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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89화


889화. 최종장 (2)

쿠쿠쿠쿠!

비상하는 공허의 용.

마치,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것만 같다.

“큭!”

엘리스가 즉시 수많은 꼬챙이들을 발사했다.

하지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공허룡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날쌨다.

슈슈슈슝!

엘리스가 쏜 작살들이 연신 허공만 꿰뚫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에테리온.”

“크오오오!”

니알라토텝의 의념을 받아들인 에테리온이 갑자기 공중에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노린 곳은 하나.

“……!?”

멀찍이서 거리를 두고 있던 수리부엉이었다.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아차린 수리부엉이가 즉시 반대쪽으로 날아가려 했다.

하지만 ‘중력장’과 ‘속삭이는 어둠’이 발동되자 수리부엉이의 속도가 급속도로 느려졌다.

따라잡힌다.

다른 대응을 할 시간조차 없이.

콰악!

에테리온의 이빨이 수리부엉이의 등에 파고들었다.

부드러운 깃털과 살을 헤집고.

우뚝!

뼛속까지 닿았다.

“크아아!”

수리부엉이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많이 아픈가 보죠? 하긴. 지금 이 고대룡의 이빨엔 제가 특별히 제조해둔 독이 듬뿍 발라져 있거든요. 죽진 않겠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니알라토텝이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물론, 고통을 당장 멈춰드릴 수도 있어요. 금서에 관해서 말해준다면 말이죠.”

“죽・・・여라.”

수리부엉이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답했다.

“하여간, 당신들은 하나같이 쓸데없이 고집만 세군요. 뭐. 됐습니다. 조금 거칠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요.

지팡이 끝이 수리부엉이의 머리에 닿았다.

우우웅!

보라색 연기가 꿀렁이면서 부리를 통해 스며들었다.

휘청하고.

격렬하게 저항하던 수리부엉이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동공은 풀어졌고, 날개는 축 늘어졌다.

“과연, 그런 거였군요. 이걸로 됐습니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자 니알라토텝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서 자체를 확보하는 게 최선책이긴 했으나………

정확한 위치만 안다면 금서를 손에 넣지 않아도 된다.

술식을 발동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좌표였으니까.

이걸로 모든 퍼즐이 갖춰졌다.

***

“제기랄.”

진혁이 하늘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순식간에 수리부엉이를 잡아채더니 무언가를 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댄다.

불길한 위화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투척만으론 무리다. 짐이 직접 가서 처리하겠다.”

“저도 도울게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즉시 날개를 펼쳤다.

그래. 익숙하진 않지만, 공중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지상에서 하는 공격은 너무나 제한적이었으니까.

“구마야.”

진혁이 고구마를 불렀다.

하지만.

“모, 모기….”

고구마가 두려운 듯 몸을 가늘게 떨었다.

조금이라도 에테리온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듯 온몸을 잔뜩 웅크렸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인데.

그 정도였단 건가. 세 번째 침식이.

“상상을 초월했다. 고귀한 이 몸조차도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말랑흑두루미 역시 긍지 높은 사방신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미요오.”

“진짜야 주인. 저건 그냥… 절망 그 자체였어.”

후라이드와 정령수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미 여러 차례 본신으로 현현하느라 막대한 생명력을 쏟아부은 고구마. 때문에 이번에는 본신으로 돌아가 싸우는 방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덜덜덜.

진혁이 떨고 있는 고구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모기?”

고구마가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무서운 거 알아. 누구보다 저 녀석에 대해선 너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분노와 허무라는 감정만이 남아 있는 최강의 과거.

눈앞에 보이는 에테리온은 고구마의 전성기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거 알아? 많은 것을 버렸지만, 다양한 감정을 익히고, 여러 추억을 쌓은 지금의 네가… 훨씬 더 강하다는 거.”

최후의 전투를 치러야하는 순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지금의 고구마다.

믿을 수 있는 동료.

사선을 함께 넘어야 하는 전우는 단순히 강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감정 없는 살육 병기 따위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가자.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이번에도 함께 싸우는 거야.”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함.

움츠렸던 꼬리가 살랑이고, 접혔던 날개가 활짝 펴졌다.

“모기!”

고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혁을 태운 채 힘차게 날아올랐다.

차가운 바람이 마지막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전방에서 ‘부유하는 흑안’이 만들어낸 수많은 광선이 번쩍였다.

보랏빛 빛줄기들이 지상을 향해 끝없이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끝장이다.

최상위 실드나 방어마법도 엿가락처럼 녹여버리는 종류였기에,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히이익!”

“다들 조심해!”

말랑흑두루미와 정령수들이 요리조리 몸을 날렸다.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군요.”

“3분 이상 회피 성공율이 11.55%야. 응.”

각각의 위에는 월영과 프레이를 포함한 전투 인형들이 타 있었다.

“모조리 떨어트려 드리겠습니다.”

니알라토텝이 지팡이를 내리쳤다.

쿠웅!

검은 파장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부유하는 흑안’ ‘절규의 파장’이 발동합니다!]

“키에에에!”

“케에에!”

끔찍하게 생긴 조류들이 달려들었다.

악령과 몬스터들을 그대로 뒤섞어 만들어낸 것만 같다.

[3번 눈을 마주치면 영혼이 빨려 나가는 괴담이 발동됩니다!]

[일행과 10m의 거리가 멀어지면 적대심이 생기는 괴담이 발동됩니다!]

변형된 온갖 저주들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부 자잘한 것들이다.

파츠츠!

진짜는 부유하는 흑안에 모여드는 저 검보라빛 구체

니알라토텝의 혼을 일부 잘라내 집어넣은 섬멸기.

저건 반대로 피하면 안 되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지면에 닿는 순간. 침식이 진행되는 이 세계 자체를 붕괴시켜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다. 

콰콰콰콰콰!

온 세상을 물들이는 빛이 쏟아졌다.

“바보 성녀!”

“갈게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고유성창을 개방했다.

피와 신성력.

절대자를 상징하는 두 개의 속성이 동시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충격이 반경 1km가 넘는 소닉붐을 만들어냈다.

“크윽!”

“아악!”

전력을 다했음에도 견디기 힘들다.

끔찍한 고통이 전신의 신경을 자극했다.

“밀리면… 안 되느니라.”

엘리스의 머리 위로 피로 그려진 혈계 마법이 연이어 펼쳐졌다.

빛줄기를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도울게요.”

테레사가 혈계 마법진의 각 끝에 황금빛 십자가들을 소환했다.

‘성호’에서 뿜어진 신성력이 핏방울과 공명했다.

본래라면 상극의 속성.

서로를 갉아먹으면 먹었지. 절대 시너지를 낼 수 없는 조합이다.

그러나.

쿠쿠쿠쿠쿠쿠!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이어진 유대는 속성의 상극마저 뛰어넘었다.

“키에에에!”

“케에에!”

그러자 이번엔 백설 여자 고등학교에 머무는 악령들이 달라붙었다. 극한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지금. 작은 변수라도 치명적이었다. 

“어림없다.”

서걱!

서슬퍼런 목소리와 함께 월영이 악령과 원귀들을 베어냈다.

[월영이 ‘음영극살’을 발동합니다!]

“잘한다. ts암살자!”

“정령수들을 무시하면 아주 그냥 ᄌ되는 거야!”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 역시 전투 모드로 들어갔다.

엘리스와 테레사가 온전히 빛을 막는 데 전력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것이 월영과 정령수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도마뱀. 우린 저기 괴조를 막아야 해. 응.”

“도마뱀이 아니라 긍지 높은 사방신이니라!”

[말랑흑두루미가 ‘기상개변’을 발동합니다!]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며 괴조와 악령들이 밀집한 곳에 작렬했다. 견딘다.

그것이 영혼까지 불태워버리는 겁화 속이라도.

모두가 내어준 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콰콰콰콰!

폭풍을 뚫고 날아간 진혁의 앞에 에테리온이 나타났다.

“크오오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포효.

[에테리온이 ‘단죄의 검역’을 소환합니다!]

쿠쿠쿠쿠쿠!

무수히 많은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덜덜덜. ‘차원 브레이커’의 권능까지 스며 들어가 있는 터라, 하나하나의 검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구마의 등이 가늘게 떨렸다.

아직까지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거겠지.

진혁이 떨리는 등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괜찮아.”

두려워 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모기이이!”

[고구마가 ‘단죄의 검’을 소환합니다!]

공간이 갈라지며, 고구마의 성명절기가 나타났다.

작다.

눈앞에 만들어진 수많은 검들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다.

하지만.

파츠츠!

둘 사이에 이어진 기억과 감각.

그리고 그걸 통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검.

[만상공유 ‘단죄의 검’이 소환됩니다!]

두 번째 단죄의 검이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철컹!

하나뿐인 작은 검에 새로운 검이 융합된다.

마치, 갑주를 입은 것처럼. 이글거리는 화염 위로 새로운 검이 합쳐졌다.

***

한 차원을 지배하는 지배종.

자신을 억압하고 배신했던 수많은 종족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뒤, 공허뿐인 세계를 완성시켰다.

복수는 했지만… 남는 건 없었다.

모든 게 사라진 세상. 허무와 분노를 토해내는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때.

낯선 침입자들이 나타났다.

정령수와 고대종에 사방신까지.

흔히 보기 힘든 조합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따로 있었다.

-나?

익숙한 자아의 냄새.

틀림없다.

저 까맣고 작은 생명체는 틀림없는 자신의 일부였다.

다른 차원.

그래. 그렇게 가정하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침입자들은 그 뒤에 한참이나 자신을 성기시게 했다.

몇 번이고 소멸시키려 했지만,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 다른 차원으로 끌려왔다.

바로 거기서.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째서냐.

에테리온이 날아오는 고구마와 진혁을 바라봤다.

쇄도한다.

엄청난 마력을 온몸으로 뚫어내면서.

둘이서 만들어낸 한 자루의 검이 단죄의 검역을 뚫어내며 앞으로 향했다.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란 배신의 상징.

그런데 어째서 둘이 함께 하고 있는 걸까?

어찌하여 저렇게 꼭 붙은 채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단 말인가.

뚫린다.

파훼된다.

계속해서 검역의 중심을 향해 다가온다.

-그 상처와 굴레를 짊어지고도,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나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온다.

“힘내! 거의 다 왔어!”

“모기이이!”

화아아악!

화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나.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인간.

둘은 이미 하나였다.

-이해할 수 없다.

어찌하여.

-그토록 타오르는 눈빛과 꺾이지 않는 신념을 가질 수 있단 말이냐.

부럽다.

자신은 가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저 믿음과 유대가.

콰콰콰콰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불타는 검.

“뭐 하는 것이냐! 에테리온!”

니알라토텝의 사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에테리온은 묵묵히 둘의 비행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모기이이!”

자신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아직도 무수히 많은 검들이 남아 있었지만, 단죄의 검역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에테리온과 에테리온이 서로를 마주 봤다.

-나에게도 너와 같은 인연이 있었더라면,

믿을 수 있는 이 상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단 한 명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푹!

살 속을 파고드는 뜨거운 열기.

마지막 유언이 허공을 따라 흩어졌다.

투콰아앙!

에테리온의 심장이 있는 부위에 거대한 바람구멍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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