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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09화


809화. 땅거미 술식의 근원지 (3)

동기화.

수없이 단련하고 갈무리해 온 기운은 이미 초월자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거기에 사선을 넘으면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은 어지간해선 막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고유성창 ‘네메시스’가 발동됩니다!]

거신족과 헤라클레스의 신체를 불러와 재현시킬 수 있는 능력.

‘최강의 투창’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남은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콰콰콰콰콰콰콰!

한 줄기 섬광이 술식의 근원을 향해 뿜어졌다.

수십 개의 소닉붐을 만들어내며 날아간 퍼스트 블레이드가 그대로 땅거미의 핵에 닿았다.

쩌저저저저적!

‘빙하천결’과 ‘태초의 불꽃’. 그리고 ‘검의 무덤’에서 나오는 마기까지 섞어 놨던 터라, 엄청난 폭풍이 일어났다.

솟구치던 빛줄기의 색마저 바뀌어 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투척이었다.

그런데.

[‘땅거미의 핵’이 ‘무한의 결정화’ 상태에 접어듭니다!]

[피해량이 88%만큼 감소됩니다!]

쿨럭!

바르어비스의 입에서 굵은 피가 흘러나왔다.

‘거점군주’의 능력을 전부 끌어다가 한 가지 특수한 권능을 발현시킨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이곳에 배치된 건 틴달로스의 사냥개들 중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공격력?

그런 거에 특화된 놈들이야 여럿 있었지만, 단순히 부시고 박살내는 것 하나만으로는 거점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바로 노스이디크마저도 인정하는 강철 같은 방어력과 수복력.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 거점을 지킬 수 있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지.

“몇 번이고 부딪쳐봐라. 반드시 견뎌줄 테니.”

바르어비스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다음 투척을 기다렸다.

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확실히

‘피해량이 절반도 아니고 88%나 감소시키는 건 사기적이긴 하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30초 남짓.

고작해야 2번 정도를 더 쏠 수 있는 시간이다.

마력이야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남은 2격 안에 저걸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조각’이 도착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는데. 슬슬 맞춰서 와줘야 한다.

‘일단은 저것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겠어.’

진혁이 곁에 있는 근두운에 손을 갖다 댔다.

제천대성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근두운은 마력을 조금 흘려넣는 것만으로도 원래 주인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우우우웅!

부드러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마치, 지금이라고 말하는 듯.

***

같은 시각.

콰아아앙!

여의봉이 우마왕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크읍!”

우마왕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적에 가까운 신체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제천대성의 일격은 그 무적을 박살낼 수 있는 격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라 여기고 무턱대고 공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끼리 싸우는 건 무의미한 짓입니다.”

“무의미하다고? 아우는 진정 그리 생각하는 건가?”

제천대성의 말에, 우마왕이 코웃음을 쳤다.

콰앙!

분노와 경멸이 담긴 눈이 제천대성에게 향했다.

“49층의 자원은 말라가고 있어. 너무 오랫동안 우리끼리 고여버린 탓이지. 심지어 우리는 12부족이나 되지 않는가?”

그 결과가 이거다.

늘어나는 부족의 구성원에 비해 점점 더 황폐해져 가는 자원들과 먹거리.

당장은 괜찮겠지만, 언젠간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올 게 틀림없었다.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지!”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족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대가라도 감수할 수 있었으니까.

“설득을 할 수는 없겠군요.’

쿠쿠쿠쿠쿠!

“”

늘어났던 여의봉이 점점 더 가늘어졌다.

크기는 훨씬 더 작아졌지만, 대신 황금빛으로 물든 각인들이 눈부신 광휘를 쏟아냈다.

“전력을 다할 셈인가. 그렇다면 나도 그에 걸맞는 걸 꺼내야겠군.

우마왕 역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드득!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뽑혀 나왔다.

[성유물 ‘파초선(芭蕉扇)’이 ‘태풍의 기운’을 발현합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여의봉과는 달리 훨씬 더 큰 형태로 변한 파초선에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몰려들었다.

강풍과 비와 태풍을 불러일으키는 권능.

가지고 있는 파괴력이 터무니없었기에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보기 힘든 신물이었다.

“잊진 않았겠지? 이것에 5만리를 날아갔던 걸 말이야.”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죠.”

제천대성이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단순히 파초선을 다시 꺼낸 우마왕과의 결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옛 전우이자 의형제와 이런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지.

어차피 물러설 수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

우우웅!

따스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제천대성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처음 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 ‘한 방’을 부탁하던 은인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저 역시 그 이후 제자리에서 멈춰 있기만 한 건 아닙니다.”

여의봉을 앞으로 뻗은 채 자세를 잡는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투기가 몰려오는 폭풍에 정면으로 맞섰다.

“크하하하!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를 것이야.”

우마왕 역시 파초선을 크게 뒤로 젖혔다.

콰치칙!

이전까지 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과 마력이 격돌했다.

구름이 갈라지고 대기가 떨린다.

49층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두 절대자의 대결은 주위에 있던 이들마저 무기를 놓고 구경하게 만들었다.

[파초의식(式) – ‘한절풍(限絶風)’이 발동됩니다!]

첫 번째 칼바람이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지도를 새로 그려 넣어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강풍이 몰아쳤다.

쩌저저적.

우마왕의 발 밑을 기점으로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흘러나오는 방향을 따라 모든 것이 얼어붙는 건 덤이었다. 그에 맞춰.

“받아쳐라. 여의.”

제천대성의 여의봉이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평소의 패도적인 것과는 다르다.

힘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그 흐름을 부드럽게 흘려내는 것에 가까웠다.

“호오.”

강풍의 궤도가 틀어짐에 따라 우마왕의 눈동자에 생긴 이채가 점점 더 커져갔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다.

무턱대고 덤벼들기 바쁘던 호전성 대신 ‘유함’을 가지게 되었다.

결코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속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묵직한 투기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거대해졌으니까.

하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흘려넘기는 것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려주지.”

우마왕이 다시 한 번 파초선을 움켜쥐었다.

파초선이 주위의 기운과 공명하며 최대치의 바람을 끌어모았다.

이것이 바로. 시간으로 치면 고작 몇 초 밖에 안 되었지만, 그 짧은 찰나에 모인 바람은 세상을 전부 집어삼킬 정도로 매서웠다.

…전력이다.

[파초의 무의식(式) – ‘만리풍(萬里風)’이 발동됩니다!]

막아서는 것도.

받아치는 것도.

흘려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큭!”

여의봉이 그대로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로 튕겨나간 황금빛 막대기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승리다!”

우마왕이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어?”

광소를 터뜨리던 우마왕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여의봉이 단순히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게 아니라.

만리풍을 등에 업고 한쪽 방향을 향해 투창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것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더 가속도가 붙으면서.

***

온다.

진혁이 불어오는 태풍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날카로운 검격이 그대로 땅거미의 핵에 닿았다.

“소용・・・ 없다 했을 텐데!”

바르어비스가 생명을 깎아가며 버텼다.

꾸역꾸역 그림자와 피를 토해내면서도 맡은 역할을 다 하는 게 정말이지 눈물겨워 보인다.

그래.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하지만 말이다.

[파초&여의 – ‘십이지의 창’이 소환됩니다!]

이거라면 어떨까?

가속에 가속을 거듭하며 날아온 최강의 창이 진혁이 만들어놓은 균열을 비집고 들어왔다.

“무슨?”

바르어비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허나, 대응할 틈 자체를 없애버린 투창이 핵을 관통하고 반대편까지 이어졌다.

투콰아아아앙!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충격이 술식의 근원지를 휩쓸었다.

핵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나버렸다.

“됐다!”

“과연, 대단하구나!”

공중에서 전투를 치르던 아트리사와 갑옷 꿀벌들 사이에서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30초도 안 남은 시점에서 완벽하다 할 수 있는 일격이 이뤄졌다.

근본이 되는 핵이 파괴되었으니 이 싸움의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딱 하나를 제외하곤.

“그분의 뜻은 정말로 헤아릴 수 없구나.”

바르어비스의 입에서 절망 대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우우우웅!

수백 개의 조각으로 갈라진 결정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땅거미의 그림자가 ‘절망의 형(形)’을 갖춥니다!]

수십 개의 손아귀들이 솟구쳐올랐다.

노스이디크의 권능이 빛줄기를 타고 49층 전체에 퍼져나가려 했다.

“물리적인 파괴가 해법이 아니었단 말이냐?”

아트리사가 허무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그렇다! 네놈들이 아무리 강력한 능력을 총동원해봤자 소용없다. 애초에 이 술식은 49층의 공략 조건. 그 자체와 계약되어 있으니까!” 바르어비스가 감정에 북받쳐 소리질렀다.

희망을 쫓으며 아등바등 기어오르는 벌레들이 마지막 순간에 절망하는 모습.

그걸 지켜보는 희열은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희였다.

“이럴 수가….”

“여기까지란 말인가.”

갑옷 꿀벌들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술식의 파훼법을 알았다고 해도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0초 남짓 남은 상황에서 49층의 공략 조건을 달성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앙!

전장의 한쪽에서 바르어비스의 그림자와는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직 늦은 건 아니지? 진짜 발에 땀나도록 뛰어서 왔는데!”

“주군! 저희가 왔습니다!”

묘족의 왕. ‘청하’와.

음영을 이용해 이동하는 ‘월영’이었다.

“방해꾼들이 몇몇 있긴 했는데, 전부 다 처리했어. 응.”

그리고 전투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둘을 호위하기 위해 붙여뒀던 프레이 역시 ‘불사의 인형들을 이끌고 참전했다.

등에는 저마다 주렁주렁 십이지를 상징하는 성물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일종의 빈집털이.

모두가 이 최후의 결전에 전력을 다 쏟아붓고 있는 사이. 기동력과 은밀함을 주무기로 하여 49층의 돌파 조건을 달성하는 게 계획이었다.

꽤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하는 데다, 전력을 빼돌리는 만큼 리스크 적인 측면도 있었는데.

다행히 결정적인 시간에 딱 맞춰 왔다.

12지신의 왕들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른 다리를 가진 ‘청하’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12개의 성물들이 공명합니다!]

쩌저적!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던 결정의 틈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다. 이것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다!”

비명을 지르는 바르어비스의 절규와 함께.

띠링!

띠링!

띠링…!

[‘땅거미 술식’이 파괴되었습니다!]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지며, 십이지들에게 이 싸움의 진실에 대한 진실이 공유됩니다!]

무수히 이어지는 상태창을 끝으로,

[49층이 공략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종막을 고하는 마침표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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