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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06화


806화 숨겨진 노림수 (2)

설계자와 운영자.

시련의 탑이란 거대한 세계관을 지탱하는 기둥들의 개입은 절망적이던 분위기를 180도 바꿔버렸다.

“릭 헤네시….”

노스이디크의 음성이 분노로 흔들렸다.

과타노차와의 전투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고 또 남자의 추격까지 받아 절대 이번 싸움에 개입하지 못할 거라 보고받았다.

하지만.

저렇게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다니.

처벌이 두려운 과타노차가 일부러 전과를 과장했다고밖에 설명이 되질 않는다.

“멍청한 놈.”

자연스레 욕이 나왔지만, 이미 소멸해버린 놈을 저주해봤자 의미따윈 없으리라.

릭이 진혁의 옆에 다가와 인사 대신 중절모를 살짝 들어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상황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요.”

“네. 저 녀석이 꽤나 골치 아픈 장난질을 해놨거든요.”

안타깝지만 쌓인 이야기를 푸는 건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은 훨씬 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으니까.

“확실히, 저 그림자는 위험해 보입니다. ‘시스템 조작’으로도 속도를 약간 늦추는 게 고작일 뿐. 발동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공을 많이 들여놓긴 했더라고요. 뭐, 귀찮지만 별 수 있겠어요? 직접 가서 때려 부수는 수밖에.”

“하하하!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시간을 버는 것쯤은 이 릭 헤네시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그리 쉽지는 않을 거다.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릭 헤네시의 옆구리 쪽에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믿고 맡겨야 한다.

이 층계를 넘어 탑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지옥을 몇 번이고 넘어야만 했으니.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이 움직이려 했다.

“누구 마음대로 이 자리에서 떠나도 된다고 했지?”

노스이디크가 옆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킬 ‘땅거미의 요람’이 발동됩니다!]

꿀렁꿀렁!

지면을 따라 검은색 그림자들이 솟구쳤다.

앙상한 손아귀들이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메웠다. 

“가세요.”

릭 헤네시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진혁의 앞에 섰다.

“이쪽은 저희가 맡을 테니. 걱정 말고 술식에만 신경 쓰십시오.”

수리부엉이 역시 릭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스승…님.”

“…..”

절망하고 있는 제천대성과 삼장법사였다.

이미 생기가 거의 빠져나간 삼장법사는 당장 숨이 끊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 아직 완전히 죽지도 않았다는 뜻.

필요가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제천대성의 존재 여부는 전황 자체를 뒤바꿀 만큼 중요할 터.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 저 투귀를 붙여주려면 은혜 하나 정도는 입힐

“릭 헤네시 님.”

“예.”

“저는 잠시 빠져서 저 소녀를 치유해도 되겠습니까?”

수리부엉이의 뜻을 간파한 릭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툭.

수리부엉이가 제천대성 쪽으로 몸을 날렸다.

초분을 다투는 일인 만큼 잠시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이……

위대한 존재의 심기를 제대로 긁고 말았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예 내가 없는 듯 행동하는구나. 애써 역할을 분담하려하지 말거라. 이곳에서 모조리 묻어줄 테니.”

노스이디크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해방했다.

퍼퍼퍼퍼퍼펑!

콰아아아앙!

솟구친 손아귀들에서 검보라빛 광선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차별 난사.

그림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검은 운무들 사이로 여러 개의 눈알들이 튀어나왔다.

보는 족족 전신을 굳게 만들고 이성을 잃게 만드는 효과를 뿜어냈다.

“끄아아악!”

“우아아악!”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건 십이지들 쪽이었다.

실력 자체가 떨어지는 탓에, 분노한 노스이디크의 일격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피해라! 모든 걸 다 버려두고 도망쳐야 한다!”

백희가 사력을 다해 지휘를 하고 있었으나, 부질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몇 명.

혹은 몇 초의 시간을 연장하는 게 한계였으니까.

게다가.

게 중에는 광선을 난사하는 게 아닌 검은색 쇠사슬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있는 손아귀들이 있었다.

노스이디크의 시선과 함께 방향을 조금씩 틀어대는 손아귀들이었다.

철그럭. 철그럭.

기분 나쁜 불협화음이 고막을 찌르기를 몇 번.

“저기가 좋겠구나.”

노스이디크의 말과 함께 손아귀 하나에서 창이 사라졌다.

십이지들의 장로들과 고위급 정예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파아앙!

최소한의 소리와.

최소한의 거리로.

최대한의 절망을 자아낸다.

꾸울렁!

창이 꽂힌 주위에 만들어진 구름 웅덩이.

“키으…그으어어.”

“켁! 케엑! 컥!”

휘물려든 이들의 온몸에 가느다란 실핏줄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잠시, 점점 더 모습이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염된 쇼거스 ‘틴달로스의 어둠거미’가 만들어집니다!]

등에서 튀어나온 6개의 검은색 손들은 거미와 합성된 듯한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자아냈다. 태고의 존재들이 소유한 쇼거스 군단.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끔찍하기로 손꼽히는 노스이디크의 쇼거스들이 만들어졌다.

“미물들이 1인 군단이라는 칭호를 함부로 사용하더구나. 웃기는 일이지. 그 말에 담긴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 채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으니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1인 군단’이라는 말에 합당하리라.

“크오오오!”

“키에에에!”

틴달로스의 쇼거스들이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이들을 공격했다,

“머, 멈춰!”

“정신차려라. 곤아호(琨虎)!”

“아악! 이 녀석. 날 물었… 끄으으아아아!”

동료들을 진정시키려다가 물리거나 베인 이들 역시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전염이 전염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처럼.

감염된 쇼거스들은 끊임없이 증식하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나섰다.

“마경이 따로 없구나.”

“가만히 있다간 저희도 휘말리겠어요.”

엘리스와 서리혼령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조금 전까지 싸웠던 적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일방적인 학살 앞에서 동정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오히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지만,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유사’의 능력을 이용해 움직이려고 하던 바로 그때

“말하지 않았더냐.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고.”

파아앙!

또 다른 창이 멤버들을 향해 날아왔다.

공격대라는 개념 자체를 말살시켜버릴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창이 닿기 바로 직전.

콰아아앙!

릭 헤네시의 지팡이가 끼어들었다.

[특수 스킬 ‘설계자의 타임슬립이 발동됩니다!]

그토록 끔찍한 위력을 자랑하던 창이 잠에 든 듯 조용해졌다.

ZZZZ….

실제로 의사 자체가 없는 무기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까지 들렸다.

진혁과 릭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유사가 ‘마지막 전장’으로 인도합니다!]

최후의 싸움터로 향할 멤버들의 모습이 화과산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기어이 재를 뿌리는군. 네놈이라면 알지 않느냐? 아무리 발악해봤자 우리들에게는 안 된다는 것을?”

릭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거야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일. 모든 걸 너무 예단하지 말게. 그런 오만이야말로 자네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약점이니까.”

그러자.

우우웅!

오른쪽 허공이 일렁이며 거대한 열쇠가 나타났다.

반대 쪽에서는 화려한 문양을 지닌 원판이 나타났다.

[개문(門)-‘염령호환정’이 발동됩니다!]

철컥!

열쇠가 원판에 들어가자 격철이 맞물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황금색 운무와 함께 허공에 처음 보는 형태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크크… 크하하하하!”

노스 이디크의 입이 위아래로 길게 찢어졌다.

과연, 어떤 놈이길래 그 남자가 그토록 저 관리자를 주시했나 했더니.

이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겠다.

상상 그 이상의 이능을 가지고 있었구나!

타차원.

다른 세계의 힘을 불러올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을 줄이야.

아자토스께서 바라던 다른 우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드디어 현실화 되는 순간이다. 저 방법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의 격 역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치로 격상할 수 있게 되리라.

두근! 두근! 두근!

검보라빛 심장들이 격하게 고동쳤다.

동시에 노스 이디크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줄기들이 연이어 하나의 형태로 합쳐졌다.

줄기에 달린 입들에서 수많은 이빨들이 돋아났다.

쿠쿠쿠쿠!

“금제를 푼 건가.”

릭 헤네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놈 같이 굵직한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잔혹하게 조사해주겠다.”

노스이디크의 관심이 완전히 릭 헤네시에게 향했다.

어차피 놓친 고인물 코퍼레이션이야 ‘저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처리해줄 터. 그것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이 참을 수 없이 먹음직스러운 자를 잡아야 한다.

50층에의 전력을 고스란히 끌어와서라도 말이지.

우우우우웅!

49층 전체를 소멸시켜버릴 수 있을 만한 이질적이고 거대한 힘이 몰려들었다.

혹여라도 놓친다는 선택지를 없애려는 생각에서다.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다니. 역시 ‘그쪽의 진실’에 대해서도 전부 알고 있었군. 50층을 지배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줄 알았건만, 태고의 존재는 태고의 존재라 이건가.” 

릭 헤네시가 결심을 굳힌 듯 중얼거렸다.

“시련의 탑을 수호하는 자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그대들의 야망을 막고 말겠네.”

곧바로

파츠측!

파치칙!

초월자들의 마력이 화과산 전체를 집어삼켰다.

***

[한계 지역에 도달했습니다!]

[특수한 파장으로 인해 ‘유사’의 이동반경이 제한됩니다!]

쩌정!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고속으로 이동하던 모래의 흐름이 멈췄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설마설마 했는데, 저곳에서 빠져나왔다는 건가? 태고의 존재께서 펼쳐둔 포위망을 뚫다니.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는군.”

“그러니까. 내가 온다고 했잖아. 저 녀석들. 지금까지 싸워온 침입자들하고는 확실히 다르다니까?”

그리고 그 앞에서는 우마왕을 포함한 축족의 정예들과 무진룡이 이끄는 진족의 정예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 외에도 태고의 존재들에게 복속한 여러 부족들이 곳곳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틴달로스의 사냥개에 속한 놈들도 숨을 죽이고 있겠지.

얼핏 봐도 엄청난 준비를 해온 게 느껴졌다.

노스이디크가 자신만만해하던 이유가 어째서인지 알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저 벽을 뚫어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을 테니까. ‘많아야 10분. 아니 릭씨 덕분에 조금 여유가 생겼으니 15분 정도는 있으려나.’

진혁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오묘한 하늘색으로 이루어진 빛의 기둥이 보인다.

층계 전체를 따라 퍼지는 마력의 흐름.

저곳이 바로 노스이디크의 술식이 이루어지는 근원지다. 색이 완전히 푸른빛으로 변하게 된다면 ‘땅거미의 시간’이 완성될 터.

그럴 경우 이 층계 전체에 있는 이들은 모두 노스이디크의 오염된 쇼거스들로 변해버릴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추악한 꼴을 면하게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백년 정도는 49층에 갇힌 채 땅거미를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겠지. 

‘어우야.’

어느 쪽이든 그다지 바라던 미래가 아니다.

바로 그때.

제천대성이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진혁이 초조해 보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대와 함께 온 자가 스승님을 돕겠다 말했다.”

완벽한 신뢰와 믿음의 관계까지는 아니었다.

원래 함께하기로 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일시적인 동맹이었을 뿐.

허나, 조금 전 일을 기점으로 제천대성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대를 저곳까지 보내겠다. 그러니.”

믿고 맡겨라.

그 유명한 제천대성이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훗!”

“한 번 해보자고.”

“위그드라실의 자손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 전사들의 화끈함을 보여주겠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함께 싸워보자꾸나. 나의 검은 사도여!”

“우리 일족의 운명도 이미 그대에게 맡긴 상황. 말만 하거라. 유적을 지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도록 하지.” 

상위 신격들을 포함해 베리엘과 아트리사까지 한 마디씩 거들었다.

크흠.

이건 또 나쁘지 않은 기분이네.

“누가 가진 승부수가 더 날카로운지 확인해보자고.” 

뭐, 명색이 고인물이 이 정도나 되는 패들을 잔뜩 모아서 왔는데, 고작 10분 남았다고 앓는 소리나 하고 있을 순 없다.

진혁이 두 주먹을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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