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9화 : 귀향지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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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9화 : 귀향지로 (2)


귀향지로 (2)

“예진이가 그날 고마웠다고 준비한 선물이야. 맘에 안 들더라도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 줘.”

“이야, 네 동생 바느질 솜씨가 보 통이 아닌데!”

설우진은 조예진이 선물한 영웅건 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영웅건은 좁은 면적에 수를 놓아야 하기에 그 작업이 꽤 고되기로 유명 했다. 한데 눈앞의 영웅건에는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의 용이 수놓여 있었다, 그것도 군더더기 없 이 깔끔하게.

“예진인 어렸을 때부터 현모양처가 꿈이었어. 게다가 손재주도 좋아서 내 옷도 곧잘 만들어 주곤 했지.” 

“쯧쯧, 누가 누이바라기 아니랄까 봐 눈에 그리움이 가득하네. 어디 그래 가지고 여동생 시집이나 보낼 수 있겠냐?”

설우진은 몽롱하게 변한 조인창의 눈빛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이에 조인창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 예진인 그 아픈 모습마저 감 싸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보내지 않을 거야.”

-그 얼굴 본래대로 돌아갈 가능성 은 아예 없는 거야?

주변의 시선이 자신들 쪽으로 쏠리 자 설우진이 전음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있기는 한데 그리되면 예진이는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을 거야. 완전 한 나찰요귀가 되는 순간 사람으로 서의 감정을 잃게 되거든.

-그것 참 골치네, 이러지도 저러지 도 못하니.

설우진은 조예진이 안쓰러웠다. 겨 우 얼굴 한번 마주한 것이 전부였지 만 나찰요귀로 변했을 때 그녀의 두 눈은 진한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두 사람, 아까부터 무슨 비밀 얘기를 그렇게 나누는 거야?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야?”

두 사람의 전음이 길어지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자스민이 샐쭉한 얼 굴로 둘을 바라봤다. 고운 아미를 찡그린 모습이 밉기보다는 귀여워 보였다.

“우리 자스민, 술잔이 비었네.” 

설우진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 를 감싸 안으며 빈 잔에 술을 따랐 다.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기야?” 

“별 얘기 안 했어. 정 그렇게 궁금 하면 나중에 단둘이 있을 때 말해 줄게.”

“좋아. 하지만 그때 가서도 딴소리 하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그녀의 시선이 설우진의 사타구니 로 향했다. 이에 설우진은 흠칫한 표정으로 애써 더 그녀를 꽉 껴안았다.


황룡학관의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 고 재학생들에게 이 개월의 방학이 주어졌다.

짧은 기간이 아니었기에 대다수의 재학생들은 고향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설우진과 그의 친구들도 섞여 있었다.

“아쉽다. 정말 진랑의 부모님을 뵙 고 싶었는데……..”

네 방향으로 나눠지는 관도 위, 설우진과 자스민이 아쉬운 작별의 순 간을 나누고 있었다.

본래 자스민은 설우진의 부모님에 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그와 함께 무한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한데 아쉽게도 방학을 이틀 앞두고 누란국에서 급서가 날아왔다. 그 안 에는 국왕인 아버지가 그녀를 급히 찾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왕의 직인이 찍혀 있는 편지였기에 그녀로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다음에 뵙고, 조심 히 다녀와. 그리고 혹시라도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터진 거면 무 한 설가장으로 사람을 보내. 내가 단숨에 달려갈 테니까.”

“응. 말만이라도 고마워.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자스민은 설우진의 뺨에 가볍게 입 을 맞추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잠시 후 그녀를 태운 사두마차가 서 쪽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녀를 떠나보낸 뒤 설우진은 대로 를 가로질러 삼 층 높이의 큼지막한 건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앞쪽에 짐을 가득 실은 수레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단 소유의 건물인 듯했다.

설우진은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당 당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누구……?”

바쁘게 일을 보고 있던 중년 사내가 뒤늦게 설우진의 얼굴을 발견하 고는 다급히 달려왔다.

“강 단주님을 뵈러 왔는데요. 설가 의 애송이라고 하면 알아들으실 겁 니다.”

설우진의 요구에 중년 사내는 미심 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재빠른 발 걸음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잠시 후 기다리던 얼굴이 중년 사 내와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천중상 단주 강무호였다. 한데 설우진의 방 문이 반갑지 않은 듯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네 녀석이 이곳엔 웬일이냐?”

“이거, 예아를 대할 때하고 태도가 바쁘게 일을 보고 있던 중년 사내가 뒤늦게 설우진의 얼굴을 발견하 고는 다급히 달려왔다.

“강 단주님을 뵈러 왔는데요. 설가 의 애송이라고 하면 알아들으실 겁 니다.”

설우진의 요구에 중년 사내는 미심 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재빠른 발 걸음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잠시 후 기다리던 얼굴이 중년 사 내와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천중상 단주 강무호였다. 한데 설우진의 방 문이 반갑지 않은 듯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네 녀석이 이곳엔 웬일이냐?”

“이거, 예아를 대할 때하고 태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닙니까? 인연은 저 하고 먼저 맺으셨으면서!”

“예아야 누구하고 다르게 예의도 바르고 하는 짓도 예쁘지 않느냐! 객쩍은 소리 그만하고 용건이나 얘 기해라. 네 녀석하고 노닥거릴 만큼 한가한 몸이 아니다.”

“그건 저도 피차일반입니다. 오늘 고향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사두마 차 한 대만 내주시죠.”

“마차를 왜 여기서 찾는 게냐? 반 대편에 저리 돈 주고 빌릴 수 있는 곳이 있거늘.”

강무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창밖 너머로 보이는 마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방 앞쪽에는 다섯 대의 사두마차 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주님, 지난번에 저한테 한 약속 벌써 잊으신 겁니까? 분명히 그때 예아만 무사히 데려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셨는데.” 

“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이거, 이거, 상단주란 분이 한 입 가지고 두말하면 곤란하지요. 정 기 억이 나지 않으시면 비월이란 분께 물어보십시오. 항상 곁에 머무는 분 이니 똑똑히 들었을 겁니다.”

설우진이 비월을 언급했고 이에 강 무호는 그림자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비월에게 은밀히 말을 걸었다.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이냐?

-조금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같습니다.

강무호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당시에 그는 예아가 납치됐다는 소 식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고 아 마도 그때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뱉은 듯했다.

“크흠, 내 입으로 내뱉은 약속이니 빌려는 주마. 대신 사두마차는 과하 니 저곳에 세워져 있는 마차들 중 하나를 골라서 가져가라.”

이번에 설우진의 얼굴이 사납게 구 겨졌다. 강무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는 비루먹은 말들이 수레를 꼬리에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상태로 봐서는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어 보였 다.

“단주님, 천금을 끌어안고 무덤에 들어가실 겁니까? 그 정도 모았으면 이제는 화끈하게 쓸 때도 되지 않았 습니까. 그러지 말고 저 옆의 녀석 으로 주시죠!”

설우진은 네 마리의 흑마가 이끄는 사두마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흑마는 탐스러운 갈기에 탄탄한 근 육으로 뒤덮인 네 다리로 땅을 받치 고 서 있었다.

“예끼, 나이도 어린놈이 벌써부터 허세질이냐?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니 고 달랑 혼자 움직이면서 사두마차가 왜 필요해!”

“올라오는 길이 힘들었으니 내려가 는 길은 좀 편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광룡 가 놈들 넘기면서 현상금도 두둑이 챙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혼자 서 꿀꺽하신 거죠, 놈들을 때려잡은건 전데?”

“그, 그거야…..”

강무호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 을 보였다. 설우진의 말대로 당시에 그는 상당한 액수의 현상금을 챙겼 다. 특히 부가주였던 관해철의 몫이 컸다.

‘후훗, 저 양반이 내 앞에서 당황 할 때도 있네. 이래서 인생은 한치 앞도 모른다니까.’

설우진의 양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 갔다. 강무호는 분이 치밀었지만 잘 못한 것이 있는지라 전처럼 큰소리 는 내지 못했다.

“좋다. 대신 사두마차 말고 튼튼한 놈들이 끄는 이두마차를 내주마. 이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편의다.”

현상금에 발목이 잡힌 강무호가 중 재안을 내놨고 애당초 사두마차를 탈 생각이 없었던 설우진은 그 제안 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두마차 로 향한 그는 가장 먼저 말들의 상 태부터 확인했다. 덩치는 작았지만 근육이 알알이 박혀 강인한 느낌을 자아냈다.

‘북방에서 건너온 녀석이군. 다른 말보다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쉽게 지치지는 않겠어.’

낭인 시절 그는 다양한 종류의 말 들을 탔기 때문에 한눈에 말의 혈통 을 알아봤다.

표적을 급하게 쫓아야 할 때는 다리가 길고 순간적인 힘이 좋은 말 을 탔고, 상단을 호위할 때는 다리 가 짧은 대신에 쉽게 지치지 않는 말을 탔다. 눈앞의 두 말은 후자에 더 가까웠다.

“성질이 온순한 녀석들이니 네녀 석이 쓸데없는 짓만 벌이지 않는다면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얘긴데, 밥을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들이 칭얼대거든 무시해라. 둘 다 식탐이 대단해서 그때마다 먹이를 줬다간 금방 동이 나고 말 것이다.”

“그건 염려 마십시오, 말 못하는 동물들 다루는 덴 일가견이 있으니 까.”

설우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 들과 눈을 맞췄다.

그런데 착각이었을까. 순간적으로 말들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초원 한복판에서 맹수와 맞닥뜨린 것처럼.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뭐,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우진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에 도착하고 보 니 설가장이란 문패 대신에 예심장 이란 문패가 걸려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이사라도 간 건 가?”

설우진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마차 에서 내렸다. 가게로 찾아가 사정을 알아볼까 하다가 안쪽에서 왁자지껄 한 인기척이 들려오자 밀려드는 호 기심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저씬 누구예요?”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설우진을 빤히 쳐다 보며 물었다.

“그러는 넌 누구냐?”

“전 소담이에요, 이소담. 올해로 다 섯 살이고요, 제 꿈은 천수신녀처럼 아름다운 옷을 짓는 거예요. 아저씨, 천수신녀 알죠? 얼굴도 예쁘고 마음 도 참 착한 언니예요.”

‘천수신녀면 단예잖아. 그러고 보 니 장원의 이름도 예심장이고, 혹시 단예가 이 아이를 거둔 건가?’

설우진은 단예가 예심장이란 곳과 큰 관련이 있을 것이라 예감했고 그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장원 안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 것이다.

“오, 오라버니!”

단예가 날듯이 설우진에게 달려왔 다. 설우진은 당황하는 것도 잠시, 격하게 그녀의 인사를 반겼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설가장이 예심장이란 이름으로 바뀌 어 있어?”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그 얘길 전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실은 일품점 을 확장하면서 설가장을 다른 곳으 로 옮겼어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머물 곳이 없어서.”

“하긴, 설가장이 좁기는 하지.” 설가장은 장원치고는 그 규모가 작은 편에 속했다. 그도 그럴 게 무한 시내와 인접해 있다 보니 땅값이 너무 비쌌다.

설가장이 포목 사업으로 인근에서 부자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장원을 키우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그럼 설가장은 어디로 옮긴 거야?”

“예전 용가장 터로 옮겼어요. 마침 그쪽에 매물이 나왔었거든요.”

“이야, 정말 넓은 곳으로 이사했네. 그럼 예심장은 뭐야?”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만들어 주 신 곳이에요. 일전에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길거리에서 유리걸식을 하는 아이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 을 흘렸거든요.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저 아이를 돕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그렇다고 답했 더니 빈 설가장을 고아원으로 꾸며주셨어요.”

‘이야, 우리 어머니 못 본 사이에 통이 많이 커지셨네. 나라님도 못하 는 자선사업에 손을 대시다니.’

설우진은 여소교의 얼굴을 떠올리 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사실 자선사업은 어지간한 재력으 론 시작도 하기 힘들었다. 한 번만 자금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고 지속 적으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아원 같은 자선사업체는 주로 천중상단과 같은 십 대 상단들 에서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신녀 언니, 이 아저씨가 전에 말했던 언니의 사부 맞죠? 한때 신수 라 불렸다는!”

‘저 계집애는 왜 아까부터 멀쩡한 총각 보고 아저씨래, 내가 나이를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다고!’

설우진은 소담을 살짝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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