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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6화


816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특수 아이템 ‘고인물의 기억’이 재생됩니다.]

깜빡! 깜빡! 깜빡!

점멸하는 상태창과 함께 영상이 펼쳐졌다.

-플레이어 아이디: 티모대령.

시련의 탑 1층부터 50층까지.

오직 단 한 명만이 달성한 플레이 영상이었다.

편집본이 아닌 무수정 본으로…

・・・・・・ 이것은 무려 11년에 달하는 한 플레이어의 ‘이야기’기도 했다.

[5층, ‘정신병동’에서의 영상입니다.]

[‘제국과 무림’의 에피소드입니다.]

[상층부 ‘고대룡’들과의 전쟁이 이어집니다.]

[50층….]

[・・・・・・입니다.]

한 인간의 노력과 눈물과 땀과 재능이 모두 녹아 있는 대서사시가 여과없이 전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엄청난 시간 왜곡과 압축을 했음에도 일주일이 훌쩍 넘어서야 영상의 엔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로

[‘탑의 정상’ – 에필로그에 도달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그저 지켜봤다.

모든 것이 까맣게 물든 뒤에도 한 사람의 시선은 화면에서 떠나갈 줄 몰랐다.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천유성의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질문이었다.

“어때, 이게 바로 네가 평생 동안 쫓던 이의 진실이야.”

“…..”

천유성의 입술이 시멘트를 바른 것마냥 굳게 다물어졌다.

설마, 혹시 하면서도 아니길 그토록 바랐는데.

그런 거였나.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그토록 강한 거였구나.

탑의 정상 정복.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터무니없는 일을 홀로 달성해낸 고인물.

강진혁은 처음부터 자신이 넘볼 수 없던 목표였다.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지? 그렇게 강해지게끔 날 설득해놓고, 이제와서 내가 절망하는 꼴이라도 보고 싶었던 거였나?”

“흐음. 뭐 그것도 나름 재밌긴 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아는 너라면 절대 이런 걸로 무너질 성격은 아니거든. 안 그래?”

“ ……”

그 말대로다.

분노.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바위마저 녹여버릴 듯한 갈망.

천유성의 가슴 속에는 오롯이 뜨겁게 타오르는 겁화만이 가득했다.

남자가 천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진혁은 강해. 아마 지금쯤이면 더욱더 강해졌겠지.’

하지만 괜찮다.

“나와 함께라면 놈을 넘어설 수 있어. 실제로 그걸 위해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플레이어’란 한계에 갇힌 강진혁이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49층에 머물러야만 했기에 얻지 못 하는 것.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그는 자유롭다.

실제로 ‘엔드급’ 무기라 할 수 있는 50층의 성유물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것들을 천유성에게 제공해줬다.

50층의 몬스터들은 물론, 엘더 갓들을 포함한 극한의 실전 상대까지 마련해줬지.

거기에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진혁의 전략과 생각을 간파하고 허를 찌를 수 있다면….

“이 싸움의 끝에 서 있는 건 놈이 아닐 거야.”

얼마나 많이 이기고 졌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에 서 있는 자.

마지막에 웃는 자가 유일한 승자이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

“맞아. 그러니 그 투기는 잠시 억눌러두라고. 아직 너에게도 갖추지 못한 마지막 히든 피스가 남아있거든.”

‘검마’가 마지막에 사용했던 검 – ‘극월(極月)’

이제 완전해지기까지는 딱 한 걸음만이 남아있었다.

***

퍼걱!

“쿨럭….”

유적의 천사장 ‘메트라엘’의 입에서 굵은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

가브리엘이 보유한 5개의 성창(聖槍)이 온몸 여기저기에 꽂혀 있었다. 무엇보다 미카엘로부터 가지고 온 롱기누스가 심장을 꿰뚫은 상태였다. 

“하아하아….”

가브리엘이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신성력과 마기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메트라엘의 힘은 막강했다.

하지만, 성마전쟁을 겪으면서 쌓아올린 경험과 능력은 가브리엘을 더 높은 경지로 올려둔 상태였다.

게다가.

“합이 썩 나쁘지 않군. 칭찬해주마. 닭날개 여자여.”

베리엘과 함께 펼친 2:2 합격전은 가브리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높은 시너지를 냈다.

“훗! 제가 원래 좀・・・ 이 아니라. 더러운 마왕 따위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건 하나도 기쁘지 않거든요? 괜히 말이나 걸지 말아주시죠. 불쾌하니까!”

“칭찬을 해줘도 난리로구나.”

혀를 찬 베리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앙!

“커억!”

이미 만신창이가 된 거대한 체구의 마족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유적의 마계 군단장 ‘에라드 샤 베르카’.

무지막지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나, 단순히 힘만으로 베리엘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마지막으로.

“괴물이・・・ 있었구나. 대천사나 마왕보다도 더.”

유다 이스카리옷의 영혼석을 꿰뚫은 건 테레사였다.

마검이 박힌 가슴팍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체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마저 남아있지 않게 된 탓이다.

“……”

쏟아지는 잿가루 속에서 고고하고 묵묵하게.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테레사의 몸속으로 빛과 어둠이 뒤섞인 구슬이 빨려 들어갔다.

우우우우웅!

아름답다.

성녀와 타락성녀의 각성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장면을 선사했다.

‘・・・・・・고마워요.’

진혁이 테레사를 지켜보면서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주는 소중한 존재.

과거 홀로 탑을 오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네. 나도.’

제한 시간은 약 70일.

그중에서 마지노선으로 설정해둔 여유 준비 시간은 약 50일이 남은 시점이다.

그 안에 필요한 모든 성유물과 아이템 그리고 스킬과 장치들을 전부 준비해서 50층에 진입해야만 한다.

유적 공략이 다 끝나고 정리 단계에 들어서자, 진혁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검은 파리 담즙’과 ‘배신의 심장’이 융합됩니다!]

49층 바르어비스로부터 얻은 검은 파리 담즙. 그리고 방금 전 유다 이스카리옷을 처리하고 얻은 ‘배신의 심장’.

대상을 오염시키고 뒤틀어버리는 데 특화된 두 개의 아이템이 하나로 합쳐졌다.

띠링!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뒤틀린 구더기 둥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현존하지 않는 독과 저주들이 뒤섞인 둥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소모형 아이템으로 50층에 관련된 지식이 없으면 다루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진혁이 보라색 액체가 뚝뚝 흐르는 주먹 만한 크기의 덩어리를 움켜쥐었다. 이걸 태고의 신격 놈들에게 먹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글쎄.

상위 존재들에겐 그다지 효과도 없을뿐더러, 고작 거기에 쓸 정도면 이렇게 고생해서 아이템들을 모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뒤틀린 구더기 둥지’를 애써 융합한 건 그것보다 훨씬 더 어울리는 사용처가 있었기 때문.

우웅!

진혁의 뒤편에 ‘세계의 기억’이 담긴 대도서관이 나타났다.

툭!

척!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책들이 뽑혔다.

[‘땅거미 그림자의 스킬서’와 스킬 ‘아랑흑아’. 고유성창 ‘플레이그가 융합됩니다!]

쿠쿠쿠쿠쿠쿠!

무려 노스이디크의 능력이 깃든 스킬서에 하사신의 아랑흑아가 곁들여졌다. 그 주위로 ‘플레이그’가 감싸듯이 멤돌았다. ‘여기에 이제 우리 귀여운 구더기 둥지를 추가하는 거지.’

풍덩!

몰아치는 능력들의 소용돌이에 ‘뒤틀린 구더기 둥지’를 던졌다.

보라색 회오리가 새로운 마력을 탐하며 오염과 변질을 위해 끊임없이 요동쳤다.

여기서부터는 마력의 동조가 중요하다.

수천 개의 실가닥을 동시에 연결해야 하는 정교함이 요구되는 작업.

상위 능력을 융합할수록 설계도의 정교함은 차원이 다르게 올라갔다.

그러나.

‘왼쪽과 중앙의 흐름부터 제어한 뒤, 72번과 115번, 550번과 824번 루트부터 연결하면 시간을 1.25초 정도 더 벌 수 있어.’ 진혁의 사고회로는 그 영역마저 초월해 있었다.

고인물로서 탑을 오른 과거.

그리고.

다시 한 번 탑을 오르면서 최적화된 현실.

두 개의 업적은 진혁의 감각을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곤두설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촤촤촤촤촤촤.

마치 정교하게 짜여진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화려한 빛의 줄기들이 서로를 향해 맞물렸다.

그리고 그 바로 그 순간.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유성창 ‘아랑흑아’ – ‘늑대와 검은 숲의 향연’]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50층에 존재하는 고대의 환수 ‘그레이 펜니르’의 어금니를 동시에 현현시킬 수 있으며, 능력의 완성도에 따라 불러올 수 있는 그레이 펜니르의 수와 종류가 달라집니다. 또한 그레이 펜니르가 서식하는 ‘태고의 숲’ 자체를 불러올 수 있는 능력도 추가됩니다.

[유합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이건 언제 해도 짜릿하네.”

기존의 능력들을 융합해 더욱 상위 버전의 지평선을 여는 권능. 시련의 탑에서 가장 사기적인 고유능력으로 꼽히는 것답게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진혁이 새로 얻은 능력을 시험했다.

순간. 콰득!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솟아난 그림자와 이빨들이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었다.

흐릿하게나마 검보라빛으로 물든 숲의 편린도 펼쳐져 있었다.

동시에.

욱씬!

엄청난 충격이 어깨에 전해졌다.

“큽!”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동에 과부하가 걸려버린 탓이다.

‘근력 스탯을 틈틈이 올려둬서 망정이지 어깨가 빠질 뻔했어.’

웬만한 거신병의 힘마저 웃도는 스팩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능력을 완전히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이럴 수가.”

“하하…하하하…. 뭐냐, 저건.”

가브리엘과 베리엘의 입에서 허탈하면서도 어이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흉흉하면서 이질적인 마력과 그 폭풍이 일으키는 결과물은 자신들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었기에. 테레사 역시 경악한 표정을 지은 건 마찬가지였다.

경이롭고 신비롭다. 방금 전 유다 이스카리옷을 쓰러뜨리고 정수를 흡수하면서 ‘타락’에 대한 이해도가 한계를 넘어섰다.

이게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인가 의심이 들었고,

솔직히 말해 더 이상 적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나 착각이었다.

‘진혁 씨는 대체…’

-흐응. 저건 좀 과하긴 하네. 우리 순딩이가 쟤 때문에 마음고생 좀 많이 하겠다.

또 다른 인격 역시 피부를 찌르는 기운에 잔뜩 상기된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역.

상층부의 거대 세력들이 전부 덤비더라도 감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 인간이라면 정말로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내가 사도 고르는 눈 하나는 뛰어나단 말이야. 하하하하. 날 재밌게 해줄 거라고 하더니 이 이상의 재미는 죽는 날까지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거다.” 

모두의 심장이 꿈틀거렸다.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후의 종착지.

50층에 존재하는 태고의 존재들마저도, 정말로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른다고.

게다가.

[형! 연화 누나랑 함께 갔던 유적 공략이 방금 막 끝났어요! 형이 말해준 위치에서 정확히 성유물을 찾았고요!]

[페시스입니다! 초입 부근에 대한 지도를 확보했어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안전한 루트를 몇 개 정도 추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흠! 아누비스다. 방금 전에 올림포스 쪽이랑 북유럽의 근육 바보들이랑 접선했다. 그대가 알려준 대로 잠들어 있던 고대종의 알들도 확보했어. 우리 오아시스의 따끈따끈한 햇빛 아래에서 잘 부화시켜보도록 하마.]

[짐의 즉위식이 막 끝났느니라. 곧 귀족들과 함께 합류하도록 하겠다.]

[잘 지내고 있나? 십이지의 모든 부족들도 의견을 모았네. 아트라사와 그녀의 친위대가 50층으로 가는 거점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벨토르일세. 자네가 원하던 그것 말이야. 드디어 해결할 방법을 찾았어. 서리혼령과 사멸자와 함께 곧 합류하도록 하지.]

[모기이이이!] [후우. 이 대장장이도 준비가 되었구만. 빌어먹을. 약속한대로 맛 좋은 술은 꼭 준비해 주라고! 다 늙은 영감을 이리 부려먹을 거면 말이야.]

[정령특전대 및 티본. 명을 따릅니다!]

탑의 각계 각층에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원하는 성유물과 스킬들을 모으고, 병력을 보강하며, 서로의 호흡을 익숙하게 맞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띠링!

[・・・・・・ 시작됩니다.]

붉게 물든 상태창과 함께.

“……!?”

“이게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예상치 못한 칼날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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