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13화
813화. 승리를 위한 조건들 (1)
혈옥에서 각자가 원하는 성유물을 챙겨 나온 지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콰아아앙!
콰콰콰콰콰콰!
그동안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은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최소화한 채 각자의 능력을 올리는 데 모든 걸 쏟아부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전장.
생명의 출입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극한의 오지에 가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아니, 한계마저 뛰어넘는 노력과 재능 그리고 운이 필요했다.
“식량도 충분히 준비해둬라.”
“대규모 난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병사들에게 모든 물자를 아낌없이 보급하도록.’
“위그드라실의 ‘푸른 이슬’도 다른 세력들과 공유하겠다. 발키리들을 통해서 연합 측에 보내거라.”
각 세력의 신격들도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미 태고의 존재들의 심기를 건든 이상, 이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 터. 각 세력의 사활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역시나 진혁이었다.
[13층 유적 ‘핏빛 군락 늪지’에 진입하셨습니다.]
서걱!
“쿠륵!?”
보스 몬스터인 ‘혈액 개구리’의 몸이 그대로 모로 쓰러졌다.
타고난 미끈미끈한 피부로 인해 냉병기에 극한의 상성을 보여주는 보스였으나.
진혁의 검격 앞에서는 그런 방어기제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너무 강해지긴 했나 보네.”
너무도 깔끔한 일검.
탑의 정상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고인물을 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툭.
혈액 개구리가 입에서 토해낸 붉은 조각을 손에 쥐었다. 곧바로 늪지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아마・・・ 여기쯤일 텐데….’
보글보글.
아직까지 기포가 솟아오르는 늪지의 중심부에 조각을 가까이 가져가자. 조각이 희미하게 진동했다.
그래. 이걸 보니 장소는 제대로 찾았다.
다른 건….
습도.
시간대를 정확히 맞춰야만 나타날 텐데, 너무 일찍 와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기다릴 순 없지.
화르륵!
진혁의 주위로 불꽃이 일어났다.
환경이 안 된다면 강제로 만들어버리면 그뿐.
대량의 불꽃으로 인해 주위의 시야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띠링!
[늪지의 ‘수중 통로’가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기포들 사이로 공간이 나타났다.
그래. 이게 이 유적의 진짜 모습이지.
[히든 플레이스 ‘배고픈 어항’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 OH: 2M: 59S]
[시간이 모두 흐를 경우 통로가 봉쇄됩니다.]
타임어택.
통로가 이어져 있는 시간이 워낙 짧았기에, 고스펙을 갖추기 전까지는 와 봐야 별 소용이 없는 장소다.
보상 역시 50층에 가기 전까지는 크게 쓸모가 없기도 했고.
탓.
진혁이 빠르게 그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호수의 물이 아닌 특수한 기체들로 가득 찬 공간이 나타났다.
움직임에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긴 했으나,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호흡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그거야 환경적인 요소들이고, 이제부터가 본 게임 시작이다.
“크르르….”
“오랜만에 먹이다.”
“배고파.배고파.배고파.”
수백 마리의 피라냐들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혈액 개구리가 표면적으로 이 유적의 보스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진짜는 이 녀석들이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먹잇감의 뼈까지 씹어먹는.
‘초창기였으면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했을 테지.’
레벨이 200 부근이었다면 시간에 쫓기면서 공략법을 찾느라 진땀 좀 흘렸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3분?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애들이 좀 까분다. 구마야.”
진혁이 품 안에 안고 있던 검은색 꼬물이를 꺼냈다.
“모기이이이이!”
고구마의 피어가 울려퍼졌다.
“……!?”
“…꺽? 꺼으으….”
“뽀르르….”
호수 안에서 시끄럽게 일어나던 물보라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나름대로 고위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들이었으나 에테리온 앞에서는 하룻강아지들에 불과하다.
촤르륵.
진혁이 퍼스트 블레이드를 길게 늘렸다.
사복검 형태로 나뉘어진 칼날들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꿈틀거렸다.
마치, 뱀이 살아 숨 쉬듯
[고인물류 ‘혈백사(血白蛇)의 춤사위’가 발동됩니다!]
퍼퍼퍼퍼퍼퍼퍽!
호수의 밑바닥을 훑은 칼날이 그대로 기절해 있는 피라냐들을 훑었다.
몸속에 간직하고 있는 손톱만 한 마정석을 파괴해야지만 숨통이 끊어지는 구조였기에, 일검에 수백 마리를 죽이려면 곡예에 가까운 손놀림이 요구된다.
물론.
쏴아아아….
붉게 물든 호수는 굳이 성공이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웅!
호수 전체가 흔들렸다.
물결이 다시 한 번 거세게 요동쳤다.
아까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소용돌이가 연이어 발생했다.
[유적의 진 보스몬스터 ‘아일랜드 글럼퍼’가 현현합니다!]
꿀렁꿀렁!
진흙이 솟구친다.
온갖 종류의 토사물들 사이로 엄청난 크기의 메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섬 정도는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는 입.
그 덩치에 걸맞게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티도 안 난다.
“후웁.”
당연히 치명상을 입히기란 더욱더 어려울 일. 3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적게 주어진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혁이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만상공유 – ‘암황’의 능력을 불러옵니다!]
[흑천마황공 ‘묵륜창파’ & 고인물류 ‘정권찌르기]
조합을 통한 파괴력의 극대화.
‘그리고 연습 대상이 중요하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실전 감각을 극대화하려면 계속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파츠츠!
마력이 주먹 한가운데 모였다.
“한창 화려하게 등장했는데 미안하지만, 다음 장소로 후딱 가야 해서 말이야.’
길게 놀아줄 시간 따윈 없다.
뒤에서…
앞으로,
극한까지 압축된 고인물의 한 방이 허공을 꿰뚫었다.
투콰아아아앙!
두터운 살점이 모조리 으깨지면서.
“쿠와아아아!”
거대한 메기의 중심부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유적의 보스 몬스터 ‘아일랜드 글럼퍼’가 영면에 들어갑니다.]
후두둑.
쏟아지는 육편 사이로 파란색을 띤 보옥이 보였다.
아일랜드 글럼퍼의 몸 속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진 결정체이며,
동시에.
‘주술탄(彈)을 만들 수 있는 핵심 재료지.’
진혁이 보옥을 아공간 인벤토리 한켠에 넣었다.
그리고.
‘휴! 있다. 있어.’
보옥과 함께 나온 두루마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안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함께 떨어져 주었다.
[아일랜드 글럼퍼의 대동맥 파편]
입수난이도: SSS
내용: 보유하고 있는 스탯 중 하나의 효과를 일시적(1분)으로 30%만큼 올려줍니다.
[행운의 메기수염]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3초 앞에 있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사용 가능 횟수 5회)
두 개의 아이템을 잘 보관해둔 진혁이 고구마의 등에 올라탔다.
남은 시간은 이제 약 1분 30초.
느긋하게 늪지 위로 올라가 마무리를 하면 될 것이다.
“모기!”
고구마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잘했어. 우리 귀염둥이.”
위로 올라온 진혁이 고구마에게 간식을 건넸다.
요즘 하도 여기저기서 상납을 많이 받아 부쩍 살이 오른 것 같긴 한데…….
다이어트를 조금은 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자, 그럼 다음으로 가볼까.”
쉴 시간은 없다.
오늘 안에 공략해야 할 곳이 앞으로 2군데는 더 있었으니.
***
정신없는 유적과 미궁의 정복.
쌓여 있던 과제를 해치우듯, 진혁은 10일이란 시간 동안 18개의 유적과 35개의 미궁 그리고 9개의 던전을 공략했다. 레벨업이 주목적이 아니다.
히든 피스와 필요한 재료들을 모으는 게 주목적이지.
그 외에도 페시스와 별동대를 통해 탑의 다양한 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았다.
‘이제 거의 다 오긴 했네.’
진혁이 유적의 앞에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에덴과 마계에 위치한 이곳은 꽤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강진혁 님은 정말 신기한 분이에요. 이 장소는・・・ 1,000년 전부터 문헌에서도 기록이 삭제되어 정말 극소수만 아는 곳인데 말이죠.”
딱딱하고 재미없는 천사들과 달리 마족은 아주 화끈하게 대우해 준다는 걸 알려주겠다.” “훗! 내 사도가 격이 다르다는 의미기도 하지. 어떠냐 성녀? 너도 우리 쪽에 제법 재능이 있어 보인다만 이참에 아예 진형을 옮겨버리는 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 제가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가브리엘 님께서 너무 따뜻하고 친절하게 절 이끌어주시기도 했고요.”
“헹! 간사한 마왕 녀석. 어디 우리 따뜻하고 귀여운 테레사를 홀리려고! 우리 빛의 사도는 결코 시험에 들지 않느니라!”
가브리엘이 이뻐 죽겠다는 듯 테레사를 꼭 껴안고 볼을 마구 부비적거렸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품 안에 테레사의 얼굴을 묻게 한 채 꼭 끌어안았다.
“어쩜 우리 레사는 하루가 다르게 더 예뻐지는 것 같을까? 자기 전에 성수로 세수라도 하고 자서 그러니?”
“가, 가브리엘 님… 수… 숨이.”
“못 봐주겠군. 쳇.”
가브리엘과 테레사 그리고 베리엘.
꽤나 생뚱맞은 조합이다.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언제 뒤통수를 쳐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모든 것을 안배해 이 세 명을 이번 레이드에 포함시켰다.
49층을 공략한 지 어느덧 2주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그리 넉넉한 건 아니지.’
진혁이 머릿속으로 ‘To do list’에 있던 것들을 되새김질했다.
아직 굵직하게 해결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가장 먼저.
‘명예의 월계수’.
물론.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를 위한 마지막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으로. 이걸 이용한다면 ‘봉인의 왕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긴 하다.
대체품은 어디까지나 대체품일 뿐.
마지막 왕관인 ‘봉인의 왕관’을 찾아내야지만, 50층에서 ‘그곳’의 공략이 가능해진다.
다음으로,
과거의 힘을 재현하게 해주는 히든 아이템도 반드시 복원시켜야만 한다.
그 주인공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오룬에게 맡겨둔 상태였지만, 상황이 아주 긍정적이진 않다.
헤파이토스와 둘이서 끙끙대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건 운이 좀 따라주긴 해야겠어.’
협박에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
무작정 닦달만 한다고 해서 불가능한 게 가능하게 되진 않는다.
이걸로 대충 상황 정리는 끝났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면 현대에 남아 있던 벨토르 쪽. 고대 결계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 그쪽의 소식을 기다려야만 할 거다.
“슬슬 들어가 볼까요.”
진혁이 유적의 입구를 향해 앞장섰다.
[유적 ‘환대받지 못하는 자들의 성소(聖所)’에 진입합니다!]
발걸음을 옮기자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다.
순간,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피비린내가 아니라 꽤나 생소한 종류의 비린내다.
게다가 내부가 상당히 어두컴컴한 탓에 시야적인 측면에서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하여간 여긴 언제 와도 적응이 되질 않는단 말이지.
“잡종들의 냄새가 나는군.”
“……불쌍한 자들이에요.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베리엘과 가브리엘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곳은 천사와 인간의 혼혈인 ‘네피림’들과 악마와 인간의 혼혈인 ‘임모탈’들이 거주하는 유배지.
한 마디로 온갖 추잡하고 저주받은 것들의 집합소였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역사에서 지워진 채 방치되었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해 왔던 것이다.
바로 그때.
스슥.
“뭔가 있어요.”
테레사의 검끝이 앞으로 향했다.
[고유능력 ‘별의 가호’ – ‘금빛 여명’이 발동됩니다!]
어둠이 몰려가며, 주위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