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16화 : 위기 초래(1)
위기 초래(1)
“너 저거 먹어 봤어?”
“저게 뭔데?”
“생선 살로 소를 만든 어육 만두야. 고기를 넣어 만든 것 보다 담백하고 뒷맛이 깔끔해.”
“오호, 그래? 그럼 이 식신님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청운학관으로 들어서는 입구.
그 맞은편에 전에 없던 허름한 수레가 한 대 보였다.
뭘 찌는지 그 위로 뽀얀 김이 풀풀 피어올랐다.
“어육 만두 두 개요.”
“이쪽은 세 개요.”
수레 앞에 모여 선 관도들이 바쁘게 주문을 넣었다.
막동이는 정신없이 만두피 안에 미리 만들어 둔 어육소를 넣고 만두를 빚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일일 직원을 자처한 설우진이었다.
“주문한 어육 만두 나왔습니다. 맛있게들 먹 고 많이 좀 홍보해 주세요.”
설우진이 맛나게 익은 어육 만두를 종이에 싸 서 관도들에게 건넸다. 관도들은 만두를 호호 불어 가며 정신없이 흡입했다. 고기만두에 익 숙해 있던 이들에게 어육 만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니, 저 수레는?”
터덜터덜 걸으며 학관으로 향하던 초무석이 갑자기 발을 멈춰 세웠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흥행 대박을 치고 있는 막동이의 만두 수레 였다.
‘어제 그렇게 찾아다닐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더 니 여기서 판을 벌이고 있었던 거냐. 이 곱사등 이 자식, 오늘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아 내고야 말겠다.’
초무석이 한껏 인상을 쓰며 만두 수레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막동이가 새로운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정신 없이 만두를 빚느라 미처 그 얼굴은 제대로 확 인을 하지 못했다.
이에 부아가 치민 초무석이 다짜고짜 멱살을 틀어쥐고 얼굴을 들이댔다.
“곱사등이, 내 얼굴 똑바로 봐. 어제 낮에 만 났으니, 아직 잊어 먹진 않았을 거야.”
험악해진 분위기에 주변이 일순 고요해졌다. 학관 안팎으로 악명이 자자한 그인지라 모두들 뒤로 한 발짝씩 물러섰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바로 그때, 만두 배달을 마치고 돌아 온 설우진이 초무석의 등 뒤에서 짜증 섞인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저기요.”
“방해하지 마.”
“방해는 그쪽이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어째 목소리가 귀에 많이 익은데…….”
설우진이 손끝에 힘을 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악력인지라 초 무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무석아,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그게…………… 이, 이 자식이 내 돈을 훔쳤어.”
초무석이 앞뒤 다 잘라 내고 막동이를 도둑으 로 몰았다. 막동이가 그럴 리 없다는 걸 누구보 다 잘 아는 설우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다, 당연하지. 사내새끼가 어디 한입 가지고 두말하겠어? 이 자식한테 직접 물어봐. 내 은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초무석이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막동이를 손 끝으로 가리켰다. 그 험악한 기세에 막동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겁먹지 말고 얘기해 봐. 진짜로 네가 은전을 훔친 거야?”
“……저, 전 훔친 적 없어요. 그냥 저분이 만 두를 사고 낸 돈을 받았을 뿐이에요.”
막동이는 은전을 받게 된 경위를 꽤 소상하게 얘기했다. 이에 발끈한 초무석이 다시 입을 털 었다.
“이 도둑놈아! 세상천지에 만두를 은전 한 냥 에 사는 바보가 어디 있냐.”
정확한 지적이었다.
만두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간혹 비싼 음식점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에 판매가 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찜통 하나당 철 전 십 문 정도가 적정가였다.
“무석이 말대로라면 훔친 거 맞네.”
“착하게 봤는데…..”
“그러니까, 거지한테 동정은 금물이라니까. 조금만 잘해줘도 저렇게 뒤통수를 치잖아.”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막동이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굳어졌던 설우진의 얼굴 에 한 가닥 미소가 번졌다.
“무석아, 방금 전에 은전 한 냥을 주고 만두를 샀다고 했지?”
“응, 그게 왜?”
“정말 모르겠어? 방금 전에 네 입으로 얘기했 잖아. 은전 한 냥으로 만두를 사는 바보가 어디 있냐고. 그 말대로 하면, 넌 철전 일 문에 만두 찜통 하나를 꿀꺽하려고 한 거잖아.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도둑질이지.”
“도, 도둑질이라니. 그땐 바쁘기도 했고, 만두 가격이 얼만지도 몰라서………….”
초무석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부잣집 아들로 부유하게 살아온 그다. 만두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금세 태 세 전환을 했다.
“아, 너무했다. 아무리 만두가 싼 음식이라도 철전 일 문은 아니지.”
“그러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 보면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막동이를 욕하던 이들이 이제는 초무석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어린것들이 벌써부터 냄비 근성에 물들어 있 는 꼴이었다.
그들을 등에 업고 설우진이 최후통첩을 했다.
“분위기 더 나빠지기 전에 사과하고 가라.”
“…..돈은 돌려받아야지.”
“그냥 좋은 일 한번 했다고 생각해. 그 돈 없다고 굶어 죽는 거 아니잖아.”
“내, 내 한 달 치 용돈이란 말이야.”
초무석이 울상을 지었다.
그에게 그 돈은 단순한 용돈이 아니라, 학관 에서의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이었 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잃을 게 너무 많았다.
“꼭 돈을 받아야겠다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 도 아니야. 나대신 네가 저 자리를 차지하면 돼.”
설우진이 막동이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초무석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나보고 지금 만두를 팔라는 거야?”
“응, 장사가 잘돼야지 막동이도 너한테 돈을 돌려줄 수 있을 거 아니야. 뭐, 싫음 깔끔하게 물러가든가.”
설우진이 선택지를 던졌다.
고르는 건 온전히 초무석의 몫이었다.
긴 고민 끝에 초무석이 쭈뼛쭈뼛 막동이 옆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만두 사세요, 만두.”
“저게 그 유명한 대호 장포인가?”
“과연 소문대로군.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것 같지 않은가.”
“정말 대단하이, 대단해. 저 정도면 천자의 곤 룡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세.”
아침부터 설가 포목점 앞은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허수아비가 하 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허수아비에는 설우진 이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던 대호 장포가 걸려있었다.
사실, 그 허수아비는 설우진의 아버지 설무백 이 고안해 낸 물건이었다. 자랑삼아 입고 나갔 던 대호 장포가 지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 으자, 이를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호 장포를 입은 허수아비는 가게 앞을 오가 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자연스레 매출도 늘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가 포목점의 이 름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넘어 무한 전체 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설가 포목점이 연일 맹위를 떨치면서 그 반대 급부로 경쟁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무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 원 포목점의 경우 큰손 단골들이 많이 빠져나 가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고, 그와 더불어 무한 제일의 포목점이라는 수식어까지 설가 포목점 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