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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87화


887화. 부유하는 흑안

[시간 정지]

‘부유하는 흑안’의 권능 중 하나로 대상의 시공간만 얼려버리는 능력이다.

눈동자가 8도가량 아래로 내려오고.

흑안의 빛이 15% 정도 밝아지는 현상.

그 특유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던 진혁은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손쓸 새도 없이 말려들었다.

“…..”

“…..”

“…..”

“크으으으…주우우우…구우우운!”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진 월영이 절반가량 피한 게 고작.

“호오. 두 마리나 놓치다니. 게다가. 당신은 이걸 마치 상대해본 적 있는 것 같군요.

로키의 입에서 흥미롭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눈’의 색깔도 한쪽은 다른 괴담의 네임드 몬스터에게서 빼앗았는지. 색깔이 달랐다.

주위에는 온통 꿰맨 자국투성이였고.

하지만.

욱씬!

“큭!”

진혁을 살피던 로키가 인상을 찌푸렸다.

“꽤 쓸 만한 눈을 얻은 모양인데, 날 살피려면 그런 거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탐식의 눈’은 시련의 탑에서도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눈이거든.

게다가 오랜 세월 함께하면서 완숙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과연… 쉽지가 않군요.’

한쪽 눈을 손바닥으로 감싼 로키가 기다란 창을 꺼냈다.

창끝이 안드리아의 목덜미로 향했다.

“허면, 동료들부터 처리한 뒤에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수리부엉이가 ‘영역 시스템 조작’을 발동합니다!]

운영자 중에서도 극소수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

우우웅!

멤버들을 구속했던 흑안의 시간정지가 풀렸다.

탓!

파팟!

테레사와 안드리아 그리고 엘리스, 프레이와 월영이 번개처럼 흩어졌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안드리아를 시작으로 모두가 당했을 거다.

“쿨럭!”

수리부엉이가 입에서 각혈을 토했다.

상당히 무리해서 힘을 쓴 건지 안색이 꽤나 창백했다.

하지만, 덕분에 살았다.

진혁이 즉시 천유성의 독문 무공인 ‘백야일천검’을 발동했다.

파츠츠!

새하얀 눈발과 함께 검의 극의에 오른 검성의 식이 펼쳐졌다.

백야일천검.

제10식.

나선역검(螺旋逆劍).

눈송이에 칼날이 사라졌다.

오롯이 하나의 목표를 갈고닦은 검.

서걱!

로키의 팔 하나가 잘려나갔다.

정확히 ‘어느 과학자들의 해골에게서 흡수한 해골 팔이었다.

툭!

들고 있던 ‘물리학 전공서’가 바닥에 떨어졌다.

좋아.

이걸로 과학실의 망령이 쓰던 능력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로키가 고유 성창 ‘장난꾸러기의 마술’을 발동합니다!]

스슥.

‘살의’를 가지고 한 공격을 무효로 만들고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는 능력.

까다로운 조건과 운까지 따라줘야 하긴 했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사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엔 제 차례입니다.”

[‘부유하는 흑안’이 ‘성찬의 날’을 발동합니다!]

우우웅!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운 빛이 일렁였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혈관의 혈액이 흐르는 속도가 급속도로 떨어진다.

귀의하고 싶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다만 눈을 감고 싶다.

압도적인 무기력함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

두 개의 감정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짐은… 아타락시아의 가주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엘리스가 송곳니로 입술을 찔렀다.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눈동자에는 조금씩 생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저 역시 신념을 굽힐 생각 따윈・・・ 없습니다.”

테레사가 검과 방패를 꺼냈고.

“여우를 홀리려고 하다니… 상대를 잘못 골랐어요.’

안드리아의 여우 구슬에 구미호의 혼이 깃들었다. “이런 걸 느끼려고… 감정을 원한 게 아니었어. 응.”

프레이가 다시 한번 불멸의 인형들을 조정했다. 

“충을 바치는 건 오직 주군뿐.’

견딘다.

수많은 시련을 넘어서며 이어진 유대와 신념.

그 경험과 기억들은 결코 덧없는 한순간의 추억이 아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넘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지. “이것들이….”

로키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스쳤다.

부유하는 흑안이 궤를 달리하는 고유무장인 건 사실이다.

허나, 이건 진품이 아니다.

또한 다루는 자가 아자토스가 아니다.

흉내 낸 모조품을 다루는 가짜.

그 간극은 아무리 해도 메울 수 없다.

“우릴 우습게 보지 마라.”

진혁이 총 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고유 성창 ‘무한히 회귀하는 황야의 무법자’가 발동됩니다!]

철컥!

섬뜩한 금속의 격철음.

“석양이….”

황혼의 총에 고인물의 전력을 담았다.

“…진다.”

탄환이 한 줄기 섬광으로 변했다.

정확히 로키의 이마를 노린 저격.

속도와 위력을 전부 살린 최강의 한방이 싸움의 끝을 고하기 위해 뿜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득!

탄환이 로키의 이마 바로 앞에서 가로막혔다.

부유하는 흑안의 능력이 아니다.

로키가 가진 다른 괴담의 능력도 아니었다.

“이 정도 해줬으면 혼자서도 충분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생글거리는 눈웃음과

찰랑이는 금발.

그곳엔 피에타가 웃고 있었다.

***

같은 시각.

[백색의 꽃이 빠르게 개화합니다!]

시련의 탑에 나타난 꽃은 시시각각 커지고 있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꽃봉오리가 인외마경을 자아냈다.

퍼어엉!

“크아아악!”

“아아악!”

제국의 1개 보병 연대가 녹색 액체에 잠겼다.

갑옷이 10초도 안 돼서 녹아내린다.

당연히 연약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야 형태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크오오오!”

개구리와 유사한 형태의 몬스터.

[고메얀 차원의 ‘브로마오’가 ‘소화액을 뿜어냅니다!]

“밀집하지 마라! 방진을 버리고 넓게 펴져야 한다!”

“기사단은 앞으로!”

펜하이머와 에브라함을 비롯한 제국의 기사들이 브로마오의 후방으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기랄! 뭐 이리 강력한 놈들이 끝도 없는 거냐!”

아누비스가 쟈칼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며 욕설을 내뱉었다.

“쯧. 50층의 전투가 생각나려 하네.”

베리엘 역시 키샨을 꺼내든 채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마계의 정예들이 믹서기처럼 갈려 나가는 통에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하기도 힘들었다.

“신성 마법도 이제 거의 바닥이에요.”

에덴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짧은 시간 안에 벌써 3만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고, 부상자는 그 곱절이 넘었다.

과거에는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버텨준 덕에 어떻게든 활로를 찾았지만.

지금은 주력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상태 아닌가?

뭔가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었다.

“암황.”

“하명하십시오. 지존.”

“이대로라면 우리 쪽 피해만 더욱 커지게 된다. 호법과 상위 서열의 고수들을 따로 추려서 저 꽃으로 가겠다.”

“하, 하오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암황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동안 극진한 보양을 통해 과거의 힘을 거의 다 회복했다곤 하나, 이곳은 사지 중에 사지.

제아무리 천마가 천외천의 강자라 하더라도 생존을 장담하긴 힘들었다.

“이미 전화로 인해 너무 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라졌는데, 또다시 그 악몽을 되풀이할 순 없다. 힘이란 제대로 쓰는 자를 위해 존재하는 법. 이미 결정은 내렸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안위를 걱정하여 반대할 순 없다.

하늘이 결정했다면, 나머지는 그저 그 곁에 설 뿐,

“존명.”

무림이 척후조를 보내 백색의 꽃으로 가는 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우리도 함께 가겠다.”

천유성이 추혼사영과 함께 다가왔다.

침식에 가지 않고 남아 있던 고인물 코퍼레이션 소속 랭커.

“확실히 그대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 알겠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

피에타의 조각상.

‘부활’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인류의 명작.

파츠츠.

수많은 얼굴을 가진 태고의 존재가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니알라토텝….”

진혁이 그 이름을 곱씹었다.

사실, 야유회 때부터 피에타의 출신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에덴 쪽 같긴 한데, 상당한 실력자치곤 너무 신상정보가 없었기 때문.

테레사나 가브리엘에게 넌지시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피에타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이해가 안 된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말해보세요.”

“굳이 야유회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좀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면, 훨씬 은밀하게 장난질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일부러 티를 냈냐. 이 말씀인가요?”

“그래.”

“저것들을 만들려면 ‘궁전에 잠입했던 자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정도로 말해두죠.”

“……!?”

그런 거구나.

‘침식하는 모래’나 ‘차원 브레이커’, ‘부유하는 흑안’의 레플리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알아냈다.

시련의 탑에 관한 새로운 지식 하나가 추가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고인물로서의 짜릿함보다는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 타이밍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째서 위대한 태고의 존재께서… 여기까지 왕림하신 겁니까? 제가 버티고 있는 폐교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건지요.”

로키가 다소 불만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로키. 그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유능해서 지금쯤이면 할당량을 다 채웠을 거란 생각에 빨리 온 거죠.” 

니알라토텝이 로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부유하는 흑안을 관찰했다.

꼼꼼하게. 아주 천천히.

내면에 있는 것들을 훑었다.

그러더니 이내 만족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과연, 기대했던 것대로네요.”

“예? 그게 무슨 뜻….”

로키의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퍼억!

니알라토텝의 지팡이가 로키의 심장을 관통했다.

펄떡펄떡!

주먹만 한 심장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끄으어…어째・・・ 서냐?”

로키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니알라토텝을 노려봤다.

등에 달린 팔이 연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 어느 것도 니알라토텝에게 닿지 않았다.

“한 번 실패한 머저리들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정도로 제가 멍청하진 않답니다. 열심히 키워낸 부유하는 흑안은 잘 받도록 하죠.”

처음부터 목적은 아자토스의 고유 무장을 연마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

태고의 마기로 오염된 북유럽의 주신들이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소화해줄 수 있었다.

“처, 처음부터 우리를… 이용만 해먹을 생각이었던 거냐?”

말을 하던 로키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었다.

토르가 블랙 캐슬에서 죽었고.

자신 역시 여기서 당했다면.

“아버・・・지는?”

오딘.

북유럽의 수장이자 위대한 위그드라실의 수호자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싹!

로키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니알라토텝이 너무도 불길했기 때문.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쿠웅!

로키의 몸이 좌로 쓰러졌다.

“같은 편도 가차 없이 죽이는 건 여전하네.”

진혁이 역겹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었다.

“더러운 배신자를 처리해줬으니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만?”

“이런 식으론 아니었어.”

“가식적이군요. 뭐. 좋습니다. 어차피 당신도 곧 로키를 보게 될 테니, 그때 따로 복수를 하든가 말든가 하시죠.” 

파츠츠!

니알라토텝의 오른쪽에 토르에게 주었던 ‘차원 브레이커’가 나타났다.

동시에,

쿠쿠쿠쿠!

폐교의 하늘 전체가 뒤흔들렸다.

먹구름 사이로.

거대한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유하는 흑안’.

로키가 사용했던 것과 달리 한없이 원류에 가까운 모조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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