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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9화


819화. 50층. 탑의 마지막 층으로 (2)

덜덜덜덜!

제국을 수호하고.

황실을 지키며,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 신념과 용기가 얼마나 부질없고 허울뿐인 것인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파츠츠,

또 다시 보석의 결정들이 바람을 타고 다가왔다.

적색기병들을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가루다.

저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공포에 얼어버린 병사들에게 저 가루가 닿았다가는 그야말로 대학살이 벌어질 테니까. 밀집대형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엘리우스가 9서클 ‘실피드의 권역’을 발동합…]

콰아앙!

복잡한 수식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충격이 가슴을 강타했다.

심장으로 이어지는 혈관이 모조리 끊어져버린 것이다.

“……!!??”

9서클의 대마도사.

제국에서도 단 셋 밖에 없는 ‘백색 마탑’의 마탑주가 그대로 쓰러졌다.

“콜록! 끄으으….”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오는 것도 잠시. 엘리우스의 숨이 끊어졌다. “엘리우스 님!”

에브라함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어느새 손에 쥔 대검에서는 2m에 이르는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가리려고 하는 듯, 빛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빛을 띄었다.

서걱!

고유검술이 섬뜩한 검광을 내뱉자, 몬스터들의 팔다리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엄청난 기세를 품은 소드마스터의 돌진은 처절하다 못해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하찮은 미물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쥬른의 눈동자가 에브라함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쩌적!

에브라함의 다리가 그대로 지면에 달라붙었다.

화려한 보석들이 연이어 생성되며, 에브라함의 체내에 있는 마력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직접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그저 멀리서 말과 시선만으로 상대를 유린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달려드는 걸 보면 몇 놈 정도는 기개라는 게 있구나. 벌레들에게도 약

간의 높낮이는 존재하는 법이겠지.

[쥬른이 ‘녹색 보석’을 꺼내듭니다.]

스윽.

쥬른의 위로 거대한 구체가 생겨났다.

정체불명의 찐득찐득한 액체가 잔뜩 뒤엉킨 외형.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이 평원에 떨어진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전부 녹아없어지게 될 거라는 걸.

“움직여야….”

“0000…”

에브라함과 펜하이머. 그리고 몇몇 고위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사력을 다해 검과 지팡이를 들었다.

물론, 그런 애절한 발악 따위로는 쥬른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이 층계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끌 수 있는 건 단 하나뿐.

‘천마라고 했던가.’

슈브니구라스 님의 분신을 물러나게 만들고, 툴챠와 혈전을 벌였던 인물.

인간이면서 인간을 초월한 그 녀석이야말로 제대로 된 강자라 일컬을 수 있으리라.

뭐.

그것도 잠깐의 여흥에 불과할 테지만.

본신의 힘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지금의 자신이라면 십만에 달하는 이 병력마저도 손쉽게 집어삼킬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인간이 강하다고 한들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무림이 이곳에 도착하는 건 약 15분 뒤입니다.”

외눈을 가진 비쩍 마른 마법사가 쥬른에게 보고했다.

15분 정도라.

툭. 조금 기다려야 하는 감이 있지만, 눈앞에 있는 놈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걸 구경하다 보면 얼핏 시간을 맞출 것 같다.

구체가 낙하했다.

치이이익!

대기마저 녹여버리는 저주가 평원에 있는 병사들을 집어삼켰..

[‘잃어버린 눈의 결정’ ‘음영을 걷는 자’가 발동됩니다!]

쏴아아아아…

하늘 위로 펼쳐지는 새하얀 장막,

살을 저리게 만드는 눈꽃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고대의 등반자 ‘서리혼령’.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대의 등반자인 ‘벨토르’였다.

“그렇게 내버려 두진 않겠습니다.”

“네놈들의 구렁텅이로 돌아가라. 쥬른.”

두 명의 등반자가 전장에 개입했다.

[고대결계 ‘약속된 예속’이 발동됩니다!]

[고대결계 ‘저항의 땅’이 발동됩니다!]

[고대결계..]

[・・・・・・ 발동됩니다!]

눈꽃들 아래로 수없이 많은 마법진과 결계들이 펼쳐졌다.

“세상에나….”

“아름다워요.”

마법사들이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장관에 넋을 잃었다.

공포마저 잠재워버릴 만큼, 벨토르가 보여주는 마도의 끝은 지식을 추구하는 이들을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네놈들은…. 그래. 기억이 나는구나. 몇 백년 전 겁도 없이 우리의 영역에 들어왔다가 도망쳤던 벌레들이 아니더냐?

쥬른의 시선이 서리혼령과 벨토르에게 향했다.

얼음과 결계.

각각 그 시기는 다르긴 했으나, 한 번씩은 마주한 적이 있는 등반자들이었다.

-재미있군. 천마라는 놈이 오기 전까지 여흥 정도는 되겠어.

부르르.

쥬른을 둘러싸고 있는 보석이 가늘게 공명했다.

안에 갇혀 있던 마력이 뿜어지자, 아까보다 더한 절망이 평원을 잠식해 나갔다.

같은 시각.

블랙 캐슬에서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퍼퍼퍼펑!

“막아라!”

“절대 성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고위 뱀파이어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혈계 마법’을 펼쳤다. 피로 만든 꼬챙이들과 토네이도가 성벽 주위를 휩쓸며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카가가가가각!

전투가 벌어진 지 약 1시간.

고작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블랙 캐슬의 외성이 모조리 뚫렸다.

이제는 본성 하나만을 남겨두고 총력전을 펼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피부 몇 꺼풀 벗겨내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엘리스 님만 계셨더라도….”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

“…….”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아타락시아의 가주이자 모든 진조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강의 뱀파이어. 만약 그분이 전투에 합류하셨다면 일이 이 정도로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태고의 몬스터들이 격이 다른 힘을 보유하고 있긴 했지만, 엘리스 역시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엘리스는 떠났다.

거점인 블랙 캐슬을 버려두고 인간 한 명을 쫓아 가버렸다.

원망과 불만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절박한 상황일수록 그 부재가 더욱더 크게 다가왔기에.

그러자.

“정신들 차려! 엘리스 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건 이 전투가 아닌 50층 놈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여기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에 가셔서 목숨을 걸고 싸우시는 분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할망정. 뭐가 어쩌고저째?” 

이를 지켜보던 오필리아가 고함을 질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흥분으로 인해 가슴은 연신 들썩거렸다.

・・・・・・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강진혁이라는 인간과 함께 하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데카서스의 가주 아뮬람을 쓰러뜨리고. 그 외에도 모든 가주들을 무너뜨렸다.

어디 그뿐이랴?

무수히 많은 세월이 탑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던 수많은 세력들을 몰락시키거나 자신의 휘하에 집어넣고.. 결국엔 탑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가주는 그 위대한 원정대의 일원으로 간택 받아 지금 50층에 있는 것이다.

경외롭다.

오필리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50층 정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거, 걱정 마라. 엘리스 님께서도 이 성을 방어하기 위해 다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

“계획이라고?”

“그래!”

오필리아가 당차게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혈액이 담긴 유리병을 하나 건넨 게 전부였고, 특별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대책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았다가는 사기가 바닥을 칠 게 불 보듯 뻔하겠지.

따라서.

‘증명해야 해.’

데카서스 가에서 쫓겨나서 버림받은 자신을 유일하게 받아준 지금의 가주를 위해서.

아타락시아라는 새로운 이름에 걸맞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분의 거점을.

아니.

‘우리’의 거점을 지켜야 한다.

카득!

오필리아가 품 안에서 꺼낸 유리병의 뚜껑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속에 든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꿀꺽!

뜨거운 피가 목구멍을 타고 전신에 퍼져나갔다.

고작해야 마력을 약간 올려주고 상처를 회복해주는 용도.

그런데.

“응?”

달짝지근한 향이 코끝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우우우웅!

[플레이어 강진혁의 혈액을 섭취했습니다.]

[몸속에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정혈과의 공명이 일어납니다!]

콰콰콰콰콰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검붉은 마력이 오필리아의 몸 주위로 솟구쳤다.

엘리스에게 받은 피와 진혁의 피가 속에서 뒤섞이며, 새로운 권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혈액에 녹아 있는 ‘만상공유’의 특수 능력이 발동됩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편린.

그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엘리스와 진혁의 검이 오필리아의 레이피어에 덧씌워졌다.

‘혈계검식(血界劍式)’.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

피와 검이 부르는 노래는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웠다.

제1식.

그저 몸을 맡긴다.

자신의 가주와 고인물이 추는 검무에 모든 것을 기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래가 끝을 고하는 순간……

・・・・・・ 응축되었던 마력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선혈일섬(血-殲)

콰아아앙!

다가오던 몬스터의 몸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뒤에서 따라오는 몬스터들의 몸까지 모조리 관통해버렸다.

쿠쿠쿠쿠쿠콰아아아앙!

피로 이어진 검격이 블랙 캐슬을 지나 호수에까지 닿았다.

“무, 무슨?”

“세상에나.”

“오필리아 경?”

전투를 지켜보던 이들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고위 혈족들마저 넘어서는 능력.

저런 위력의 검술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이거라면 정말 수성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두의 마음속에 희망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샘솟았다.

하지만.

“큭.”

오필리아가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가락.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에 걸린 과부하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반동을 자아냈다.

모든 걸 내던지더라도 1~2번.

그게 한계다.

오필리아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 때문. 죽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리라 각오를 굳혔다.

“크오오오!”

“키에에에!”

그리고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수십 마리 정도의 희생이 있었지만, 태고의 몬스터들에겐 티도 안 나는 숫자였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성벽을 타고 안으로 진입했다.

하늘의 한쪽이 검게 물들었다.

[‘맹약을 이행하는 유성우’가 쏟아집니다!]

우르르르・・・콰콰콰콰콰쾅!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유성이 몰려드는 적들 한복판에 떨어졌다.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

성안 한복판에 무지막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툭툭!

먼지를 털며 나오는 건 5m에 이르는 근육질 남성이었다.

“다행히 너무 늦진 않았군.’

“헤라클레스…?”

오필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나타난 지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들이었기 때문

분명,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협력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태고의 존재들이 찾아왔을 텐데, 올림포스에서 다른 곳을 도와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들의 거점을 방어하는데 총력을 다해야만 했으니까.

“우리 쪽엔 북유럽 친구들이 지원을 와줬다. 위그드라실의 성역이 완성되어 태고의 존재들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하더군. 때문에 여유가 많이 생겼지.” 

헤라클레스가 간략하게 이유를 덧붙였다.

“혼자서 오신 건가요? 도움을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고 해도 저들을 전부 상대하는 건 무리일 텐데요.”

혼자라.

글쎄.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 뒤로 수백 개의 유성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떨어졌다.

‘타이탄’들이다.

그것도 ‘기간토마키아’를 재현할 수 있는 성유물들로 무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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