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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71화


871화. 폭풍을 부르는 야유회 (2)

저벅.

진혁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아하하. 내가 도와도 될까?”

1분.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지원을 얻기까지 남은 시간이다.

진혁이 바짝 말라붙은 입술을 적시며 주위를 애타게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그 시선을 외면했다.

제기랄.

착하게 잘해주면 꼭 호구 취급한다더니.

이번 일만 끝나면 초심으로 돌아가 회사의 기강을 바로잡고야 말겠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곱슬거리는 금발에 녹색 눈동자.

170cm가 갓 넘는 곱상한 얼굴을 가진 소년이었다.

‘누구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중요 인물은 전부 다 알고 있었지만, 이런 애는 본 적이 없었다.

무림에 소속된 인물 역시 아닐 테고.

올림포스 쪽이나 에덴 쪽인 건가?

외모만 보면 일단은 그래 보였다.

“도와준다니 고맙긴 한데… 이름이?”

“음… 피에타라고 불러줘. 딱히 활약이 없어서 기억에 남거나 하진 않을 거야.”

피에타라.

확실히 기억에 없다.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피에타 라인트라스]

나이: 327

고유 성창: 천상재현

고유 능력: 긍휼의 기도

내용: 성역에 머무는 거주자 중 하나로 평화와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며,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이나 내용을 보면 ・・・ 에덴 쪽이 맞는 듯싶다.

고유 성창까지 개화한 걸 보면 결코 약하지는 않을 터.

“잘 부탁해. 안 그래도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거든.”

진혁이 흔쾌히 새로운 사원의 합류를 환영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진혁 니이임!”

시작을 알린 건 안드리아였다.

여우불을 모조리 꺼낸 구미호가 측면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탓. 타다다다…….

얘는 언제 이렇게 잽싸진 거냐.

잔상을 남기면서 움직이는 게 정신 병동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화룡의 숨결’을 사용한 진혁이 즉시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퍼퍼퍼펑!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그 틈을 타고 진혁이 숲 바깥쪽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꿀렁.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음영극살’을 발동한 월영이 왕관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다.

“허점이 크시군요. 주군.”

무슨 스릴러 무비도 아니고.

바로 등 뒤에서 무슨 짓거리냐.

“큭!”

진혁이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이미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도중에 방향을 바꾸는 거라 다리와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왕관을 빼앗겨 사원이 사장 위로 가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감수해야 해.’

허리 따위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콰아앙!

소나무에 충돌하고 나서야 멈춘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주위는 온통 음영대에 소속된 살수투성이었다.

스릉.

철컹.

각종 무기들이 예리한 빛을 뿜어냈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이 하나의 목표를 향했다.

“다들・・・ 이거 야유회 중에 하는 게임인 거 알지?”

실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친목과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번엔 네가 술래!’라는 말이 오고 가야 정상이란 말이다.

하지만.

“대주께서・・・ 주군으로 모시는 분과 합을 나눌 수 있다니.”

“다시 없을 기연!”

“깨달음을 얻는다면, 여기서 죽어도 좋다.”

이미 다들 눈빛이 맛이 갔다.

매일 같이 혈투를 벌이던 지난날과 달리, 평화가 계속된 것도 크게 한몫했으리라.

태고의 존재들과 싸웠을 때도 저 정도로 열심히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처음부터 이 야유회 자체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솟구쳐올랐다. 스윽. 척!

음영귀살진.

다수가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진이다.

음영대가 몸을 던지는 동안, 월영이 왕관을 노린다는 작전이겠지.

바로 그때.

“이쪽이야!”

피에타가 소리쳤다.

[피에타가 특수 아이템 ‘성역으로 가는 길’을 사용합니다!]

우우웅!

황금빛으로 만들어진 벽돌길.

그 끝엔 숲의 반대쪽으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있었다.

예전 북유럽의 헤임달이 썼던 능력과 유사하다.

진혁이 지체없이 몸을 던졌다.

***

시야가 바뀐다.

울창한 숲과 나무들이 즐비한 장소.

다행히 도착한 곳에 매복은 없었다.

“덕분에 살았어.”

진혁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이 말은 진심이다.

솔직히 이 정도로 광기에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안드리아나 월영마저 이렇게 진심 모드라면….

엘리스나 천유성은 실전이라 가정하고 임해야 할 것이다.

“하하. 그러게. 동료들이 굉장히 열성적이네.”

피에타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으음. 일단은 동료를 더 모집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둘이서는 조금 힘들 것 같아.”

“…그렇겠지.”

다들 성장을 너무 잘해놨다.

진작에 이렇게 좀 했었더라면 50층 전쟁에서 훨씬 더 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무슨 놈의 동기부여가 이따윈지 모르겠네.’

진혁이 릭이 만들어둔 참가자 ‘우승 다짐 게시판’을 바라봤다.

[엘리스 : 후후, 내가 우승하면 신랑을 매일 밤 내 노예로 조련시킬 것이니라.]

[천유성 : 1무가 아닌 1승. 거기에 요즘 실습을 할 카데바가 없었는데, 의학 발전의 초석으로 삼아주마.]

[테레사: 대상의 동의만 있으면 육신과 혼을 잘라서 이식하는 아이템이 있어요. 진혁 씨를 반만 잘라낸다면 저도….]

[고구마 : 모기이이이!!!]

[아누비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미이라가 될 때까지 묵혀주지. 그렇게 하면 훌륭한 이집트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다.] 

[암황: 크하하! 새로운 무공 개발! 폐관은 20년 정도면 딱 좋겠구나!]

등등.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미친 대화들이 적혀 있었다.

가장 좋은 케이스가 고구마에게 마정석 요리 1,999가지를 제공해주는 거고.

최악의 경우엔 반으로 갈라지거나 해부용 실험체가 되는 거다.

어느 쪽이든 시련의 탑을 정복하고 얻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

그러다 문득.

딱 하나.

파고들 수 있는 인물이 떠올랐다.

가능성이 있다.

아마 그 녀석이라면 지금쯤 온천 쪽에 자리 잡고 있을 텐데…

추격대가 붙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피에타. 혹시 이쪽으로 가줄 수 있어?”

진혁이 흙바닥에 대략적인 숲의 지형들을 그렸다.

“그림 솜씨가 좋아서 어딘진 바로 알겠어. 하지만, 이 아이템은 쿨타임이 조금 긴 편이라서 말이야.”

한 마디로 아까처럼 공간을 뛰어넘어 가는 건 안 된다는 소리다.

어쩔 수 없지.

튼튼한 두 다리를 움직이는 수밖에.

진혁과 피에타가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움직였다.

콰아앙!

콰콰콰콰콰!

“캬하하하! 있잖아. 있잖아! 죽여도 돼? 싹둑. 베어버려도 돼?”

“되지 않을까? 빨갛고 예쁜 속살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야!”

케이시와 주드로가 천사들 사이를 누비는 게 보였다.

저 둘이 왕관을 모으는 이유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몸속이 빨간색일지 검은색일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던가?’

사이코패스는 평화가 와도 사이코패스인 법이다.

그 외에도 말랑흑두루미와 정령수 군단이 올림포스 측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왕관을 탈취했고.

고구마와 고대룡들이 호수 쪽을 점령한 채 급속도로 세력을 넓혔다.

물론, 가장 골치 아픈 건 엘리스가 이끄는 뱀파이어들과 천유성과 암황을 주축으로 한 무림세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레사와 대천사들의 연합이었다.

전광판에 표시된 걸 보면 이들이 벌써 전체 참가자의 절반을 탈락시켰다고 했으니까.

[아아, 잘 들리나요? 먼저. 다들 이벤트 진심으로 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벤트의 묘미를 좀 더 살리기 위해 저희 상단에서 특별한 아이템을 판매하려고 하는데요.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을 테니, 한번 살펴보세요. 구매는 숲 전체에 돌아다니고 있는 ‘참새 판매원을 통하시면 됩니다.]

릭 헤네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빌어먹을 장사꾼이 이 타이밍에도 돈을 긁어모을 궁리를 한 건가.

우승이라는 목표가 확고한 이상 가격이 얼마더라도 지갑을 열어댈 거다.

‘나도 좀 사야 하나.’

어디 보자.

잘그락.

엘리스한테 받은 용돈이 간당간당하다.

이번 달 레인보우 쉬림프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가능하면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피에타.”

“응?”

“가지고 있는 돈 좀 있어?”

일명 ‘내 돈은 내 거,’ ‘동료의 돈도 내 거’.

에덴에 소속되어 있으면 자금은 비교적 부유할 게 틀림없다.

“하하. 미안. 밖으로 나오는 걸 허락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빈털터리야.”

쓰읍. 가난뱅이 천족이었군.

하지만, 말과는 달리 팔에 찬 팔찌가 제법 비싸 보인다.

다음 전투에서 몰래 훔쳐다가 참새 놈한테 넘기면 꽤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 터.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콰콰콰콰!

카아앙!

무수히 흩날리는 불꽃.

수없이 파인 상처들이 온 숲을 가득 메웠다.

“큭.”

“……”

천유성과 테레사가 서로를 바라봤다.

벌써 15분이 넘게 격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승부는 쉽사리 나지 않았다.

워낙에 최상위 재능을 가진 두 사람이기도 했고.

탑이 평화를 찾은 뒤에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우승을 하여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겠지.

“포기해라. 성녀.”

“유성 씨야말로 포기하세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으르렁대는 둘.

일렁이며 피어오르는 마력과 살기가 정면에서 충돌했다.

파치칙!

파칫!

스파크가 부딪치면서 새하얀 눈송이와 황금빛 깃털이 몰아쳤다.

‘백야’를 사용한 천유성의 검신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이에 맞서 테레사가 새로 개방한 ‘대천사의 성흔’을 발동해 신체의 절반을 대천사로 바꾸었다.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는 1분 안에 소멸시킬 수 있을 만한 위력이다.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

천유성의 검이 겨울밤을 자아냈다.

쏴아아아….

푸른 숲이 새하얗게 얼어붙으면서 지면에서 서리가 피어올랐다.

서서히 사라지는 검신.

“…..!!”

테레사가 반사적으로 아공간을 개방했다.

[성유물 ‘메타트론의 언약궤가 소환됩니다!]

성스러운 언어가 가득한 돌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카가가가가가..!

돌판 위로 기다란 검상이 만들어졌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날카로운 검격이었으나, 충분하진 못했다.

우우웅!

곧바로 테레사의 반격이 이어졌다.

“승부를 원하면 그냥 하면 되잖아요! 굳이 왕관까지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황금 깃털들이 칼날의 형태로 변했다.

“그 빌어먹을 놈이 50층에서 붙은 이후에 미꾸라지처럼 도망만 친단 말이다. 하지만, 왕관을 통한 강제성이 부여된다면 더 이상 도망만 다니진 못하겠지.” 

“유성 씨도 벌주를 마시고 후회하는 타입인가 보네요.”

수천 개의 신성이 폭우가 되며 쏟아졌다.

콰콰콰쾅!

콰아앙!

지형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천유성과 테레사의 몸엔 상처 하나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말로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러나 바로 그때.

사박사박.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싸울 때를 노리면 된다니까. 장신구 같은 건 혹시 상할까 봐 미리 풀어두고 싸우거든.’

“와아. 진짜네. 다들 부자네. 이것도 비싼 거고, 저것도 비싼 거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각종 파편들을 참새에게 건네는 두 사람.

바로 진혁과 피에타였다.

“짹!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새가 경례를 하더니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 진혁 씨! 설마, 우리 걸로 아이템을 구매한 거예요?”

테레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너… 설마….”

천유성은 진혁의 손에 든 걸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래 설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지개색 액체가 담긴 병을 흔들었다.

시련의 탑에 있던 금지된 히든 모드 중 하나.

TS(성별 체인지) 모드,

이것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물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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