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8화 : 전초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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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2권 – 8화 : 전초전 (2)


전초전 (2)

캉.

간발의 차이로 남궁벽의 검이 하후 령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하후령을 구해 낸 검의 주인은 조인창이었다. “비켜.”

남궁벽이 쫙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 조렸다.

그는 이대로 하후령을 무사히 돌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상대는 술 취한 사람이잖아. 화풀이를 하더라도 술 깬 뒤에 하면 안 될까?”

조인창이 힘겹게 검을 밀어내며 남 궁벽을 설득했다. 하지만 꼭지가 돌 아 버린 상황에서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비키지 않으면 너도 벤다.” 

남궁벽이 경고했다.

하지만 조인창은 고집스럽게 설득 을 이어 갔다.

-야, 그쯤하고 물러나. 지금 그 자 식 완전히 눈 돌아갔어. 입학 첫날 부터 의원 신세 지고 싶지 않으면 내 말 들어.

조인창의 뇌리에 설우진의 다급한 전음이 전해졌다.

-마음은 고마운데 못 비키겠어. 위기에 처한 이를 두고 물러서는 건 협객이 할 짓이 아니거든.

조인창은 끝내 설우진의 충고를 무 시했고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남궁벽은 진짜 죽일 듯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 르고 거친 공격이었다. 이에 조인창 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렵사리 검을 받아 내고는 있었지만 그때마 다 손목이 조금씩 꺾이고 입술 새로 앓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쯧쯧, 저렇게 당할 거면서 왜 나 서서는. 하여간 오지랖 넓은 놈들은 어딜 가서든 손해날 짓만 한다니 까’

설우진은 위기에 처한 조인창을 담 너머 불구경하듯 바라봤다. 그의 실 력이면 충분히 위기에 처한 조인창 을 구할 수 있었지만 오늘 처음 본 동기를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뗄 만 큼 그는 오지랖이 넓지 못했다. 

“술이나 마셔야지.”

눈앞의 활극을 안주 삼아 설우진은 술잔을 들었다. 분주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 찰랑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눈앞으로 사나운 검풍이 휘몰아쳤다. 조인창 을 향한 남궁벽의 회심의 일격이었 다.

한데 공교롭게도 조인창이 그 검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게 되면서 검풍이 의도치 않게 설우진의 술상을 덮 치고 말았다.

촤악.

그 여파로 설우진의 얼굴에 분주가 시원하게 끼얹혔다. 얼굴 전체에 흘 러내리는 분주. 설우진은 순간 꼭지 가 돌았다.

“이 새끼가 조준도 못할 거면서 왜 검풍은 날리고 지랄이야.”

설우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남궁벽 에게 달려들었다.

남궁벽은 새로운 방해꾼의 등장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검을 바로 세웠 다.

그런데 수비검세를 제대로 취하기 도 전에 벼락같이 설우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 정도로 주먹이 빠를 거라 예상치 못하고 있었기에 그의 반응은 평소보다 반 박자 정도 늦었 다.

퍽.

남궁벽의 얼굴 한복판에 설우진의 주먹이 꽂혔다.

그 충격으로 남궁벽의 몸은 속절없 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 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천하의 검귀 가 주먹 한 방에 정신을 잃은 것이 다.

누구도 예상 못한 뜻밖의 상황에 환영연에 참가한 모든 이들은 한순 간 말을 잃고 멍하니 설우진을 바라 봤다. 남궁벽이 방심을 하고 의표를 찌른 기습이라 해도 눈앞의 상황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 신입 관도는 뭐지?’

‘어떻게 검귀를 주먹 한 방으로 기절시킬 수가 있지?’

‘이거 안 좋은데. 검귀보다 더한 경쟁자의 출현이라니.’

설우진을 바라보는 시선들엔 여러 가지 감정이 실려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부터 약간의 적의가 실린 경 계심까지. 하지만 설우진은 그 모든 시선들을 무시하고 본래 자신의 자 리로 돌아갔다.

소란은 금세 수습이 됐다.

백무영이 중천회의 간부들로 하여 금 소란의 주인공이었던 두 사람을 밖으로 옮긴 것이다.

그 후 다시 술상이 차려졌다.

신입 관도들은 아까의 소란은 벌써 잊은 양 다시 술잔을 돌리며 환영연 을 즐겼다.


“아까 보여 준 움직임 꽤나 인상적 이던데, 어디서 배운 무공이지? 신 입 관도 명부에는 무가 출신이 아니 라고 적혀 있던데.”

새로 술상이 차려지자 백무영이 설 우진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손에는 잘난 놈들에게 따라 주던 설화주가 들려 있었다.

‘이 돼지는 왜 갑자기 친한 척이 야. 아까는 싸구려 술 던져 주면서 아는 척도 안 하더니.’

설우진은 눈앞에서 알짱대는 백무 영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싫어도 눈앞의 설화주를 마다할 수 는 없기에 형식적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어릴 때 잠깐 인연을 맺었던 낭인 에게 배운 호신공입니다. 제가 당시 에 애들한테 자주 맞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본 낭인이 맞고 다니지 말라 며 알려 줬습니다.”

“음, 진짜 일개 낭인이 그런 수준 높은 무공을 가르쳐 줬다고?”

백무영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상대가 누군가.

남궁세가의 차남이자 차기 제왕검의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남궁 벽이다. 한데 그 남궁벽을 한 방에 쓰러뜨린 주먹이 낭인에 의해서 전 수됐다? 그의 관점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 새끼가 낭인이라고 하니까 대 놓고 무시를 하네. 낭인들이 내공이 딸려서 그렇지 맨몸으로 붙으면 너 희처럼 돈으로 무공을 배운 놈들은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어.’

설우진은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이제는 낭인과는 거리가 멀어진 삶 이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속엔 낭인 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각인돼 있었 다.

“뭐, 누구한테 배웠든 상관없지, 내가 주목하는 건 그 재능이니까. 설 우진, 우리 중천회로 들어와라. 본 회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너의 학관 생활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거다.” 

백무영이 중천회 가입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주변에 앉아 있는 신입 관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설우진에게 쏠렸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 다.”

“이유가 뭐지?”

백무영이 날 선 눈빛으로 물었다.

“전 체질적으로 조직 생활이 맞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지시에 이끌려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거 딱 질색 입니다.”

설우진은 모든 게 척박했던 낭인의 삶 속에서도 유일하게 한 가지만은 무척 맘에 들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였 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 과연 학관 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넌 이제 들어와서 잘 모르겠지만 황룡 학관은 무림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로 그 생리가 꼭 닮 아 있다. 그 말은 곧 힘이 없으면 밟혀 죽는다는 뜻이지.”

‘안 들어오면 밟아 죽이겠다는 소 리로 들리네.’

“전 잡초 같은 놈입니다. 누가 밟 아 대든 견뎌 낼 자신이 있습니다.”

설우진은 백무영의 협박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에 백무영의 얼 굴빛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지금 그 말, 곧 뼈저리게 후회하 게 될 거다. 이 황룡에서 내 심기를 거스르고 무사히 졸업한 이는 아무 도 없었다.”

“후훗, 그럼 제가 최초의 일인이 되겠군요.”

“너, 너 이 자식!”

백무영이 분을 참지 못하고 상을 틀어쥐었다. 성난 손가락이 상 안으 로 파고들어 깊은 생채기를 냈다. 천하 상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소유욕이 남달랐다. 원 하는 게 있으면 그게 뭐가 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었 다.

그런데 황룡 학관에 입학한 뒤로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소위 명문가 출신 의 관도들은 그가 휘두르는 황금의 힘에 끄떡도 않았다.

그때마다 백무영의 자존심은 뭉개 졌고 뭉개진 자존심은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열등감이란 낯선 감정으 로 변모했다.

“선배님, 그쯤 하시죠. 입관 환영연 라고 불러 놓고서 이렇게 후배 닦달 하는 거 보기 안 좋잖아요. 다른 애 들도 다 보고 있는데.”

설우진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제야 백무영은 자신에게 쏠려 있는 수십 개의 시선들을 느낄 수 있 었다.

‘빌어먹을! 이 자식이 뭐라고……… 너무 흥분했어.’

백무영은 다급히 사태 수습에 들어 갔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분위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 사이 설우진은 백무영이 가져온 설화주를 은근슬쩍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얄밉게 말을 툭 뱉었다.

“선배님, 많이 취하신 것 같으니 이 술은 제가 접수하죠. 캬, 술맛 죽여주네요.”

“명월루에서 백무영이 크게 당했다고?”

“네, 우리 쪽 신입 관도들 중 몇몇 이 입관 환영연에 참석을 했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무영이 설우진이라는 신입 관도한테 제대로 망신을 당했 다고 합니다.”

“설우진? 우리 쪽 영입 명단엔 없 었던 이름 같은데.”

“상가 출신이라 영입 명단에서 빠 져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된 방 안.

한 폭의 미녀도를 연상케 하는 흑 발의 여인이 매끈한 다리를 한껏 드 러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느 여인과 차별화되는 구릿빛 피부가 도발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녀는 남천회의 회주직을 맡고 있 는 소예상이었다.

패천성에서 갈라져 나온 패황보의 천금으로, 아름다운 외모와는 어울 리지 않게 싸움을 즐겼다. 덕분에 그녀의 이름 앞에는 광투신녀라는 아름답지 않은 별호가 붙었다.

“이거 구미가 당기는데. 녀석하고 한번 자리를 마련해 봐.”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십니까?”

“조직 생활이 싫다고 했다면서. 난 싫다는 놈 억지로 끌고 올 생각 없 어. 그런 놈들은 되레 조직력을 해 치기 마련이거든.”

“그럼 왜…..?”

“그냥 개인적인 관심이야. 신경 끄고 약속이나 잡아 놔.”

소예상은 손을 휘휘 저으며 선을 딱 그었다.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설우진 을 만나려는 것일까.


“본 관의 수업 과정은 지금 나눠 준 일정표대로 진행될 거야. 과목을 착각해서 다른 교실에 들어가는 일 이 없도록 꼼꼼하게 확인해.”

신입 관도들이 한자리에 모인 교 실.

인자 조 담당이라고 스스로를 밝 힌 미모의 여인이 학생들에게 수업 일정표를 나눠 줬다.

지원과별로 설우진은 문과표를, 옆 자리의 조인창은 무과표를 받았다.

“뭔 놈의 수업이 이렇게 빡빡해. 점심시간 빼놓고는 쉴 틈이 전혀 없 잖아.”

설우진은 빈틈없이 채워진 일정표 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수업은 사시 초부터 유시 말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공란이 있는 곳은 점심시간으로 정해져 있 는 정오가 유일했다.

수업을 받기도 전에 숨이 턱턱 막 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수업 일정표의 끝자락 에 시선이 꽂혔다. 그곳에는 ‘문무겸전의 인재 양성’이라는 다소 추상 적인 느낌의 수업 과목이 적혀 있었 다.

‘이 과목은 대체 뭐지? 다른 과목 들과 달리 일주일 내내 수업이 잡혀 있잖아.’

“인창아, 이 수업 뭐냐?”

설우진이 옆자리의 조인창을 불렀다.

입관 환영연에서의 인연으로 두 사 람은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되어 있었 다.

“아, 그거, 인 자 조만의 전통인데 기본적인 지식 함양과 신체 단련을 목적으로 한다고 들었어.”

“굳이 그런 수업이 필요가 있나? 이곳에 들어올 정도면 다들 기본은 완성된 상태일 텐데.”

“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 데 선배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수업 이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기초라고 쉬이 덤볐다가 유급 맞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래.”

조인창은 입관 환영연에서 눈에 띄 는 행동을 한 뒤로 사파 출신 선배 들에게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덕분 에 남천회에서 주최하는 또 다른 형 태의 입관 환영연에 초대되기도 했 다. 그곳에서 조인창은 설우진이 필 요로 하는 쓸 만한 정보들을 많이 물어 왔다.

“선배들이 그 수업에선 담당 학사님을 조심하라고 하던데. 성격이 보 통이 아니래.”

“이름이 뭔데?”

“확실하진 않은데 선배들은 적사호 라고 했어. 지난 군림마천과의 전쟁 에서 꽤 큰 활약을 펼쳤다고 하던 데.”

‘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군 림마천과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 면 내가 그 이름을 모를 리 없는 데.’

생소한 이름에 설우진은 고개를 갸 웃거렸다.

군림마천과의 전쟁은 강호에 새로 운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한데 그들 중 적사호란 이름을 가진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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