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28화 : 황궁 염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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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28화 : 황궁 염문 (1)


황궁 염문 (1)

“가주님, 이제 그만 고집을 꺾으시고 쌍룡맹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시지요.”

“그 얘긴 이제 그만하기로 하지 않 았는가. 본산이 아무리 과거의 영화 를 잃었어도 그 뿌리를 스스로 부정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일세.” 

“갈수록 쌍룡맹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계속 버티고 있다간 난주 땅에 우리 문만 홀로 고립될 수 있습니다.”

방 안에서 두 명의 중년 사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 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기 복 호문의 문주와 부문주라는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복호문은 난주 땅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삼백 년이 넘어 가는 유서 깊은 공동파의 속가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제자들 하나하나가 일 당백의 검술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

“네. 문에서 운영하는 사업체 대부 분이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 다. 이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사업체 가 도산하는 것은 둘째치고 문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복호문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져 있었다. 마천 쟁 투를 치르면서 막대한 자금을 소모 한 데다 쌍룡맹에서 노골적으로 난 주에 사업체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쌍룡맹에서는 복호문에 입맹을 강력히 권했다. 맹에 들기만 하면 자금줄을 터 준다는 달콤한 말 과 함께.

하지만 당대 복호문주인 태사율은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공 동파와의 의리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한데 그 일이 있은 후 복호문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쌍룡맹 측에 서 공세에 더 박차를 가한 것이다. 이대로는 객관적으로 석 달도 버티 기 힘들었다.

“문의 사정을 안다면 본산에서도 이해해 줄 겁니다. 결단을 내리시지요.”

최우식이 간절히 청했고 이에 무거 운 표정으로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태사율이 어렵게 입을 뗐다.

“쌍룡맹의 사자를 부르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후훗, 어쩌겠나, 자네 말대로 선택 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이 죄는 내 본산에 찾아가 직접 빌 것이네.”

“그럼, 저도 함께 가시지요. 부문주는 문주의 그림자가 아닙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쓴웃 음을 지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뒤 두 사람은 사자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 섰다. 한데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 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뛰어들었다.

수문위장 정우였다.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최우식이 질책하듯 물었다. 이에 정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의 이 름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그 이름은 바로 마랑기였다.

“마, 마랑기라니. 그게 말이 되느 냐?”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 했습니다.”

“지금 당장 제자들을 한곳에 모아라.”

태사율이 다급히 소리쳤다.

마랑기는 마천이 중원을 질타하고 다닐 때 상징처럼 들고 다니던 깃발 이었다.

마랑기가 휘날리는 곳, 그곳에는 기백에 이르는 무사들이 복호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마천魔天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곳이 복호문이라고?”

압도적인 체구에 얼음을 끼얹은 듯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입 을 열었다. 그는 마천 휘하에 존재 하는 다섯 개의 무력 조직 중 푸른 늑대를 상징하는 청랑대의 대주 육 지환이었다.

육지환이 묻자 왼편에 나란히 서 있던 청년이 웃는 낯으로 답했다. 청년은 양쪽 눈이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 였다.

“대주님, 일전에 난주로 술 마시러 나왔을 때 한번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제가 똑같은 설명을 드렸던 것 같은데요.”

“술김에 본 걸 어찌 세세하게 기억 한단 말이냐! 닥치고 일이나 해라.”

“후훗, 청랑일대만 붙여 주십시오. 깔끔하게 정리토록 하겠습니다.”

“언제 봐도 그 자신감 하나는 충만 하구나. 정확히 반시진의 여유를 주 마. 그 안에 복호문주의 목을 내 앞 으로 가져와라.”

“존! 명!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청년은 장난스럽게 경례한 뒤 복호 문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가 발 을 내디딜 때마다 허리에 내걸린 세 자루의 검이 요란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령아, 상가의 아들과 눈이 맞았다 는 염문을 들었다. 사실이니?”

백화전 안. 설예군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주소령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한 주소령의 표 정은 밝았다.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요?”

“지금 화가 안 나게 생겼니? 넌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공주야. 한데 상가의 아들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해?”

“좋은 사람이에요.”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 니?”

설예군의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평생 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그녀였으니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 었다.

“그놈, 이름이 뭐냐?”

“그건, 왜……?”

“네 눈과 귀를 흐리게 한 원흉이다. 어미가 돼서 어찌 그놈을 가만 히 두고 보겠느냐!”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에 주소령은 오해를 풀고자 억지 로 지어낸 소문임을 밝히려 했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설우진 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계획 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네놈이냐?”

설예군의 날 선 목소리가 설우진의 귀에 꽂혔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큰 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무가 출신이라고 하더니 그 기백 이 사내 못지않군. 한데 왜 날 저리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거지?’ 설우진은 설예군의 날선 반응에 의 아하면서도 일단 정중히 인사부터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설우진이라 합니…….”

인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설예군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그녀가 공격 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 고 있었기에 속절없이 멱살을 틀어 잡혔다.

“대체 내 딸에게 무슨 술수를 쓴 게냐?”

“저,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공주님과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 다.”

설우진은 다급히 주소령과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설예군은 이를 비겁한 변명으로 치부했다. 이에 설우진은 주소령에게 눈빛으 로 도움을 청했다. 황제의 여인과 드잡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 문이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이 사람은 절 도와주려고 나선 것뿐이에요.” 

“네가 이놈한테 단단히 빠졌구나. 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설예군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설 우진의 멱살을 틀어쥔 채 그대로 벽 으로 밀어붙였다. 설우진은 힘 한번 못 써 보고 벽 한복판에 그대로 몸 을 부딪쳤다. 등판으로 전해 오는 엄청난 충격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 졌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주소령이 황 급히 설예군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니, 당장 그 사람 놔주세요. 저 때문에 일부러 소문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에요.”

“……자세히 얘기해 보거라.”

“나흘 전에 만화 공주가 절 찾아왔어요.”

“그 탐욕스러운 계집이 왜………… 설 마천 장군 때문에?”

“네. 제게 천장군을 빼앗길까 봐 한껏 몸이 달아 있는 눈치였어요.”

“그 어미에 그 딸이라고 하더니. 천 귀비를 쏙 빼다 박았구나. 한데 그 일과 근자에 퍼진 소문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

“실은 어머니를 이곳에 오시게 하려고 일부러 거짓 소문을 낸 거예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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