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27화 : 악인 모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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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27화 : 악인 모략 (2)


악인 모략 (2)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황보민의 곁 으로 유력 세가의 자제들이 모였다.

“저대로 보내도 괜찮을까? 만에 하 나라도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우린 얼굴도 들고 다닐 수 없을 텐데…….”

“상대는 마천의 오대 무력대 중 하 나예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도 이길 가능성이 전무한데, 제 놈들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하긴…….”

“괜한 걱정 말고 다들 입이나 맞춰둬요.”

“그게 무슨……?”

“용인문에 도착하게 되면 맹에서 나온 분들이 이번 일에 대해 물을 거예요. 그럼 다들 적랑대의 공격에 휘말린 건 인솔자의 무리한 판단 탓 이었다, 적들이 마련한 함정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공명심에 눈이 멀어 일방적으로 행로를 바꾼 것이 화를 불렀다는 식으로 답해요.” 

황보민은 북리강이 저질렀던 실수 를 설우진에게 뒤집어 씌웠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설우진과 철사자회가 이곳에서 뼈를 묻으면 그가 내뱉은 말은 자연스럽게 사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의견에 다들 적극적으로 동조 했다. 자신들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 한 수단으로 위증을 택한 것이다. 마음을 맞춘 그들은 연화봉을 우회 해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설우진은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공 격을 힘겹게 막아 내며 군랑진 너머 에 서 있는 삭월을 바라봤다.

군랑진은 견고했다. 기습적으로 몇 차례 폭뢰를 이용해 진을 파훼해 보 려 시도했지만 진은 금세 빈틈을 메 우고 전보다 더 맹렬하게 기세를 떨 쳤다.

그사이 뇌기는 급속도로 소진되어 갔다. 축뢰로 몸 안에 쌓인 뇌기보다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뇌기의 양 이 더 많은 탓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처음부터 우 려했던 체력의 고갈이 가시화됐다. 팔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이 다.

‘더 지치기 전에 끝을 봐야겠어. 이대로는 저놈과 칼을 맞대 보기도 전에 제 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 거 야.’

설우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군 랑진 너머에 서 있는 삭월을 바라봤 다.

삭월의 얼굴엔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숙련된 군랑진을 펼치고도 설우진을 제압하지 못하는 게 마 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태찬월이 놈에게 당한 게 이해가 되는군. 군랑진을 상대로 일각을 버 티다니. 사냥감들이 다 달아나기 전 에 내 손으로 놈의 숨통을 끊어 놔 야겠어.”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두 사 람의 마음이 하나로 통했다. 하지만 설우진에겐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 니었다.

‘빌어먹을. 지금 움직이면 안 되는 ……..’

군랑진이 발동하는 상황에서 삭월 의 공격이 더해지면 설우진으로선 막기 버거웠다. 삭월의 공격을 막는 순간 사방에서 군랑진의 기력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설우진은 급하게 단전을 쥐어짰다. 팔다리 중 하나는 내줄 각오로 천뢰 도에 뇌기를 쏟아부었다.

흉험한 기세를 느꼈는지 삭월이 검 을 뽑아 들었다. 검은 살을 베기 쉽 도록 날이 살짝 휘어 있었다.

삭월이 군랑진과 호흡을 맞추며 공 격을 전개했다. 쇄도하는 칼날 뒤로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사납게 송곳 니를 들이댔다.

마천십검 중 하나인 천랑검이었다. 설우진은 이를 악물고 폭뢰를 연환 해서 전개했다. 단전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물러서면 저 이빨에 물릴 것을 알기에 천뢰도를 휘두르는 팔에 끝까지 힘을 이어 갔다.

카카카캉.

천랑검과 폭뢰가 정면에서 맞닥뜨 렸다. 사나운 폭음과 함께 부서진 기의 파편들이 사방에 폭풍처럼 휘 몰아쳤다.

‘크윽.’

설우진의 입술 새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군랑진이 벽이 되어 충 격을 상쇄시킨 삭월에 비해 그는 그 충격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 내야 했 다.

그런데 그 충격을 진정시키도 전에 다시 군랑진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 공세에 설우진은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젠장, 이 빌어먹을 진만 아니었어도.’

설우진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군 랑진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도 군랑 진은 더 기세를 끌어 올렸다. 이번 에야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한데 바로 그때, 뜻밖의 변수가 발 생했다.

진의 한축이 난데없는 공격을 받아 틈이 벌어진 것이다. 군랑진은 외부 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지니 고 있었다. 앞쪽의 상대만 바라보고 공세를 취하니 당연히 뒤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설우진은 그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급하게 쥐어짠 뇌기를 발끝 으로 보내 단번에 진에서 빠져나왔 다.

“우진아!”

밖으로 나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 였다. 조인창을 필두로 한 철사자회 의 식구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우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저 바보 같은 녀석들이 널 구해겠다고 날 따 라왔다.”

“억지로라도 말렸어야지. 저 녀석 들 실력으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그걸 얘들이 몰랐을 것 같으냐?

알면서도 널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 만으로 두려움을 이겨 낸 거다! 왜? “우린 친구니까!”

남궁벽의 입에서는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친구.

설우진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관계 의 정립이었다.

그는 일 년 넘게 철사자회 식구들 과 함께하면서 진정으로 그들을 친 구라 여긴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삶 을 사는 것이다 보니 심정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 다.

한데 아직까지도 마음을 열지 못하 고 있는 자신을 위해 친구라는 이름 으로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다니, 가 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그래. 날 믿고 사지로 달려온 이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 해.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야.’ 

설우진은 철사자회 식구들을 보면 서 의지를 다잡았고 신속하게 대응 전략을 짰다.

사실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뭘 하든 승산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더 최악인 상 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전력이 있었 다.

설우진은 전생의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철사자회 식구들에게 빠르게 지 시를 내렸다.

-다들 몸에 걸치고 있는 내기무의 를 벗어서 병기를 감싸도록 해!

-그럼 놈들과 싸울 수가 없잖아? 

설우진의 전음에 남궁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어차피 이 싸움은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저놈을 잡을 때까지 너희들은 시간을 끄는 데 전념해. 적랑대만 없으면 저놈을 잡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 무위가 현격하게 차이 나는 경우 싸움 자체가 성립되질 않 는다.

지금 철사자회와 적랑대가 바로 그 런 경우인데, 철사자회에는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가 남궁벽과 조인 창 단둘뿐이었다. 그에 반해 적랑대 는 전원이 검기를 부릴 수 있었다. 검기가 덧씌워진 검은 강철도 잘라 낼 수 있는 절삭력을 지닌다. 한데 거기에 대고 일반 철검을 휘두른다 고 가정해 보자.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설우진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해 내 기무의로 검을 감싸도록 한 것이다. 내기무의는 강기를 버틸 수 있을 정 도로 뛰어난 방호력을 자랑한다. 이 것으로 검을 감싸게 되면 상대를 베 기는 힘들어도 검기를 받아 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설우진의 생각을 전해 들은 철사자 회 식구들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 다.

“벽아, 딱 일각이다. 그 시간만 어 떻게 해서든 버텨라.”

설우진이 남궁벽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움직이자 적랑 대는 자연스럽게 그 앞을 막아섰다. 이에 설우진은 벽을 뚫기 위해 폭 뢰를 연달아 전개했다. 속이 울컥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지만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길을 열어야만 했다. 작정하고 사용한 폭뢰는 적랑대를 거칠게 뒤흔들었다.

정면에서 맞섰던 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했고 그 주변에 있던 이들도 제 의지와 상관없이 길을 열었다.

길이 열리자 설우진은 숨 돌릴 새 도 없이 전면으로 치고 나갔다. 적랑대가 그를 붙잡기 위해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남궁벽을 필두 로 한 철사자회 식구들이 내기무의 로 감싼 검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베지는 못해도 충격은 줄 수 있기에 적랑대도 그 공격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적랑대는 설우진을 앞으로 내 보내고 철사자회와 맞섰다. 애송이 들이 자신을 방해했다는 데 화가 났는지 초반부터 검기를 난사했다.

하지만 철사자회는 침착하게 내기 무의를 두른 검으로 적랑대의 공격 을 받아 냈고 설우진의 예상대로 내 기무의는 검기를 그대로 버텼다. 

‘내기무의를 둘렀다고 해도 기본적 인 내공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무슨 수를 써 서든 머리를 잘라야 돼.’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소음에 천뢰도를 움켜쥔 설우진의 오른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설우진과 삭월이 일대일로 맞닥뜨렸다.

내력이 대거 소진된 상태라 평소처 럼 벽뢰진천의 뇌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뇌기 가 없으면 야수감각도로 싸우면 돼! 아닌 말로 낭왕 자리는 야수감각도 하나로 꿰찬 거잖아!’

설우진은 과감하게 벽뢰진천을 버 렸다. 대신 전생의 자신을 낭왕으로 만들었던 야수감각도를 머릿속에 되 뇌었다.

밀려드는 전생의 기억들. 온몸의 세포들이 감각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사이 삭월이 선공을 취했다. 삭 월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십분 활용했다. 내기를 집중시켜 검기를 넘어선 검강을 구현한 것이다.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검강이 설우진의 전면에서 살무를 췄다.

현란한 움직임 속에서 날카로운 독 아를 들이대며 설우진의 전면으로 들이쳤다.

검강은 빨랐다, 야수안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검강이 가슴을 꿰뚫으려는 찰나 설우진의 오른손이 기적적으로 천뢰도를 위로 끌어 올렸다.

천뢰도는 간발의 차이로 검강을 빗 겨 쳤다. 보통의 칼이었다면 검강의 절삭력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천뢰도 는 보통의 칼이 아니었다.

공격을 막아 낸 뒤 설우진의 야수 감각도는 완전히 깨어났다, 벽뢰진 천의 힘에 의존해 있던 반쪽짜리 야수감각도가 아닌 진짜 야수감각도로.

카캉. 캉캉.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교차했다.

설우진은 철저히 힘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삭월의 공격에 맞섰다. 

‘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삭월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 질 않았다. 일반적인 검이 아니라 검강을 덧씌운 검이다. 그런데 아무 리 검을 휘둘러도 상대가 꿈쩍도 하 질 않는 것이다. 검강과 맞닿은 칼 도 멀쩡하고 심지어 내상의 흔적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당황한 사이 넉넉하던 내력이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기도 아니고 검강을 그렇게 써댔 으니 내력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 여파인지 삭월의 눈빛이 미세하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질 수도 있 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것이다.

설우진은 그 심리적인 빈틈을 놓치 지 않았다.

그는 야수감각도를 펼치는 동안 틈 틈이 단전에 쌓아 두었던 뇌기를 한 번에 끌어 올렸고 천뢰도의 도신이 뇌기를 머금었다.

그제야 삭월은 부랴부랴 남은 내력을 검에 집중했다. 하지만 검강의 빛깔은 처음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

“부서져라.”

설우진이 힘으로 삭월의 검을 찍어 눌렀다. 내력이 충만하지 못했던 검 강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검강이 깨 졌다.

삭월의 얼굴은 일순간 창백하게 일 그러졌고 설우진은 검을 그대로 안 쪽으로 밀며 삭월의 목덜미로 천뢰 도를 가져갔다.

삭월은 간격을 벌리기 위해 다급히 후보를 밟았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 다.

뒤를 보지 못한 그는 설우진이 의 도한 대로 후보를 밟았고 땅 위로 솟아 있던 돌부리에 순간적으로 발 이 걸렸다.

휘청거리는 신형.

설우진은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뢰도로 삭월의 목을 갈랐다. 삭월은 목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다 이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부대주님!”

삭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적랑 대는 큰 혼란에 빠졌다. 머리가 떨 어져 나가니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설우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적랑대에 달려들었다. 철사자회의 식구들도 그때를 같이해 내기무의를 벗기고 그 공 격에 합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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