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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46화


846화. 대거점 ‘양들의 요람’ (1)

개기일식(皆旣日蝕).

붉은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공허룡의 현현은 거점 전체의 공기를 뒤바꿨다.

화르륵!

불꽃이 흐드러지며 수억 개로 나뉘어진 파편들이 군도를 향해 떨어졌다.

분명, 가려진 태양으로 인해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음에도 무수히 많은 불꽃들로 인해 숨막힐 듯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워요.’

“이것이….”

“로드의 전력인 건가.”

마력을 전부 소모해 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하던 용들이었다.

그런데, 에테리온이 현현한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마력이 드래곤 하트를 자극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격하게 고동치는 심장.

혈관을 통해 끓어오르는 힘이 전신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덜덜덜!

카이나문이 본능적으로 온몸을 떨었다.

날개를 가진 종으로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심연을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지만, 에테리온은 그런 시간 자체를 주지 않았다.

[성명절기 ‘단죄의 검’이 소환됩니다!]

모여드는 광휘.

심판을 고하는 에테리온의 성명절기가 거대한 비익룡에게 향했다.

“큭!”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카이나문이 마력을 재배열했다.

음파로 이루어진 장막이 펼쳐졌고, 그 주위에 태고의 운무가 덧씌워졌다.

“우습게 보지 마라. 그래봤자 50층에 도달하지 못한 미물 따위가 감히 군도의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는 것이냐!” 

다른 곳은 몰라도 이 울부짖은 회색 군도에선.

날아다니는 것들을 상대로는..

절대 지지 않는단 말이다!

[거점의 가호 ‘그레이트 윙’이 거점 군주 ‘카이나문’ 하나에 집중됩니다!]

[모든 효과가 100%만큼 증가합니다!]

쿠쿠쿠쿠쿠!

넓게 펼쳐진 날개로부터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내뿜어졌다.

[카이나문이 고유성창 ‘비익 폭류창’을 발동합니다!]

나선형의 형태로 꼬인 푸른색 창이 주위의 모든 파장을 빨아들이며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1초 남짓한 찰나.

최대크기로 완성된 창이 발사되었다.

쇄도하는 ‘단죄의 검’과 카이나문의 고유성창이 격돌했다.

치-잉!

고막을 잘라내는 듯한 이명과 함께 수십 개의 소닉붐이 양쪽으로 만들어졌다.

충격이 더욱 큰 충격을 낳기를 계속.

그러나.

막았다.

성명절기를 견뎌냈다.

“크, 크하하, 허억. 보, 보았느냐? 그깟 걸로는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카이나문이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도 자신만만한 광소를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

[‘단죄의 검역(域)’이 발동됩니다!]

카이나문의 반경 1km 주위로 불타는 검들이 솟구쳤다.

화르르륵…

검과 검 사이에 불길이 이어진다.

동시에.

쩌저적!

하늘이 열리며, 무수히 많은 ‘단죄의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를 셀 수도 없다.

하나하나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카이나문의 눈에 절망만이 맴돌았다.

쿵! 쿠쿵! 투콰아앙!

쏟아진다.

하나만으로도 벅찼던 단죄의 검들이 무수한 검역을 이루며 보이는 모든 것을 지워나갔다.

“크아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

철벽 같던 방어마법이나 타고난 외피도 지금만큼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검이 찢고 지나간 자리엔 대량의 피가 솟구치며, 익룡의 거대한 몸을 난도질해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폭격이 이어졌을까?

주위에 펼쳐둔 검역이 서서히 사라지고 나서야 악몽 같던 시간이 마침내 끝을 고했다. 그런데.

“…”

카이나문의 숨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실낱같은 마력과 호흡을 이어가면서도 생에 대한 끈을 놓진 않았다.

걸레짝이 된 카이나문의 본체가 급속도로 작아졌다.

‘부유성’이라는 사기적인 공중요새.

거점의 보스 몬스터가 죽지 않는 한 부유성은 함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부유성이 존재하는 한 거점 보스는 질기다 못해 불사에 가까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난공불락의 방패를 제공하는 셈이다.

“살아야 해. 버텨야 해. 살아야 해. 버텨야 해.”

이미 마력을 다 소비해 인간형으로 돌아간 카이나문이 비틀거리며 부유성 안쪽으로 걸어갔다.

실성해버린 놈처럼 중얼거리면서도 거점을 지켜야 한다는 목적은 잊지 않았다.

거의 다 왔다.

부유성의 사령탑이 있는 최심부까지는 코앞이다.

최대한 방어태세로 전환한 뒤 농성에 들어가면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바로 그때.

또각.

어두운 통로의 끝에서 결코 들려서는 안 되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웨, 웬 놈이냐!”

카이나문이 고함을 쳤다.

또각.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더욱 선명해진 발걸음 소리가 질문에 회답할 뿐이었다.

“누구냐! 모, 모습을 보이란 말이다!”

그제서야 어둠이 가시며 발걸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갑게 빛나는 호문쿨루스의 안광.

“부유성을 넘겨받겠어. 응.”

상처 입은 맹수가 돌아올 곳은 하나뿐.

그렇기에 이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공중요새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바치기 위해서.

철컹!

한 쌍의 단창에 ‘죽은 인형들의 사념이 깃들었다.

같은 시각.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태고의 군세가 아군의 진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끄아아악!”

“우아아악!”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잘린 팔다리는 셀 수 없이 뒹굴었고, 시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거점의 보스 무혼이 ‘유적의 재현’을 발동합니다!]

[거점의 보스 펜다리엘이 ‘썩어가는 시체들의 구덩이’를 발동합니다!]

[벨토르가 대결계 ‘강화의 영역’을 발동합니다!]

[15층 이하의 보스급 몬스터들이 사용한 능력의 효과가 250%만큼 상승합니다!]

방어에 특화된 능력들이 연이어 발동되었고,

벨토르의 결계가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콰콰콰콰콰

콰지직! 콰드득!

강화된 석상병사들도, 좀비 군단도 가장 약한 태고의 병사 하나를 상대하지 못했다.

수천의 병사들로 발을 묶어두는 게 한계인 것이다.

“아무리 준비를 해봐야 몇 초도 버티기 힘들군.’

“우・・・리가 어찌할수 있는 싸움이 아니니까… 그래도 시간을 조금이라도 번 것으로… 만족한다.”

무혼과 펜다리엘이 속절없이 박살나는 진형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미 몇 시간째 지속되고 있는 혈투.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고 있는 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좌측이 뚫린다! 예비대를 보내야 해!”

“제3군단과 5군단도 한계입니다! 이 거점이 돌파당하면 단번에 중앙군까지 위험해져요!”

“우마왕이 와줬습니다! 땅굴로 오는 적들을 완벽하게 섬멸! 당분간은 안전합니다!”

“이집트 군단은 물러나서 협곡 아래쪽에 다시 자리를 잡겠다고 합니다! 스핑크스 둘은 반파되었고 주신 오시리스는 큰 부상을 입어 전선에서 이탈했습니다!” 

승전과 패전 그리고 지원과 후퇴가 이어졌다.

꿀꺽!꿀꺽!

한바탕 날뛰고 온 진혁이 마력 회복 포션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실상 일반적인 각 층계의 세력만으로는 싸움이 안 되는 상황.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력 멤버들이 적절하게 개입해줘야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당연히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 역시 몇 배로 가중될 수밖에.

그럼에도 특별한 수를 쓰지 않고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진혁의 시선이 힐끗 허공에 떠 있는 상태창으로 향했다.

이름: 탑의 정상(3)

형태: 연계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세 번째 연계 퀘스트의 주제는 ‘기존의 것을 탈피하라’입니다. 탑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 과거의 경험과 기연들에 의존하기만 한다면 진정한 등반자가 아닐 터. 그 시련을 극복하고 제2의 공략법을 통해 성채의 외벽을 뚫으십시오.

보상: 초월급 융합 재료(상위 융합에 필요한 능력 1개를 대체할 수 있는 만능형 재료가 주어집니다.) 또한 만약에 ‘내성’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할 경우 융합 재료 2개가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실패 시: 4개의 고유성창과 6개의 고유능력 그리고 10개의 스킬이 랜덤으로 봉인됩니다.(봉인 기간: 30일)

결국, 이 최후의 연계 퀘스트를 주고 있던 것도 전부 과거의 천유성이 한 짓이겠지.

‘일종의 시험을 하고 있는 건가.’

과거 ‘양들의 요람’을 통해 최대 거점을 만드는 공략을 또 사용하는 건 안 된다.

그러니.

더욱 자극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나를 즐겁게 해다오… 뭐, 이런 변태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초월급 융합재료라는 말도 안 되는 보상을 건 걸 보면, 절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뜻이거나.

혹은.

보상을 넘겨주더라도 자신이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제정신은 아니다.

‘재밌네.’

진혁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너무 오랫동안 과거의 망령이 되어 배회하느라 까먹고 있었나 본데.

그 수많은 장난질과 도전들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던, 그 뼈아픈 기억을 되새겨줄 필요가 있겠다.

“계약자!”

엘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쿵쾅쿵쾅 쿵쾅!

진동마저 느껴질 정도의 심장소리가 울려퍼졌다.

오싹한 감각이 전신의 세포들을 모조리 자극했다.

이건….

틀림없다.

양들의 요람에 ‘육식계 씨앗’이 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

사실상 거점을 난공불락으로 만들어버리는 50층 최고의 방어벽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주인이 각인된 그림자 묘목’들이 공포와 죽음의 기운을 포식합니다.]

[개화율 27%]

벌써 27%다.

나무넝쿨과 보랏빛 꽃잎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50%만 넘겨도 어지간한 고유성창은 간식으로 집어 삼켜버릴 터.

승부를 보려면 그 전에 봐야만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회복한 엘리스나 테레사가 다시 한 번 움직이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막강한 벽이 태산처럼 가로막았다. 공허의 거인, 심연포식자, 초승달 사제.

태고의 주력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완벽한 진형을 갖춘 채 육식계 씨앗을 보호했다.

‘그레이트 올드 원’들 역시 태고의 병사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적어도 그로스나 카알루트의 하위호환 정도는 되는 괴물들이었다.

“크하하하!”

“클 클 클 클!”

광기에 가득 찬 웃음소리.

감정선이 극대화된 파장이 전선 전체를 집어삼켰다.

우주적 체스를 두던 태고의 신격들이 승리를 자축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쿠쿠쿠쿠쿠!

유형화된 마력이 폭주하면서 새로운 절망을 만들어냈다.

“마력의 질이… 달라.”

“가뜩이나 불리한데 저런 것까지… 나오면 뭐 어쩌라는 소리야.”

모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정확히 육식계 씨앗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저게 완성되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뚫어야 한다. 반드시!”

한쪽에서는 천마와 제천대성 그리고 우마왕이 미친 듯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신을 사지로 내던졌다.

그러나 소용없다.

[개화율 31%]

아무리 몰아쳐도 태고의 벽은 뚫리지 않는다.

게다가 여차하면 가세할 수 있는 상위 신격들 역시 수십이나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화율 40%]

희망 따윈 없다.

죽음을 각오한 돌파도.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헌신도.

모두 무위로 돌아갔으니까.

[개화율 48%]

・・・끝장이다.

이 성채는 완전히 적들에게 넘어갔….

그렇게 확신한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쿠!

서쪽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진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오오오!”

에테리온의 쩌렁쩌렁한 포효와 함께.

[‘울부짖는 회색 군도의 부유성’이 현현합니다!]

[세력 ‘고대룡’들이 전장에 합류합니다!]

거대한 ‘성(城)’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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