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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30화


830화. 검은 산들의 주인 ‘슈브니구라스’ (2)

오싹…!

전신을 옥죄어 오는 압박감.

심해와 같은 마력의 파도가 범람하자 전선을 따라 고요한 침묵이 퍼져나갔다.

분명, 수천, 수만의 병력들이 집결해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소음이 일어나야 정상일진대,

소리가 없다.

움직임도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듯. 그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크으으….”

“모, 몸을 움직일 수가….”

이집트의 신격들마저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슈브니구라스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해방하자, 차원이 다른 격이 공간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그래.

모두가 착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각 층계를 침공했던 태고의 존재들과 그 휘하의 병력들을 상대하면서 그래도 버틸 만했다고 생각했으니까.

50층에 와서 미궁과 던전들을 정복하면서 어쩌면 그 명성이 과장된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알량한 자신감과 오만이…

얼마나 같잖은 것이었는지를. 여기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하늘 위엔 더욱 높은 하늘이 있고.

절망 아래는 더욱 거대한 심연이 있다.

쿠쿠쿠쿠쿠쿠!

흑요석처럼 새카만 어둠이 몰려온다.

콰아아앙!

“아아악!”

“제, 제발 살려줘!”

“신이시여!”

폭발하는 흑염과 몰아치는 칼날의 폭풍 속에서 각 연합의 전사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고작 일격.

슈브니구라스의 손짓 한 번에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온 것이다.

가로로 길게 그어진 크레이터에서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크오오오!”

“케에에에!”

검은 산양들과 쇼거스들이 파죽지세로 전선을 밀어붙였다.

이미 전의를 잃어버린 군대는 그 공격에서 버텨낼 수가 없었다.

콰아아앙!

첫 번째 충돌만으로도 1열을 책임지는 방패병과 중, 대형 몬스터들이 말 그대로 갈려버렸다.

“마, 막아라!”

“젠장.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럼 다 끝장이라고!”

“성역・・・을 추가로 아니, 사막의 가호라도 펼쳐둬야..!”

전술의 변화?

비장의 카드?

그딴 것도 전부 본진이 버텨줬을 때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서는 백약이 무효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탓!

여러 그림자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테레사가 고유성창 ‘세라핌’ – ‘구세의 성녀’를 발동합니다!]

[대천사들이 ‘천상의 포교’를 발동합니다!]

황금빛 운무가 몰아치며, 따스한 기운이 공포에 잠긴 이들에게 닿았다.

“포기하지 마세요!”

[성유물 ‘예루살렘의 마구간’이 발동됩니다!]

[일시적으로 ‘신성 방벽’이 머리에 각인됩니다!]

[원초적인 ‘공포’에 대한 내성이 15%만큼 상승합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이 각각 13%만큼 상승합니다!]

신성력을 통해 아군을 보호하고 사기를 끌어올리는 힘.

‘에덴’의 천사들이 가세하자 물밀 듯이 몰아치던 태고의 진격이 가속도를 잃었다.

저항한다.

눈앞에 닥친 공포에 맞서 방패를 들고 능력을 발동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테레사가 대천사들에게서 받은 성검을 휘두르며 최전선을 맡았다.

번 시간은 고작해야 30여 초.

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그 정도 시간은 전황 전체를 뒤바꿀 만한 시간이었다.

준비를 마친 진혁이 움직였다.

두두두두두!

정면이 아닌 측면,

“달그락! 이쪽입니다. 마스터!”

함께 하는 것은 티본을 포함한 데스나이트들이었다.

두꺼운 갑주로 몸을 감싼 유령군마와 기사들이 쇼거스들의 벽이 얇은 곳을 노렸다.

콰아아앙!

마력과 무게가 가미된 파괴력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휘청하고.

쇼거스들 사이에 공간이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엔 리치들의 마법폭격이 이어졌다.

원소 마법도 종종 섞여 있긴 했으나 주요 골자는 흑마법. 특별히 진혁이 개량한 마정석을 이용해 태고의 존재들에게 잘 먹히도록 손을 써뒀다.

퍼퍼퍼퍼펑!

투콰아앙!

베이로둠의 동공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황홀하면서 아름다운 세계에 올 수 있다니.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면서 하여간 말은.

그래도 리치 군단의 마법들은 시선을 잠깐 끌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진혁이 두 자루의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고대결 ‘사방(四方)의 진’이 발동됩니다!]

검술과 결계가 혼합된다.

진혁의 발밑을 따라 태극(太極) 문양이 떠올랐다. 그 주위에는 이질적이게도 룬어와 잃어버린 언어로 구성된 술식이 덧씌워졌다.

[‘흑월야’가 서(西)를 엽니다!]

[‘적월야’가 동(東)을 가릅니다!]

[‘청야’가 북(北)을 찌릅니다!]

[‘백월야’가 남(南)의 끝을 베었습니다!]

색이 다른 달빛 궤적이 움직였다.

콰콰콰콰콰콰

반경 250m.

4개의 검격이 만들어낸 검진이 펼쳐지자, 그 간격 안에 있던 모든 쇼거스들의 몸이 수백 조각으로 잘려나갔다.

털썩!

풀썩!

비명 소리조차 없다.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경지에 오른 걸 넘어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낸 수준.

슈브니구라스의 직속 쇼거스들마저도 진혁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저 인간은… 위험하군.”

“어머니께 가려는 건가.”

“아무리 인간 따위가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긴 하겠지만, 괜히 심려를 끼쳐드릴 필요는 없겠지.”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을 한 검은 산양들이 반응했다.

새하얀 피부와 이와 대조적으로 머리에 돋은 검은 뿔.

태고의 마력이 그대로 녹아있는 눈은 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다.

카아앙!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던 진혁의 검이 처음으로 막혔다.

카각. 카가각…!

칼날과 칼날이 갈리면서 불길한 색을 띤 불꽃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쉽게 뚫긴 틀린 것 같네.’

슈브니구라스에게 조금 가까워지려 하니 무지막지한 놈들이 연거푸 나온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뜻이겠지.

“마스터!”

티본의 고함 소리가 바로 목덜미 뒤에서 울려퍼졌다.

[‘절망의 왕관’이 ‘육체 붕괴’를 시전합니다!]

쩌저저적…!

태고의 마력과는 다른 종류.

스멀스멀 뿜어지는 검붉은 기운이 검은 산양들을 집어삼켰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티본의 대검이 남성체 한 명의 허리로 향했다.

투콰아앙!

기역자로 꺾이는 몸.

육중한 충격에 검은 산양의 입가가 뒤틀렸다.

“크읍!”

“달그락. 마스터의 앞을 방해하지 마라!”

티본의 검이 그 크기답지 않게 고속으로 움직였다.

저 특유의 경쾌하면서 패도적인 검로.

틀림없다.

‘추혼검무’다.

‘저 녀석이 언제 저걸 익혔지?’

진혁이 대견하면서도 놀랍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어딜 한 눈을 파는 것이냐?”

곧바로 또 다른 검은 산양이 달려들었다.

티본이 상대하는 남성체와 달리, 가녀린 몸을 갖고 있는 여성체였다.

물론, 외형이 여리여리해 보인다고 해서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친다.

들고 있는 낫은 과거 펜다리엘을 처리할 때 썼던 ‘인과를 끊는 낫’의 상위 버전이었으니까.

・・・・・・ 정통으로 맞았다간.

‘위험해.’

아껴두던 ‘1초 무적’이나 ‘별의 가호’를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슈슈슉!

진혁의 발밑에서 반원형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계속 가십쇼. 이곳은 속하가 맡겠습니다.”

호위로 붙어있던 월영이 진혁의 앞에 섰다.

“괜찮겠어? 저놈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과는 달라.”

“도움이 될 날만을 위해 기다리고 또 견뎠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수련과 고통스러운 운기조식도 달게 삼켰다.

한 합을 벌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주군의 검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삶이었으니까.

월영을 향해 손을 뻗던 진혁이 멈칫했다.

이미 각오는 끝낸 거겠지. 더 이상 말려봤자 소용없으리라.

“대신 죽지는 마. 이건 명령이다.”

“존명.”

[월영이 고유성창 ‘비류(沸流)’-‘다중 음영극살’을 발동합니다!]

음영극살 역시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거기에 기척까지 감출 수 있으니 암살자로서는 최상의 능력인 셈이다.

그러나.

고유성창 ‘비류’는 음영극살을 훨씬 뛰어넘어 생기마저 숨길 수 있는 영역이었다.

[‘사안(死)’이 부분 개화합니다!]

[사용 가능 시간: 0H: 0M: 59S]

이럴 수가.

대상에게 가장 치명적인 검로가 보이는 눈까지 개화시킨 건가.

비록 완전 개화가 아닌 데다, 제한 시간까지 붙어있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경지에 들어섰다.

“비켜라. 여자. 네년 따위에게 관심은 없다.”

검은 산양이 월영을 향해 으르렁댔다.

빠직!

월영의 이마에 고운 힘줄이 생겼다.

“…아니다.”

“뭐라고?”

“여자가 아니라고!”

카가가가강!

날붙이와 날붙이가 수백 개의 궤적을 그리며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

동료들을 믿고 앞으로 달린다.

티본과 월영 외에도 수많은 신격과 대영웅들이 진혁에게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상황은 좋지 않다.

티본과 함께 온 데스나이트는 3분 정도를 벌기 위해서 소모했고.

월영 역시 휘하의 음영대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1초 1초가 흐를 때마다 수백의 생명이 그대로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진혁이 속에서 터져나오는 분노를 애써 삼켰다.

충분히 각오는 하고 왔다고 생각했다.

50층 공략에서 그 누구도 잃지 않고 클리어한다는 건 몽상가의 이상론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게임 속에서 사라지는 데이터와 달리 이곳은 현실이다.

추억과 기억을 나눈 이들이 장렬하게 산화하는 모습을 보며 감정에 동요가 생기지 않을 리가 없겠지.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더욱 속도를 높인다.

[극성의 ‘천마군림보가 발동됩니다!]

콰앙!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만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

“꺼져.”

진혁이 빼곡하게 몰려있는 쇼거스와 양산형 검은 산양들을 향해 고함쳤다.

[만상공유 ‘개벽의 계시록’ – ‘천혈의 비’가 발동됩니다!]

[만상공유 성명절기 – ‘단죄의 검’이 발동됩니다!]

화르륵!

위에서…….

・・・・・・ 아래로.

고구마의 겁화를 중심으로, 엘리스의 붉은 꼬챙이들이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정도의 불과 피가 몰아쳤다.

끔찍한 재생력을 지닌 쇼거스들이 온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찢기고 불타다 소멸해버렸다. 그럼에도 또 다른 태고의 몬스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꺼지라고!”

쩌저적!

지면에서 솟구치는 눈과 서리 가루.

‘백야’와 ‘빙하천결’이 하나로 합쳐지며 지면 위에 서 있던 놈들을 발밑에서부터 산 채로 얼려버렸다.

[고유성창 ‘뇌신’이 발동됩니다!]

[소환 ‘아스트라페….]

몰아쳐라.

내려쳐라.

사정없이. 모든 것이 재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파츠츠… 우르릉! 콰콰콰콰쾅!

검게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셀 수없이 많은 번개들이 떨어졌다.

기상을 조종하고 상식을 무너뜨린다.

감히 개인이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능력들의 향연.

벌컥.

진혁이 ‘천도복숭아 과즙’과 ‘넥타르’를 섞은 포션을 들이켰다.

‘진태청화랑심법’으로 순식간에 마력을 혈관에 채워넣은 뒤 호흡을 두세 번 가다듬는다.

사력을 다해 연 길은 위태롭고 얇다.

허나, 똑똑히 보인다.

머지 않은 앞에는 최강의 신격 중 하나가 서 있었다.

“……”

여전히 빌어먹게도 슈브니구라스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이 정도 능력을 뽐냈음에도 아무런 흐트러짐이 없는 건, 절대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겠지. 겁이 많은 개가 크게 짖듯 요란하고 화려한 스킬과 능력들만으로는 그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질 않는다. 애초에 50층에선 그 어떤 걸로도 슈브니구라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진혁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려고 하네. 조금은 대응이라도 하는 시늉을 하는 건 어때?”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

슈브니구라스가 짧게 대답했다.

확실히, 50층에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전장을 옮긴다.

그리하여.

슈브니라스의 ‘격’을 훼손시킨다.

-다 되었다!

-완성했어요!

때마침 페시스와 제천대성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표정. 지금부터 바꿔줄게.”

진혁이 양손을 하나로 모았다.

[황도십이궁(黃道二宮)’열두 별자리의 항해’가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언어 ‘거짓된 세계’가 발동됩니다!]

촤라락!

네크로노미콘이 빠르게 넘어가며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원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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