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26화 : 악인 모략 (1)
악인 모략 (1)
“마백풍 그 미친놈을 때려잡았다는 게 네놈이로군.”
삭월이 설우진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당신이 말하는 게 세 자루의 검을 쓰던 놈이라면 맞아. 내가 때려잡았어.”
“놀랍군. 마백풍은 성격이 이상하 긴 해도 검술 실력만큼은 나도 인정 하는 바이거늘.”
“그런 걸 두고 정저지와라고 하는 거야. 마천이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으니 제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아는 거지.”
설우진은 시간을 끌 요량으로 삭월 과의 대화를 이어 갔다. 물론 살짝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냉정한 적보다는 흥분한 적이 상대하기 편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삭월은 태찬월과 달리 설우 진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 았다.
‘역시 우두머리라 이건가? 이거 골 치 아프게 생겼군. 지금쯤이면 관도 들이 싸움이 끝난 줄 알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을 텐데.’
설우진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는 적랑대를 사냥하러 나서기 전에 관 도들로 하여금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소리가 잦아지면 움직이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현재 그의 주변은 조용했다. 관도들이 움직이기 딱 좋 을 시점이라는 거다.
설우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천뢰도를 세게 움켜쥐었다.
‘소리가 잦아들었으면 다시 키우면 될 일. 여기서 전력으로 놈들을 상 대하겠어.’
“피차 더 할 말도 없을 것 같은데, 후딱 붙고 끝내지.”
설우진이 뇌기를 천뢰도에 끌어 모 았다. 태찬월보다 강한 자라는 걸 알기에 그는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였다.
우웅.
천뢰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 격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 였다.
타타닥.
설우진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 렸다. 그의 움직임에 삭월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적랑대원 둘이 앞으 로 치고 나와 동시에 도검을 휘둘렀 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둘의 얼굴 이 같았다.
카캉.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세 자루의 도검이 거칠게 맞물렸다.
쌍둥이는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한 명이 도로 설우진의 공격을 막아서면 다른 한 명이 검으로 설우 진의 빈틈을 찔렀다. 완벽에 가까운 합공이었다.
‘이놈들이 진짜배기였군. 아까 상 대했던 놈들하곤 격이 달라.’
설우진은 쌍둥이를 상대하면서 놀 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 그들이 공격을 막으러 나섰을 때만 해도 전에 상대했던 적랑대원 들 수준일 거라 생각하고 힘을 조절 했다.
한데 천뢰도에 전해지는 충격은 상 당했다. 손끝이 얼얼하게 느껴질 정 도였다.
‘힘을 아끼면서 상대할 수 있는 자 들이 아니야.’
설우진은 삭월을 위해 아껴뒀던 힘을 풀었다. 이에 뇌기가 가는 실 타래처럼 천뢰도를 감쌌고 도신 전 체가 한 줄기의 벼락처럼 환한 빛을 머금었다.
“부서져라.”
옆구리로 파고드는 검을 무시한 채 설우진이 천뢰도를 막아선 쌍둥이의 도를 거칠게 밀어냈다.
쌍둥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강기를 머금은 천뢰도는 그대로 도 를 부쉈다.
그사이 설우진의 옆구리에 검이 꽂 혔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설우진은 이미 야수안을 통해 검의 궤적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몸을 뒤틀어 검을 아 슬아슬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쌍둥이의 자세가 무너진 상황. 설 우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뢰 도를 길게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푸확.
쌍둥이의 몸에 붉은 혈선이 번짐과 동시에 핏줄기가 솟구쳤다. 쌍둥이 는 원독에 찬 눈빛으로 설우진을 바 라보다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네놈, 진짜 정체가 뭐냐? 아무리 봐도 학관의 관도로 보기에는 무리 가 있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상대 의 숨통을 끊는 모습은 단호하고 간 결했다. 이는 학관 따위에서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삭월이 설우진의 정체에 대해 의심 했다. 하지만 그는 물음에 대꾸해 줄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어차피 날 죽이기 위해 이 먼 곳 까지 찾아온 거잖아. 괜한 호기심은 접어 두고 덤비기나 하시지. 부하들 원수는 갚아야 할 거 아니야.”
“그래. 네 말이 맞다. 곧 죽을 놈 한테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 지. 군랑진을 펼쳐라!”
삭월은 굳이 일대일 대결을 고집하 지 않았다.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타다닥.
삭월의 명령을 받은 적랑대원들은 마치 황야의 늑대들처럼 무리를 이뤘다.
군랑진은 사냥하는 늑대들의 모습 에서 착안된 진법으로, 다수의 적이 아닌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하는 데 특화돼 있었다.
‘빌어먹을. 진법을 사용할 줄이야.’
설우진은 군랑진을 보고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 대 다수의 대결 에서 가장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게 진법이다.
일단 깨기가 어렵고 기본적으로 차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랑아포박!”
삭월이 본격적으로 군랑진을 움직 이기 시작했다.
그의 명을 받은 적랑대원들은 촘촘 한 포위망을 갖추고 날카로운 이빨 을 들이댔다.
사위에서 도검이 사납게 들어왔다. 설우진은 정신없이 천뢰도를 휘둘 러 그것들을 모두 튕겨 냈다. 손목 에 전해지는 힘은 강하지 않았고 충 분히 그가 막을 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군랑진 은 설우진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적랑대는 번갈아 가면서 공격하지 만 설우진은 혼자서 그것을 모두 막 아야 한다. 당연히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에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 었다.
‘안에서 진을 부수려면 막대한 진 기가 소모될 텐데 이걸 어쩐다?”
설우진은 군랑진이 자신의 체력을 소진시킬 목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진을 깨부수지 못했다.
진을 깨부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 었다.
폭뢰를 연환해서 펼치면 어떤 진도 버텨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뒤 에 찾아오는 진기의 공백이 문제였다.
진을 깨고 난 뒤 그는 적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그 상황에 서 삭월이 달려든다면? 필패다.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군랑진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지치게 하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드문 드문 검기와 도기가 날아들기도 했 다.
덕분에 설우진의 몸에는 하나둘 상 처가 늘어 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적들이 진법을 사용하면서 대장의 발이 묶였어.”
“놈들의 숫자는?”
“열이 좀 넘어 보였어. 게다가 다 들 자유자재로 기를 유형화시켜 발산하고 있었어.”
“그럼 전원이 절정급 혹은 그에 준 하는 수준을 갖췄단 뜻이군. 예상했 던 것보다 더 최악이야.”
설우진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곳에 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거진 수풀 안. 남궁벽을 비롯한 황룡 학 관의 관도들이 모여 있었다.
남궁벽은 설우진이 미처 구하지 못 한 관도들을 다수의 힘을 동원해 구 해 냈다.
적랑대의 저항은 거셌지만 지난 사 투를 통해 벽을 부순 그의 검을 이 길 수는 없었다.
“벽아, 당장 구하러 가자. 우진이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어도 그 숫자를 상대로는 이기기 어려울 거 야.”
조인창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에 철사자회 식구들도 한마음으 로 동조했다. 하지만 다른 관도들은 대답을 회피하거나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 대표적인 이가 바로 황보민이었 다.
황보민은 그동안 철저히 속내를 숨 기고 있었다. 설우진 쪽에 붙어 있 는 게 여러모로 얻을 게 더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설우진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자신들이 나서서 돕는다고 해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는 설우진에 대한 악의를 마음속 깊 숙이 감춰 두고 있었다.
“선배, 대장은 이미 살기 글렀습니 다! 차라리 놈들이 대장에게 발이 묶여 있는 사이에 다른 곳으로 우회 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현명한 판단입니다.”
“네 말은 지금 우진이를 버리자는 것이냐?”
남궁벽은 황보민을 사납게 노려보 며 물었다. 이에 황보민은 굳이 속 내를 숨기지 않았다.
“한 명을 살리자고 다수가 사지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우진이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면 네놈들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다.”
“자기가 원해서 나선 거지 저희가 살려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황보민의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없 었다. 이에 남궁벽의 얼굴은 서늘해 지다 못해 차갑게 얼어붙었다.
“네놈들도 같은 마음이냐?”
남궁벽은 황보민의 뒤에 모여 있는 이들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들 대부분은 적랑대의 마수에서 설우진 의 도움을 받은 바 있었다.
한데 그들 모두는 은혜를 원수를 갚았다. 적랑대에 대한 공포심이 커 서인지 애당초 설우진에 대한 고마 움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다들 침묵으로 황보민과 뜻을 같이했다.
“정말 너무들 한 거 아니야? 일면 식도 없는 상단이 위험에 처했을 땐 앞다퉈 나서더니 오랫동안 얼굴을 봐 온 우진이에게 어쩜 이럴 수 있어?”
좀체 앞으로 나서지 않는 조인창이 그들의 행태에 발끈해 언성을 높였 다. 그 말에 몇몇이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이긴 했지만 마음을 바꾸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됐어, 그만해. 도울 마음도 없는 놈들은 데려가 봐야 방해만 될 뿐이 야.”
“하지만…….”
“이 이상은 시간 낭비야. 더 늦기전에 우리라도 서둘러서 움직여야 해.”
남궁벽은 조인창의 말을 끊으며 앞 쪽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인창이 급하게 뒤따랐고 순 차적으로 철사자회의 식구들이 대열 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