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73화
873화. TS 버전 (2)
1시간이 더 흐르자 각 세력들의 참가자들이 대거 탈락했다.
워낙에 우승 상품이 굉장했기에 실제 전투를 방불케 하는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후후. 아주 짭짤하군요.”
릭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마정석과 각종 보물들을 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처음부터 이러실 계획이었습니까?”
수리부엉이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간의 전쟁으로 인해 시련의 탑에 복구해야 할 곳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전후처리에는 당연히 돈이 드는 법. 저는 그저 이 탑의 내일을 위해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복구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릭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호르륵.
릭은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따스한 햇살에 몸을 맡겼다.
마치, 이 평화를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다는 것처럼. “릭 헤네시 님!”
수리부엉이가 재차 다그쳤다.
“즐거운 야유회 중에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듯하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50층의 봉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자토스가 깨어나려고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탑의 정상을 정복하면서 얻은 자유와 승리.
그 달콤한 열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알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
“노덴스와 엘더갓 측에서 사력을 다해 막는 중입니다. 그들의 사도인 장보경 역시 암암리에 활약하는 중이고요.’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었다.
어쨌거나 현재 태고의 존재들은 50층에 갇혀 있는 상태였기에, 예전처럼 쉽게 마수를 뻗칠 순 없었다.
“또한 천유성의 데이터와 아자토스가 찾고자 했던 ‘금서’는… 안전한 곳에 잘 숨겨두었습니다.”
릭의 시선이 엘리스에게 향했다.
현존하는 최강의 진조와 그녀와 함께하는 시련의 탑 역사상 최강의 고인물.
그 둘이 있는 한 블랙 캐슬 안에 잠들어 있는 금서가 누군가에게 들킬 일은 없으리라.
-엘리스 님.
-응?
-혈옥만큼은 그 누구도 출입을 하지 말게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거라. 안 그래도 그 저주받은 감옥은 짐조차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곳이니까. 그저 탑에 있는 불길한 것들을 모아두는 창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전에 엘리스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 괜찮겠지.
어차피 금서는 선택받은 특별한 자가 아니라면 단순히 백지로 가득한 책으로 보일 뿐이기도 했고.
“괜찮을 겁니다.”
릭이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
툭.
쏘옥!
수풀을 헤집고 진혁과 피에타 그리고 베리엘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현재 도착한 곳은 엘리스가 이끄는 3대 세력의 본진.
이미 10개가 넘는 왕관을 모은 것답게 기세등등해 보였다.
탑 밖에 있는 모든 부동산을 사버릴 수 있다고 평가받는 엘리스가 아낌없이 재보를 연 덕에 아이템도 넘쳐나는 상태였고,
어색한 몸과 마력 활용을 현질로 메운 셈이다.
‘우리 쪽에서 모은 왕관은 6개.’
사실상 이번 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최종 승리자가 되겠지.
“시, 심장이 콩닥거린다. 정말로 저기로 쳐들어가는 것이냐?”
“셋이서 뚫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여. 내가 봐도.”
베리엘과 피에타가 고대종과 정령수들로 이루어진 경비를 보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모깅!”
“헤헤. 역시 대장 언니는 섹시하고 강력하다니까.”
“그치그치. 우승이야 우리 위대한 고대종께서 가져갈 거야!”
“다들 목소리 좀 키워. 머리가 상쾌해.’
“미요오옹!”
환수계 성유물들을 풀 세팅으로 갖춘 데다, 고구마의 경우엔 ‘단죄의 검’에 비견되는 고유 무장까지 소환한 상태였다.
“크르르!”
“캬오오!”
심지어 주위에는 에테리온의 휘하에 들어간 고대룡들과 드래곤족도 다수 있었다.
음. 확실히 쉽지 않아 보이긴 하네.
하지만 걱정 마라.
진혁이 묘족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귀엽게 생긴 방울 달린 목걸이.
그걸.
찰칵.
베리엘의 목에 채웠다.
“응?”
베리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 진혁이 베리엘을 툭하고 밀었다.
털썩!
수풀 밖으로 밀려난 베리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잠시.
[아이템 ‘굶주린 고양이를 부르는 쥐방울’이 발동됩니다!]
치이익!
목걸이에서 달콤하면서 향긋한 향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누가 맡더라도 굉장히 맛있다고 느끼게 할 만한 냄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수준이고.
환수와 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환장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았다.
“모, 모기이잉!?”
“미요오옷!?”
“냄새. 미쳐따. 미쳐따!”
“한 입만. 진짜 딱 한 입만!”
고대종과 정령수들이 모조리 한입충이 되어 베리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 자, 잠깐만, 얘들아? 나・・・ 모기 아니, 먹이 아니거든! 히이익!”
베리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당장이라도 진혁을 향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1초라도 빠르게.
타다다다!
곧이어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 숨 막히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고귀한 희생이었어.”
진혁이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베리엘을 보며 짧게 성호를 그렸다.
아아, 그는 좋은 마왕이었다.
동료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아하하. 설마, 나도 저런 식으로 처분해버릴 건・・・ 아니지?”
피에타가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넌 처음부터 내 편을 들어줬던 소중한 동료고.”
“베리엘은?”
“걔는 나중에 간 보면서 합류한 애지.”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집중해.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니까.”
“응. 알겠어.”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짙은 위화감이 피어올랐다.
[기관진 ‘음양연옥진’이 발동됩니다!]
곧바로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쿠쿠쿠쿠・・・ 콰콰콰쾅!
기둥과 바위들이 전후좌우로 격렬히 움직이며 새로운 공간을 구축했다.
이런 게 가능한 인재는 딱 한 명뿐이다.
“발냄새.”
진혁이 기관진의 중심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발세테르다!”
발끈한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 항상 발냄새라고 불러서 이제는 본명을 슬슬 까먹으려고 한다.
“발세테르 같이 맛없어 보이는 이름보다 발냄새가 구수하고 입에 착착 감기고 더 좋지 않아?”
“이이익! 다음에 나오는 걸 보고도 그리 여유 있을지 두고 보지. TS 물약을 사용한 순간부터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함정을 고안해 두었으니까!”
발냄새의 말이 끝난 것과 동시에.
후두두둑.
곧바로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쏟아졌다.
“화장품과 옷?”
립스틱 블러셔 파운데이션 아이섀도우 등을 시작으로 각종 옷과 향수까지.
대형 백화점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했다.
“캬하하하! 음양의 역전을 통해 이번 내기의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과연 이것마저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을 착용하여 자연스러운 미(美)를 추구하십시오. 합계 점수 80점 이하일 경우 음양연옥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전투를 하거나 몸을 다루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롯이 그 성별이 되어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까.
“으음. 내가 봄웜 여쿨 이중 톤이니 맥에선 셀아웃을 고르면 되고, 블러셔는 속광으로 써야겠네.”
진혁이 능수능란하게 화장품과 옷을 골랐다.
마치, 수백 번 해본 것처럼 손놀림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스스슥.
현란한 붓질과 파데질이 이어졌다.
기존에도 상당히 미인이었으나, 화장과 스타일링이 끝난 이후엔 완전히 여신이 따로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
“왜, 컨셉 좀 바꿔줘? 뭘 원해 청순가련 아니면 큐티섹시?”
“시발. 나 안 해.”
발냄새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대로 음양연옥진을 부숴버렸다.
***
진법이 깨졌다.
이걸로 또 다른 관문을 통과했지만, 몇 분 사이에 새로운 인물들이 도착해 있었다.
“홀홀. 제자야. 오랜만이로구나.”
“주군….”
암황과 월영.
무림을 대표해서 온 두 사람이 길을 가로막았다.
스승님은 대체 저게 무슨 해괴망측한 꼴인지 모르겠다.
외형은 60대 할머니인데, 터질 듯한 근육질에 몸에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지킬박사가 약물을 과다복용한 뒤, 스테로이드에 푹 절여진다면 저런 모습일까?
1:1에서는 승산이 보이질 않는다.
그건 그렇고, 월영이 녀석.
거의 천유성이 TS 한 급인데?
원래도 가녀린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TS 이후엔 완전히 신선계의 선녀가 현현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스승님이랑… 아니, 너는 말로는 매일 주군이라면서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거야 주군께서 엘리스 님하고만 어울리시느라 최근 속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지 않습니까? 왕관을 다 모은다면 적어도 칠주야에 사흘은 무림에서 보내게 할 생각입니다.”
무슨 애도 아니고.
안 놀아줬다고 삐졌다는 건가.
진혁이 혀를 차면서 두 자루의 검을 꺼냈다.
“홀홀홀! 어디 사랑스러운 여제자가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볼까나?”
탓.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암황의 몸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순식간에 좁힌 거리.
흑천마황공.
쿠쿠쿠쿠쿠!
무시무시한 투기가 폭주한다.
제11식.
약의 부작용이 이렇게 반대로 나타날 줄이야.
“큭!”
설마, 기존의 벽을 완전히 초월해버렸다는 건가.
진혁이 마력을 끌어모아 방어검진을 펼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흑암일천뢰’
콰콰콰콰콰콰
검은 폭풍이 대기를 가로질렀다.
나무들이 뿌리채 뽑히면서 수천 개의 잎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욱씬!
뼈 마디 구석구석이 아리다 못해 시리다.
충격을 빗겨내지 않았다면 골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진심으로 한다 이거죠 스승님? 그 덩치로 가녀린 여자한테 무슨 짓입니까?”
“홀홀. 엄살이 심하구나. 태고의 존재들에게 두드려맞고도 멀쩡한 녀석이 무슨 그리 앓는 소리더냐? 이참에 이 스승이 13식을 완성시키는 거나 도와다오. 그 튼튼한 몸뚱이로 말이다.”
아하.
그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후회하실 겁니다.”
[‘원 아이즈 문’이 발동됩니다!]
허공이 갈라지며,
그로스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수많은 강자들을 한 줌의 먼지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능력. 이거라면 스승님의 저 여유로운 얼굴 역시 180도 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응?”
진혁의 입에서 바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로스의 거대한 눈에 봉황의 깃털 같은 속눈썹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
젠장. 그로스까지 여성화된 거냐 이건.
코코코코코!
산들산들, 부드러운 봄바람이 몰아쳤다.
“홀홀. 따뜻하구나. 참으로 꽃놀이에 어울리는 능력이다.”
암황이 그로스의 빛줄기를 온몸으로 즐겼다.
쓰읍. 이건 계산 밖에 일인데.
거기에 월영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군! 속하 대신 엘리스 님과 어울리시는 게 그리도 좋단 말입니까!”
카가가가강!
검이 수십 개로 갈라지며 몰아쳤다.
“아니, 신혼인데 그건 좀 봐줘야지!”
“속하는 그런 것 따윈 모릅니다!”
미치겠다.
앞으로는 이 약을 무림에 한정해서는 절대 쓰면 안 된다는 확신이 섰다.
바로 그때.
카아앙!
둘 사이에 피에타가 끼어들었다.
일렁이며 퍼져나가는 황금빛 운무.
[피에타가 고유능력 ‘긍휼의 기도’를 발동합니다!]
“가 봐. 여기서 시간 끌리면 곤란하잖아?”
“괜찮겠어? 혼자서?”
“뭐… 쉽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질질 끌다가 고대종까지 오면 승산은 더욱 없어질 테니까. 게다가 엘리스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기도 하고.”
“부탁할게.”
진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숲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현재 3대 세력의 모든 왕관들을 긁어모은 이번 야유회의 최종 보스.
이제부터 부부싸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