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23화
823화. 모멸의 사원 (4)
황금빛으로 물든 상태창.
거기에 적힌 것은 기존의 퀘스트와는 궤를 달리하는 종류였다.
[시련의 탑 50층, 최종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이름: 탑의 정상 (1)
형태: 연계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인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과업이 시작됩니다.
현재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 제단이 있는 방까지 데리고 가십시오. 당신이 보스 방 안에 입장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습니다.(메인). 또한 이 무리 안에는 매버릭과 뜻을 같이 하는 자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들을 골라서 처리할 경우 기존 보상 외에 추가적인 보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참신할수록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정도가 달라집니다.(서브).
보상: 태고의 강화석, 잃어버린 언어 파편.
실패 시 보상에 나열되어 있는 것들은 50층에서 두 번 다시 획득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수락 시 특수 스탯 ‘압살이 자동적으로 주어집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꿀꺽.
진혁의 목을 타고 마른침을 흘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시련의 탑 전체에서도 연계 퀘스트는 손에 꼽힐 만큼 그 숫자가 적고 희소했다.
게다가 대부분은 중요도가 낮아 시간만 잔뜩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력 대비 결과가 달달하지 못하다는 뜻.
하지만.
‘이건 달라.’
보상으로 주어진 게 당뇨에 걸릴 정도로 달콤했다.
태고의 강화석은 말 그대로 보라색 등급 성유물을 강화시키는 데 가장 확률이 높은 보물 중에 보물.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어야만 한다.
또한.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도 갖춰야겠지.
엔드 피스.
최종장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로, 태고의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그에 걸맞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아래 층계로 내려왔을 때야 어지간한 걸로도 효과가 좋았지만, 이 생태계에서는 그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어.’
생각해둔 게 몇 가지는 있긴 한데, 지금 당장 확보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거야 차차 해결하면 될 테고.
다음은 두 번째로………
‘잃어버린 언어 파편’.
이것 역시 선택 사항이 아니다.
네크로노미콘을 완벽히 해석하게 해줄 수 있을뿐더러, 아자토스를 공략하기 위해선 태고의 언어 자체를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으니까. 처음 이 사원에 왔을 때는 단순히 각 층계에 현현한 태고의 존재들을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는데.
훨씬 더 많은 게 걸린 승부처가 되어버렸다.
“수락할게.”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가 없는 문제다.
[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압살’ 스탯이 활성화됩니다!]
내용: 태고의 존재와 관련된 능력이나 성유물을 사용할 경우, 태고의 존재들에게 강한 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보유하고 있는 능력과 성유물의 등급에 따라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 달라집니다.
좋아.
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때마침. 이 사원뿐 아니라, 앞으로 50층에서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을 마주하게 될 텐데, ‘압살’ 스탯은 여러 상황에서 엄청나게 큰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진혁 씨. 다들 동의했어요. 저희와 함께 움직이기로요.”
테레사가 공격대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원을 공략해볼 시간이다.
***
저벅.
숨을 죽이고 앞으로 걷는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흐르던 땀마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름대로 여러 유적과 미궁을 공략해왔던 메인 공격대 소속의 딜러와 탱커들이었으나, 차원이 다른 환경 앞에서는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력의 농도가 무겁고 흉흉한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고.
“흐음. 이런 겁쟁이들을 굳이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냐? 괜히 걸리적거리기만 할 것 같다만.”
총총걸음으로 걷던 엘리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최후의 연계 퀘스트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테레사야 워낙에 인류애가 넘치다 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진조 입장에서는 짐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이 상황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여분의 도시락이라고 생각해. 싸우다 보면 피가 떨어질 수도 있잖아.”
“오오. 기특하구나. 짐을 생각해서 그랬던 것이냐?”
“그럼. 우리 흡혈귀를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겠어?”
“후후. 썩 기분이 나쁘진 않다만, 짐이 원하는 피는 단 하나뿐이니라.”
어느새 엘리스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뾰족한 송곳니를 내보이며 입맛을 다시는 걸 보자니 영 불길하긴 하네.
“두, 두 분 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적절한 타이밍에 테레사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에덴의 감옥에서 있었던 일이 재현될 뻔했다.
“헹!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거라. 아니면, 그대도 계약자의 피를 원하는 것이냐? 명색이 성녀라는 애가?”
“저는 엘리스 씨처럼 그렇게 천박하지 않아요.”
“흐응. 기껏 나눠주려고 했더니. 뭐 그렇다면 짐이 혼자 독식하는 수밖에.”
티격태격대는 건 정말이지 한결같네.
그래도 명색이 50층의 사원인데.
제발 긴장감이라는 걸 좀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던 바로 그때.
취취취췻.
무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쫑긋.
엘리스의 귀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위다!”
곧바로 붉은 방벽이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콰
[엘리스가 스킬 ‘블러드 실드’를 발동합니다!]
퍼퍼퍼퍼퍽!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꿀렁이는 피의 장막에 부딪쳤다.
기다란 코를 가진….
마치, 대형화된 모기와 같은 외형.
하지만 저 정도 사이즈라면 단순히 피를 좀 뽑히는 게 아니라 몸에 주먹만 한 바람구멍이 생길 것 같았다.
“킥킥킥!”
“키에에에”
잔뜩 굶주렸는지 배가 있는 부분이 홀쭉하다.
핏발이 선 눈으로 먹잇감을 보는 몬스터들이 연신 괴성을 내질렀다.
7성급 ‘생혈 각다귀.
49층 틈새 유적에서 만났던 ‘플래시 이터’들이 기어 다니는 놈들 중에서 지독한 종류라면. 지금 마주하고 있는 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종류 중에서 가장 지독한 놈들이다.
숫자가 많은 것은 물론, 등급이 높은 것까지. 뭐 하나 짜증나지 않은 점이 없다.
“으으으…”
“진형을 짜라!”
“저 여성분이 막아주는 동안 화력을 집중해서 섬멸해야 합니다!”
당황한 건 잠시뿐.
모두가 각자의 능력을 개방했다.
[클라크가 고유능력 ‘플레임 러너’를 발동합니다!]
[베아트라스가 고유능력 ‘번개의 도시’를 발동합니다!]
[잭 라드너가 고유능력 ‘빙결 부여’를 발동합니다!]
[그레고르가 고유능력 ‘스톰브링어’를 발동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능력을 꺼내야 한다.
화르륵!
콰콰콰콰쾅!
퍼어어엉!
생혈 각다귀들이 밀집한 곳에 모든 공격마법이 작렬했다.
얼음과 불, 번개와 바람의 마법이 겹겹이 중첩되었다.
폭풍이 만들어지며, 내부로 가는 통로 전체가 격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키에에에!”
“크야아아!”
소용없다.
화를 조금 돋게 했을 뿐. 가장 폭심지에 있던 놈들마저도 팔 다리 하나 정도 잘라낸 게 전부였다.
“허억허억. 이럴수가.”
“이 정도 전력 차이라니.”
“이, 이런 식이라면 몇 번을 반복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거의 모든 마력을 다 쏟아부었건만.
승산이 아예 없다.
‘뭐.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손가락 관절을 우두둑 꺾은 진혁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무대는 충분히 화려하게 깔려줬으니 슬슬 주연 배우가 나서줄 차례다.
카가각.
긍휼의 검이 바닥을 긁으며 불꽃을 만들었다.
“잠깐….”
“지금 뭘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설마, 저 밖으로 나가려는 겁니까? 미쳤어요?”
여기저기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 많은 랭커들이 한 공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괴물들이다. 그런데 저런 기괴한 대검 하나 들고 상대하겠다니. 만용이 아니라 공포에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탄식과 질책이 뒤섞인 반응은….
잠시 뒤 이어지는 진혁의 검격과 함께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콰콰콰콰콰콰콰!
일검.
첫 번째 광풍이 대기를 가르자 블러드 실드 인근에 몰려 있던 생혈 각다귀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두 번째 검격은 폭풍을 만들어내며 다섯 개의 갈래로 나뉘어졌다.
“키에에에!”
“케에에엑!”
플레이어들이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토록 단단하던 외피가 무 잘리듯 잘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긍휼의 검 ‘부분 해방’ – ‘태고의 어금니’가 발동됩니다!]
[스탯 ‘압살’이 +103의 판정치를 받게 됩니다!]
그그그극.
검에서 기괴한 공명음이 울려퍼졌다.
대검의 주위에 있는 공기가 진동하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
“끼긱.”
“끄그그극.”
생혈 각다귀들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무리 겁이 없어도 카알루트의 마력이 뭔지는 기억하고 있나 보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놈들을 통해 대략적인 압살의 파급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카알루트쯤 되는 놈의 격을 발현시키면 103 정도의 버프를 얻을 수 있다고 봐야겠군. 7성급 정도의 놈들은 단순히 기세만으로도 군중 제어를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저리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을 보면 살짝 귀엽긴 한데.
안 됐지만, 퍼포먼스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줘야겠다.
[‘세계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페이즈2’ – ‘심연의 마도사’가 현현합니다!]
화르륵!
진혁의 주위로 까마귀 형태의 깃털들이 솟구쳤다.
최대한 화려하고 강렬하게.
[‘빙하천결’ – ‘눈꽃의 평원’이 발동됩니다!]
[‘플레어 이클립스’- ‘부서진 태양’이 발동됩니다!]
이팩트가 화려한 마법들 위주로 골랐다.
쩌저적!
콰콰콰콰콰콰
왼쪽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아름답고 새하얀 눈꽃들과.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청백색의 거대한 태양이 마주쳤다.
***
일방적인 학살.
채 몇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참상을 목격한 이들이 한 생각이었다.
“강진혁・・・ 씨라고 하셨죠?”
“한국에 이런 랭커가 있었다니.”
“대,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가능합니다. 이 정도 실력자라면, 충분히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어요!”
실력을 보여주면 사람의 태도는 180도 변하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야 예상했던 반응이고.
다음은….
진혁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크읍….”
심장이 당장이라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표정.
얼굴에선 식은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왜 그러시는 거죠?”
유일한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랭커의 상태가 안 좋으니 당연히 똥줄이 탈 수밖에.
전전긍긍한 얼굴을 한 플레이어들이 진혁의 주위를 둘러쌌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진혁이 창자가 끊어지는 듯,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 고유능력이・・・ ‘등가교환’에 의한 건데,”
후웁.
호흡 한 번 들이마시고.
후우. 내쉬고.
들숨과 날숨은 5대5 비율이 생명이지.
“이 정도… 능력을 사용하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예? 대가가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
무슨 말이긴.
살고 싶으면…
“여러・・・ 분이 가지고 있는 그 아이템들….”
이곳에 오게 되면서 목숨값으로 받은 그 소중한 전리품들을 모조리 토해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