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16화 : 북경 풍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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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16화 : 북경 풍운 (1)


북경 풍운 (1)

북경은 대명천자가 머무는 땅이다. 그런 만큼 전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 태반은 상인이 고 나머지는 나라의 녹을 먹기 위해 상경한 문인들과 무사들이었다. 

“이곳이 대명천자가 머물고 있다는 북경인가? 뭐, 무한하고 크게 다를 것도 없네!”

넓게 뻗은 대로 한복판. 등에 두툼 한 봇짐을 맨 설우진이 주변을 이리 저리 둘러봤다.

긴 세월 낭인 생활을 해 오면서도 묘하게 그는 북경과 인연이 닿질 않 았다.

“거기, 잘생긴 총각, 보아하니 북경 에 처음 올라온 모양인데, 이리 와 서 물건들 좀 구경하지! 촌구석에선 구경도 못 해 볼 진귀한 물건들이 수두룩해.”

설우진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상인 하나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쪽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 는지 그의 혀는 기름을 바른 듯 유 들유들했다.

설우진은 호기심에 좌판 쪽으로 발 걸음을 향했다. 어차피 경연까지는 하루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의도한 대로 설우진이 좌판으로 다 가오자 상인은 익숙한 솜씨로 좌판 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소개 하기 시작했다.

“여기 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설의 막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 을 견고함과 예리함을 자랑하네. 자, 이 돌을 보게.”

상인은 검을 하나 뽑아 들더니 좌 판 한구석에 놓여 있던 돌을 향해 힘차게 내리쳤다. 보통의 청강장검 이라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튕 겨져 나올 게 뻔했다.

한데 상인이 자신 있게 내보인 검은 돌을 시원하게 반으로 갈랐다.

“하하하, 봤나? 이런 검은 유명한 철기방에 가도 구하기 힘들 걸세!” 

“가격은 얼맙니까?”

“보아하니 주머니도 그리 넉넉해 뵈지 않는데, 은자 일백 냥만 내게.” 

상인은 인심 쓰듯 금액을 제시했 다.

그런데 설우진의 표정이 묘했다. 분명 바위를 무 자르듯 하는 검을 은자 일백 냥에 가져간다는 것은 거 저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검은 천금을 주고서도 구하기 힘들 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건가? 시험을 치르러 왔으면 적어도 은자 오십 냥 정도는 챙겨 왔을 텐데.’

상인의 눈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 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 니 가격을 절반으로 낮춰 다시 제시 했다.

“오십 냥 이하로는 절대 안 되네.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음, 그럼 자네가 지불할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얘기해 보게. 내 최 대한 맞춰 봄세.”

상인이 마지막으로 값을 흥정했다. 이에 설우진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입고 있는 옷이 고급져 보여서 돈 이 좀 있는 줄 알았더니, 개털이었군.’

“알았네. 내 젊은이를 위해 봉사하 는 셈 치고 은자 열 냥에 넘기지.” 

상인은 은자 열 냥으로 최종 가격 을 결정했다. 그런데 설우진이 고개 를 가로저으며 대화를 이었다.

“이거 왜 이러시나? 그런 싸구려 검을 누가 은자 열 냥이나 주고 산 다고.”

“자,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방 금 전에 보지 않았나, 돌을 두부처 럼 썰어 대던 것!”

“봤지, 이 두 눈으로 똑바로. 근데 그게 돌이 아니고 진짜 두부였다면 어떨까?”

설우진이 상인의 옆을 지나쳐 바닥 에 떨어져 있던 돌 조각을 집어 들었다.

겉 보기엔 영락없는 돌이었다. 그 런데 설우진이 손가락에 힘을 주자 어이없게도 돌이 안쪽으로 움푹 패 여 들어갔다. 거기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돌 부스러기가 전혀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상인의 얼굴이 사납 게 일그러졌다.

‘저 새끼가 안 사려면 그냥 조용히 갈 것이지, 남의 영업 비밀은 왜 파 헤치고 지랄이야.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이제 겨우 나흘밖에 안 됐는데……..’

무기 상인 나철환은 열흘 전에 북 경에 도착했다. 첫날과 둘째 날은 목이 좋은 곳을 찾아 헤매느라 길에 서 시간을 다 보냈고 셋째 날부터는 시전을 관리하는 흑도패를 찾아가 열심히 접대했다.

그런 피나는 노력 덕분에 그는 나 흘 전부터 대로에서 시전으로 이어 지는 길목에 좌판을 펼칠 수 있었 다. 외부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영업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한데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도 전에 악재가 터졌다. 그것은 바로 눈앞의 애송이였다.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꼴이 딱 시 골에서 상경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였는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저놈의 입을 막아야 돼.’

나철환은 사나운 눈빛으로 설우진을 바라보고는 이내 그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속삭이듯 얘기를 건넸다. 

“그쪽을 속인 건 미안해. 나도 먹 고살려고 그런 거야. 대신 이거 받 고 화 풀어.”

나철환이 설우진의 손에 동전을 쥐 어 줬다. 철전 십 문이었다.

“어이, 아저씨, 북경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겨우 요걸로 밥이나 한 끼 제대로 사 먹을 수 있겠어?”

“……그럼 얼마를 원하느냐?”

“북경에 오리 구이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던데…”

‘저 새끼가 지금 누굴 호구로 아 나? 북경고압이 얼마나 비싼데, 그 걸 사 달라는 거야!’

나철환은 설우진의 요구에 욕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북경고압은 북경을 대표하는 요리 로 오리의 살과 껍질 사이에 대롱을 꽂아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달콤 한 소스를 발라 장작불에서 두 시진 정도 훈제한 요리이다.

기름이 쪽 빠져 살점이 고소하기 그지없는데, 워낙에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 쌌다. 그래서 북경에 살고 있는 이 들 중에서도 북경고압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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