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866화


866화. 에필로그. 탑의 정상 (feat 고인물 코퍼레이션)

콰콰콰콰콰!

미쳐 날뛰는 칼날의 폭풍.

과거의 망령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수면 위로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겼다.

매섭고 빠르다.

접근하는 건 모조리 베어버릴 만큼,

“최후의 발악인 건가.”

“아니. 놈은 절대 포기할 리 없어.”

천유성의 말에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면서 시간을 끌 생각인 거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아자토스가 현현하든. 아니면 파이널 제네시스가 끝나서 원래의 힘을 되찾든.

자신에게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을 강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걸 알면서 가만히 지켜봐 줄 생각은 없지.”

들어가야 한다.

저 칼날의 폭풍 안으로.

“짐이 틈을 만들어보겠다!”

생각이 공유되며, 엘리스가 몰아치는 검격 하나하나에 대응해 피의 권역을 설정했다.

그그그극・・・

피로 인한 억제력으로 인해 검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콰앙!

그 틈을 타서 테레사가 방패를 앞세운 채 돌진했다.

콰쾅!

투콰아앙!

검이 사정없이 방패와 갑옷을 때렸지만, 신성력을 겹겹이 둘러싼 테레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죽고 싶은 게냐!”

3m까지 파고든 시점에서 더 이상 방패나 갑옷으로는 견딜 수 없는 검이 내려쳤다. 힘과 속도를 제대로 실을 수 있는 최적의 간격 안에 뛰어든 셈이었으니까.

“으아아아!”

성녀의 고함 소리와 함께 마지막 힘을 다한 방패가 그 책무를 다했다.

카아앙!

방패가 검의 방향을 비틀었다.

하지만, 방금 그걸로 모든 신성력을 다 날려버려 더 이상 몸에는 한 줌의 마력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풀썩.

그대로 잠시 기절해버리는 테레사.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고생했다. 성녀.”

테레사의 오른쪽 아래에 몸을 감추고 있던 천유성이 극월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크윽!”

과거의 망령의 어깨에 피가 솟구쳤다.

다시 되돌아오는 두 번째 검에는 반응해서 어떻게든 막아냈으나, 상처 때문에 조금씩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천유성. 아니. 내 자신이여!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와 함께 한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부와 명예를 안겨주겠다. 무얼 원하든 너와 내가 함께 한다면 다 이룰 수 있단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내 식대로 나아가겠다. 여러 가지로 가르쳐준 건 고맙군. 그러니 이만 꺼져라.”

카가가각!

대치는 그로부터 약 1초가량 더 이어졌다.

[추혼진극류 ‘암광(光)’이 발동됩니다!]

콰아아앙!

“크아악!”

한쪽 팔이 탈구된 과거의 망령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지나치게 무리해서 초식을 사용한 반동 탓이다.

하지만, 덕분에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던 천유성과 테레사를 완전히 범위 밖으로 날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콰득!

‘파이널 제네시스’로 만들어진 거울 호수에 균열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다 됐다.

이제 몇 초만 더 버티면 승리다.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여명의 검 ‘빛의 암습’이 발동됩니다!]

반드시 대상의 허점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

진혁이 희망에 가득 찬 과거의 망령 뒤에 도달했다.

기척을 느낀 건 0.1초 가량이 지나고 나서다.

“……!”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푸욱!

진혁이 여명의 검을 찔러넣었다.

혼을 파괴하는 특성을 가진 검이 가차없이 마력을 파헤치면서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크으으…. 커억. 컥!”

버둥거린다.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두고 절망하면서.

더 이상 담지 못할 피가 솟구치는 걸 애처로이 바라보면서.

“내가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는데, 여기까지 오려고 그 고독하고 기약없는.. 시간을 버텨왔는데.”

억울함과 회한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넘쳐흐른다.

“허무…하구나.

그리고 그것이 과거의 망령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콰드득!

‘위대한 등반자들의 세계가 부서졌다.

***

곧바로 익숙한 50층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하…하.”

“해냈어요! 저희가 해냈어요! 꺄아아!”

“훗. 짐은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느니라.’

“결국 클리어 하긴 클리어 하는군.”

모두의 입에서 안도 섞인 호흡이 터져 나왔다.

인류를 위협하는 ‘시련의 탑’.

그 길고 긴 싸움의 종지부가 마침내 찍힌 것이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모두와 함께 이 지옥 같은 난이도의 여정을 끝마쳤다.

“일단 마무리부터 하겠습니다.”

진혁이 지친 몸을 이끌고 붉은 기체가 담겨 있는 유리병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까지도 양들의 요람에선 차원의 틈새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동료들이 남아 있었다.

1초라도 빨리 종지부를 찍어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초의 혼돈’을 획득하셨습니다!]

[’50층의 공략 조건이 달성됩니다.]

[지금부터 1주일간 세력 간에 모든 적대행위가 금지되며,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가 세세한 규율과 법칙들을 제정할 수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은 없습니다.]

[인류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쏴아아아.

부드러운 바람이 달아오른 전장을 식혔다.

동시에.

파츠츠!

모두의 앞에 탑의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반투명한 계단이 나타났다.

“다들 불러와야겠네.”

진혁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엘리스 테레사 천유성 이태민 유연화 고구마 말랑흑두루미와 후라이드 정령수들과 안드리아 월영 프레이 티본….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정상에 오르고 싶다.

분명. 과거에 본 경치와는 같으면서도 다를 것이다.

***

같은 시각.

현대에 있는 이들에게도 시련의 탑 50층이 돌파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50층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누가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그 외에 자세한 상황을 알려주는 말은 없었지만, 모든 이들은 이 기적 같은 상황에 그저 감사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칼 매버릭이라는 배신자로 인해 그나마 있던 랭커들이 모조리 갈려나가면서 희망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생존자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의 정보를 함구한 채 그저 ‘참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누군가에 의해 협박이라도 받은 것처럼 앵무새마냥 그 말만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았어. 이제 전부 살았다고!”

“뉴스, 인터넷, 뷰튜브부터 해서 알릴 수 있는 거에 전부 다 알려. 시련의 탑은 끝났다. 우리는 더 이상 90일의 공포에서 떨면서 살지 않아도 돼!”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다.

런던, 베이징, 서울, 뉴욕, 도쿄, 파리 등.

전 세계 수백 개의 대도시에서 미친 듯이 폭죽을 쏘며 인류의 생환을 축하했다.

음식점들은 술과 음식을 무상으로 제공하였고,

영화관과 축구장 야구장 등에서는 수 만 명이 모여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짖었다.

“돈이 지금 문제야? 다 퍼다 마셔. 오늘은 젠장 이 몸이 쏜다!”

“정부에서도 일주일간 공휴일을 지정하고 시련의 탑 관련 예비금을 푼다고 하네.”

“각국의 협회나 대형 길드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래. 이거지. 바로 이거야!”

수많은 이해관계에 얽매여 대립하던 이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만큼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한국 각성자 협회 내부에서도 조용한 감사의 인사가 이어졌다.

협회장 한상진. “감사합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모두가 기억이 지워져 당신을 모른다 해도. 제가.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가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저 역시 마스터와 만난 걸 일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치. 아주 얼굴에 금칠을 하다못해 황금 얼굴이 되겠네. 아니, 그 흡혈귀 같은 오빠라면 당연히 해줘야지 우릴 부려 먹은 게 얼만데. 안 그래 영감?”

“허허허. 우리 유리 양은 그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탑이 해방되는 날 죽은 최초의 인간이 될지도 모르네.”

“히이익. 설마 그 녀석. 이 대화 엿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걸세. 설화로군. 설화로다.”

김희웅과 이유리 그리고 민정우 역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또한, 책상 한 켠에 있는 액자 속엔 환하게 웃는 타케시의 모습도 살며시 엿보였다.

***

약 1시간 뒤, 진혁은 차원의 틈새로 넘어온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계단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갔다. 

우우우웅!

잠깐의 빛이 시야를 가렸고.

다시 눈이 보이기 시작했을 땐 엄청난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무수히 많은 별들로 가득한 하늘이.

말이 안 된다.

수백억 개의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은 도저히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대단하군. 정말로….”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은 짐도 몰랐느니라. 마음 같아서는 성채를 통째로 여기다 옮겨놓고 싶은 심정이야.”

“모두 진혁 씨 덕분이죠. 아니었으면 인류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헤헤. 정신병동이랑은 진짜 완전 달라요. 너무 신기하고 기분 좋네요.”

천유성과 엘리스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고개가 부러져라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모기이!”

“대장. 여기를 용들의 거점으로 삼겠다고요?”

“아무리 대장이라도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말을 하십쇼. 예?”

콰직! 오물오물.

“끄아아아! 할게요. 거점. 여기 거점 한다고! 그러니까 잡아먹지 마!”

“미요오오오!”

“끌끌끌. 고귀한 이 몸에게 걸맞는 장소로다. 꽃으로 빚은 술과 달달한 약과가 생각나는구나.”

정상을 볼 수 있는 권리는 원래 최초 등반자 한 명에게만 있다.

하지만, 정복자의 권한으로 그 부분을 손봤고,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주군. 연회용 음식들과 다과를 준비해놨습니다. 오셔서 함께 자리하시죠.”

“달그락! 칼슘 우유도 있는 건가?”

“마음에 드는 장소야. 이런 게 감정이라는 건가 보네. 응.’

월영과 티본 그리고 프레이도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진혁의 시선이 한쪽에 꽂혔다.

“어라, 형 반응 보면 상태창 뜬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는 안 보이는 거지?”

“쉿. 어쨌든 가장 기여도가 큰 최초 등반자는 진혁이 오빠니까. 상태창도 오빠한테만 보이는 걸 거야. 일단은 집중하게 냅두자. 탑에서 무언가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니.” 

“크으.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네.”

“당연하지. 사상 최강의 티모대령인데.”

이태민과 유연화가 티격태격거렸다.

그 말대로 현재 진혁의 앞엔 시련의 탑을 최초로 공략한 자를 위한 상태창이 띄워져 있었다.

[보상으로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소원이라…

그 욕망을 자극하는 단어를 곱씹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사실, 소원 같은 건 이미 다 이뤘다.

여기까지 오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고, 그보다 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거든.

그러니까.

“나를 위해 죽은 이들을 되살려줘..

진혁이 적어둔 리스트를 펼쳤다.

각 세력에 포함된 모든 이들을 살리는 건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불가능할 테지만.

수리부엉이를 포함한 운영자들. 그리고 타케시 만큼은 반드시 되살리고 싶었다.

[가능한 부분입니다.]

[생환까지 남은 시간 1H: 59M : 59S]

[소원의 정도가 업적에 비하여 다소 모자라기에 제한적인 추가조건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럼 ・・・

“50층을 봉문하고 1달 뒤 시련의 탑도 폐쇄시켜줘. 탑이 개방되어 있는 1달 동안엔 내가 허락한 사람들만 입출입을 허가해줬으면 좋겠어.”

50층을 막아 탑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고, 인류와 탑 역시 단절시켜 서로가 간섭하지 못하게 막아야만 한다.

1달 정도는 유예기간

시련의 탑에서 아직 보지 못한 이스터에그들을 찾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1달 뒤에는………

선택을 해야겠지.

탑에 남을지, 아니면 현대로 돌아가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시련의 탑이 당신의 소원을 받아들입니다.]

[플레이어 강진혁. 훌륭한 리더십과 꺾이지 않는 신념. 그리고 뛰어난 재능과 동료를 위하는 마음을 통해 위대한 탑의 정상에 도달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아.

이걸로 전부 다 끝났다.

하지만.

[또한.]

이어지는 메시지에.

[‘튜토리얼 모드’ 중 하나를 끝까지 클리어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혁은 순간 표정을 관리하는 것에 실패했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