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5화 : 억지 기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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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5화 : 억지 기연(1)


억지 기연(1)

추월산 낙영장.

바보처럼 잊고 있었는데 그곳에 외가가 있었 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왕래를 하진 못하지만, 분명 어렸을 때 추월산에 오른 기억이 어렴풋 이 남아 있었다.

“매월아, 고맙다. 네 덕분에 내 고민이 단번에 해결됐다.”

“도련님께 도움이 됐다니 제가 오히려 더 기뻐요. 다음에도 고민거리가 있으시면 저한테 꼭 말씀해 주세요.”

매월이 수줍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이어 설우진도 곧장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손님들 중 태 반은 여인이었다.

설우진은 여인들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별 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별관에서는 예상대로 옷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진아, 네가 여기까진 웬일이니?”

아들의 등장에 놀란 여소교가 작업 틀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우진은 속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릿속 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던 내용을 장황하게 설 명했다.

“음, 그러고 보니 우리 우진이가 외가에 가 본 지도 벌써 삼 년이 훌쩍 지났구나. 그래, 이번 기회에 장씨 아저씨와 함께 다녀오려무나.”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설우진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어머니는 흔쾌히 그의 외가행을 허락했다.

설우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갔다.


히이잉.

이른 아침, 설가 포목점 앞에 마차 한 대가 섰다.

마차의 머리에는 튼실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두 마리의 흑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봇짐을 멘 설우진이 마차를 타기 전, 부모님 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는 담담한 얼굴로, 어머니는 한 가닥 걱정이 남아 있는 얼굴로 그를 배웅했다.

잠시 후, 장씨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부드러운 손놀림에 말들은 큰 동요 없이 서서히 속도를 끌어 올렸다.

설우진은 마차가 움직이는 동안 봇짐 안의 물 건들을 확인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소도와 화섭자 그리고 술. 세 물건은 모두 그가 신중하게 고민해서 준비 한 것들이었다.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물건도 하 나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의 쓰임이 있었다.

추월산행은 순조로웠다.

잘 닦인 대로를 이용한 터라 길을 헤맬 필요 도 없었고 관부의 추계 토벌을 앞두고 있는지 라 산적들도 몸을 사리는지 도통 모습을 드러 내질 않았다.

그런데, 추월산을 코앞에 두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길에 장애물이라도 나타난 건지 장씨가 급격하게 말 머리를 꺾으면서 마 차 바퀴가 빠져 버린 것이다.

쿵!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얼굴이 사색이 된 장씨가 마차로 달려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장씨가 마차 문을 열고 설우진의 상태를 확인 했다. 그런데 의외로 설우진은 멀쩡했다.

“아저씨,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설우진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장씨는 속으 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고가 난 경위를 자세 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앞쪽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단 말이죠?”

“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아마 마차가 그대로 치고 갔을 겁니다.”

‘도대체 누굴까?’

장씨 얘기를 듣고 설우진은 호기심이 동했다. 이 길은 마차들이 주로 오가는 대로다.

그래서 사고가 나더라도 마차와 사람이 함께 있지, 사람만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설우진은 장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로로 올라갔다.

장씨가 말한 사람은 마차에서 오 장 정도 떨 어진 위치에 쓰러져 있었다.

‘죽은 건가?’

설우진이 오른손 검지를 코끝에 갖다 댔다. 미약하지만 가느다란 숨결이 검지 끝에 전해졌 다.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설우진은 옷을 들춰 상처를 확인했다.

‘칼날이 깊게 가슴을 베고 지나갔어. 상흔이 깔끔한 걸로 보아 상대는 상당한 수준의 검술 을 익힌 게 분명해.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자의 수준이 검을 휘두른 자보다 더 높다는 거야.’ 

설우진은 상처의 위치에 주목했다.

가슴에 난 자상은 교묘하게 사혈을 비껴 나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그 위치가 너무 절묘했다.

“도련님, 그만 가시지요. 마차는 부서졌지만 말들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더 늦어지면 외가 댁 어른들이 크게 걱정하실 겁니다.”

설우진이 의문의 사내에 관심이 쏠려 있는 사 이, 장씨가 다가와 출발을 재촉했다.

“아저씨, 이 사람 살아 있어요. 외가가 멀지 않았으니 함께 가요.”

“그래도 될까요?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걸 봐선 무림인 같은데………….”

장씨의 얼굴에 무림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이 묻어났다.

“그래도 산 사람을 버리고 갈 수는 없잖아요. 일단 외가로 데려가서 의원에 맡겨요.”

설우진이 장씨를 설득했다.

그의 황소고집에 결국 장씨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크윽.”

사내가 가슴을 움켜쥐며 몸을 일으켰다.

살점이 찢겨 나간 고통은 독한 약으로도 쉬이 달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긴 수련으로 단련된 그는 짧은 시간에 고통을 억눌렀다.

‘사제들이 날 구한 건가.’

신추명은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비동 근처를 둘러보다 다수의 적들과 맞 닥뜨렸다. 그들은 예상외로 강했다.

하지만 그는 살을 내주는 기만전술로 적들의 숨통을 모두 끊었다. 가슴의 상처가 그 증거였 다.

이후, 그는 사제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힘 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체력이 떨어진 탓 인지 약속된 장소에 닿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저씨, 몸은 좀 괜찮아요?”

바로 그때, 그의 의문을 풀어 줄 당사자가 등장했다.

신추명은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오른손을 허 리로 가져갔다. 하지만 손끝은 허전했다.

“아저씨가 찾는 게 검이라면 밖에 세워져 있 어요. 칼날에 피가 많이 묻어서 씻어야 했거든요.”

설우진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대꾸했다.

그제야 신추명은 경계심을 풀며 자세를 바로했다.

“네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니?”

“네, 마침 외가로 가는 길이었거든요.”

“상처가 중해서 치료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

“외조부님 솜씨예요.”

설우진도 외가에 와서야 기억이 난 사실인데, 그의 외조부 여철환은 황궁 내의원 출신이었다 황궁 내의원은 전국의 의원들 중에서도 자질 이 빼어난 이들을 선별해 뽑기 때문에 그 수준 이 상당히 높았다.

신추명이 정신을 잃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고 도 며칠 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런 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네게 큰 신세를 졌구나, 고맙다.”

신추명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어린아이라 하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에 그는 감사의 예를 다했다.

‘역시, 정파 쪽 사람인가.’

설우진은 예를 표하는 신추명을 보며 그의 출신이력을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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