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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21화


821화. 모멸의 사원 (2)

[공간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좌표는 50층입니다!]

눈앞에 빛줄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이건 설마..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평범한 공간 이동과는 마력의 흐름이나 구성 자체가 다르다.

탑의 다른 층계에서 오는 것이 아닌….

‘현대’에서 넘어오고 있다는 뜻.

빛줄기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사라지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쿨럭!”

“…”

“어, 어지러워….”

플레이어들.

그것도 하급이 아닌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랭커들이었다.

“너….” 어째서 이 자들이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겠지만, 숫자상으로 보건대 지나치게 많은 이들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한 게 틀림없었다.

진혁이 슈브니구라스를 노려봤다.

저 괴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

“후후. 너무 그리 보지 말거라. 네놈을 상대하려면 우리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런 개소리를…”

진혁이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여기는…”

“뭐지?”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이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그러다 슈브니구라스를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처음 보는 외형.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나, 회색빛 눈동자에선 검은색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자가 ‘태고의 존재’ 중 하나라는 것을.

“바, 바실리사님. 어째서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겁니까?”

“분명, 안전지대로 가게 될 거라고 하셨는데, 여긴・・・ 딱 봐도 미궁 아니, 유적 중에서도 최악에 해당하는 수준이잖아요!”

공포에 질린 불만이 터져나왔다.

난데없이 태고의 존재와 마주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 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바실리사 역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확보한 아이템들이 그런 용도로 쓰일 것이라고 믿고 구매했기 때문.

“고생했느니라.”

슈브니구라스의 음성이 모든 의문을 해소시켰다.

바실리사에게 태양의 신석을 준 상인.

랭커 ‘칼 매버릭’.

바실리사의 곁에서 줄곧 서 있던 남자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매…버릭?”

바실리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벌써 몇 년이나 함께 믿고 의지했던 동료.

연인으로서 미래를 약속한 이가 배신을 한 것이다.

동시에.

우우웅!

공격대가 들고 있던 황금빛 광물이 맹렬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석’이 가지고 있던 진정한 이름을 개방합니다.]

[모멸의 신석]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사용조건: 태고의 신격 ‘슈브니라스의 사도’로 제한.

이 아이템을 사용한 자들은 전원 ‘모멸의 사원’으로 강제 이동하여 위대한 이의 제물이 됩니다.

이건 무언가의 축복이나 혹은 반전을 위한 서막이 아니다.

인류라는 종족을 철저하게 짓밟기 위한 미끼에 불과할 뿐이지.

“후후. 자, 이게 바로….”

자신만만하게 양팔을 들어올리던 슈브니구라스의 뒤로 공간이 벌어졌다.

[고유성창, 아랑흑아 – ‘늑대와 검은 숲의 향연’이 발동됩니다!]

콰직!

우두둑!

그대로 수많은 이빨들이 나타나 차원 자체를 통째로 도려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진혁이 기습을 한 것이다.

하지만.

꿀렁꿀렁!

물어뜯긴 부분이 순식간에 재생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예의가 없는 아이로구나.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런 험악한 걸 들이대다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 건 네 쪽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상처 하나 없는 건 좀 충격이네.’

타이밍도 위력도 충분했는데.

본신도 아니고 분신이 이리 멀쩡한 건 조금 슬프다.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이 녀석들은?

“아니, 꽤 재밌는 능력이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능력을 가져다가 활용하는 건 생각지도 못 했다. 노스이디크가 보면 속이 좀 쓰리겠지만.” 

슈브니구라스가 진혁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날카로운 늑대의 눈과 이빨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도 너와 더 놀아주고 싶긴 하다만, 이 사원에 있는 제물로는 내 분신을 오롯이 유지하기가 힘들구나. 해서・・・ 이곳은 너에게 맡기겠다. 매버릭. 네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거라. 나의 곁에 있고 싶다면 말이야.”

“맡겨만 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나이다.”

매버릭의 눈가에 살기가 스쳤다.

생존에 대한 열망과 더 높은 차원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욕망.

두 개의 원초적인 본능이 하나로 뒤섞였다.

***

“매버릭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다 거짓말이었다는 소린가요? 모든 게?”

바실리사가 얼이 빠진 얼굴로 고함을 질러댔다.

“빌어먹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진정하세요. 일단 저 괴물은 당장 싸울 생각 없이 돌아갈 모양이니까요.’

“후욱. 후욱. 후욱….”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잔뜩 긴장한 채 굳어 있었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슈브니구라스라 불리는 여자의 말 한마디. 기분 하나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조용히 이 상황을 넘겨야 한다.

그것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이가 없네. 고작 저런 놈 하나한테 맡기고 간다고? 여기가 박살나서 네 똘마니들이 각 층계에 고립되는 게 상관없다는 거야. 아니면, 정말로 저 녀석 하나로 날 막기에 충분하다고 보는 거야?” 

남자의 말은 일말의 희망을 박살내버렸다.

“이런 미친….”

“제 정신인가? 저 남자는?”

“마력을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건가요.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방금 저 발언으로 인해 모두의 생존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또 다시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설마, 네놈을 무시할 리가 있겠느냐? 또한 이곳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슈브니구라스는 그 말에 조금도 분노하지 않은 것이다.

고대의 등반자들과 몇몇 대영웅들.

 “다른 아이들은 불안해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 전쟁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느니라. 우리에게 대놓고 이빨을 드러낸 놈은 꽤나 오랜만이니까.”

겁 없이 50층에 와서 설쳐대던 놈들이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처절하게 박살났지만, 나쁘지 않은 자극거리였다.

“모처럼의 여흥이다. 고작 첫날부터 상대 왕의 목을 취할 수는 없지. 그래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적당한 시험의 무대를 만들어 두고 그걸 통과할지 지켜보는 것.

압도적인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다.

“……”

진혁은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저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다른 층계도 아니고, 50층의 본진에서 층계의 가호를 받는 슈브니구라스를 사냥한다?

・・・・・・ 1,000번 시도해서 1번 성공하면 다행이겠지.

단순히 정면승부로는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래도 분신체 하나 정도 처리할 수 있으면 약간이나마 전력을 깎아낼 순 있을 텐데.’

도발이 먹히질 않는다.

불경한 자는 고민도 하지 않고 찢어버리는 기존의 성격과는 달리, 꽤나 신중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행보였다.

진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슈브니구라스가 한 마디 덧붙였다.

“무엇보다. 너야말로 매버릭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구나.”

“그건 또 무슨 뜻이지?”

“그것 역시….”

[슈브니구라스의 분신체가 본신과의 연결을 끊습니다.]

“조금 뒤에 알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인간형의 몸체가 그대로 사라졌다.

***

칼 매버릭.

젊은 나이에 유망주로 떠오른 랭커이며, 암스테르담에서는 이름 한 번 정도씩은 들어본 적 있는 실력자였다.

A급. 운이 좋다면 AA급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재능은 매버릭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상단’.

다른 이에게 호감을 사고, 교섭하며, 물건과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능력. 그걸 통해서 단숨에 두각을 드러낸 매버릭은 탑의 여러 정보들과 아이템들을 사고파는 대상인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우연히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성유물을 입수했다.

‘태고의 존재’와 ’50층’에 관련된 성유물을.

[인류는 멸망한다. 하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있다.

위대한 이의 심복으로 살아가는 것.

오직 그것만이 종말에서 생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이리라.

나의 피를 받아들이고 복종해라. 선택받은 이여.]

슈브니구라스의 사도가 될 수 있는 기연.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너희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이딴 전력으로는 50층에서 단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달라. 이기는 편에 서고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겠다.”

단순히 상단주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정점에 선 유일무이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다.

언제까지고 다른 길드의 랭커들에게 굽신대며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매버릭이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고함 질렀다.

“하아.”

진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매버릭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애달픈 스토리와 열등감이 있는 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 잡아줘야 될지 모르겠네. 슈브니구라스랑 계약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나 본데, 놈은 절대 인간 따위에게 호의를 베풀 성격이 아니야.”

“나는 그분의 뜻에 따르는 심복이다. 인간・・・ 이라는 껍데기 따위는 진즉에 버렸어!”

“쯧. 바보한테는 매가 약이지. 원망하려면 멍청하게 줄을 선 네 스스로를 원망해.”

진혁이 긍휼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보아하니 정말로 슈브니구라스와 ‘사도 계약’을 한 모양인데, 처치한다면 꽤나 괜찮은 보상을 토해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너야말로 멍청하게 줄을 잘못 섰다는 걸 알려주지.”

매버릭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검붉은 마정석이다.

모멸의 신석과 외형 자체는 비슷했지만, 속에든 기체에선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푸욱!

매버릭이 가차없이 마정석을 자신의 심장에 꽂았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사원의 사념이 ‘칼 매버릭’의 몸에 깃듭니다!]

[슈브니구라스의 사도가 ‘태고의 각성’을 합니다!]

[혼혈종 ‘태고의 반신’이 탄생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흉흉함.

모멸의 사원에 나오는 모든 저주가 한 인간의 몸에 담겨지는 것만 같다.

49층에서도 슈브니구라스의 정수가 담긴 성물이 나오긴 했으나, 그걸 49층에서 사용하는 것과 50층에서 사용하는 건 그 무게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꿀렁꿀렁!

이건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다.

“내가 곧 사원이다.”

전신에 검은 핏줄이 튀어나온 매버릭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

같은 시각.

시련의 탑 50층의 깊숙한 곳에서는 하나의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툭!

수리부엉이였다.

‘서둘러야 해.’

탑 전층계에 ‘시스템 조작’을 펼치고 있는 릭 헤네시를 대신해 홀로 자리를 비운 탓에, 마음은 더욱더 초조해졌다.

현재 향하고 있는 곳은 ‘은하수의 탄생지’.

수많은 별자리와 은하수들이 만들어지는 신비한 장소로 마력의 흐름이 얽히고설켜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은하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태고의 존재들도 이곳에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수리부엉이는 바로 그곳에서 엘더갓들 중 하나를 만나기로 했다.

정확히는 ‘마력의 흐름을 읽는 것’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격을.

‘그 자라면 내 동료들이 갇혀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적의 적은 친구라고.

억겁의 세월 아우터 갓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엘더갓과 거래를 성사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50층의 공략이 본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되는 지금이 구출 작전을 펼치기에 최적의 시기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수와 강들을 지나 마침내 수리부엉이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멀리에 만나기로 한 엘더갓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조금 늦었군. 기다리게 해서 미안….”

수리부엉이가 상대에게 다가가려던 그때였다. 툭!

서 있던 엘더갓의 머리가 그대로 옆으로 떨어졌다.

몸은 반대쪽으로 무너졌다.

…무슨?

충격이 머릿속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참 많았어. 하지만, 여기까지야. 우리 귀여운 운영자 님.’

“……”

엘더갓의 뒤에 있는 건 남자와 천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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