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28화 : 악인 모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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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28화 : 악인 모략 (3)


악인 모략 (3)

기세에서 밀린 적랑대는 무리해서 싸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 던 태찬월을 구해 물러섰다. 철사자 회 식구들은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설우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들을 말렸다.

잠시 후 적랑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설우진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몸은 좀 괜찮아?”

화산의 인접한 마을. 설우진과 철 사자회는 의원이 가까운 객잔에 자 리를 잡았다. 싸움에 참여했던 철사 자회의 식구들 중 절반 이상이 크게 다쳤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 었지만 다들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 었다.

그중에서도 설우진의 상처가 중했 다.

그의 몸에는 수십 군데의 상처가 나 있었다. 내기무의를 걸치고 싸웠 지만 군랑진에 옷은 거의 넝마가 되 다시피 했고 삭월이 휘두르는 검강 에 그마저도 완전히 찢겨 버렸다. 한데 설우진은 치료가 다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조인창이 전한 말 때문이었다.

“황보민 그 빌어먹을 놈이 정말 그 랬다고?”

“응,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놓고 애들을 선동했어.”

‘누가 늙은 너구리 핏줄 아니랄까 봐.’

설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선 그렇게 설설 기던 놈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 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지금쯤 놈은 용인문으로 향하고 있겠지?”

“아마도.”

“우리와의 거리는?”

“연화봉을 멀리 돌아서 움직였을테니 별로 차이는 나지 않을 거야. 근데 그건 왜?”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니 그에 합 당한 벌을 내려야지.”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거야?” 

“응. 이이제이라고 이기적인 놈들 끼리 싸움을 붙일 거야, 아주 추잡 한 싸움을……….”

설우진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연화봉을 멀리 돌아서 화산을 내려 온 황보민 일행은 해질 무렵에 서협 땅에 이르렀다.

그들은 곧장 서협의 명가인 용인문을 찾아갔다.

유력 세가의 자제들로 구성된 그들의 방문에 용인문이 발칵 뒤집히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용인문주 사도군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마천의 무리와 용감히 맞 서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는 젊은 영 웅들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 였다.

“그래, 함정에 빠져 힘든 순간을 겪었다고?”

“네. 제가 부득불 말렸는데도 설 선배가 무리하게 행로를 바꾸는 바람에 ………….”

“그 친구를 너무 원망하진 말게. 나쁜 의도로 그리한 것은 아니지 않 는가.”

“그래도 그 잘못된 판단 하나로 많 은 이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전 도 무지 설 선배가 용서되질 않습니 다.”

사도군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황보 민은 설우진에 대한 원망을 쏟아 냈 다. 마치 그 모든 사고가 설우진에 의해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자, 자, 괴로운 마음은 이 한 잔 의 술로 훌훌 털어 버리게.”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사도군이 건 배를 제안했다.

황보민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이것으로 밑밥은 깔았어. 정의감 넘치기로 유명한 용인문주를 구워삶았으니 맹에서 조사단이 파견된다고 해도 내 의견에 힘을 실어 줄 거 야.’

황보민은 왜곡된 진실을 전하기 위 해 사도군 앞에서 동기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관도의 모습을 연기했다. 담백한 성품의 사도군은 그 연기에 홀라당 넘어갔다. 물론 거기에는 적 절하게 추임새를 넣어 준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은 설우진에게 목숨을 빚졌음 에도 불구하고 황보민의 가증스러운 연기에 철저히 동조했다. 전형적인 줄 대기였다.

황보민의 조부인 황보준은 맹 내에 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로다. 졸업 이후를 생각한다면 죽었 을 것이 확실한 설우진보다는 황보 민 쪽에 줄을 대는 것이 훨씬 이득 이었다.

“근데 그 녀석들이 한 명이라도 살 아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이제껏 우리가 했던 말들이 설득력을 잃게 될 텐데 어쩌지?”

당문초가 조심스럽게 철사자회를 언급했다. 이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 졌다.

“선배들, 마천은 잔혹한 놈들입니 다! 품 안에 들어온 먹잇감을 절대 그냥 놔줄 리 없습니다.”

“네 말도 일리는 있는데, 남궁벽 그 녀석이라면 도망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지난번에 청랑대가 학관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살아남았었잖 아.”

“그, 그건…….”

황보민의 말문이 막혔다.

남궁벽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규 격 외의 강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번 청랑대와 사투를 벌 이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해 이제는 또래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평 까지 받고 있었다.

“그럼 선배는 어떻게 하자는 겁니 까?”

황보민은 당문초에게 단도직입적으 로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 게 그의 입으로 모여들었고 당문초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속 내를 드러냈다.

“후환이 될 수 있는 건 미리 잘라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 말은 남궁벽을 제거하자는 겁 “니까?”

“그래. 어차피 우린 돌아갈 수 없 는 강을 건넜어. 녀석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용인문주나 맹에서 파 견 나온 이에게 전한다면 우린 천하 의 비겁자로 낙인찍히고 말 거야. 다들 평생 동안 사람들의 조롱 어린 시선을 받으며 살 수 있겠어?”

“……”

“다들 품고 있는 꿈이 크니까 아무도 그럴 사람은 없을 거야.”

예리한 지적이었다.

이곳에 모인 관도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후계 구도 에서 살짝 빗겨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남모르게 가문을 잇 고자 하는 꿈을 심중에 품고 있었 다.

생각하는 바가 같았기에 그들의 마 음은 쉽게 하나로 모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남궁벽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에 있었다.

남궁벽은 여기 있는 모두가 한꺼번 에 달려들어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 는 강자였다. 어설프게 덤볐다간 되 레 화를 입을 수 있었다.

“낭인들을 고용하는 건 어떨까? 비상금을 턴다면 특급 낭인 한둘 정도는 고용할 수 있을 텐데.”

남궁휘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는 남궁벽의 사촌, 그러니까 부 가주위를 맡고 있는 남궁룡의 아들 이었다.

남궁룡은 핏줄을 중시하는 인물로 남궁가주가 남궁벽을 데려왔을 당시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순혈의 남궁 가에 천한 핏줄을 들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남궁가주는 가주의 권위를 앞세워 그의 반대를 묵살했고 그 이 후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멀어졌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남궁휘는 남 궁벽을 자신의 사촌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돈은 문제 될 게 없는데, 서협에 그만한 실력을 지닌 낭인이 있을 까?”

당문초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 그야 찾아보면………….”

“아니, 헛수고야. 서협은 용인문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도시야. 세 력 다툼이 심한 곳이라면 모를까 이 런 조용한 도시에 실력 있는 낭인이 있을 리 없어.”

“그럼 어쩌자는 거야? 낭인 말고는 딱히 그런 일을 맡길 곳이 없잖아.” 

남궁휘가 인상을 쓰며 반문했다. 이에 당문초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설마 네가 말한 칠흑야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살문은 아니겠지?” 

“그 살문 맞아. 아버지께서 일전에 모종의 일로 그들을 부린 적이 있거 든.”

칠흑야는 강호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살문이었다. 돈만 주면 표적이 애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죽여 주기에 칠흑야를 찾는 손님들은 넘쳐 났다. 하지만 칠흑야는 철저히 어둠 속에 서 활동했다. 그래서 그 수가 얼마 나 되는지 어느 곳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지 강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 었다.

“선배, 그 칠흑야, 당장에 쓸 수 있어요?”

“응. 아버지께서 그들을 부릴 일이 생기면 쓰라고 이걸 주셨거든.”

당문초가 품 안에서 작은 연을 하 나 꺼내 들었다. 그 연은 먹을 뿌린 것처럼 몸통이 온통 새까맸다.

“그 흑연을 하늘에 띄우는 건가 요?”

황보민은 단번에 그 쓰임을 알아챘 다. 이에 당문초는 긍정의 미소를 지으며 흑연을 공중으로 띄웠다. 마 침 주변에는 바람이 불고 있어 흑연 은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딴 헛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근데 지금 네 곁에는 아무도 없잖아. 녀 석들이 널 버린 게 아니라면 한 명 정도는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거, 겁이 나서 가까이 못 온 거겠 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싸움이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 어. 근처에 있었다면 그 사실을 모 를 리 없었을 텐데?”

설우진이 목발을 짚고 힘겹게 서 있는 북리강에게 관도들의 변절 사 실을 알렸다.

그는 처음엔 모함이라며 일축했다. 그들이 자신을 버릴 리 없다고 생각 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화에 그 믿음은 사상누각처럼 흔들렸다.

‘설마, 이 개자식들이 정말로…..?’ 

북리강의 눈빛이 세차게 요동쳤다. 자신이 보는 앞에선 간이라도 빼 줄 듯 입안의 혀처럼 굴던 놈들이 지금 은 한 놈도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점점 마 음은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 었다.

“아마 지금쯤 용인문에선 널 애도 한다며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졌을 거야. 적랑대를 상대로 우리가 살아 남았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할 테니.”

“좋다. 그럼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해 보겠다. 만약 네 말대로 놈들이 그따위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북리가의 힘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놈들을 찢어 죽이고 말 것이다.”

북리강이 격하게 분노를 토해 냈다.

‘후훗, 단순한 놈들을 이래서 상대 하기 편하다니까. 조금만 미끼를 던 져 줘도 알아서 지랄 발광을 하거 든. 이제 남은 건 녀석을 용인문에 데려가는 거야.’

설우진이 앞서 얘기했던 이이제이 는 북리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북리강은 황보민 일당에게 버림받 았다. 물론 북리강이 반대의 입장이 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하지 만 나쁜 놈들이 으레 그러하듯 북리 강은 자기가 당한 것만 억울하다 여겼다.

설우진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제 놈들끼리 치고받게 할 속셈이었다. 손 안 대고 코를 풀고자 한 것이다. 

“그 몸으로 용인문까지 갈 수 있겠어?”

“너희들이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 냐?”

“우리가 왜? 보다시피 우리도 움직 이기 편한 상황은 아니야. 비겁하게 도망쳐 버린 놈들 대신에 마천의 흉 수들과 싸우느라 다들 크고 작은 부 상을 입었거든.”

설우진이 한곳에 모여 있는 철사자 회 식구들을 가리켰다.

실제로 그들의 부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마천의 돌격대인 적랑대와 맞섰던 그들이다. 내기무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무력에서 큰 차이 가 났기에 부상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 거동이 가능한 자는 남궁벽이 유일했다. 조인창도 마지막에 위험 에 처한 나불진을 구하려다 다리를 베여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설우진이 재빨리 수실로 상처를 꿰맸기에 망 정이지 평생 다리를 못 쓸 뻔했다. 

“이 몸으론 용인문까지 못 간다. 너도 알잖느냐, 마천 놈들이 내 몸 에 무슨 짓거릴 했는지.”

북리강이 원독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봤다. 근맥이 잘려 나간 그의 발목은 축 늘어져 있었다.

“좋아. 그럼 널 용인문에 데려다주 겠다. 대신 저 녀석들에게 너희 가 문이 보유하고 있는 영단을 나눠 줘 라.”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북리강은 설우진이 내세운 요구 조 건에 어이가 없었다. 영단은 내공을 늘려 주는 보물이다. 그런데 하나도 아니고 열 개가 넘는 것을 내 달라 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면 우린 이쯤에서 갈라서자. 그 몸으로 용인 문까지는 힘들어도 인근 마을까지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설우진은 협상 결렬을 알리며 냉정 하게 돌아섰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 었다. 북리강이 아니더라도 놈들을 엿 먹일 방법은 많았다. 단지 거기 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뿐 이었다.

“조, 좋다. 내 몫으로 배정된 영단 을 주겠다. 하지만 모두에게 줄 수 는 없다.”

“그럼 몇 개까지 가능하지?”

“……다섯 개다. 최대치로 잡은 것 이니 그 이상은 나로서도 무리다.” 

“지금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언제쯤 건네받을 수 있지?”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면 두 달 뒤에는 영단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럼 여기서 계약하자.”

“이 북리강을 못 믿겠다는 거냐?” 

“너 같으면 믿겠냐?”

설우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 침을 날렸다. 북리강도 찔리기는 했 는지 잠깐의 망설임 끝에 계약에 동 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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