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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07화


807화. 땅거미 술식의 근원지 (1)

나에게 주어진 전력과

상대가 보유하고 있는 전력을 가늠하고.

남겨진 시간을 고려해 전체적인 작전의 개요를 완성한다.

‘디테일은 생략하자.’

그거야 각각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판단에 따라 수만 개의 다양한 변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

그것보다는 상성을 고려한 최적화를 고민하는 게 더 먼저다.

뭐 그래도 시작하기에 앞서 한 번 정도는 던져볼까?

“잘 모르나 본데, 너희들 줄 완전히 잘못 섰어. 노스이디크가 십이지를 제물로 삼아 49층을 봉인시켜버리려 하고 있거든. 이미 백희가 그 희생양이 되고 있는 중이고.” 

“……!?”

“……”

진혁이 던진 말에, 움찔하고.

두 왕의 미간이 구겨졌다.

오! 통한 건가?

“하찮은 거짓말이군.”

“너희들만 제거하면 다시 예전의 평화가 지속될 터. 이미 승리를 목전에 둔 와중에 그분들께서 그런 위험하고 무모한 판단을 내렸을 리 없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 와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평범한 민사재판에도 증거를 가지고 진위를 가리는데.

일족의 명운이 걸린 일에 적의 말만 가지고 편을 바꿀 리가 있겠는가?

이럴 때 보면 가끔 ‘성인’ 직업이 부럽긴 하네.

성인 클래스가 되면 전투력은 거의 없는 대신, 그가 하는 말은 어지간해서는 다 믿어주던데 말이지.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진혁이 실소를 머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성인이라니.’

만에 하나 성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49층에 오기 전에 홧병으로 먼저 죽는 게 빨랐을 거다.

“싸움 자체는 피할 수 없게 되었구나.”

엘리스가 천천히 마력을 끌어모으며 말했다.

“그러게. 십이지들이라도 회유할 수 있으면 조금 더 수월해졌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이곳에 모인 모든 멤버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담긴 메시지가 전해졌다.

띠링!

띠링!

띠링!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닌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임무들.

짧으면서 직관적인 메시지를 받은 이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길어져라. 여의.”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제천대성이었다.

황금빛 스파크를 머금은 여의봉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편의 진형까지 도달했다.

콰아아앙!

역시나 이에 맞선 건 최강의 호적수로 평가받는 우마왕이었다.

“아우는 예전부터 승산이 없는 쪽에 붙길 좋아했지. 제 멋대로인 건 여전하군.’

여의봉을 양손으로 받아낸 우마왕이 말문을 열었다.

“비키십쇼. 한 때 소중했던 이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콰아앙! “크하하하! 한때의 인연이라. 부질없구나. 이미 각자가 몸을 맡긴 격류는 돌이킬 수 없을 터. 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면 나를 쓰러뜨려라!”

여의봉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놈들은 애초에 우리 전부를 제물로 삼으려고…!”

“말이 길어졌구나. 아우답지 않게. 허나, 이미 대화로 해결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우마왕이 고유성창 ‘경천지동(驚天地動)을 발동합니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떨리게 한다.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49층을 지배하는 왕의 격이 뿜어졌다.

쩌저적!

여의봉 주위의 지면과 하늘에 균열이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압력이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와 터질 듯이 팽팽해진 근육.

전력을 발휘하는 우마왕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기운을 압도했다.

“왕을 따르라!”

“이곳만 막으면 우리의 승리다!”

“음무오오!”

축(丑)족의 전사들이 길게 포효성을 내뱉었다.

힘을 숭상하는 이들답게 하나하나가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들이었다.

“우마왕을 지원한다.”

“조금만 견뎌라. 곧 있으면 우리만의 넓은 나라를 갖게 될 테니까.”

49층이라는 제한된 영역.

그곳에서 강력한 왕들 사이에 짓눌린 여러 부족들은 척박한 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태고의 존재들이 40층 중후반 부의 노른자 위 같은 곳을 약속했으니까.

오(午)족의 왕 ‘천리마(千里馬)’가 지면을 굴렀다.

두두두두두두!

뿌연 먼지구름과 함께 시계 반대 방향을 따라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말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유(酉)족의 왕 ‘계(鷄)’ 역시 녹색 기체를 꾸역꾸역 뿌렸다.

“그라라라라라!”

20m에 이르는 거대한 몸뚱어리를 움직이며 숨을 쉴 때마다 각종 전염병이 내뿜어졌다.

최단 거리 루트에서는 무진룡을 포함한 동쪽의 용들이 창공을 지배하고 있었다.

얼핏 보더라도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매번 티격태격하던 놈들끼리 과연 합이 맞을까?’

연합이라는 게 겉보기에는 굉장히 든든하고 강력해보이지만, 손발이 완벽하게 맞지 않으면 시너지가 대폭 반감된다. 그에 비해.

이쪽은 오랫동안 한 팀을 이루며 서로의 마음을 훤히 내다보고 있지.

진혁이 옆에 있는 베리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감옥 안에 갇혀 있느라 꽤나 지루했는데, 어디 오랜만에 날뛰어볼까.’

[흑창 ‘키샨’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베리엘이 질주하는 오족을 향해 창을 내던졌다.

콰콰콰콰콰콰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휘어진 키샨이 선두에 있던 오족의 장로를 노렸다.

“그렇게 대놓고 던진 창이 통할 것・・・ 음!?”

방패를 들어 방어하려던 장로의 두 눈이 크게 팽창했다.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온몸을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크로노스가 ‘시간의 공백을 발동합니다!]

0.3초 가량의 틈이 벌어졌다.

거기에.

[호루스가 ‘백색 사막의 태양’을 발동합니다!]

눈부신 빛이 망막을 그대로 태워버렸다.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에 3개의 능력이 방어체계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퍼걱!

“크아아악!”

키샨에 꿰뚫린 장로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콰콰콰콰쾅!

뒤쪽에서 따라오던 오족의 전사들까지 한데 뒤엉키며 쓰러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휘유.”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나 똑소리가 절로 나는 합격진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십이지들의 발을 묶어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가야한다.

진혁이 술식의 근원지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막아라!”

“멈춰!”

“절대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사력을 다해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바로 그때.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이 특수 스킬 ‘태양과 달의 궁병’을 발동합니다!]

퍼퍼퍼퍼퍽!

퍼퍼퍼퍽!

무수히 쏟아지는 태양과 달의 화살들.

강력한 엄호사격이 진혁이 가는 길에 끼어드는 것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토르가 스킬 ‘천둥 군주의 망치’를 불러옵니다!]

“방해하지 마라!”

천둥의 신이 묠니르를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크하하! 간만에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등은 맡기겠다. 아스가르드의 동료여.”

헤라클레스 역시 12개의 과업을 사용하며 전장에 개입했다.

대인전에 있어서는 최강을 자랑하는 무투파의 신격들.

“가라! 인간!”

“우리가 그대의 길을 지키겠다!”

한 때는 이들을 상대하는 게 거대한 태산을 마주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한편이 되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숫자는 압도적으로 이쪽이 더 부족했지만…….

글쎄.

진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들지 않았다.

콰앙!

진혁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1차적으로 막고 있는 십이지의 방벽을 돌파하며 땅거미 술식이 펼쳐지고 있는 외곽까지 도달했다.

***

화끈하고.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푸른색 연기로 인해 잘 보이지 않던 시야가 드러났다.

그러자.

그곳엔 십이지들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성가신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아.”

진혁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 이보다 더 골치아픈 적들은 없으리라.

“드디어 다시 보게 되는군.”

“하사신 때는 신세를 많이 졌어. 이번에야말로 못다 한 결판을 내보자고.”

막아서는 이는 셋.

하지만, 차라리 십이지로 이뤄진 대군을 상대하는 쪽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일전에 암스테르담에서 마주한 적이 있던, 서리혼령이나 벨토르 같은 고대의 등반자들이었다.

[‘고대의 맹세’로 인한 맹약이 발현됩니다!]

단 베르문.

아마라 릴스베인.

마지막으로 미그라까지.

모두 최상위에 속한 강자들이다.

노스이디크가 가져간 ‘고대의 맹세’가 완벽하게 녹아들었는지. 이전과는 다르게 마력의 파장이 태고의 파장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특수 거점 ‘술식의 근원지’에 ‘거점 군주’가 현현합니다!]

태고의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전권 위임’까지 발현되었다.

그리고 거점 군주의 역할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바르어비스였다.

유적이나 미궁의 ‘가디언’들과 비슷한 역할이었지만, 그들보다 족히 3배 이상의 버프를 받을 수 있는 사기적인 칭호다.

“여기까지다. 인간.”

바르어비스가 고개를 까딱였다.

양쪽에 등반자 세 명을 데리고 있으니, 꽤나 든든해 보인다.

하기야 이런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저 괴물들과 함께라면 한겨울 날 12시간 야외 노동 후에 먹는 국밥 같겠지.

하지만.

쩌저저저적!

우우우웅!

서리와 피로 만들어진 참격이 사선으로 가로질렀다.

콰아아앙!

두꺼운 방패와 피가 뒤섞인 실드가 이에 맞섰다.

“여전히 묵직하군. 서리혼령.”

“그대의 방패는 더욱 단단해졌네요.

단 베르문과 서리혼령이 격돌했다.

“계약자의 앞길을 방해하지 말거라!”

“너야말로 까불지 말고 언니랑 놀자니까? 오랜만에 아타락시아의 피 맛을 좀 보여주렴.”

엘리스는 아마라 릴스베인과 맞섰다.

서로 ‘피’를 다루는 이상, 전투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

회복력에 있어서는 거의 불사(不死)의 영역에 이른 둘이었으니까.

거기에 마지막 등반자인 미그라까지 가세하면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이 이어졌다.

그 틈을 이용해 진혁이 ‘천마군림보’를 시전했다.

빠르고 가볍게.

탓!

얽히고설킨 마력의 폭풍과 어지러운 시야를 뚫고 목적지까지 단숨에 도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상개변 ‘용들의 운무회’를 발동합니다!]

바람과 번개 그리고 5대 원소로 정의되지 않는 신묘한 기운이 합쳐졌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이 그대로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단순히 찍어누르는 게 아닌 ‘흐름’을 제어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에 가깝다.

당연히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뿐.

“말하지 않았더냐. 절대 앞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진족의 왕 무진룡.

그리고 그를 따르는 형형색색의 비늘을 가진 용들이었다.

“후후! 역시 너희들과 손을 잡길 잘했군. 아주 든든해. 그럼, 계속해서 저 녀석의 발을 묶어 두거라. 나는 술식이 완벽하게 완성되게끔 마지막 장소에 가 있겠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바르어비스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7분 남짓.

모래 시계 속 알갱이들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바르어비스가 저쪽으로 갔으니 어쩌면 남은 시간은 더욱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대치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온전히 저쪽의 편이었으니까.

‘전부 다 죽일 필요도 없어.’

술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창출하면 그걸로 족하다.

문제는 타이밍인데…….

아직까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게 도착하지 않고 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고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준비를 끝마쳐놔야 한다.

[아공간이 개방됩니다!]

진혁이 총력전을 위한 카드들을 모조리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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