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874화


874화. TS 버전 (3)

“왔구나. 계약자.”

엘리스가 진혁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음. 뭔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보이는 게 살짝 불안하긴 하네.

어디 보자.

[‘탐식의 눈’이 대상을 꿰뚫어 봅니다.]

진혁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상태창이 줄줄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특수 아이템 ‘적응형 물약’을 복용한 상태입니다.]

[특수 아이템 ‘남성 백과사전’을 습득한 상태입니다.]

[특수 아이템 ‘굵은 마력회로’를⋯⋯]

[・・・・・・상태입니다.]

제기랄.

역시나 그런 거였나.

현질을 엄청나게 해서 남성의 몸에 최적화된 스펙을 갖췄다.

거의 인조인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부의 구조를 바꿔버린 것이다.

[엘리스가 고유능력 ‘블러드 로드’를 발동합니다!]

쿠쿠쿠쿠!

피보라가 몰아치면서 주변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피부를 찌르는 따갑고도 매서운 마력.

제1차 부부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먼저 움직여야 승산이 있어.’

대기업 문 부수고 들어갈 스펙을 지닌 엘리스에게 선공을 양보했다간 미래가 없다.

[‘빙하조형’ – ‘천년 종유석’이 발동됩니다!]

피로 만든 꼬챙이와 얼음으로 만든 창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콰콰콰쾅!

콰콰쾅!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탓.

“가소롭구나.”

곧바로 크게 원을 그린 진혁이 엘리스의 뒤를 노렸다.

엘리스가 레이피어를 꺼내 번개처럼 휘둘렀다.

공간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일격.

폭풍처럼 쏟아지는 칼날이 진혁을 위협했다.

푸푸푸푹! 콰아앙!

지면에 수많은 구멍이 생겼다.

“엘리스. 너 그러다가 과부 된다?”

“걱정 말거라. 살살 하고 있는 중이니까!”

실제로 그래 보이긴 한다.

이미 남자의 몸에 100% 적응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돈이 넘쳐나는 그 소비 습관은 이미 나도 잘 알고 있거든.’

백화점 VVVIP를 몇 개나 달았는데, 아무렴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겠는가?

진혁이 작은 나무가 들어 있는 구슬과 뼛가루가 담긴 플라스크를 꺼냈다.

그리고 냅다 엘리스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특수 아이템 ‘뿌리 깊은 나무’를 사용합니다!]

[특수 아이템 ‘다윈의 뼛가루’를 사용합니다!]

복구형 아이템 ‘뿌리 깊은 나무’

이건 원래 내구도가 거의 다 떨어진 아이템에 주로 사용하는 거다. 하지만, 여기에 생명의 기원을 쫓는 ‘다윈의 뼛가루’를 섞어준다면…… 단일 개체 한정으로 TS 물약을 무효화시키는 혼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

퍼어어엉!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큽!?”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던 엘리스의 몸이 휘청였다.

“대체… 무슨….”

몸이 이상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빠르게 뛰었고, 온몸의 골격이 삐걱이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화아아아…!

엘리스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미 최적화를 남성에게 맞춘 상황에서 갑자기 여성으로 돌아간 이상 조금 전과 같이 싸울 순 없을 터.

진혁이 단숨에 엘리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익!”

엘리스가 재차 레이피어를 휘둘렀지만, 아까와 같은 위력과 속도는 없었다.

너무 어설프고 느리다.

진혁이 머리만 요리조리 움직이며 칼날을 피했다.

“풉.”

“우, 웃어? 짐이 그리도 애처럼 보이는 것이냐!”

“응. 뭐…. 좀 귀엽긴 하네.”

“어…?”

거기서 방심이 생겼다. 툭.

이제 한 걸음.

엘리스의 코앞까지 온 진혁이 엘리스를 꼭 끌어안았다.

“뭔가 바라는 게 있으면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말해.”

“그, 그치만… 계약자가 별로라고 안 들어주면 어떻게 하느냐.”

“아니야. 이제 부부인데 뭐든지 들어줘야지.”

“…..”

엘리스가 볼을 잔뜩 씰룩였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걸 애써 참는 모습이다.

“뭐! 약조해준다면 그걸로 되었다. 애초부터 짐은 이런 하등한 왕관놀이 따위에 관심이 없었느니라!”

센 척을 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건 덤이다.

그렇게.

“승자가 나왔군요. 다들 게임에 참여해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최다 왕관 보유자는 ‘강진혁’님이 이끄는 팀입니다!]

릭 헤네시가 야유회의 끝을 알렸다.

***

시련의 탑 49층.

십이지가 수호하는 층계에는 현재 북유럽 신화의 주신과 거주자들이 유폐되어 있었다.

배신을 한 대가로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게 된 것이다.

“밥이다!”

어두컴컴한 동굴의 가장 밑.

오룬이 특별하게 제작한 쇠사슬에 묶인 이들 앞에 꿀꿀이 죽이 던져졌다.

“이걸 입에 넣으라고 준 것이냐?”

“이야. 진짜 너무하네. 최소한의 죄수 신권은 보장해야 되는 거 아니야?”

토르와 로키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카악 퉤! 먹을 거라도 주는 걸 감사히 여겨라.’

“멍청하게 줄을 잘못 선 스스로를 원망하라고.”

피해가 컸던 묘족과 자족의 간수들이 죽에 침을 뱉었다.

이들 때문에 죽은 동족의 숫자가 몇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가장 중심부에 있는 오딘만이 바닥에 널브러진 죽을 보면서도 어금니를 깨물었다.

뿌드득.

차라리 죽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목숨만 연명하는 삶에 무슨 의미 따위가 있겠는가?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이미 모든 게 끝나버렸으니까.

자신들은 앞으로 수천 년이 지난 이후에도 이곳에 갇혀, 세월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서히 썩어문드러져 갈 것이다.

그래.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서걱! 서걱!

“컥!?”

“캐액!”

묘족과 자족 간수들이 피보라를 뿜으며 좌우로 쓰러졌다.

나름 일족 중에서도 선별된 정예들이었으나, 몰아치는 검은 칼날들에 당해낼 순 없었다.

주위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치, 침입자다!”

“당장 장로께 알려야….”

발 빠른 묘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려고 했다.

[고유무장 ‘개미지옥’이 발동됩니다!]

쏴아아아아….

가라앉는 지면.

새하얀 모래 사이로 검은색 이빨을 가진 벌레들이 보였다.

푹푹 빠지는 특성으로 인해 특유의 경쾌한 발놀림이 전무 무용지물이 되었고.

“끄아아악!”

“사, 살려줘!”

그 결과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은 전부 개미귀신의 밥이 되었다.

까드득 까드드드….

뼈를 씹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벅.

무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워낙에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한 존재는 단 하나.

“니알라토텝…님?”

오딘의 눈동자가 떨렸다.

“꽤나 꽁꽁 숨겨둬서 찾느라 고생을 좀 했군요.”

니알라토텝이 키득거리면서 오딘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피투성이가 된 오딘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희망과 공포의 감정이 전신을 폭발시켜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준비는 되셨습니까?”

“준비라면…?”

“처참하게 당하기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나요? 지옥을 맛봤으면… 놈들에게도 지옥을 맛보여줘야죠.” 

새하얀 이빨들이 반짝이며 근사한 미소를 자아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를 포함한 모든 전사들이 충성을 다해 따르겠나이다.” 

“후후. 아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촤르륵!

북유럽의 주신들을 구속하던 쇠사슬이 풀렸다.

***

야유회 이후 일주일 뒤.

블랙 캐슬에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와아. 눈이다. 보거라. 함박눈이 내리느니라!”

엘리스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소리쳤다.

아침 댓바람부터 저렇게 신나다니.

쟤는 진짜 잠도 없는 건가.

“으음…. 지금 몇 시야?”

진혁이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더욱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어젯밤에 엘리스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느라 몇 시간도 채 못 잤기 때문이다.

“늦잠꾸러기 같으니라고. 이 층계엔 눈이 거의 안 온단 말이다! 어서. 어서 일어나거라. 같이 나가야 한단 말이다.”

“눈은 좀 이따가 보자… 어젯밤에 네가 괴롭히느라 아직 잠이 부족…”

“신혼인데, 지금 새신부의 부탁 하나 못 들어준다는 말이냐….”

엘리스가 불을 잔뜩 부풀린 채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삐지면 최소한 1주일은 간다.

하지만, 솜이불이 너무나 따뜻한걸.

“5분만.”

진혁이 마법의 단어를 외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구구구구구!

[‘블러드 스피어즈’가 발동됩니다!]

요동치는 침실.

성채 전체가 흔들리며 붉은 핏방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히이익! 저, 전쟁인가?”

“가, 가주께서 노하셨다!”

“최대 경계 태세로! 태고의 존재나 그에 준하는 세력이 쳐들어 왔다!”

뱀파이어들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미, 미안. 바로 일어날게! 뭐 할까? 눈사람 만들기? 아니면 눈싸움?”

진혁이 이불을 걷어차며 잽싸게 일어났다.

아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둘 다! 거기에 눈썰매도 타보고! 그 뭐지? 눈 위에 누워서 팔다리 흔들어서 천사 표시도 남기고 싶구. 모닥불도 피워보고 싶느니라! 크리스마스 트리! 그것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 다 해보자.”

아무래도 이 강추위 속, 몸에 열나게 움직이는 하루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블랙 캐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12월 25일과는 너무도 상관없는 날이었으나, 엘리스의 고집으로 인해 오늘 하루는 강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하여간 뱀파이어 주제에 뭔 아기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한다는 건지.

에덴에서 보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거다.

“달그락 마스터! 저, 저 좀 살려주십셔! 이 짐승 놈들이 절 장신구로 쓰려고 한단 말입니다!”

티본이 거대한 트리의 꼭대기에 매달린 채 팔다리를 파닥였다.

“가만 있어 봐. 가장 예쁜 트리 만들면 안주인께서 선물 주신다고 했단 말이야! 그치, 살라맨더야?”

“생령의 숲에 있는 장작으로 피워낸 불을 먹을 거야. 상상만 해도 츄릅. 군침이 싹 도네.”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 역시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마음껏 만끽했다.

한쪽에서는 고구마와 후라이드가 코에 빨간 구슬을 단 채 썰매를 끌고 있었다.

“달려! 달려!”

“모기이이이!”

고대종들은 태생이 자연 친화적인데, 특히나 눈과 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이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쳇. 좋은 일이 있다고 하더니 애들도 아니고 고작 눈 장난인 건가.”

천유성이 혀를 찼다.

“그래도 너무 예쁘네요.”

테레사가 손바닥 온기에 서서히 녹는 눈송이를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럴 시간에 무공서를 집필하고 의학 공부를 하기도 바쁘….”

불평불만이 절정을 찍으려던 그 순간.

퍼억!

눈덩이가 천유성의 안면을 강타했다.

“미안 실수!”

진혁이 손을 흔들었다.

“조심 좀 해라. 여전히 나잇값 못하고 유치하게…”

퍼억!

한방 더 맞았다.

이번엔 제대로다.

코에서 얇은 피가 한 줄 흘러내렸으니까.

“어, 진짜 미안. 제구력이 좀 안 좋네. 내가. 다음부터는 진짜 조심해서 놀게.”

“주, 죽여버리겠다!”

천유성이 눈 뭉치에 내공을 실어넣었다.

파츠츠…!

거칠게 타오르는 푸른 기운.

장담하건대 저기에 맞는다면 아프다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야, 야! 그건 반칙이지! 내게 눈싸움은 살인이다. 뭐 이런 거냐? 그냥 순수하게 놀자고!”

“닥쳐라!”

천유성의 눈에서 이미 이성 따윈 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어른이니 뭐니 하더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왼손에 흑염룡이 날뛰는 중2병 검성모드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