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48화
848화. 회귀자의 시간 ‘마신 강림’ (1)
쿵쾅쿵쾅!
격하게 요동치는 심장.
혈액을 따라 흐르는 마력의 색이 순수한 흑요색으로 변했다.
[과거의 직업을 선택합니다!]
쿠쿠쿠쿠쿠쿠!
‘회귀자의 시간’으로 인해 꺼낸 직업 전승. 거기에 ‘해금의 쐐기’로 인해 과거의 전성기를 넘어선 능력을 재현한다.
이미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오래 전에 결정해두었다.
[히든 클래스 ‘마신’이 현현합니다!]
마계의 모든 마왕들을 쓰러뜨리고 마계를 정복한 절대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 거기에 태고의 신격 셋 이상을 오롯이 마기를 사용해서 제거해야만 한다는 조건.
그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과업들을 모두 달성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히든 클래스였다.
진혁의 등 뒤로 검은색 흑염이 솟구쳤다.
동시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흑익(黑翼)과 뿔이 생겨났다.
근원적인 마기를 모을 수 있는 마신의 절대 무장이다.
저릿저릿!
이질적이면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힘.
“저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흉흉한 기운이로군요.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지만, 강진혁 님이라면 다 이유가 있으시겠죠.”
각 신화에 소속된 신격들이 저마다 다른 감상을 늘어놨다.
이미 여러 차례 상식을 벗어난 일들을 봤지만, 종족 자체가 변환되는 건 처음이었다. 진혁이 아니었다면 동맹 자체가 위태로워졌을 만큼 지금의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오오오! 과연, 과연…!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아하하! 틀리지 않았어!”
베리엘의 경우에는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지만. “열려라.”
진혁의 입에서 낯선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쿠쿠쿠쿠쿠!
[히든 스킬 ‘절망의 기수’가 발동됩니다!]
검은 물결이 파도를 만들며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수많은 이빨을 가진 무언가였다.
“크루루룩!”
가래가 끓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은 생명체가 진혁의 명령에 따라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이미 박살이 난 외곽 성채는 아직도 혼돈에 빠져 있는 상황.
아직까지 진혁이 무슨 능력을 꺼냈는지 파악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채 정비를 할 새도 없이 이빨을 가진 어둠의 파도가 적들을 휩쓸었다. 콰직!
콰드드득!
외피가 박살 나고 뼈와 살점이 으깨지는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퍼졌다.
위태위태하던 방어벽이 완벽하게 돌파된 순간이다.
“지금!”
진혁이 연합의 모든 병력을 향해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우오오오!”
“간다!”
“돌격하라!”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세력의 수장들이 돌격을 지시했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체구를 가진 대형급 개체를 필두로, 엄청난 수의 군대가 만들어진 길을 향해 내달렸다.
“화력을 집중시켜라! 지금 아니면 영원히 저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최강의 방어를 자랑하는 ‘육식계 씨앗’이 완전히 불에 타서 사라졌다.
방금 전 부유성의 충돌과 진혁의 공격으로 인해 10만에 달하는 태고의 군대 역시 증발해버렸고.
[상층부의 거대세력 ‘이집트’가 ‘메마른 땅의 격노’를 발동합니다!]
[상층부의 거대세력 ‘에덴’이 ‘천상의 부름’을 발동합니다!]
사막의 쟈칼과 악어 그리고 각종 동물의 모습을 한 신수와 환수들이 정면을 맡았다.
수천의 천사들은 망루를 향해 날아갔다.
“사막의 긍지를 보여라!”
“에덴을 위하여!”
신성력과 메마른 마력이 뒤섞였고. 마계의 마기와 무림의 내공이 창공을 가득 물들였다.
더 이상 패를 숨길 필요는 없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어떻게든 내성까지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게.
콰아아앙!
전투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되었다.
연이어 일어난 이변.
태고의 신격들은 전례 없는 한 수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부유성이 떨어진 곳에 아직까지 뇌우가 몰아치고 있다. 빌어먹을, 어지간한 놈들이 아니면 접근도 하기 힘들어!”
파츠츠.
파칙!
부유성이 추락했어도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프레이는 뇌우를 조종하며 피해를 극대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방어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부유성을 정지시켜야만 하리라.
문제는…….
“고대룡과 언데드 병력들을 뚫는 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쪽에서도 연이어 패전을 알리는 소식이 도착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별것 아니었지만, 공허룡 에테리온과 티본이라 불리는 초월급 데스나이트는 심연포식자와 초승달 사제들마저도 압도하고 있었다.
“서쪽의 진입로 완전 함락! 슈드뮤엘께서 치명상을 입으셨습니다!”
천마가 1:1에서 승리를 점했다.
이걸로 서쪽 진입로는 완전히 잃었다고 봐야 한다.
“서쪽 지하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십이지’들에게 공격받고 있다! 위쪽을 신경 쓰느라 지하는 하위 신격 몇이 있는 게 전부야.”
그레이트 올드원급이면 몰라도. 제천대성과 우마왕을 막기에 하급 신격들로는 무리다.
“…최악이로군.”
“내 직속 군단도 오고 있긴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이알다골스와 쥬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번에 너무 많은 수의 병력이 증발되었기에, 그 공백을 메우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려는 적들은 그 ‘시간’을 허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중앙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 거길 잃으면 외성 전체를 잃게 될 테니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몇몇 짜증 나는 병력들만 잘 방어한다면 얼마든지 외성을 되찾을 기회는 남아 있었다. 특히..
‘마계’.
가장 성가시게 변한 건 저 녀석들이었다.
“크하하! 힘이 넘쳐나는구나!”
“마신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한다! 전부 죽이고 놈들의 생명력을 흡수해라!”
전장을 아우르는 광역 패시브 능력 ‘마신 강림’.
단순히 마신이 현현해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마족들의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할뿐더러, 적의 생명력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특수 능력까지 부여된다.
당연히 주체 못할 흥분감과 고양감에 마족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아문 드 카드라사.”
“키에에에!”
초승달 사제들과 심연 포식자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중앙군을 상대하는 것 역시 마계가 담당하게 되었다.
각종 고유능력과 흑마법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화르륵!
콰콰콰콰콰!
초승달 사제들 역시 서클을 초월하는 태고의 마법을 선보이며 이에 맞섰다.
수준 차이는 확연하다.
그러나, 그 간극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마족의 숫자가 수백 배는 더 많았다.
죽고 죽더라도 하나만 데리고 가자는 투지를 불태우며 달려드는 불나방들에 중앙 쪽에도 조금씩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태고의 신격 쥬른이 ‘아홉 개의 보석’을 발동합니다!]
쩌저저적!
쥬른의 주위로 떠 있던 수많은 보석과 광물들에서 형언할 수 없는 빛줄기가 뿜어졌다.
서로 다른 9개의 권능을 지닌 보석들이 마족의 방어스킬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크아아악!”
“으아악!”
“모, 몸이…!”
500이 넘는 마족들이 방금 한 번의 공격으로 소멸했다.
“거기까지다. 버러지들아.”
이알다골스 역시 자신의 능력을 꺼냈다.
투콰아앙!
허공에서 100m가 넘는 망치가 횡으로 가로질렀다.
하늘에 떠 있던 마족들이 피할 새도 없이 핏물이 되어버렸다.
쿠쿠쿠쿠쿠!
투지만으로 넘어서기에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유한 괴물들.
압도적인 격을 가진 두 신격의 등장으로 인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마족들의 공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
“상위 신격이라더니 아주 무시무시하구나. 루시퍼 쪽은 갓난 아이 수준이었어.”
베리엘의 시선이 이알다골스와 쥬른에게 꽂혔다.
체스판 위에서 시시덕거리던 두 신격은 이미 중앙으로 내려와 전투태세에 들어가있는 상태였다.
“왜, 자신 없어?”
바로 옆에 있던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하하! 든든한 사도이자 함께 하는 동료가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
[베리엘이 흑창 ‘키샨’을 소환합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특유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썩어가는 심장 ‘베리엘’.
처음 정신병동에서 저주를 받은 것을 인연으로 알게 된 마왕이며, 니라샤와의 일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힘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마계에서 함께 싸우며 동료가 되었다.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사선을 함께 넘어온 소중한 존재다.
그렇기에.
[만상공유 – ‘흑창 키샨’이 소환됩니다!]
[이해도가 최상위에 도달한 상태이기 때문에 ‘키샨’의 능력을 100%, 그 이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진혁 역시 베리엘과 같은 창을 꺼내들었다.
우우우웅!
두 개의 창이 공명음을 일으켰다.
베리엘의 왼손에 쥐고 있는 창과 진혁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창이 공중에서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두 개의 창날을 가진 창이 만들어진다.
키샨의 뒤로 생겨난 검은색 원은 마치, 작은 블랙홀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흑창 키샨의 특수 스킬 ‘악몽의 밤’이 발동됩니다!]
“간다. 뒤처지지 말라고.”
“그래. 걱정 말거라.”
피이이잉!
추진체 없이.
공간을 도약한 키샨의 궤적을 따라 검은 장막이 드리웠다.
창이 향한 것은 쥬른이었다.
“멍청하군. 그런 투창 따위가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태고의 보석’으로 전신을 둘러싼 방어에 흑창이 작렬하는 순간.
콰아아아앙!
끔찍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크읍!?”
쥬른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물리적인 충격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혼(魂)에 파고드는 공격은 쥬른으로서도 너무나 생소했다. 보석들 사이에 완벽한 결합에 불길한 마기가 스며들었다.
꿀렁!
장막을 통해 이동한 진혁과 베리엘이 순식간에 쥬른의 양쪽에 자리잡았다.
“합을 맞추는 건 그리 취향이 아니다만.”
베리엘의 목소리와.
[‘포효하는 왼손의 발톱’이 발동됩니다!]
“좋으면서 내숭은.”
진혁의 목소리가 합쳐졌다.
[‘울부짖는 오른손의 발톱’이 발동됩니다!]
검게 물든 짐승의 발톱이 좌우에서 교차했다.
카가가각!
보석의 표면이 갈려나가면서 쥬른의 속살까지 파고들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퍼졌다.
“크아아아아!”
“쥬른!”
이알다골스가 고함을 질렀다.
태고의 보석이 저리 허무하게 박살났다는 건 충분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만한 위력을 보유했다는 뜻. 자존심은 둘째치고 지금 당장은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베리엘이 ‘썩어가는 육망성’을 발동합니다!]
촤르르르~!
검은 넝쿨로 만들어진 줄기가 이알다골스의 발목을 휘어감았다.
속박형 능력.
대천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둔 제어기였다.
하지만.
“방해하지 마라. 미물 따위가!”
콰아앙!
넝쿨이 그대로 찢겨나갔다.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는 이알다골스 앞에서 대천사들을 상대로 한 능력은 통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시선을 끈 게 고작이다.
“쿨럭!”
반동 때문에 베리엘의 입에서 피가 왈칵 솟구쳤다.
“고작 그것도 견디지 못하면서 감히 내 앞을 막다니. 넌 조금 뒤에 천천히 썰어주마.”
이알다골스가 베리엘을 보며 주억이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마왕 하나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었기에.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어느새 하늘로 날아오른 진혁이 검은 날개를 완전히 폈다.
[고유능력 ‘원 아이 문’이 발동됩니다!]
[마신의 권능 ‘오염된 피’가 발동됩니다!]
쩌저적!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나의 눈.
검은색 실핏줄이 가득 생긴 눈은 기존 그로스의 눈과는 달랐다.
당연히, 그 안에서 뿜어지는 마력과 기운 역시 변질되고 오염되어 있었다.
[성명절기 ‘부패의 숨결을 발동합니다!]
“장담하지. 이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매콤할 거야.”
화르르륵!
검은색 운무가 그대로 이알다골스와 쥬른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