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23화 : 녹림 혈사 (2)
녹림 혈사 (2)
“거 안됐군. 하필이면 거친 사내놈 들이 넘쳐 나는 이곳에서 납치를 당 하다니. 아마 곱게 돌아가긴 힘들 거야. 납치된 계집들의 말로는 빤하거든.”
“네놈도 그런 짓을 많이 했나 보 “지?”
“뭐, 이 몸이 남들보다 정력이 넘 쳐나거든. 그래서 한 여자로는 감당 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계집들을 수시로 갈아 줘야 하지.”
차승후가 의도적으로 사타구니를 매만졌다.
“그 물건이 꽤나 자랑스러운 모양이지?”
“내 평생에 나보다 큰 놈을 본 적 이 없다니까.”
“그럼, 그게 떨어져 나가면 가슴이 무척 아프겠네?”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어떤 미친 놈이 내 물건에 손을 대겠어!”
“여기 있잖아. 그 미친놈!”
타닥.
설우진이 힘차게 바닥을 찼다. 순 간 그의 발끝에서 뇌기가 휘몰아쳤 다. 그 반동으로 설우진의 신형은 한줄기 바람처럼 빠르게 정면으로 치달렸다.
순식간에 좁아지는 두 사람의 거리.
설우진의 허리에서 천뢰도가 번뜩 이며 솟구쳤다. 천뢰도는 긴 호선을 그리며 차승후의 미간을 노렸다.
예기치 못한 기습에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지만 차승후는 침착하게 등에 매고 있던 두 자루의 도끼를 교차시 켜 미간으로 들이치는 천뢰도를 막 아 냈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차승후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렸다.
‘뭐, 뭐야! 이 괴물 같은 힘은.’
차승후는 이를 악물고 두 다리를 힘을 줬다. 자세를 고정시켜 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힘 줄이 돋아나도록 힘을 쓰는데도 두 다리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뒤로 쭉 밀려났다.
차승후는 할 수 없이 단전을 열었 다. 웅혼한 내기가 전신 혈도로 빠 르게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차승후가 오른발을 박차며 뒤로 밀리던 신형을 앞으로 반전시 켰다. 그리고 교차되어 있던 도끼를 위로 밀어내며 정면에서 들이치는 천뢰도를 튕겨 냈다.
“이놈, 감히 날 화나게 하다니! 파 천부법으로 네놈의 머리통을 단박에 부숴 주마.”
반격의 기회를 잡은 차승후가 수비를 도외시한 파천부법으로 설우진을 압박했다.
파천부법은 한 방 한 방이 일격 필살의 기세를 담고 있었다.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옷이 터져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설우진의 표정 은 여유로웠다. 맞을 생각 따위 없 다는 듯, 묘기에 가까운 반응 속도 로 도끼를 흘려보냈다.
‘빌어먹을, 왜 맞지를 않는 거야? 내력도 다 소진되어 가는데.’
싸움이 길어질수록 차승후의 얼굴 빛은 어두워져 갔다.
파천부법을 펼칠 때만 해도 눈앞의 애송이 따위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뛰어난 무공이었고 숙련도 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다. 분명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는데 눈 앞의 애송이는 절묘한 움직임으로 모두 피해 냈다.
“아까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갔 지?”
“다, 닥쳐라!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그럼 어디 이 공격 도 받아 보시지.”
설우진이 천뢰도에 뇌기를 끌어모 았다. 손끝을 타고 흘러나온 뇌기가 한 마리 용으로 분해 도신을 감쌌 다.
타핫.
설우진이 천뢰도를 힘차게 내리그었다.
벽력도강을 머금은 천뢰도는 화려 한 빛을 뿌리며 차승후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이에 차승후도 마지막 절초로 맞섰 다.
파천부법의 모든 오의가 집약된 붕 천이었다. 도끼날에 선명한 강기가 맺혔다.
이윽고, 두 강기가 정면으로 맞닥 뜨렸다.
“크윽.”
차승후의 입술 새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급속하게 빠져나가는 내력 탓에 단 전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낀 것이다. 그에 반해 설우진은 담담했다. 이 정도로는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오히려 벽력도강을 더 사납게 끌어 올렸다.
휘리릭.
힘에서 밀린 두 자루의 철부가 차 승후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얼마 나 손아귀에 힘을 줬는지 껍질이 다
벗겨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차승후는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에 설우진은 그가 패배를 실감할 수 있도록 처음에 공언했던 대로 칼 끝을 그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천뢰도가 그 의 사타구니를 갈랐다. 천뢰도를 감 싸고 있던 뇌기 덕분에 차승후가 그 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물건은 피 한 방울 튀지 않고 깔끔하게 몸에서 떨 어져 나갔다.
“크아악!”
차승후의 애절한 비명이 수차산을 쩌렁하게 울렸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설우진이 백대호를 지목했다.
백대호는 반짝 군기 든 모습으로 자신의 이름을 재차 밝혔다.
“너도 저 꼴 나고 싶지 않으면 이 산 전체를 뒤져서라도 놈들의 흔적 을 찾아내. 놈들도 사람인 이상 아 무리 조심을 했어도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어.”
“저희 애들만으론 인원이 조금 부 족할 듯싶은데요?”
“그럼 저 새끼들도 데려다 써.”
“제 말을 들으려 할까요?”
‘이놈, 무식하게 생긴 것답지 않게 머리 좀 굴리는데.’
설우진은 단번에 백대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힘을 실어줬다. 그 편이 단예를 찾 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단, 기한은 반나절이다. 날이 완전 히 저물 때까지 놈들의 흔적을 찾아 내지 못하면 그때는 너도 저놈과 똑 같은 신세가 될 거다.”
설우진이 천하를 잃은 듯한 표정으 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차승후를 가리켰다. 이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 던 백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아직은 좋아할 때가 아니야. 저 위험한 놈을 눈앞에서 치워 내기 전까진 절대 안심할 수 없어.’
“다들 귓구녕 활짝 열고 잘 들어 라. 지금부터 뿔뿔이 흩어져 다수의 인원이 움직인 흔적을 쫓는다. 아마 도 정상적인 상행로보다는 약초꾼들이 이용하는 좁은 소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흔적이라도 좋 으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모두 가 져와라. 가져온 물건이 여기 계신 공자님을 만족시킨다면 부상으로 금 자열 냥을 내릴 것이다.”
금전 열 냥이라는 말에 산적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간부가 아 니고서야 산적들도 그 정도의 거금 을 손에 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 다.
잠시 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산적들이 앞다퉈 산채 밖으로 뛰어 나갔다.
“철 형, 우리는 여기 왜 온 거요?”
사도치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철운성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민망하기는 철운성도 매한 가지였다.
역마삼귀는 설우진의 호위 무사로 고용된 이후 아무것도 한 게 없었 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우진은 학관 에서 살다시피 했고 수업이 끝난 뒤 에는 집으로 돌아와 거의 밖으로 나 가질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좋았다.
일을 안 해도 설우진은 꼬박꼬박 월봉을 챙겨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 기한이 달을 넘어가자 못 견디게 무료해졌다. 당장에라도 호위 무사를 때려치우고 도망가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딱 그렇게 미쳐 가고 있을 때, 희 소식이 전해졌다.
설우진이 납치된 여동생을 찾기 위 해 수차산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세 사람은 다급히 설우진을 찾아갔 다. 설우진은 마땅찮은 기색이었지 만 끝내 동행을 허락했다.
“철형, 여기 있어 봐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도 그 흔적이나 찾으러 갑시다. 추종술이라면 또 우 리 쪽 전문 분야 아니오!”
맹기담이 산적들을 따라갈 것을 제 안했다.
그의 말대로 낭인들 중에는 추종술 에 능한 이들이 꽤 많았다.
“음, 그래도 호위가 하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까 싸우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 가 나오시오? 아마 산적 놈들이 떼 로 덤볐어도 설 공자의 얼굴에 생채 기 하나 내지 못했을 것이오.”
사도치의 반문에 철운성의 시선이 설우진의 등에 꽂혔다. 격렬한 싸움 을 치렀음에도 그의 등에는 땀의 흔 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 후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철운 성을 필두로 한 역마삼귀가 산채를 빠져나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방 안.
홀로 남겨진 단예가 불안한 얼굴로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아직 도 그때의 장면이 잊히지 않는지 마 치 오한이 온 사람처럼 몸을 바들바 들 떨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애가 저 모양이냐?”
고대기가 단예를 가리키며 힐책하 듯 물었다.
이에 관해철은 억울하다는 표정으 로 변명을 늘어놨다.
“가주님, 괜한 오해입니다. 전 그저 상행의 책임자를 벴을 뿐입니다. 저 계집은 우연히 그걸 목도한 거고.”
“정말 그냥 벤 거냐? 아까 보니까 옆구리에 상처가 좀 나 있던데.”
“그, 그건…….”
“이 자식아, 성질 좀 죽여라. 부가 주라는 놈이 감정에 치우쳐 제멋대 로 날뛰면 어쩌자는 게냐!”
고대기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관해철을 자신의 후계자로 여 기고 있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터라 그만큼 관해철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한데 관해철은 무공에 대한 재능은 뛰어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 숙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다혈질적 인 성격이 문제였다.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관해철이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에 고대기도 더는 그 일을 추궁치 않았다.
“손님들은 언제 오기로 했지?”
“사흘 됩니다.”
“그자들만 오지는 않겠지?”
“제 몸을 끔찍하게 여기는 인간들 이니 아마도 적잖은 숫자의 호위를 달고 올 것입니다.”
“그럼, 저 계집을 넘겨주기 전에 잔금부터 확실히 확인해. 공작을 꾸 미기 좋아하는 놈들일수록 막판에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농후하거든.”
고대기는 자신에게 일을 맡긴 벽라 점의 수석 장인들을 신뢰하지 않았 다. 자신들과 비슷한 부류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저 계집 뭐라도 먹여. 의뢰인 앞에 데려다 놓기도 전에 쓰 러지면 곤란하니까.”
“네.”
“이게 뭐지?”
설우진이 털 뭉치를 집어 들었다. 옆에서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서 있 던 백대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누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엿보 이는 걸로 보아 이 근처에서 서식하 는 황호의 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이번 일과 황호의 털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털이 발견된 곳이 호랑이가 다닐 수 없는 가파르고 좁은 소로였습니다.”
“그럼, 호랑이가 남긴 흔적이 아니 라 인간이 남긴 흔적이다?”
“네. 녹림의 간부들 중에 황호의 털로 옷을 지어 입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이 옷도 황호의 털가죽으로 만든 것입니다.”
백대호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얼룩덜룩한 줄무늬. 백대호가 가져 온 황호의 털과 거의 일치했다.
“털이 발견된 지점이 어디지?”
“수차산과 백령산을 잇는 경계입니 다. 보통은 길이 험해서 잘 이용을 하지 않는데 동선을 들키지 않으려 고 일부러 그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백령산에서 활동 중인 녹림 세력이 있나?”
“녹림십팔가 중 하나인 광룡가가 있습니다.”
“광룡가?”
설우진은 그 이름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일전에 그들과 만난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설마, 그 자식들이 그때의 앙갚음 을 하려고 예아를 납치한 건 아니겠 지?’
설우진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광룡가는 일품점과 천중 상단에 큰 원한을 갖고 있다. 단예는 일품점의 중요한 재원이자 가족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두고 가정해 봤을 때, 광룡가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은 매우 컸다.
“여기서 광룡가까지 얼마나 걸리 지?”
“정상적인 길을 이용한다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족히 반나절은 소요될 겁니다.”
“그럼 정상적이지 않은 길은?” “음,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협 정도의 실력자라면 대략 두 시 진 정도………….”
“안내해.”
설우진이 백대호의 말을 중도에 끊으며 다급히 길잡이를 명했다.
“대,대협,저 말고 길눈이 밝은 제 부하를 데려가시지요. 염탐과 척 후가 전문인 녀석이라 길잡이론 제 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