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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57화


857화. 외(外)우주의 군주 ‘아자토스’ (2)

타닥.

화르륵..

백색으로 물드는 신체.

잔류월광으로 만든 분신의 눈동자에서 모든 감정과 기억과 혼이 탈색되었다.

“커억.”

“뭐야 이 놈은 대체….”

“도망쳐 본체야. 멀리. 최대한 멀… 끄아아아아악!”

약속한 1분이 지났을 때 추격을 개시한 아자토스는 5초 만에 분신 3개를 박살냈고. 그 이후 10초가 흘렀을 때 모든 백귀야행으로 불러낸 귀신 군단을 전멸시켰다.

다시 2분이 되었을 땐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는 잔류월광의 분신은 단 하나도 없게 되었다.

툭.

그리하여 지금 아자토스는 세 명의 앞에 도달했다.

기록 보관소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온 침입자들을 향해 소소한 흥미를 보이면서.

“당연히 밖으로 내달릴 줄 알았더니. 오히려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구나. 도주는 포기한 것이냐? 아니면 설마 나와의 싸움이 성립될 거라 생각한 것이냐?”

고작 2분.

기다려준 1분을 빼면 버틴 시간은 겨우 1분 남짓이다.

“쳇!”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네요.”

엘리스와 테레사 역시 긴장한 얼굴로 모든 마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진짜 더럽게 빠르긴 하네.”

진혁이 혀를 찼다.

대충 결계를 완성하긴 했지만, 너무 서둘렀던 터라 제대로 효과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호오?”

결계를 살피던 아자토스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이 마력의 배열과 흐름은 자신의 고유 무장을 봉인했을 때와 비슷했기에.

3번째 고유 무장 ‘부유하는 흑안’, 15번째 고유 무장 ‘차원 브레이커’.

즐겨 사용하는 애병기를 당분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꽤나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굳이 고유 무장까지 쓰지 않아도 벌레들을 짓밟을 수 있는 무기 따위야 보물창고에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아자토스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츠츠……!

무기가 형상을 갖추며 소환되려 했다.

바로 그때.

“우린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것 같으냐!”

[엘리스가 고유성창 ‘개벽의 계시록’을 발동합니다!]

붉게 물든 고리 위로 형언할 수 없는 진조의 격이 구현화되었다.

전력을 다한 피의 폭풍이 몰아쳤다.

콰콰콰콰콰

격동하는 기록보관소.

이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릴 기세다.

‘순혈의 왕관까지 쓴 엘리스의 일격은 이미 한 나라를 멸할 만큼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꿀렁꿀렁꿀렁!

아자토스가 피로 만든 구체를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얀색 몸으로 빨려든 피보라는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 장소는 이 몸이 아끼는 곳이다. 미물이여.”

아자토스가 조금 전에 했던 무기의 소환을 끝마쳤다.

[‘사계(四季)의 추’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기괴한 형태의 거대한 망치.

저건…!?

혈액을 응고시켜버리는 특수 능력이 있는 공성용 망치다.

엘리스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없는 게 튀어나왔다.

파팟!

‘음영극살’로 파고든 진혁이 새로 얻은 ‘여명의 검’과 카알루트의 고유 무장인 ‘긍휼의 검’을 휘둘렀다.

서로 다른 궤적으로 그어진 칼날의 끝.

‘검의 무덤’과 ‘고인물류’를 사용해 극한까지 압축된 마력을 실어넣었다.

카아앙!

아자토스가 사계의 추를 휘둘러 그 공격을 튕겨내버렸다.

카가가가강!

이어진 공격 역시 모조리 아자토스에게 가로막혔다.

“잠자코 있어라. 네놈은 가장 마지막에 상대해줄 테니까.”

귀찮은 파리를 내쫓으려는 듯한 말투다.

그러나 진혁은 방금 전 공방으로 약간의 희망을 엿봤다.

“방금 거・・・ 위협적이었나 봐?”

“뭐라고?”

“만약 통하지 않았다면 방어도 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그대로 허용했을 것이다.

어차피 피해 자체를 입지 않을 테니까.

“그저 날붙이가 내 몸에 닿는 게 유쾌하지 않았을 뿐이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말이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스쳐지나갔다.

본신이 깨어났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분신에게는 유효타를 입힐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긍휼의 검’ 쪽은 몰라도 ‘여명의 검’으로는 확실히 저 단단한 피부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착각이 심하구나. 인간. 네놈은 내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또한.”

우웅!

짧은 이명과 함께 아자토스의 기척이 사라졌다.

백색으로 물들어버린 시야.

“너희는 내 일격에 절망하고 또 전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아자토스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등 뒤였다.

오싹!

공포가 이성에 덧씌워지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아앙!

사계의 추가 진혁의 후면을 강타했다.

아니, 강타하기 직전 가까스로 긍휼의 검으로 검막을 펼쳤다.

그러나 가해진 충격은 도저히 상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쿠쿠쿠쿠.. 콰콰콰쾅!

서재를 한참이나 가로지른 진혁이 깊은 신음을 토했다.

울컥!

” 크으으….”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튀어나왔다.

충격적이게도 방금 ‘1초 무적’을 사용한 상태였다.

긍휼의 검으로 펼친 검막만으로는 치명상을 피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지화현상’과 ‘개념의 뒤틀림’으로 인해 당연히 무적이 되어야 할 능력의 근간 자체가 지워져버렸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계약자!”

진혁이 부상당한 걸 본 엘리스가 즉시 분노에 가득 찬 노성을 터뜨렸다.

[블러드 이클립스 – 섬멸기(殲滅技) ‘아타락시아의 집행자’가 발동됩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붉은 이빨과 하늘에서 나타난 붉은 이빨이 맞물린다.

“죽어라!”

공간을 통째로 도려낸 거대한 입이 아자토스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콰직!

콰드득!

진조의 특성을 극한까지 구현화한 일격.

그 위력은 에테리온의 성명절기인 ‘단죄의 검’마저 뛰어넘었다.

하지만,

“괴물같은 놈.”

엘리스가 끓어오르는 핏방울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서서히 증발해가는 피.

아자토스가 그 사이에서 멀쩡하게 걸어나왔다.

“진조치고는 훌륭한 공격이로구나. 허나,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내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혈액이 하얗게 변한다.

‘순혈의 왕관’ 역시 찬란하게 빛나던 광휘를 급속도로 잃어버렸다.

이번엔 턴이 넘어갔다.

‘사계의 추’가 사라진 자리에 아름다운 별들이 떠다니는 오르골이 나타났다.

저건 단순히 예쁜 수공예품이 아니다.

정말로 하나의 은하를 통째로 담아놓은 고유 무장이었으니까.

[고유 무장 ‘노래하는 은하’가 소환됩니다!]

세계를 지울 수 있는 힘이 단 세 명을 위해 사용되었다.

‘노래하는 은하’에서 별의 파도가 범람했다.

“뒤로 물러서세요!”

테레사가 진혁과 엘리스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고유성창 ‘세라핌’ – ‘구세의 성녀’가 발동됩니다!]

한 나라를 위함이 아닌.

한 세상을… 더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시대를 구원하기 위한 깃발.

우뚝 솟은 깃발을 기점으로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새하얀 깃털들이 넓게 퍼지면서 아름다운 결계를 자아냈다.

콰콰콰콰콰콰……

투콰아앙!!!

노래하는 은하에서 나온 별의 파도가 신성력의 장막에 부딪쳤다.

순간, 10개의 방벽 중 절반이 박살났다.

끔찍한 고통과 충격이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들었지만, 테레사는 능력을 풀지 않았다.

“반드시… 지킬 거예요.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성녀의 목소리는 곧 노래가 되었고.

성가는 곧 하나의 제목만을 구하는 기도가 되었다.

[‘신성’과 ‘타락’의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두 개의 눈이 개안합니다!]

성안(聖)과 마안(魔眼).

서로 다른 눈동자에 각기 다른 표식이 새겨진 눈이 빛났다.

그렇게 신성력 위에 마기가 덧씌워지며 사력을 다해 별의 쓰나미에 맞섰다.

콰득!

콰지직!

그럼에도 부서진다.

하나하나.

혼을 담아 만들어낸 방벽들은 초를 넘어서지 못한 채 빛을 잃어갔다.

테레사의 두 눈에선 어느새 눈물 대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동료를 구하고자 했던 염원마저.

태고의 공격 앞에서는 하찮은 발악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벽이 깨진 순간.

우뚝!

・・・・・・ 지금이다.

진혁이 숨겨왔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성유물 ‘통한의 거울’이 발동됩니다!]

누적된 피해를 증폭시켜 되돌려주는 능력.

여기엔 지금까지 아자토스에게 당한 것만이 아닌 ‘슈브니라스’, ‘노스이디크’를 포함한 수많은 신격들의 일격이 저장되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보관소가 날아가든 말든 조금도 신경 안 쓰거든.”

그러니 어디 한 번 먹어봐라. 너희들이 쌓아온 격을.

콰콰콰콰콰콰

태고의 힘이 그대로 아자토스를 관통했다.

[거점 ‘모멸의 사원’이 85% 붕괴됩니다!]

[드론 90% 궤멸. 방어 타워의 91%가 정지합니다!]

후두둑…

위이잉.

힘을 잃은 기계들이 가동을 멈췄다.

새롭게 가세한 지원들 역시 잘 버티긴 했으나, 단지 그뿐.

전체적인 전력의 열세를 뒤엎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 다행히 돗대는 남아 있었네. 당장 죽어도 도저히 이건 못 끊겠다니까.”

이태민이 막대사탕을 입에서 오물거렸다.

츄파춥스 딸기맛의 달콤한 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뭐하냐?”

“그 왜. 웹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독백하는 거. 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거든. 인생의 쓴맛을 표현하는 덴 담배 한 모금만 한 게 없기도 하고.”

“너도 참 가지가지 한다. 진짜.

유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을 그리 해도 딱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한계를 몇 번이고 넘어가며 버텨왔던 것이다.

“뭐 이만하면 할 만큼 하긴 했지.”

사실 이 작전에 기약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아자토스의 궁전에서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버텨달라는 요청만 있었을 뿐.

타임 리미트라도 있어야 희망이라도 있지.

무기한으로 자신을 갈아넣는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렇기에.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작은 일탈쯤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도록 하자.

적어도 마지막 페이지에는 비극만이 아니라 위트 한 스푼 정도는 섞어주는 게 나았으니까.

“누나, 이거 다 끝내고 돌아가면 다 같이 뭐라도 할까? 진혁이 형이랑 엘리스 누나랑 테레사 누나랑. 아! 유성이 형 머리끄덩이도 좀 잡고 와서 여행 가도 좋고.”

“사망 플래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네. 너가 진혁이 오빠도 아니고. 그거 다 업보 쌓이는 거 알고 있지?”

“암황 할아버지랑 해서 수영장에서 놀던 것도 생각난다. 굵직한 층계 공략 끝날 때마다 치킨 집 가서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좋았는데.”

그것도 이제는 할 수 없겠지.

소소한 일상은 너무나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태민의 씁쓸한 독백에 유연화는 차마 답하지 못했다.

한편, 전장의 중심부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마지막을 곱씹고 있었다.

“…….”

내공을 전부 소모해버린 천마가 묵묵히 주위를 바라봤다.

사산혈해 속에서 살아남은 무림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제국이나 이집트 마계와 에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작 1,000명도 안 남았군.’

“1,000명이나 남은 게 아닐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명줄이 긴 놈들이 이리도 많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마지막에 당신이 있어서 외롭진 않겠네요.”

베리엘과 가브리엘 역시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인형들이 모두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싸우시겠다면, 최초의 호문쿨루스와 함께하겠습니다.”

“모기….”

“달그락. 거점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스터.”

극소수의 강자들만이 남아 다가올 최후를 조용히 기다렸다.

“대체 언제까지 저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걸 용납해야 하는 것이냐?”

노스이디크가 또 다시 전멸한 태고의 군단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훨씬 전에 끝났어야만 하는 전쟁.

그게 30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수치이자 자존심을 박살내는 일이었다.

“면목 없습니다.”

“이번에는 저희가 직접 나서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사냥을 준비했다.

체력과 마력을 하나도 소비하지 않은 또 다른 군단이 돌격할 태세를 갖췄다.

숫자는 5만.

지친 상처투성이들이 막을 만한 규모가 아니다.

바로 그때.

“태민아.”

유연화가 바로 옆에 있는 이태민을 불렀다.

시선은 어느 먼 곳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응?”

“앞으로 사망 플래그 마음대로 박아라. 프리패스권 줄게.”

“엥 갑자기 왜? 누나도 클리셰 안 하고 끝내려니 뭔가 좀 아쉬웠어? 하기야. 명색이 시련의 탑의 맹호 ‘불광동핵주먹’께서 명언 한 마디 제조 안 하고 가면 말이 안 되긴 해.”

“아니.”

유연화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기적이 일어났거든.”

바라본 곳은 서쪽 능선을 따라 넓게 드리워져 있는 언덕 위쪽이었다.

그곳엔.

척! 척! 척!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구나. 보아하니 아주 늦은 건 아닌 것 같군.”

엘더갓인 제히레테와 그를 따르는 상위 엘더갓들.

그리고.

“당연하죠! 인간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거든요!”

장보경을 비롯한 드림 랜드의 정예병력들이 보였다.

엄청난 숫자다.

능선과 언덕이 전부 엘더갓의 병력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전장에 가세하겠습니다.”

서리혼령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휘관들에게 알려라. 우린 부상자들을 구하면서 엘더갓의 공격을 보조할 거라고.”

“예. 여왕이시여.”

“명을 따르겠나이다.”

아트리사가 갑옷 꿀벌들을 비롯한 수십 종의 다양한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죽음을 불러 모으는 등불이 ‘태고의 생명체들을 이끕니다!]

당연히 끝이라 여긴 페이지의 마지막 장.

그 뒤편으로,

새로운 페이지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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