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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49화


849화. 회귀자의 시간 ‘마신 강림’ (2)

치이이익!

영혼의 배열 자체를 오염시켜버리는 ‘부패의 숨결’.

마신의 고유성창은 태고의 신격들로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질적인 마력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물리공격이나 마법공격 위주로 신경 쓰는 와중에 이걸 정면에서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크으으…”

“쿨럭! 커억.”

심각한 상처를 입은 쥬른과 이알다골스가 꼬리를 말고 퇴각했다.

그걸로 중앙에서의 싸움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살아남은 초승달 사제들과 심연포식자들은 전부 흩어졌고, 양산형 몬스터들은 추격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각개격파되었다.

“단숨에 밀어붙여라!”

“다 왔다. 거의 다 왔어!”

진혁과 베리엘의 활약으로 인해 중앙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덕분에 8개의 진입로가 뚫렸고, 30개가 넘는 거점들이 만들어졌다.

이미 외곽 성채는 완전히 연합 측에 넘어갔다고 봐야 하리라.

“허억. 허억. 허억.”

“크으으.”

“무, 물! 젠장. 숨이 끊어질 것 같군.”

격전을 치른 전사들이 마력이 담긴 포도주나, 피, 성수 등을 들이부으며 회복에 들어갔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십여 분 남짓.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진군을 이어 나가야 한다.

진혁 역시 최전선 부근에 자리를 잡은 채 끓어오르는 마력을 애써 진정시켰다.

‘생각보다 반동이 크긴 크네.’

‘해금의 쐐기’를 통해 직업 전승의 지속시간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긴 했으나,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욱씬….

쐐기를 꽂아 넣은 부위에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토록 단련시키고 성장시킨 몸뚱이에 이 정도 통증이라면 상당히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할 순 없었다.

어느 정도 회복을 한 진혁이 입을 열었다.

“내성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찾았습니까?”

“음. 진짜 듣던 대로 역대급 거점이긴 한데, 가능성이 있는 곳은 총 3군데. 그리고 그 중에서 이쪽 루트가 가장 성공 확률이 높아요.

처음 전투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내성으로 가는 길을 찾던 페시스였다.

목숨을 걸고 적진 깊숙이 침투까지 한 덕에 최적의 침입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안에만 들어가면 이 요람을 ‘최대거점’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것이냐?”

엘리스가 진지하게 물었다.

모두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건 오직 한 가지 목적 때문.

그걸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가 이번 싸움의 핵심이었다.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마력이 모이는 곳과 준비해주신 재료들로 봤을 때 확률 30% 이상은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

“그 정도면….”

도박으로서 훌륭하다.

진혁이 고동치는 심장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정비가 완료되는 대로 바로 돌입하겠습니다.”

저 멀리서….

먹구름이 드리우는 게 보인다.

더 네임리스 미스트.

인지하기 힘든 고유무장을 줄기줄기 달고 있는 최상위 신격이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쥬른이나 이알다골스를 넘어선 진짜 괴물들과의 전투도 각오해 둬야 하리라.

잠시 뒤, 각 세력들이 이끄는 정예들이 먼저 움직였다.

본군이 정면에서 힘 겨루기를 하는 동안, 1,000명 단위로 나뉜 별동대들이 각기 다른 진입로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입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통로들.

이 중에서 대부분은 환상이거나 함정이었다.

제대로 금제를 풀지 않는 한, 이 드넓은 미궁 속에 갇혀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태고의 신격들 또한 외성을 점령했음에도 내성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슈브니구라스로부터 초대장을 받지 못한 건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툭.

30분을 넘게 이동한 끝에 페시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15번째 계단으로 가면 문들이 나오는데, 반드시 붉은색 삼각형 모양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페시스가 조심스레 운무가 가득 낀 계단을 가리켰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3m 높이의 계단들은 계단이라기보다는 암벽에 가까웠다. 허공 위에 떠 있는 각양각색의 문 역시 셀 수 없이 많았고.

“문 안쪽에 요람의 마력 저장소가 있는 거겠죠?”

“예. 최대 마력 저장소는 아니지만, 원하시는 걸 하기엔 충분할 겁니다. 마력이 넘쳐나는 곳은… 어우. 가다가 죽어요. 100%.”

진혁의 말에 페시스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무래도 더럽게 위험한 곳 근처까지도 가본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런 외진 통로에조차 경계 병력이 있는 게 어이가 없네요.’

“동감이니라. 대체 놈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은 것이냐?”

테레사와 엘리스가 불만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그토록 많은 적들을 쓸어버렸음에도 태고의 병력들은 바퀴벌레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10만 이상으로 구성된 군단급 병력들이 속속들이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 넓은 거점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거겠지.

어느 쪽을 노리던 전부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거의 전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고 봐야겠네.’

진혁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예전보다 확실히 공략이 까다로워지긴 했다.

그때는 이런 대군끼리의 전쟁이 아닌, 소규모 별동대를 통해 놈들의 허를 찌르고 3시간을 버티는 게 주요 골자였으니까.

허나, 과거의 천유성으로 인해 그 난이도가 대폭 상승해 버렸다.

‘뭐, 마냥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진혁이 아공간에 저장해둔 황금 티켓을 꺼냈다.

‘잃어버린 언어’가 새겨진 화려한 글자와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초월급 융합권]

핵심 재료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해주는 사기적인 아이템이다.

이걸 이용한다면 미진했던 공백을 단숨에 메울 수 있겠지.

부유성을 충돌시켜 외성을 뚫은 보상을 아주 톡톡히 받게 된 셈이다.

어디.

목적지에 거의 다 왔으니 슬슬 이걸 사용해보도록 할까.

[고유성창 ‘회귀자의 시간’과 고유능력 ‘시스템 조작’, 고유성창 ‘멸성마법’이 융합됩니다!]

[초월급 융합권이 4번째 능력의 재료로서 소모됩니다!]

화려한 빛무리와 함께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능력이 손에 들어왔다.

[악신(神)의 거래’를 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악신(神)의 거래’]

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태고의 악신에게 바치는 대가가 클수록 ‘악신의 성역’의 규모와 완성도가 달라집니다. ‘마신’이나 ‘마왕’ 클래스가 악신의 거래를 사용할 경우 거점 어드밴티지를 추가로 적용받습니다. (단,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치더라도 이룰 수 있는 소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융합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좋아.

성공이다.

애써 ‘마신’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보람을 제대로 느낄 시간이 찾아왔다.

여기에 슈브니구라스에게서 받은 ‘목자의 지팡이’를 사용한다면….

놈들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수 있게 될 것이다.

*

진혁과 멤버들이 내성으로 진입하기 위해 시도하는 사이, 저 높은 천공 위에서 이 모든 것을 관조하는 이들이 있었다. 노스이디크였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모두 대동한 태고의 신격이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확실히 적의 승부수는 매섭고 날카로웠다.

무구한 역사를 자랑한 태고의 삶 중에서 이 정도로 위협적인 상황을 맞이한 건 단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50층 전체가 격동하며 불편한 신음을 흘리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준비한 게 그것뿐이라면 조금 실망인데.’

이곳을 최대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선 준비기간이라는 게 필요하다.

만에 하나 내성의 심층부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3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럴 확률이 전무하다는 것.

“진심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저 인간은?”

“내성으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림없는 일이지. 우리조차 금제를 풀기 전까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거늘. 저 미물 따위가 위대한 분의 보금자리에 무슨 수로 들어간단 말인가?”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조롱 섞인 말들을 늘어놨다.

그게 상식이었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적들의 노림수는 누가 봐도 무모했다.

하지만, 노스이디크의 입 꼬리에 나타난 미소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놈이라면 내성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아마 3시간을 버틸 수 있는 방법 또한 생각해줬겠지.”

비장의 수가 최소한 몇 개는 더 있다고 봐야 하리라.

즐겨 쓰는 ‘결계’라든가, 여러 신격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변칙’과 ‘능력 복사’를 통해서라든가.

혹은 저 성가신 길잡이를 통해서 숨겨진 길을 발견할지도 모르지.

그래봤자 어차피 대응가능한 영역 내에서 일일 뿐이겠지만.

그리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악신의 거래’가 발동됩니다!]

[성유물 ‘목자의 지팡이’가 발동됩니다!]

알 수 없는 마력과 익숙하면서 경외시되는 마력이 요동쳤다.

이 멀리 있는 천공에까지 닿을 정도로. 유형화된 기운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자아냈다. 

“……!?”

노스이디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거라 자신했었으나.

저건.

위험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용기사’와 ‘베틀메이지’ 그리고 일주일이란 조건부로 ‘마신’의 권능까지 전부 제물로 바친다.

과거에 쌓아올렸던 수많은 경험과 기억까지.

전부 희생하면서 하나의 성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수락한다.]

짧은 문구와 함께 검은색 기운이 퍼져나갔다.

‘목자의 지팡이’에서 나오는 슈브니구라스의 마력까지 겹쳐지자, 흉흉한 구조물들이 즐비한 악신의 성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 뭡니까. 대체?”

“괜찮아요. 제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진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콰아아앙!

하늘이 갈라지며 성역 안으로 거대한 빛줄기가 떨어졌다.

쿠쿠쿠쿠쿠쿠쿠!

“크윽!”

“이 마력은….”

“태고의 신격. 그것도 최상위급이에요!”

다급한 목소리들이 뒤를 이었다.

피부가 타들어 갈 것만 같은 마력.

태양에 버금가는 열기에 지면이 엿가락처럼 녹아내렸다.

만약 성역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테레사의 ‘성흔’이나 엘리스의 ‘블러드 로드’마저도 위태롭게 만들 수준이었으니까.

“네노옴!”

노스이디크가 살기를 줄기줄기 뿜으며 떨어졌다.

“그 저주받은 능력으로 3시간을 벌 셈이었더냐. 감히, ‘목자의 지팡이’까지 사용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미친놈들이랑 싸우려면 나만 제정신이면 되겠어?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야지.”

“그래. 아직도 과소평가하고 있던 건 나였구나. 좋다. 허면, 그 알량한 계획을 여기서 전부 박살 내주지.”

노스이디크가 보랏빛 날을 가진 거대한 도끼를 꺼냈다.

제대로 할 생각이다.

도끼뿐 아니라 다수의 고유무장들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가!”

진혁이 나머지 멤버들에게 외쳤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마력 저장소에 들어가라.

그래서 ‘최대거점’을 만들어야지만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예!”

페시스가 즉시 몸을 날렸다.

엘리스와 테레사도 멈칫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어떤 걸 해야 모두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버려 둘 줄 아느냐?”

노스이디크가 움직이려 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검은 칼날들이 그대로 노스이디크의 방벽을 강타했다.

“넌 가면 안 되지.”

우우우웅!

진혁이 성역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검은색 기운을 흡수했다.

머리에 생겨난 뿔은 더욱 짙은 흑요색을 띠었고, 날개 역시 은은한 광채를 내며 그 예리함을 더해나갔다.

“그깟 마기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글쎄. 그거야 지금부터 확인해보면 되는 일 아닐까?”

진혁이 양팔을 넓게 벌렸다.

[‘악신의 파도’가 범람합니다!]

콰콰콰콰!

양쪽에서 집채만 한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다이아몬드마저 가볍게 잘라버릴 듯한 검은 입자들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건 덤이었다.

투콰아앙!

노스이디크가 몰아치는 파도에서 솟구쳐올랐다.

[노스이디크가 ‘땅거미 검’을 발동합니다!]

우우우웅!

응집하는 태고의 마력. 푸슉!

한 줄기 빛이 파도를 가르고 진혁에게 닿았다.

콰앙!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진혁이 날개를 편 채 수면 위를 가로질렀다. 이미 주위는 온통 범람한 파도로 인해 호수로 변해 있었다. 

“오거라.”

도끼를 움켜쥔 노스이디크가 고속으로 쇄도하는 진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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