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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58화


858화. 외(外)우주의 군주 ‘아자토스’ (3)

치이익!

기록 보관소를 따라 길게 백화(火)로 된 길이 생겼다.

대부분은 탈색이 이루어졌지만, 일부분에는 보라색과 검은색 그리고 겁화 본연의 붉은색이 남아 있었다.

“괴, 굉장하네요.”

“무시무시한 일격이로구나. 짐 역시도 저기에 휘말렸다간 뼈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야.”

테레사와 엘리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수백 개의 서고를 박살 내고 수만 개의 양피지와 책들을 태워버릴 만큼, ‘통한의 거울’을 통해 발사된 일격은 강력했다.

상위 신격들의 격은 물론, 방금 전 아자토스의 공격까지 흡수해 역으로 방출했으니 당연히 차원이 다른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심지어 여기에는 진혁이 결계를 통해 위력을 몇 배로 증폭까지 시켜두었다.

‘다행히 급하게 설치한 것치곤 실수가 없었네.’

주어진 2분 안에 하느라 아쉬운 부분이 좀 있었는데, 밥 먹듯이 결계를 사용하고 또 벨토르와 훈련하면서 몸에 익긴 익은 모양이다. 직업인 ‘룬의 지배자’ 역시 톡톡히 제 몫을 해줬고,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솔직히 본체도 아니고 분신 정도면 소멸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솔직히 놀랐다. 통한의 거울이라 했던가? 내 고유무장만큼이나 꽤나 독특한 걸 가지고 있구나.”

아자토스는 그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도 죽지 않았다.

시x.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아자토스는 시련의 탑이 잘못 설계한 신격이다.

저걸 이기려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릭 헤네시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튀어나온다

“진혁 씨.”

테레사가 아자토스를 힐끗 가리켰다.

정확히는 녀석의 오른쪽 다리가 있는 방향을.

“……!”

분명 비틀하고,

균형감이 아주 살짝 무너진 게 보였다.

‘역시, 약간은 통하긴 통했네.’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백지화현상’ 역시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조금이나마 약해졌고,

그렇다면….

툭!

진혁의 손에 새롭게 손에 넣은 권총이 나타났다.

타다다다당!

‘황혼의 총’에서 불길이 뿜어졌다.

무려 1억에 육박하는 공격력을 지닌 총에 틈틈이 만들어둔 ‘주술탄’을 장착해뒀다.

통한의 거울로 모은 일격까진 아니었어도 어지간한 태고의 신격들의 방벽 정도는 박살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총기류 외의 적을 상대 시 추가적인 관통력이 상승했기에 한 발 한 발이 꽤나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퍼퍼퍼퍽!

새하얀 떡처럼 생긴 무언가가 탄환을 흡수해 버렸다.

[고유무장 ‘변화의 가오리’가 발동됩니다!]

모든 공격에 최적화된 형태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가오리.

생체형 고유무장이 몸속으로 빨아들인 탄환을 퉤 하고 뱉어냈다.

“본신이 아니라고 하여 나의 무장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뭐, 그래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만,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꾸르륵.”

기괴한 눈알이 달린 가오리가 유유히 아자토스의 주위를 떠다녔다.

조금 전 통한의 거울도 저 가오리 녀석으로 상쇄시킨 건가.

빌어먹을.

이래서야 공격이 통하질 않는다.

정확히는 틈 자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99%는 막힌다고 봐야 한다.

[엘리스가 ‘블러드 익스플로젼’을 발동합니다!]

[테레사가 ‘신성세례’를 발동합니다!]

진혁에게 한 순간을 벌어주기 위해 엘리스와 테레사가 다시 한 번 공격을 퍼부었다.

콰아아앙!

‘변화의 가오리’가 두 개의 색으로 변하며 피와 신성력으로 된 폭격을 한 입에 집어삼켰다.

그 틈을 이용해 진혁이 아자토스와의 간격을 다시 잡았다.

툭!

탓!

‘천마군림보’와 ‘음영극살’을 써서 아자토스의 사각(死角)을 노린다.

타다다당!

타아앙!

주술탄이 연신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변화의 가오리가 방어하지 못하는 지점을 찾았다.

실패하면 다시.

실패하면 또다시.

위치와 각도를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의미 없는 반항을 계속하는구나. 이기려는 건 아닌 것 같고. 도망치려는 것도 아니야. 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이냐?”

아자토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 술래잡기에 어울려주는 이유는 단순히 흥미 때문이겠지.

적어도 저 흥미가 계속되는 한은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문제는.

술래잡기의 강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콰드득!

조금 전까지 진혁이 있던 곳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주 미세하게 속도와 힘을 더 사용하던 아자토스의 ‘유희’는 어느새 하나하나가 생명에 위협을 주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아끼는 책과 양피지는 쏙 빼놓고 박살 내는 게 더 얄미웠다.

‘젠장. 이제 슬슬 한계인데.’

오룬과 헤파이토스 그리고 벨토르가 복원시킨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발동한다면, 저 표정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줄 수 있긴 하다. 심지어 지금 들고 있는 건 앤드피스인 ‘황혼의 총’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걸 썼다가는 사실상 가지고 있는 모든 패가 사라지게 된다.

진혁이 초조하게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깨어난 아자토스의 분신체를 상대하기 위한 히든카드.

그걸 완성하는 건 이쪽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아아아아……

끼이이익! 끼기기긱…!

통칭 ‘오페라 하우스’. 아자토스의 분신체가 날뛰고, 양들의 요람에서 수많은 신격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임무에만 몰두하는 장소가 있었다.

아자토스의 개인 악사와 무희들이 머무는 공간은 1년 365일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아자토스의 수면을 담당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기에, 이들은 밖에서 그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과업에만

몰두했다.

설령 엘더갓들이 전부 이 궁전에 쳐들어오더라도 아자토스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보안은 ‘보물창고’나 ‘기록보관소’보다 더욱 철두철미했다.

슈브니구라스와 요그소토스 그리고 니알라토텝과 더 네임리스 미스트를 포함한 최상위 신격들이 각기 다른 금제를 걸어놨으니까. 그런데.

[15개의 금제와 119개의 결계가 해제되었습니다.]

[입구가 개방됩니다.]

철컹!

절대 열릴 수 없는 문이 열렸다.

트루넴브라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어지간한 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태고의 악사였으나, 지금 이 광경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침입자의 정체가 너무도 위험하다면.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요.”

릭 헤네시가 중절모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침입자에 대응해야 했으나, 노래를 멈출 수도 없었다.

수많은 악사와 무희들은 여전히 춤과 노래를 이어나갔고.

릭이 자신이 가져온 것들을 꺼내는 와중에도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콰드드드…

・・・콰드득!

우그러지는 공간.

변형된 서재들이 일종의 감옥을 만들며 세 명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었다. 콰앙!

퍼퍽!

단단하게 굳어버린 책과 양피지는 이제는 공격을 가해도 파괴되지 않았다. 마치, 이 기록보관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고유무장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사면초가로군.”

“독 안에 든 쥐… 네요.”

그 말대로다.

지금까지는 사력을 다해 술래잡기를 이어나갔지만, 이제는 정말로 빠져나갈 수 있는 곳 자체가 없었다. 끄그극.

끝이 왔다는 걸 알게 되자, 아자토스의 하얀 몸에 서서히 파동이 일어났다.

쩌적!

팔과 다리를 따라 튀어나온 촉수들.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기괴한 무언가가 세 명을 내려다봤다.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

-겨우 이게 다야? 겨우 이게 다야? 겨우 이게 다야? 겨우 이게 다야? 겨우 이게 다야?

–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튀어나온 촉수들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쪼개진 아자토스의 수많은 의식들이다.

분신체의 직위조차 얻지 못한 찰나의 사념들에 불과했으나, 그것들이 내뱉는 합주는 전신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크윽!

자연스럽게 귀를 틀어막고 시선을 피하게 된다.

태고의 존재들을 위해 대비해둔 ‘정신방벽’과 ‘결계’들이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쩌어억!

얼굴로 추정되는 부근에서 입이 위아래로 찢어졌다.

파츠츠…!

찢어진 입 사이로 보랏빛 구체가 만들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저게 뿜어지는 순간 뼈와 살 따위는 절대로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강진혁 플레이어님……]

너무나도 기다리고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릭 헤네시였다.

차분하게. 그리고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

[준비. 전부 끝났습니다.]

그 단서들이 알려온 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했다.

“지금・・・ 당장요!”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아아아아…!

궁전 어디서도 들을 수 있던 노랫소리에 이질적인 음색이 뒤섞였다.

훨씬 더 감미롭고 차분한.

모든 것을 영원한 꿈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노래가.

“크읍!?”

아자토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혹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통한의 거울’에 역공을 당했을 때조차 흥미로워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반응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한 거긴.

잘 시간에 안 자고 돌아다니는 천덕꾸러기를 재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진혁이 아공간에서 또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7개의 떡갈나무 못’

‘통한의 거울’과 마찬가지로 히든 카드로서 준비해둔 아이템이었다.

푹! 푹푹!

푸푸푸푸!

혼란에 빠진 아자토스의 바로 앞에 꽂힌 7개의 떡갈나무 못에서 강한 마력이 솟구쳤다. 이 아이템의 목적은 ‘몽환 소환’과 ‘능력 증폭’.

우우우웅!

[릭 헤네시로부터 ‘수면의 종’을 소환받습니다!]

곧바로 백금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종이 나타났다.

트루넴브라의 고유무장을 손봐서 만들어낸 강력한 수면과 진정 효과가 가미된 종이었다.

아아아…

특유의 음산하면서 낮게 깔린 노래가 기록보관소 전체에 가득 차올랐다.

“크으윽….”

아자토스가 양손으로 귀가 있을 법한 부분을 틀어막았다.

처음으로 보여주는 격렬한 반응.

누가 봐도 확실하게 먹히고 있다는 게 보였다.

“당장…멈춰라! 내 유희를 방해하지 말란 말이다!”

콰콰콰콰콰!

분노한 아자토스가 그대로 촉수들을 휘둘렀다.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뿜어졌다.

[스킬 ‘공허의 틈’이 발동됩니다!]

촉수가 가로지른 곳에 벌어진 틈. 그 안에는 우주를 담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 저택이 보인다.

‘광기의 저택’

50층 유적 중에서도 최악을 꼽으라면 단언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장소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저기에 들어갔다가는 50층 공략은 완전히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저 안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만 최소 1달 이상이 걸릴 테니까.

“맙소사….”

“빨리・・・ 기절시키지 않으면 우리 전부 끝이다!”

테레사와 엘리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광기의 저택에서 나오는 기운은 흉흉함 따위가 아니었다.

아자토스 역시 거의 꿈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빌어먹을.

아무래도 이쪽이 광기의 저택으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이 더 빨랐다.

-귀의하고, 경배하라. 포기하고, 좌절하라.

-그저. 그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질지어다.

노랫소리와 공허의 목소리가 한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엘리스와 테레사의 몸은 반 이상 그 틈 사이로 넘어갔고. 진혁 역시 두 걸음 남짓이면 저 공간 안으로 잠식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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