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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2화


812화. 전후처리 그리고 마지막 휴식 (3)

“내… 내 혈옥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엘리스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파닥파닥 뛰었다.

오. 조금만 더 손을 빨리 움직이면 거의 날 수도 있겠는데?

“이해해주십시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런 소중한 장소를 제공해 주신 대가로 엘리스 님께는 이걸 드리겠습니다.”

[‘아타락시아의 휘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펄럭.

엘리스의 어깨 위로 검은색 천과 황금 자수로 만들어진 휘장이 떨어졌다.

먼 옛날.

엘리스가 다른 가주들에 의해 회랑에 갇히게 되면서 불타 없어진, 아타락시아의 상징.

블랙 캐슬의 꼭대기 위에서 당당하게 거점임을 알리던 깃발이 되돌아왔다.

이건 성유물이나 코인 따위와는 가지고 있는 가치가 달랐다.

헌데, 릭 헤네시는 그걸 복원시켜준 것이다.

설계자의 고유 권능으로,

게다가.

“오지랖이긴 합니다만, 이것 또한 선물로 드리죠. 아마 요긴하게 잘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릭이 엘리스의 귓가에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러면서 핑크빛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고급스러운 향수 한 병을 엘리스의 호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일곱 여신의 향수를 획득하셨습니다.]

[사용 시 대상 한 명이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도가 영구적으로 +30만큼 상승합니다.]

[또한, 이걸 소유하고 있으면 대상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강제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가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굉장히 입수하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사치품.

하지만, 대상단의 주인이기도 한 릭 헤네시는 기억을 봉인 당하기 전 꽤나 희귀한 것들을 많이 모아두었다. 희소성과 값어치만 따진다면 혈옥 안에 있는 것에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당신….”

릭을 바라보는 엘리스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헤헤. 짐은 관대하니라.”

그 뒤부터는 혈옥에서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헤실헤실 웃으면서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전 이걸로 할게요.”

“이 도끼라면 내 힘을 훨씬 더 끌어올려 줄 수 있을 것 같군.”

“혈액으로 만든 마정석들을 탄환으로 만들 수 있으면 제 드론과 방어 타워들을 대폭 강화할 수 있을 거예요.”

릭의 조언하에 모두가 신중하게 성유물들을 골랐다.

무기와 방어구 소모품.

혹은 스킬서나 술식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이야, 이거 귀한 지도로군요. 게다가 오오! 고대 박쥐의 뼈로 만든 나침반까지 세트로!”

페시스의 경우에도 가장 만족스러운 걸 선택했다.

그리고.

[마검 ‘데르카시아’가 새로운 주인의 마력에 응답합니다.]

저릿저릿.

찐득찐득한 거미줄이 테레사의 손등에 달라붙었다.

설계자의 권능을 통해 완화시켰음에도 심상치 않다.

아마 지금까지 고른 것 중에 가장 위험하고 불길한 성유물을 꼽으라면 이 마검일 것이다.

“정말 그걸로 하실 겁니까?”

릭이 테레사에게 물었다.

“네…”

성기사라면 성검을 고르는 게 정석.

허나, 테레사는 성검이 아닌 마검을 쥐었다.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을 위해서.

“마지막 싸움에서는 그 친구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

“흐음. 아무리 테레사 님이 주인격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타락은 타락. 기회가 된다면 언제 배신을 할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 테레사 님은 그 남자가 노리고 있는 자들 중 하나. 혹시라도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알아요. 하지만, 진혁 씨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이게 꼭 필요해요.”

테레사의 표정에 흔들림은 없었다.

오롯이 한 명을 위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달려왔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더 이상 저를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후후. 알겠습니다.”

릭이 공손히 중절모를 벗었다.

마지막으로,

‘나만 고르면 되는 건가.’

홀로 혈옥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진혁이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릭의 힌트를 받지 못하는 이상 철저하게 직감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벅.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잠들어 있는 성유물들의 기운도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다 문득, 어떤 책 한 권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꽤나 두툼해 보이는 책.

스킬서나 마도서・・・ 같지는 않고, 무언가를 기록해둔 것 같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 당장 확보해야 하는 최우선 아이템은 이게 아니야.’

무기류가 필요하다.

정확히는 ‘레인저’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든가.

아니면, ‘회귀자의 시간’으로 불러올 수 있는 과거 직업에 관련된 무기라든가 하는.

바로 그때.

우뚝.

진혁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 찾았다.

정확히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아 그 전에 먼저 밀린 숙제하나부터 해결해야지.’

진혁이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 했다. 혹시 그럴 확률은 적었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을 생각해서라도 스탯을 최대치로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상태창이 나타났다.

———————–

이름: 강진혁

성별: 남

레벨: 387

힘 150 민첩 152 체력 198 마력 838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834.60

보유한 스탯 포인트: 39

보유한 코인: 226,346,742

직업: 룬의 지배자

고유성창: 고유성창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고유능력: 고유능력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스킬: 스킬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

이제까지의 전투로 올린 레벨은 무려 13.

굵직한 업적을 연속으로 달성한 데다, 강력한 적들을 쓰러뜨린 것에 대한 대가였다.

‘이게 최종 성적표인가.’

어느새 레벨은 387에 도달해 있었다.

단순히 주요 4개 스탯의 합만 해도 1,338이고, 거기에 간극과 행운 적응형과 정기 스탯까지 합치면 2,000을 훌쩍 넘게 된다.

아직 39 스탯을 분배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과거에는 모든 스탯의 합이 1,600이었으니 확실히 많이 발전하긴 했네.’

최종콘텐츠를 찍기 위한 숫자상의 커트라인은 아득하게 넘긴 셈이다.

그래 이건 확실히 든든하긴 한데.

문제는…

새롭게 나타난 변수,

그 남자라는 자의 개입으로 인해 판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 번 죽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던 게임과는 달라’

단 한 번뿐인 기회.

누군가를 잃게 된다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힘이 150→159로 상승합니다!]

[민첩이 152→ 161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98→207로 상승합니다!]

[마력이 838→ 850으로 상승합니다!]

균일하게 투자하되 마력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를 한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춘 진혁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수천 개의 성유물들 중 자신이 최종적으로 고른 것을 집어들었다.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우우웅!

화끈한 감촉이 손을 타고 전신에 퍼져나갔다.

[‘암흑의 쐐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암흑의 쐐기]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시련의 탑이 생겨난 초창기. 가장 순수하고 어두운 마(魔)를 봉인시켜둔 성유물입니다. 마족의 시초가 되는 고대의 마왕들과 마신들이 뒤섞여 있는 원념은 한때 시련의 탑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잡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라….

‘재밌네.’

이걸 제대로 쓰게 될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같은 시각.

50층에서는 49층이 돌파되었다는 충격적인 결과에 비상이 걸렸다.

“미치겠군.’

“결국에 최후의 방파제마저 뚫린 거군요. 윗분들이라도 아시면 뭐라 하실지…”

“잃은 병력도 많고, 거기에 십이지들 역시 상대 쪽에 붙었습니다.”

태고의 신격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늘어놨다.

연속된 패배.

상대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음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특히 이번 49층에서의 패배가 뼈아픈 것은. 엘더 갓들에게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50층에 존재하는 핵심 거점들 중에 무려 3개를 빼앗겼다.

아무리 영역의 가장 외곽지역이었다곤 하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아우터 갓들 사이에서는 처음 경험한 영역 손실이었다. 거기에 절망의 왕관까지 빼앗겼으니, 손해 볼 수 있는 건 전부 다 봤다고 해야하리라.

아주 바닥까지 빡빡 긁어낼 정도로 말이지.

결국.

“노스이디크. 그대에게만 맡기면 된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결과입니까?”

니알라토텝이 모든 책임의 화살을 한 명에게 돌렸다.

“아직, 놈은 모든 왕관을 손에 넣진 못 했다. 잊은 건 아니겠지? 7개의 왕관을 모두 모아야만, 50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걸?”

90일이란 타임 리미트가 다시 한 번 발동된 이상, 놈들에겐 그 안에 마지막 왕관을 찾아야 하는 과업이 주어진 셈.

만약 ‘봉인의 왕관’이 없다면 50층에 올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진다는 소리다.

“놈이라면 온갖 기상천외한 수를 발휘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야말로 이미 우리가 몇 번이나 허를 찔렸다는 걸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글쎄. 그것도 사실일지 모르지만, 만약 이곳에 온다 하더라도 놈들에게 승산은 없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온을 깰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할 뿐이지. 무엇보다.”

노스이디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장 많이 놈에게 당한 건 내가 아니라 니알라토텝. 그대 아니었던가?”

“……!”

까드득.

니알라토텝이 들고 있는 지팡이가 지면을 파고들었다.

순간, 무시무시한 살기가 솟구쳤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흥.”

파츠츠! 하지만, 노스이디크는 콧방귀를 한 번 뀔 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땅거미 그림자가 공간을 집어삼킵니다!]

“이딴 애들 장난 같은 회담은 너희들끼리나 하거라. 나는 나대로 움직일 테니.”

짧은 문구와 함께 노스이디크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고의 존재들이 모여있는 회의장과는 또 다른 장소.

[이동을 완료했습니다!]

그곳엔 막 여러 명의 그림자들이 도착했다.

니알라토텝과 설전을 한 뒤 빠져나온 노스이디크. 그리고 그를 따라 움직이기로 한 고대의 등반자들이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입 부근만 보이는 후드를 쓴 남자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대화를 여럿이 듣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면야….”

“상관없다. 이들은 ‘고대의 맹세’로 인해 완전히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 상태.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으니 어떤 말이든 편하게 해도 된다.”

생긋 웃은 남자가 푹신해 보이는 풀더미에 앉았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계획보다 더 일찍 몸을 빼셨더군요. 원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맞춰서 빠져나가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쓸데없이 힘을 빼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네놈이 원했던 건 전부 확보했으니 상관없는 것 아닌가?”

“뭐, 그렇긴 하죠. 애초에 49층이 어찌 되는지는 제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번에는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물론입니다. 그 부분 역시 제가 개인적으로 신경 써서 준비를 끝내줬죠.”

“드디어….”

노스이디크의 안광에 탐욕이 자리잡았다.

49층의 수호라는 막중한 임무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숙원,

“니알라토텝을 제거하고 내가 모든 층계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노스이디크가 조용한 반란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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