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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8화


818화. 50층. 탑의 마지막 층으로 (1)

“이쪽・・・ 인 것 같습니다.”

페시스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한 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키이이.”

“키에에….”

뒷걸음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심상치 않아 보이는 계곡이다.

무시무시한 외형의 식물들과 몬스터들이 저마다 기괴한 음성을 내뱉었다.

“확실해요?”

“예?”

“아니 그러니까 확실하냐고요.”

“그, 그게… 아무래도 저도 처음 오는 곳인데다 무조건 한 번에 찾아내라고 하도 말씀하시다 보니 자신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아.” 

진혁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1,000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그런 한숨이다.

“페시스 씨.”

“예? 예!”

“지금 수많은 이들의 존망이 걸린 대 위기 상황에서 자신감이 떨어진다고요? 아니, 지금 모두가 당신 하나만 보고 있는데, 그런 확신도 없이 길잡이 역할을 맡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아니. 저는 제가 길잡이를 한다고 한 게 아니라 진혁 님께서 강제로….”

“어허! 또 변명!”

진혁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시겠어요?” “그놈의 변명으로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되게 하세요. 적어도 이 자리에서 만큼은 불가능이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습니다.

씨x….

페시스가 속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욕설을 애써 삼켰다.

웅성웅성!

“하기야 길잡이면 길을 알아야지.”

“우린 일족 전체가 이곳에 왔다고.”

“여왕께서도 친이 행차하셨는데, 실패했다가는 누군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이미 여론전에서 말렸다.

갑옷 꿀벌들 사이에서 불신과 함께 스멀스멀 살기가 피어올랐으니까.

따라서 이건 대놓고 하는 압박이다.

만약 틀릴 경우 희생양 혹은 제물로 삼아버리겠노라는.

전형적인 독재자나 폭군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었지만, 힘이 없는 페시스는 그저 제국에서 진혁과 엮여버린 자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페시스는 아끼고 아껴왔던 것을 꺼내왔다.

[특수 성유물 ‘별자리 나침반’이 발동됩니다!]

[사용 가능 횟수: 1]

화려한 항성들과 행성들 그리고 은하수와 별들이 쏟아지는 구체 형태의 나침반.

마치, 우주를 작은 유리 안에 담아놓은 듯한 아름다운 성유물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건・・・ 여기가 아니라 50층에서 꼭 가보고 싶은 그 동굴 갈 때 쓰고 싶었던 건데.’

꿈에도 나올 정도로 간절히 바랐던 길잡이들의 성역.

50층 어딘가에 있는 미궁의 끝이라 불리는 장소에 말이다.

우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별자리들이 맞물렸다.

페시스가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나침반에 있는 우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복잡한 수식들을 그려나갔다.

저건….

단순히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복잡한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천부적인 센스와 본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경지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 페시스를 멤버로 받아들인 건 신의 한수였다.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큰 도움을 줬지만, 미확인 정보들이 넘쳐나는 50층에서는 페시스의 재능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개화할 테니까.

그래도 성유물을 날린 건 조금 미안하긴 하니.

나중에 ‘동굴’에는 한 번 따라가 주도록 할까나.

어차피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야 시간도 충분히 남을 테고, 위험도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질 테니.

몇 가지 힌트와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으리라.

뭐, 그것도 이번 50층 공략에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저기가 맞나요?”

“확실… 합니다.”

“믿어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계곡은 어떻게 넘어가실 생각입니까?”

“계곡을 그냥 통과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만, 저 안에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공격을 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피해를 줄이려면 우회해서 가는 게 정석이겠죠.”

별자리들로 만들어진 지도.

페시스가 마력을 통해 공격대가 가야 할 길을 그렸다.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각 계층이 태고의 존재들에게 공격받고 있다.

릭과 수리부엉이가 벌어준 여유도 다 사라졌을 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시간을 단축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페시스 씨의 성유물이라면 제가 원하는 길도 찾아내줬을 텐데요? 아닌가요?”

“하아. 진짜 진혁 님이랑 같이 다니면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하겠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제가 저 몬스터들과 벌레들이 오지 못하는 길을 만들 테니, 그동안 진혁님과 나머지 분들이 시선을 좀 끌어주세요.”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그냥 회피하기만 하는 건 고인물의 공략 스타일이 아니다.

[페시스가 ‘층계부유’ – ‘여행자의 발걸음’을 발동합니다!]

가볍고 빠르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파고든다.

공간과 공간을 부드럽게 넘나드는 이동기는 50층에서도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진혁 역시 움직일 채비를 했다.

계곡을 통과해 보이는 혐오스러운 외형의 사원.

저 안에 태고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

계곡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온도부터 달라졌다.

・・・・・・ 뜨겁다.

재빨리 서리 가루를 뿌렸지만, 엄청난 습도와 열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무슨….”

“지독하구나. 이곳은 참으로.”

과연…. 신성력으로 몸을 방어하는 테레사나 진조 특유의 피부에도 느껴질 수준. 계곡 안은 단순히 자연환경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이게 50층인가.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바꿔야만 한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해도 1분1초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상황.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계획은 그저 본능과 경험에 의존해 계속해서

・・・・・・ 여러모로 각오를 다져둬야겠지.

애초에 시련의 탑이란 세계관에서 50층은 제대로 된 공략을 위해 만들어 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쩌저적!

수십 미터의 바위가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거대한 대벌레가 튀어나왔다.

“키에에에에!”

“크아악!”

콰직!

순식간에 갑옷 꿀벌 한 마리를 낚아챈 대벌레가 갑옷 채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으깨진 육편과 피가 이빨 사이로 뚝뚝 떨어졌다.

“산개해서 대응해라!”

아트라사의 공격 페로몬이 온 계곡을 뒤덮었다.

부우우웅!

전투 태세로 들어간 갑옷 꿀벌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보이는 모든 것이 적이다!”

“다 죽여버려라!”

콰콰콰쾅!

우드득! 콰드득!

갑피가 박살나고 내장이 튀어나온다.

다양한 색의 피가 흩뿌려지며, 계곡의 초입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끝도 없이 튀어나오네.”

진혁이 바위와 풀 사이에 숨어 있던 기괴한 몬스터들을 보며 혀를 찼다.

갑옷 꿀벌들은 15성급에 해당하는 개체로, 50층에서도 꽤나 준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은 태고의 중계지.

징글징글한 놈들이 선별한 곳답게, 초입부터 만만치가 않다.

아직 사원 안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크오오오오!”

20m가 넘는 거대한 딱정벌레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아아!

5개의 입에서 녹색 체액이 뿜어졌다.

“끄아아!”

“닿지 마라! 끌 수 없는 불이다!”

백린(白燐).

산소를 차단하지 않으면 끈적끈적 늘러붙는 악마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외에도 머리가 두 개 달린 나비와 나방들이 빼곡하게 몰려들었다.

마치, 계곡 전체가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침입자들에게 대항하는 듯한 모습.

[‘모멸의 사원’이 스킬 ‘증오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계곡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에게 일시적으로 종속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거점들을 탐험했지만, 거점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사고까지 하는 경우는 없었다.

무엇보다.

침입자들의 존재를 인식했으니, 이 사실은 곧 태고의 존재들에게도 알려질 게 분명했다.

‘곧바로 지원을 보내오겠지.’

중계지가 뚫린다면 탑 곳곳에 가 있는 병력들이 그대로 고립되어 버릴 테니까.

분명, 대규모의 병력과 강력한 신격이 들이닥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싸움의 승패는 적의 지원이 오기 전에 사원을 점령해야 하는 줄다리기라는 뜻이지.

때마침.

파치칙!

허공에 생긴 작은 틈 사이로.

“됐습니다!”

안전한 길을 강제로 개방시킨 페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곳이라면 길고 긴 계곡을 지나치지 않고 단숨에 모멸의 사원 입구로 진입할 수 있다. 진혁이 즉시 아트리사에게 외쳤다.

“좌우에 흩어진 벌들은 내버려두고 친위대급만 따로 추려서 사원으로 가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우리가 빠진다면 아이들이 죽는다. 중심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챙길 수는 없어요. 이곳에 온 목적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층계 전체에 마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기맥(氣脈)이 좋은 영지라는 소리.

갑옷 꿀벌들에게 있어 이 사원은 하이브를 만들 절호의 땅이었다.

원하는 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들일지.

아니면.

일족 전체의 번영일지.

선택해야 한다.

단순히 한 개체가 아닌 여왕이라는 위치에서.

***

같은 시각.

탑의 중층부에서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쿠쿠쿠쿠쿠쿠!

붉은색 번개와 함께 다가오는 전운(戰雲).

피로 물든 비릿한 향과 색이 모두의 앞에 천천히 펼쳐졌다.

“크르르”

“꾸르륵. 꾸웨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몬스터들.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징그러운 것부터 육중한 체구에 그보다 더한 크기의 무기를 든 놈들까지.

전부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적들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위기가 있었습니다만, 이번이 그중에서 가장 최악이 되겠군요. 11개의 방위 거점이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증발하는 건 아직까지도 믿기 힘듭니다.” 

“놈들이 저기까지 왔다는 건 전령의 보고가 사실이라는 거겠죠. 뭐가 됐든 이곳이 뚫린다면 황도로 가는 길을 내주게 될 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제국의 재상 자리에 오른 펜하이머.

그리고 그랜드 소드마스터인 에브라함이 최전선에 섰다.

모든 기사단과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총집결했고.

무림에서도 이 평원을 향해 정파와 사파 그리고 천마신교에 소속된 고수들을 전부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쿠쿠쿠쿠쿠쿠!

저 흉흉하게 몰려오는 기운을 보며,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차원이 다른 군대다.

감히, 인간의 힘으로는 대적할 생각도 들지 않는.

“하루도 쉬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건만, 그래봤자 아무 의미도 없단 말인가.”

에브라함이 자신의 무기력함에 자조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전력의 차이에 절망하는 건 지휘관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전원 밀집대형으로!”

달려오는 중형 몬스터들에 맞서, 방패병들이 방패를 꼿꼿이 세웠다.

[스킬 ‘단결의 힘’이 발동됩니다!]

[스킬 ‘강철의 포효’가 발동됩니다!]

[스킬 ‘전사의 심장’이 발동됩니다!]

헤파이토스와 오룬이 직접 만들어준 방패에 각종 스킬들이 덧씌워졌다.

콰콰콰콰쾅!

콰아아앙!

“크오오오!”

“으아아악!”

귀청이 떨어져버릴 것만 같은 굉음!

첫 번째 충돌로 인해 1,000명이 넘는 병사들이 즉사했지만, 그래도 진형 자체는 붕괴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몰아치는 파도를 견뎌낸 것이다.

동시에.

두두두두두두!

황도를 수호하는 제국의 기사단이 측면을 가로질렀다.

‘적색 기병’이다.

태고의 병력도 일종의 군대라면 반드시 중심이 되는 지휘부가 존재할 터. 대규모 병력이 충돌하는 동안 적의 심장에 기습을 가하려는 계획이었다. 사전에 꼼꼼하게 정찰을 해둔 첩보부의 정보에 따라 적색 기병이 정확하게 그 위치로 향했고, 기마대 특유의 가속도를 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단숨에 돌파해라!”

“이번 기습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의 호령 아래 기사단이 하나로 뭉쳐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

중층부의 공략을 맡게 된 존재.

아우터 갓 중 하나인 ‘쥬른’

어둠 보석의 수호자인 레서 아우터 갓으로 거대한 보석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자가 보였다.

우우우웅!

랜서와 창의 끝에 진한 오러가 맺혔다.

어떤 방어도 가를 수 있는 최강의 권능.

이거라면 태고의 신격에게라도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수백 명으로 구성된 기사단의 앞에 아주 작은 가루들이 흩날렸다.

투두두둑!

갑주의 표면에 결정이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퍼퍼퍼퍼퍼퍽!

결정이 기다란 보석으로 변하며 기사와 말을 통째로 찢어버렸다.

“커억?”

“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대량의 피보라가 초원을 가득 물들였다.

대마법방어진이 각인된 갑옷과 수십의 마법사들이 보조 마법들을 겹겹이 펼쳤으나…….

-사라져라.

그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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