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화 : 격동 강호 (1)

랜덤 이미지

낭왕전생 5권 – 1화 : 격동 강호 (1)


격동 강호 (1)

‘빌어먹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건가?”

마천 발호.

흑개방도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그 말에 설우진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신의 개입으로 발호 시기가 앞당 겨질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 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가 놀라는 사이 진성이 굳은 표정으로 흑개방도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마천이 작정하고 움직였다면 한데 뭉치지 못한 그들로선 막기 버거웠 을 텐데 감숙성의 문파들은 어찌 됐 지?”

“예상하신 그대롭니다. 복호문을 제외하고 대다수 문파들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하면 복호문은?”

“정문을 닫아걸고 농성 중이라 합 니다. 하지만 마천 쪽에 계속 전력 이 충원되고 있는 상황이라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흑개방도가 전하는 감숙의 전황은 암울했다.

‘해공께서 우려하시던 일이 터지고 말았군. 앞으로 역천회의 행보가 복잡해지겠어.’

진추성은 마천의 발호에 크게 놀라 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 황인 데다 내심 마천과의 공조가 깨 지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천회가 천명한 대의에는 동 의했지만 그 대의를 이루는 수단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쌍룡맹을 무너뜨리자고 긴 세월 칼 을 맞대 온 마천과 손을 잡을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묵살됐다. 뜻 을 표명하지 않은 적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별들이 마천과 손을 잡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지금쯤 복귀령이 떨어졌을 테지?”

진추성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이에 흑개방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총단으로 향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 만 진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 했다.

“아직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금방 따라갈 테니 먼저 출 발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뒤에 뵙지 요.”

흑개방도는 고개를 숙인 뒤 곧장 자리를 떴다.

“가까이 있었으니 얘기는 다 들었 겠지? 조만간 강호는 마천으로 인해 큰 부침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마 전보다 더한 시련이 될 테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살고 싶다면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네가 얻은 벽력신마의 마공은 능히 천하를 위진시킬 능력을 지녔 으나 그 하나만 가지고서는 마천의 괴물들을 당해 낼 수 없다.”

‘괴물이라……. 놈들에게 딱 어울 리는 표현이군.’

설우진은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쌍룡맹에 고용돼 마천의 무사들과 싸움을 벌이던 시기에 그는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위기를 겪었다.

그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마천의 무사들에게는 두려움의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그들은 뒤로 물러서는 법 이 없었다. 불리한 싸움이든 유리한 싸움이든 윗선에서 후퇴하라는 명이 내려오기 전까진 죽자 사자 상대에 게 달려들었다.

때문에 그들과의 싸움은 언제나 진 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설우진이 짧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진성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신하촌의 일은………… 마천을 막고 난 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 상을 밝혀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고고하기로 이름 높은 수호 가문 인데, 그쪽에서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까?”

“그들이 끝까지 부정한다면 관련자 들의 목을 이 손으로 직접 베어 신 하촌 사람들의 영전에 바칠 것이 다.”

‘이 작자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니 야.’

설우진은 진추성의 두 눈을 빤히 바라봤다. 흔들림 없이 굳건한 두 눈동자는 진추성의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 보지. 다음에 만날 땐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었으 면 좋겠군.”

제 할 말을 마친 진성 앞서간 흑개방도의 뒤를 따라나섰다. 가볍게 몇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 다.

“이제 어떻게 한다?”

홀로 남겨진 설우진은 앞으로의 행 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가 기억하는 마천은 감숙을 시작 으로 거침없이 동진했다. 그 행렬에 가장 먼저 피를 본 건 섬서 지역의 무가들이었다.

감숙에 비해 섬서 지역은 상대적으 로 무가의 숫자나 전체적인 전력이 월등히 우위에 있었다.

이전에는 수호 가문이 혈옥불로 섬 서 일대를 무인 지경으로 만들었기 에 손쉽게 호북과 하남을 공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설 우진이 혈옥불을 둘러싼 분란을 조 기에 매듭지으면서 섬서 지역의 문 파들이 고스란히 전력을 보전했기 때문이다.

그 전력은 마천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마천 놈들도 전처럼 치고 내려오 지는 못할 거야, 섬서의 문파들이 가만히 두 눈 뜨고 지켜보지는 않을 테니까. 문제는 황룡 학관이야.’ 설우진은 머릿속에 피로 얼룩져 있 는 황룡 학관을 떠올렸다.

마천이 섬서를 휘저을 당시 후환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황룡 학관을 피 로 물들였다.

쌍룡맹에서 부랴부랴 무사들을 급 파했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 미 모두 불에 타 주춧돌만 남은 상 태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라면 당장에 황룡학관을 해체시키고 관 도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거야. 하지 만 마천 못지않게 미친놈들이 쌍룡 맹이니…….”

설우진은 쌍룡맹이 황룡학관을 해 체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확신은 그들이 전생에도 학관을 해 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 이었다.

당시 쌍룡맹은 마천의 재발호를 심 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력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는 것과 과거처럼 다시 붙는다고 해 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그들의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학관으로 돌아가 봐야겠 어.”

설우진은 고민 끝에 무한이 아닌 서안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청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 아 있었다.

그것을 방증하듯 기다란 탁자를 중 심으로 앉아 있는 사내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왼편에 앉아 있던 해천인이 어렵게 입을 뗐다. 밤새 마음고생이 심했는 지 그의 얼굴은 전에 봤을 때보다 주름살이 늘어 있었다.

“그게 어찌 해공의 잘못이겠소, 신 뢰를 저버린 후안무치한 마천 놈들 이 문제지!”

상석에서 가지런하게 턱수염을 기 른 중년 사내가 날카로운 안광을 번 뜩였다.

그는 다섯 수호 가문 중 한 곳의 수장이면서 역천의 뜻을 처음으로 세운 인물이다.

암천신룡 척산해.

그는 지난 마천 쟁투 당시 하나뿐 인 아들을 잃었다. 그러고 아내마저 충격으로 자신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연이은 비보에 그는 복수를 부르짖으며 사람들을 모았고, 그것이 바로 역천회의 시작이었다.

“이제 어찌했으면 좋겠소?”

척산해는 해천인과 눈빛을 주고받 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해천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지금 저희 앞엔 두 가지 길이 놓 여 있습니다. 하나는 수호 가문의 신념에 따라 전면에 나서서 마천과 맞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 천과 쌍룡맹이 공멸하길 기다렸다 그 뒤를 치는 것입니다.”

“전자는 재고의 여지가 없으니 선택 가능한 길은 하나뿐이로군.”

척산해는 해천인이 제시한 두 가지 방안 중 후자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이에 해천인은 그 답을 예상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다.

“후자의 경우 우리의 뜻대로 상황 이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그 말은 어느 한쪽이 압승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오?”

“네. 저희가 두 세력의 싸움에 개 입하지 않으면 마천이 압도적인 승 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흠, 이해가 안 되는구려. 마천에 아무리 괴물 같은 놈들이 많다고 한 들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있겠소?”

척산해는 쌍룡맹을 열 개의 손에 비유했다. 그만큼 세가 크지 않느냐 는 반문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힘의 크기는 쌍 룡맹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 니다. 하지만 마천에는 드러나지 않은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 보는군.” 

“회주님, 혹 마천이 어디서 시작되 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서역의 배화교가 그 뿌리인 것으 로 알고 있소.”

“아닙니다. 그건 대외적으로 마천 이 꾸며 낸 얘기일 뿐, 사실 그들의 발원지는 중원입니다.”

해천인의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흘 러나왔다. 다들 충격이 상당한지 한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해 천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마천은 약자들의 악의가 모여 만 들어진 곳입니다. 소외당하고 강한 힘에 억눌려 있던 자들이 세상에 복 수하고자 인간의 마음을 버리고 귀 신의 힘을 취한 것이지요.” 

“그 말은…… 설마?”

“중원 곳곳에 마천의 씨앗들이 뿌 려져 있습니다. 마천에서 그들의 악 의를 끌어낸다면 한순간에 그 몸집 이 수배로 커지게 될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할 일이었다. 강 호는 강자보다 약자의 숫자가 훨씬 많다. 그들이 한순간에 마천의 편으로 돌아선다면 쌍룡맹으로서는 버티 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하면, 우린 쌍룡맹을 도와야겠 군?”

“네. 두 세력의 정예가 완벽하게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만큼 결정을 내리기 힘든 사안이었 다.

바로 그때 탁자 왼편 구석에 자리 하고 있던 중년 사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를 보고 척산해는 의외라는 표정 을 지어 보였고 해천인은 달갑지 않 은 기색을 보였다.

“위 문주, 다른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겐가?”

척산해의 시선이 위 문주, 그러니 까 현무문의 문주인 위성웅에게 꽂 혔다.

“회주님, 이왕 쌍룡맹을 도울 것이 라면 확실하게 실리를 챙기시지요.” 

“……쌍룡맹과 똑같은 놈들이 되자 는 말인가?”

척산해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 라갔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역천 의 뜻을 이루기 위해선 그만한 힘이 필요합니다. 한데 본회는 의욕만 넘 칠 뿐 역천을 이룰 만한 힘이 부족 합니다.”

위성웅은 역천회가 처한 현실을 냉 정하게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역천회가 지닌 힘은 쌍룡맹이나 마천에 비할 바가 못 됐 다. 일차 마천 쟁투 당시에 워낙 많 은 무사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 다.

그 후에 전력을 보강하려고 새로이 제자들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공백 을 채우기에는 한없이 모자랐다. 이 는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현실이었 다.

“다들 어찌 생각하는가?”

척산해가 위성웅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문의 대표들에게 물었다. 이에 주작문과 백호문은 위성웅의 뜻을 지지했고 통천문은 동의할 수 없다 며 강하게 반발했다.

삼대 일. 찬성 쪽에 무게가 실렸 다. 이에 척산해는 내키지 않았지만 회를 만들 당시부터 다수결의 원칙 을 따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성웅의 의견을 받아들였 다.

그 뒤로 위성웅이 회의를 주도했 다. 의견을 낸 이가 그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 를 지켜보는 해천인의 마음은 쇳덩 이를 얹은 것처럼 무거웠다.

‘위 문주가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 러내는군. 더 늦기 전에 위 문주를 막지 못하면 회의 근간이 흔들리겠어.’

해천인은 위성웅의 야심을 경계했 다. 무인에게 야심이 있다는 게 흉 이 될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야심은 분명 과했다.


방학이 끝나고 황룡 학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마천이 발호했다는 흉한 소문에도 관도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 았다. 오히려 일부 관도들은 마천의 무사들과 검을 맞대고 싶다는 치기 어린 소리를 해 대기도 했다.

‘과연 네놈들이 마천 놈들 앞에서 한 번이라도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까, 그 지독한 살기에 온몸이 굳어 버릴 텐데.’

설우진은 식당 안에서 시시덕거리 는 관도들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 봤다.

그는 마천의 무사들이 내뿜던 진득 한 살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 다. 그 살기에 위축돼 옆구리에 검 을 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입은 상처는 깊고 두꺼웠 다,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을 만큼.

“우진아, 우리 이대로 학관에 다녀 도 되는 걸까? 마천이 발호한 감숙 성과 이곳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도 않잖아.”

맞은편에서 식사하고 있던 조인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입맛이 없는지 식판에는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레 겁먹을 것 없어. 어차피 맹 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을 테니 조만간 무슨 조치가 있겠 지.”

M카지노 바로가기!
M카지노 바로가기!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