구나. 우리들이라고 좋아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까보다 더한 분노가 쏟아졌다.
“훗.”
엘리스만이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뭐, 의심하는 건 이해는 한다만.
정 그렇다면 알려줘야지.
이게 마냥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진혁이 ‘세계의 기억’에 저장되어있던 능력을 꺼냈다.
[고유능력 ‘원 아이 문’이 개방됩니다!]
쩌저적!
갈라진 틈 사이로 거대한 외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흉하고 불길한 빛을 머금은 태고의 눈.
모든 것을 내리깔아보는 아득함이 알현실 전체를 꿰뚫었다.
모를 수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로스.
갑옷 꿀벌들이 전부 덤비더라도 승산이 없는 최상위 태고의 신격이 가진 능력이다.
아트라사를 비롯한 모든 꿀벌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걸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
과거의 끔찍했던 악몽들이 당장이라도 재현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포에 짓눌려있던 것도 잠시.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떻게 한낱 인간이 그 괴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말했잖느냐.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포로가 되었을 뿐. 약해서 잡힌 게 아니라고.”
엘리스가 대신 그 의문에 답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상생입니다.”
힘과 마력을 온존한 채.
지금 당장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
싸움이 아닌 협력을 할 시간이다.
***
2차 산업 혁명.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화가 어떻게 그리 단시간 내에 눈부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간단하다.
피와 땀.
풍부한 노동력을 값싼 값에 부려먹으면 된다.
물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일푼으로 부려먹으면 더욱 좋고.
“끙끙.”
“영차영차!”
“모기이이!”
“미요오오!”
고구마와 후라이드를 비롯해 5대 원소의 정령수들이 익숙한 듯 시범을 보였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부품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주, 죽을 것 같아.”
“편하게만 사냥했는데, 어떻게 이런 지옥이 있다니.”
“살려줘. 아니, 이젠 그냥 죽여줘.”
갑옷 꿀벌들의 행복도는 말 그대로 지옥으로 추락했다.
새로운 벌집을 만들고, 온갖 광물과 식물들을 채집하며, 막혀 있던 굴을 뚫어낸다.
진혁이 주문하는 극악의 업무들을 쉴 틈 없이 몰아서 해야만 했다.
차라리 헤라클레스가 했던 12개의 과업이 애들 소꿉장난처럼 보일 만큼 굴리고 또 굴렸다.
“좋아. 좋아.”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단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꺼지지 않는 빛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야근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 이건 너무 과하지 않느냐? 아이들도 조금은 쉬어야….”
“괜찮습니다. 익숙해지면 다 돼요.”
“정말…이냐?”
“그럼요.”
이미 수없이 많은 빅 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게 지금의 시스템이다.
익숙해지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생명체라는 게 그리 쉽게 죽지 않게 설계되어 있거든.
물론, 복사조건 때문에 일부러 더 쥐잡듯 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아까 전에 당했던 사적인 감정도 한 스푼 추가되긴 했다. 진혁이 자신에게 막말을 했던 장군 꿀벌들을 바라봤다. 놈들에겐 특히나 가장 험하고 더러운 임무가 주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부우우웅!
우우웅!
여기저기서 벌들의 날개짓 소리가 울려퍼졌다.
짙은 페로몬이 뿌려지는 건 덤이다.
이건.
‘적?’
진혁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했다.
틀림없다.
갑옷 꿀벌들이 특유의 8자 형태의 비행을 하는 건, 외부로부터 침입자가 왔을 때 뿐이었다.
그리고 감히 이 녀석들의 영역에 대놓고 발을 들이밀 수 있는 존재는..
“왔구나.”
진혁이 등불을 든 채 다가오는 해골을 바라봤다.
페르무트.
어느새 수많은 태고의 생명체들을 휘하에 넣은 적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
“어이가 없군.”
페르무트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뒤통수를 친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벌레들의 먹잇감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악착같이 도망치거나 싸우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 설마, 놈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위험하다.
변수를 창출하고 허를 찌르는 능력은 그분에게마저 비견될 정도다.
그렇게 강렬한 본능이 최고조의 경고성을 알렸다.
저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정말로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게 될 거라고.
당황스러운 건 인왕 적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적의 주인・・・을 무슨 수로 회유한 거지?”
이 유적은 십이지들 사이에서도 금지로 여겨지는 최악의 장소. 당연히 그 어떤 자의 제안도 받지 않는 게 오염된 존재들의 철칙이었다. “빌어먹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왔건만, 완전히 독박을 쓰게 생겼군.”
“뭐가 됐든, 어차피 물러설 수 없다.”
페르무트가 등불을 들어올렸다.
상대의 전력도 상상을 초월하긴 했으나, 운이 좋게도 갑옷 꿀벌들은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하며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우우웅!
[‘혼돈의 주인’이 ‘영혼의 권속’을 발동합니다!]
아자토스의 성유물이 더욱더 잘 먹힐 확률이 높았다.
“크으으으…”
“어…어?”
하급 꿀벌 병사들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페르무트라는 천재적인 대마도사의 권능은 이미 성유물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15성에 이르는 최상위 포식자들조차도 넘어갈 정도로 말이다.
“죽여라! 전부 쓸어버려야 한다!”
페르무트의 고함과 함께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콰콰
“키에에에!”
“그오오오!”
5~9성급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와 식물들.
완벽하게 페르무트의 지배 하에 놓인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하이브를 향해 달려들었다.
“막아라!”
“여왕님을 지켜야 한다!”
콰아앙!
퍼어엉!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불꽃.
형형색색의 마력들이 보이는 시야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이것들이 미치기라도 한 건가.”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지휘계열에 속해 있는 정예 꿀벌들이 즉시 온 몸을 변화시켰다.
‘블레이드 아머’.
전투태세로 들어가면서 꿀벌들이 맹렬하게 방어전에 돌입했다.
피가 튀고 살이 으깨지는 참혹한 전황이 펼쳐졌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숙련도와 통솔력에 있어서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하필이면, 이런 때에 쳐들어오다니.”
아트리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영역에 이런 식으로 대놓고 침입한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양한 종족들이 연합을 해서 오는 경우는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기존 하이브 안에 적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식물계 놈들인데… 독침에 저항이 있어서 쉽사리 쫓아내기가 힘듭니다!”
“일반 병사들 중에서 이성을 잃는 자들이 대거 나오고 있어요.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려고 하긴 하지만, 쉽진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급보.
그러나, 허를 찔려 당황해하는 갑옷 꿀벌들과 달리 진혁은 만반의 준비를 끝내뒀다.
‘예상보다 빠르긴 한데, 그래도 너무 늦었어.’
지금쯤이면 테레사와 말랑흑두루미 쪽도 준비가 끝났겠지.
드디어.
모든 패가 갖춰졌다.
진혁이 아트리사에게 받은 성유물을 꺼내들었다.
역대 여왕들사이에서만 내려오는 ‘허니 블론드’,
이걸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하이브의 기둥 밑에 흘려보낸다면….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붉은 상태창과 함께.
[‘유사의 길’이 개방됩니다!]
모든 것을 혼돈으로 몰아넣는 변수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