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24화
824화. 모멸의 사원 (5)
[‘체액 흡혈석’을 획득했습니다!]
[‘안개를 보는 회전시계’를 획득했습니다!]
[‘보정의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멸절자의’….]
[・・・획득했습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메시지.
주머니 속이 두둑해짐에 따라, 입꼬리가 씰룩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흑강 골렘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씰룩! 움찔움찔!
으음. 아무래도 기분 탓이 아닌가 보다.
그냥 보면 볼수록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이제・・・ 된 겁니까?”
거구의 흑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등가교환이라는 명목을 위해 절반이 넘는 아이템들을 넘겼다.
아무리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을 위해 모였다지만, 남색 등급 이상의 성유물들을 다시 토해낸다는 건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 눈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런 간절한 외침이 진혁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아차차. 조금 방심해서 그만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말았네.
이제 겨우 절반 넘게 빼앗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배가 너무 불렀구나. 내가.’
초심을 찾자.
더욱더 악착같이.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바닥까지 핥아먹던 그때의 감성으로,
“아아….”
진혁이 다시 죽는 척을 했다.
“진짜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은데… 일단 저기… 저분이 들고 있는… 지팡이부터 좀 줘보세요. 현기증 나니까… 빨리.”
동태눈을 한 플레이어들이 노려봤지만, 철갑을 두른 진혁의 면피를 뚫을 순 없었다.
“웃・・・ 기지 마쇼. 갑자기 아이템을 달라고? 뭔가 필요하면 차라리 마정석이나 다른 아이템을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등가교환이라는 능력도 사실 당신이 한 말일 뿐이잖아요.”
알레한드로와 에스더.
각기 다른 길드에 소속된 랭커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대놓고 불만을 표현해봤자 이것도 기각이다.
“저는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성유물이라도 살아서 나가야 그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동감이야.”
타이탄 길드에 소속된 피터와 텔라루시아는 의외로 진혁의 편을 들어줬다.
진혁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모든 아이템들이 진혁의 주머니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기 때문.
애초에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
그 뒤로 사원을 공략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콰콰콰콰콰콰콰
애초에 타임 어택으로 들어온 이상 머뭇거릴 이유는 없을 터. 때문에 진혁은 마력을 난사하다시피 하며 박차를 가했다. 수많은 몬스터와.
기상천외한 함정들.
사원 자체의 방어기제들이 총동원되었지만, 진혁과 엘리스 그리고 테레사의 질주를 막을 순 없었다.
이제는 플레이어들이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도 전투 페이스를 따라가는 게 벅찰 정도다.
“무슨 놈의 저런 괴물이… 있는 거야? 아는 사람 없어? 구시대 대형 길드 마스터들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것 같은데.”
“저도 처음 보는 플레이어에요. 한국에 있는 랭커들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볼 필요성이 있겠어요.”
“저 정도면 보상을 요구할 만한 것 같기도 하군.”
“쳇! 나는 여전히 반대야. 적당히 이곳에서 빠져나갈 것 같으면 기회를 봐서 다시 빼앗아야 한다고.”
각양각색의 반응.
어느새 이 사원에 진입한 지 1시간가량이 흘렀다.
[‘제물의 제단’이 있는 장소에 돌입합니다.]
매버릭이 있는 곳까지는 이제 한 걸음.
여기서 잠깐 쉬면서 체력과 마력을 최대치로 올려둔 후에 안으로 진입할 계획이었다.
“생각보다 무난하구나.”
“그러게요. 슈브니구라스가 직접 임명한 사도인 것치곤 조금 쉬운 느낌이에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
그 말대로 미궁의 난이도가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좋은 게 아니라 수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특히나 그리 자신만만해하던 슈브니구라스의 말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진태청화랑심법 ‘혼원의 영’을 발동합니다!]
일단은 회복이 우선이다.
심법이 발동되자, 태고의 어두운 탁기가 몸속에서 맑고 정순한 마력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꽤나 무리해서 날뛰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마력을 써버렸다.
다시 전력을 발휘하려면 이곳에 있는 모든 마력을 낭비 없이 흡수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건 그렇고,
‘누구려나.’
마지막 보상에서 언급했던 매버릭의 협력자들.
대화와 행동 그리고 표정 등을 읽으며 최대한 유추해보려고 했는데, 딱히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자가 없다.
거의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서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을 셈인가.
저 안에 들어가서 매버릭과 공동전선을 펼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점까지 확실히 변수 중 하나로 넣고 전략을 짤 수밖에.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쿠쿠쿠쿵!
갑자기 닫혀 있던 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벌어진 틈 사이로 불길한 마력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
“선공을 한다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공격대가 벌떡 일어섰다.
통상,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은 결코 먼저 열리는 법이 없었다.
‘침입 당했을 때’에 한해서 거점의 메리트가 발동되기 때문.
당연히, 자신들이 먼저 움직였을 경우에는 그 메리트가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미궁의 보스 몬스터, 태고의 반신 ‘칼 매버릭’이 현현합니다!]
그 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쩌저저적.
길게 늘어진 혈관들.
꿈틀거리는 핏줄은 기괴하다 못해 역겨웠다.
“우욱.”
“매, 매버릭….”
동고동락을 했던 동료들로서는 손발이 덜덜 떨릴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리라.
물론, 연인이었던 바실리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도 그런 반응이라니. 딱하구나. 생이 정해진 미물들은.”
매버릭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는 지도 인간이었으면서 정신을 못 차렸네. 거울을 좀 봐. 고슴도치도 그 모습을 보고 예쁘다곤 안 할 거다.”
“또 네놈이로구나. 인간 주제에 위대한 태고의 존재에게 반기를 든.”
“개나 소나 태고의 존재가 되는 걸 보면 그리 위대한 건 아니지 않을까? 상처는 받지 마. 그냥 개인적인 견해가 그렇다고.”
“감히….”
빠드득!
혈관들이 꼬챙이처럼 꼬이더니 그대로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퍼퍼퍼퍼퍽!
1m가 넘는 꼬챙이들이 진혁이 있는 곳을 난도질했다.
순간적으로 펼친 ‘빙하천결’이 절반 가까이 박살 나 버렸다.
“어떠냐? 이대로 내가 우스워 보이더냐?”
“뭐, 조금 달라지긴 했나 보네.”
1시간이 넘게 보스 방에 꽁꽁 숨어서 신체에 적응한 게 마냥 뻘짓거리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강해진 걸로 승기를 장담하고 있다면 너무 실망인데.
[아랑흑아….]
진혁이 매버릭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많은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매버릭을 씹어먹기 위해 위아래로 부딪쳤다.
그리고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모멸의 사원이 거점의 고유특성 ‘태고의 등가교환’을 발동합니다!]
쿠쿠쿠쿵!
격변이 일어났다.
“고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매버릭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뒤틀리는 지축에서는 지금까지 왔던 길을 모조리 뒤틀리게 만드는 흉흉하고 불길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일부러 사원이 쉽게 공략되게 하고 자신이 불리한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했던 건….
・・・・ 모두 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함.
게다가 이건 끝이 아니었다.
매버릭이 구상하는 마지막 전장을 장식하는 덴 더욱더 최악의 카드가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매버릭이 고유성창 ‘욕망의 투영화’를 발동합니다!]
[특이성으로 인해 투영화 할 수 있는 대상들이 한정됩니다.]
[대상은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테레사 드 로렌시아’, ‘페시스 단탈리안입니다.]
슈브니구라스가 이 사원을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이유.
강자들을 상대로 막강한 효율을 발휘하는 능력이 펼쳐졌다.
“하아…. 피가 부족하구나.”
“이건・・・ 새로운 느낌이네요. 마치, 갑갑한 옷을 벗어던진 것 같아요.”
“하하하하! 미궁! 사원! 50층! 멋져! 탐험! 최고!”
엘리스 테레사 페시스.
정확히 똑같은 외모와 마력을 지닌 이들이 거울을 통해 걸어나왔다.
“짐…이잖아?”
“저, 저도 있어요.”
“나는 저리 멍청하게 단어만 내뱉지 않는단 말입니다!”
진혁의 곁에 서 있던 엘리스와 테레사, 페시스가 각각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터뜨렸다.
이런 능력이 존재할 줄이야.
진혁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단기간에 끝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
콰콰콰콰콰콰!
폐허로 변하는 거점들.
모두가 사력을 다해 준비를 해뒀지만, 본격적인 태고의 진격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주요 전력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건 ‘정신병동’과 ‘서리호수’였다.
상대적으로 가장 최약체에 속하는 세력이었기에, 1시간 동안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다.
“트, 틀렸습니다.”
“강진혁 님께서 만들어주신 마지막 결계마저 뚫렸어요.”
광신도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말을 증명하듯.
콰아앙!
최후의 문이 박살났다.
쇼거스들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끔찍한 외형을 한 태고의 병사들이 먹잇감을 포식하기 위해 바닥과 벽을 기었다. 퍼퍼퍼퍼펑!
여우불들이 화려한 폭발을 일으킨 건 그때였다.
[안드리아가 ‘여우불 놀이’를 시작합니다!]
새하얀 9개의 꼬리에 각기 다른 불꽃이 맺혔다.
고대 구미호들의 혼이 담긴 정수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여 맹렬하게 타올랐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쇼거스들이 비명을 질렀다.
여우불이 꺼지지 않고 진피층까지 파고들었다.
심지어 ‘구미호의 유혹에 넘어간 몇몇은 자신들의 동족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가시군. 여우 한 마리에 발이 묶여서 시간을 지체해야 되는 건가?”
전투를 지켜보던 이알다골스가 불편한 음성을 내뱉었다.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콰아앙!
다른 쇼거스들보다 덩치가 3배는 더 큰 놈들이 뛰어들었다.
“끄아아악!”
“우와아악!”
“사, 살려줘!”
닥치는 대로 보이는 광신도들을 꿰뚫고 집어삼키는 모습.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동시에 들이닥치는 통에 안드리아로서도 전부 다 손을 쓰는 게 불가능했다.
이걸로 완벽하게 내부를 내어주게 되었다.
“저희가 막고 있을 테니. 안드리아 님만이라도 몸을 피하십쇼.”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암요. 몸으로 버티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모두가 안드리아를 위해 몸을 던질 각오를 끝냈다.
이용당한 끝에 제물로 바쳐지던 지난 삶.
이제 정신병동은 더 이상 그런 장소가 아니다.
비록 음침하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살아가는 보금자리이자 집이었다.
・・・・・・ 그걸 만들어준 이를 위해서 죽는 것이라면 목숨 따위,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것이 모든 광신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오오오!”
철로된 거대한 삼각형 투구를 쓴 ‘브레이커’ 역시 고함을 지르며 공감을 표했다.
“아니요.”
안드리아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은 제 보금자리기도 해요.”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다.
믿고 맡겨준 이와의 인연이 시작된.
무엇보다 한 층계를 지키는 자로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방패 삼아 목숨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5층의 군주로서 그 책무를 다할 것이다.
“그동안 모두 저와 함께 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덕분에 더 살아가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안드리아가 모두의 곁에 섰다.
[정신병동 ‘구미호의 방’이 최후의 거점으로 선정됩니다!]
[5층에 소속된 이들의 사기와 전투 능력이 10%만큼 향상됩니다!]
[배수의 진 효과로 인해 스킬의 파괴력이 5%만큼 향상됩니다!]
“크르르르,
“케에에에”
어느덧 쇼거스들이 완벽한 포위진을 갖췄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촉수와 발톱을 내세운 채 이 싸움의 종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우웅!
뜻밖에 이변이 일어났다.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빛
그 사이에서 생전 처음 보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은….”
이알다골스의 표정이 급격히 무너졌다.
솔직히 말해 어떤 지원이 오더라도 웃으면서 박살내 버릴 자신이 있었지만, 딱 하나.
자신의 군대로도 승기를 쉽게 장담하기 힘든 세력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이로구나. 별의 오점이여.”
“못다한 승부를 내기 위해 우리가 왔노라.”
아우터 갓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변수.
[50층의 거대세력 ‘엘더갓’들이 전장에 합류합니다!]
오랫동안 50층 한구석에서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세력이 승부수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