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18화 : 북경 풍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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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18화 : 북경 풍운 (3)


북경 풍운 (3)

“별거 아닙니다. 그저 안이 덜 익 었기에 제 나름의 방법으로 열을 가 했을 뿐입니다.”

“불도 없는데 어떻게 열을 가했다 는 거죠?”

“음, 무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렇 게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설우진이 손가락 끝으로 뇌기를 끌 어모아 마찰을 시켰다. 순간 손끝에 서 불꽃이 확 일었다. 변형된 형태 의 삼매진화였다.

“그럼 무인들은 다 이렇게 맛있는 북경고압을 만들 수 있는 건가요?” 

‘이 아가씨, 호위들을 데려다 요리 시킬 기세네.’

“모두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보 기엔 간단해 보여도 상당히 세밀하 게 기운을 조절해야 하거든요.” 

설우진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면사 너머에 실망 어린 눈빛이 스 쳐 갔다.

‘어지간히 먹는 걸 좋아하나 보군. 하긴, 그러니까 저 얼빠진 놈이 이 곳으로 데려왔겠지.’

설우진의 시선이 안치규의 얼굴로 향했다. 안치규는 면사 여인이 자신 에게 관심을 둔 탓인지 원수를 바라보듯 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여인만 눈앞에 없다면 당장에라도 달 려들 기세였다.

설우진은 그 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동했다. 그러고 보란 듯이 면사 여 인과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정 그렇게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 한번 집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열흘 정도 북경에 머무를 예정이니.”

“정말 그래도 되나요?”

“네, 뭐 저한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설우진은 의도적으로 안치규를 바 라봤다. 그의 얼굴은 당혹감과 분노 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시간 나는 대로 정식으로 초대하죠. 대신, 식구들이 많으니 넉넉하게 준비해 줘요. 그리고 이건 수고비예요.”

면사 여인이 설우진에게 전낭을 건 넸다. 무게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든 물건의 값어치는 천금만큼 무거 웠다.

‘역시 황족이라 그런지 통이 크네. 다른 것도 아니고 밥값으로 야명주 를 내주다니.’

설우진은 빠른 손놀림으로 전낭 안 의 물건을 확인한 뒤 내심 크게 놀 랐다. 야명주는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으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야명주를 건넨 뒤 면사 여인은 그대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움직이자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무사들도 황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너 이 자식, 정체가 뭐야?”

면사 여인이 떠나고 얼마 안 돼 애써 분을 삭이고 있던 안치규가 득 달같이 달려와 설우진의 멱살을 틀 어잡았다. 아니 설우진이 잡혀 줬다 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거 초면에 인사가 너무 거친 거 아니야? 집 앞에서 망신 좀 당했 다고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설우진은 안치규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채 옆으로 밀어냈다. 안치규는 끈덕지게 버텼지만 설우진의 아귀힘 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네놈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당신이야 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어? 내가 성 질 더러운 강호인이었으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사지 하나 정도는 날아 갔어.”

그냥 해 보는 협박성 발언이 아니 었다.

실제 강호인들 중에는 관인들을 상 대로 서슴없이 살수를 사용하는 이 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보통 소속 없이 강호를 떠 도는데, 성격이 제멋대로이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예전의 설우진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식사 끝났으면 조용히 사라져. 당 신 때문에 다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있잖아.”

“네, 네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 이다!”

안치규는 울분에 가득 찬 얼굴로 악을 내질렀다. 하지만 설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기세에서 눌 린 안치규는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 나갔다.


우당탕.

화려하게 치장된 방 안에서 사납게 기물이 나뒹굴었다. 그 소란을 일으 킨 장본인은 식당에서 큰 망신을 당 하고 돌아온 안치규였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있는 하인에게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물었다. 그는 이 장원 의 주인이자 안치규의 부친인 안태성이었다.

“자혜 공주님과 식사하고 온 뒤로 계속 저러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게냐?”

“작은 시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 다.”

하인은 식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 상히 고했다. 이에 안태성은 굵직한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는 거칠게 문 을 열어젖혔다.

“아, 아버지.”

안치규가 안태성의 얼굴을 마주하 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 무슨 추태냐, 당장 옷매무새부 터 단정히 해라!”

아버지의 일갈에 안치규는 황급히 흐트러져 있는 옷깃을 바로잡았다. 

“누구냐, 본가의 명예를 더럽힌 이 가?”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 아 무과 시험을 보러 온 자 같았습 니다.”

‘무과 응시자라………. 치규가 내 아 들인 걸 알면서도 그리 나온 거라면 명문 무가의 후손이라도 되는 건 가?”

안태성은 조심스러웠다.

군부는 황궁 권력의 핵심이다. 그 들에겐 무력이라는 실질적인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안태성의 권력은 제한적 인 측면이 강했다.

그의 권력은 황족에 기인했다. 황 족이 힘을 보태 주지 않으면 혼자서 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의미였다. 

“놈을 그냥 둬서는 안 됩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출신 성분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손을 댔다 간 되레 큰 화로 돌아올 수 있다.” “하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그 뿌리부터 알아봐야지. 하륜.”

안태성이 총관을 불렀다. 총관 하 륜은 반백의 노인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부상을 당해 은퇴하기 전까진 금의위로 활 동한 전적을 갖고 있었다.

“역시 그 일 때문에 부르신 모양이 군요?”

“설마, 벌써 작업에 들어간 겐가?”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 니다.”

“됐네. 분명 저놈이 먼저 졸랐을 테지.”

안태성은 한심한 표정으로 안치규 를 바라봤다. 하나뿐인 아들이라 너 무 오냐오냐 안하무인으로 키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 허물이야 다른 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영락없는 부전자전이었다.

“놈에 대해 알아내는 데 얼마나 걸 릴 것 같은가?”

“이틀 정도면 충분합니다. 놈이 날 아온 게 아니라면 흔적이 남을 수밖 에 없습니다.”

하륜은 자신 있게 답했다.


“나라고 사기를 치고 싶어서 쳤겠 소? 다 먹고살려고 그런 것이지! 나 만 바라보는 입이 마누라까지 여섯 이오. 어지간히 벌어선 내 자식새끼 들 세 끼 밥도 못 챙겨 준단 말이오.”

허름한 주점 안. 나철환은 술에 많 이 취했는지 묻지도 않았은 신세 한 탄을 늘어놨다.

“보기보다 아랫도리가 실하군, 애 를 다섯이나 낳다니.”

“하하하, 원래 쇠를 두들기다 보면 요 아랫도리에 양기가 쌓이기 마련 이라오.”

나철환은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도 드라져 보이기는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설우진은 속으로 읊조렸다.

‘남자는 크기보단 기술이지.’

“신세 한탄은 그쯤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나 말해 보시지.”

“나도 정직하게 장사하고 싶소. 솔 직히 내가 만든 도검들 나쁘지 않단 말이오. 바위를 두부처럼 썰어 낼 정도는 아니어도 유명한 철기방에서 대충 만들어서 파는 것보단 낫다 고.”

‘그러고 보니 검신이 전체적으로 가벼우면서도 좌우 균형이 잘 들어 맞았지.’

나철환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부로 만든 가짜 돌로 날의 예리 함을 과장하기는 했지만 검 자체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다. 정직하게 팔 아도 충분히 은자 다섯 냥의 값어치 는 할 정도였다.

“근데 이 바닥에선 그 잘난 이름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소. 내가 아 무리 정성들여 만들어도 표식이 박 힌 물건보다 낮게 보기 때문이오.”

‘여기도 상표발이 통하는 건가?’ 

설우진은 나철환의 얘길 듣고 일품 점의 옷들을 떠올렸다. 일품점의 옷 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원 각지에 서 그와 비슷한 재질과 문양을 한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수계에도 숨은 고수들은 존재했 기에 그중 어떤 것들은 일품점의 제 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하지만 판매량은 일품점이 압도적 이었다. 사람들이 일품이란 상표만 봐도 우선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기 때문이다.

‘가만, 이참에 일품점의 영역을 넓 혀 볼까? 의복 쪽은 이미 성장세가 막바지에 다다랐잖아.’

끝도 없이 오르던 일품점의 성장세 는 최근 들어서 주춤했다. 옷이라는 게 몇 달 사이에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정체기가 온 것 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품점의 인기 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한정판으로 제작하는 옷들은 불티나 게 팔리고 있었다, 수량이 적어 크 게 티가 나지 않을 뿐.

“혹시 당신처럼 실력은 좋은데 이름이 없어서 물건을 못 파는 이들이 많아?”

“많지, 아주.”

“그럼 그들을 모아 줄 수 있겠어?” 

“가능은 한데… 왜 그러시오?” 

“정직하게 팔고 싶다면서. 잘하면 내가 그 길을 열어 줄 수도 있을 것 같거든.”

설우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입가 에 머금었다.


하륜은 일을 맡긴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안태성이 원하는 정보를 가져 왔다. 괜히 전직 금의위가 아니었다. 그는 하루 동안 조사한 내용을 간략 하게 정리해 보고했다.

“놈의 이름은 설우진. 무한 설가장 의 장남으로 곧 개최되는 황궁 경연 에 참석코자 이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설가장이면 일품점으로 최근에 주 목받고 있는 상가가 아닌가?”

하륜의 보고를 듣고 있던 안태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사실 설가장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설무백이 설가장 대신 일품점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 문이다.

그런데 일품점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설가장이란 이름도 서서 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가장의 장자라면 섣불리 건드릴 수 없겠군.”

“네, 더욱이 황룡학관에 재학 중 이라는 정보도 있어서 무력을 동원 하는 건 배제해야 할 듯합니다.”

“배짱을 부린 이유가 있었어. 하면 어쩐다, 이대로 두는 건 내 자존심 이 허락하지 않는데.”

“굳이 우리 쪽에서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황궁 경연에 참 가하는 상가들을 이용해 보시지요.” 

하륜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 갔다. 그가 제안하는 방법은 일종의 차도살인지계였다.

“그자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황궁 경연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경연 자체의 상품은 보잘것 없지만 우승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장의 판도를 뒤엎어 버릴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그럼 어느 상가에 정보를 흘리는 게 좋겠나?”

“아무래도 일품점의 인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상가가 좋겠지요.” 

“그런 곳이라면 벽라점이 제격이겠 군.”

안태성은 단번에 벽라점을 떠올렸 다. 벽라점은 일품점이 등장하기 전 까지만 해도 최고의 옷을 만드는 곳 으로 중원 전역에 그 명성이 자자했 다.

한데 일품점이 벽라점보다 저렴하 면서도 질은 더 좋은 옷들을 만들어 내면서 그 명성에 큰 타격이 가해졌 다. 뒤늦게 만회해 보려 갖은 노력 을 해 봤지만 한번 벌어진 격차는 쉽게 좁아지지 않았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두 명의 수석 장인이 말도 없이 사라지면서 얼마 남아 있지 않던 단골들마저 발길을 돌렸다. 한마디로 벽라점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다.

“벽라점에 은밀히 사람을 보내게. 대놓고 얘기를 전하면 우리 쪽의 의 도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 연스럽게 놈의 존재를 알려 주도록 해.”

“이미 바람 잡을 배우들을 섭외해 놨습니다.”

“그럼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게.”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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