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3화 : 격동 강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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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3화 : 격동 강호 (3)



격동 강호 (3)

‘아무래도 회 내부에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군. 해공 이라면 절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 았을 텐데…….’

적사호는 전령의 얘기에 좀체 흥분 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황룡학관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끓는 살심을 억누르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학사 로 일하고 있는 자들 중 적잖은 숫 자가 마천 쟁투에 참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그것은 오로 지 역천의 계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한데 이번에 전해 온 내용은 쌍룡 맹의 지시대로 움직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이전의 행보와는 확실히 다른 방향 이었다.

“넌 그만 가 봐라.”

적사호가 전령을 밖으로 내보냈다. 바짝 얼어 있던 전령은 행여나 그 가 마음을 바꿀까 싶어 부리나케 밖 으로 뛰쳐나갔다.

“사우!”

“부르셨습니까, 소문주님.”

한 줄기 바람이 적사호의 곁으로 다가섰다. 형체가 없는 바람은 적사 호가 은밀히 부리는 비밀 호위 사우 였다.

“날 대신해 통천문에 좀 다녀와야 겠다. 추명이 녀석을 만나게 되거든 내가 은밀히 보자고 한다고 전해 라.”

“존명.”

사우는 열린 창을 통해 밖으로 빠 져나갔다.


“회주, 우리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소문에 의하면 마천의 마두들 이 감숙을 장악하고 곧 섬서로 넘어 올 거라고 하던데…………….”

“나도 그 소문 들었어. 어찌나 손속이 잔인한지 그들이 지나간 자리 에는 시체만 남는대.”

“설마 마천이 이곳으로 오지는 않 겠지? 아니, 쌍룡맹에서 그리되도록 놔두지 않겠지?”

서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월 루의 최고층. 설우진을 필두로 한 철사자회의 식구들이 사이좋게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눴다. 그들 대화의 화두는 역시나 마천이었다. 

“왜, 다들 겁나?”

설우진이 출렁이는 술잔을 입에 털 어 넣으며 물었다. 이에 남궁벽과 척무강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 덕였다. 어찌 보면 그들은 완성되지 않은 무인이었기에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럼

마천이 이곳으로 쳐들어오면 검은 맞대 보지도 않고 도망칠 거야?”

“우리 실력으로는 당해 낼 수 없는 상대잖아.”

홍위문의 장자인 홍문표가 풀 죽은 얼굴로 대꾸했다.

홍문표는 가장 마지막에 철사자회 에 들어왔다. 그는 얼굴의 반을 차 지하는 커다란 눈만큼이나 겁이 많 았다.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 그럼 싸워야지!”

“죽을 수도 있는데?”

“우리 아버지께서 그러셨어. 힘이 없어서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만 힘이 있는데도 외면하는 건 천하 에 다시없을 비겁한 짓이라고.”

‘과연 광동의 호랑이답네. 그는 마 천 쟁투 당시 마천과의 싸움에 끼지 못한 걸 천고의 한이라 했었지 …….’

설우진은 홍문표를 보면서 그의 아 버지 홍진호를 떠올렸다. 홍진호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내였다. 지닌 무 공은 썩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그 기개만큼은 십왕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마천 쟁투가 일어났을 당시 그는 사비를 털어 낭인들을 고용했다. 강 호를 지키는 데 미력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데 그는 낭인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지 못했다. 쌍룡맹의 근간인 천 중오가와 삼사보에서 공을 독차지하 기 위해 그들이 나서는 걸 원천적으 로 차단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힘만 있다면 나도 싸우고 싶어.” 

“약골인 문표도 싸운다는데 우리가 도망칠 순 없지.”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런데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 던 남궁벽이 그 열기에 시원하게 찬 물을 끼얹었다.

“대체 무슨 수로 이 녀석들에게 마 천의 무사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거지? 힘이란 것은 하루아침에 커지는 게 아니잖아.”

냉정하지만 필요한 지적이었다. 아 닌 말로 절대 지경의 고수도 하급 무사를 단 며칠 사이에 상급 무사로 만들 수는 없다.

쉬운 예로 강함의 척도로 꼽히는 내력의 경우 대환단이나 만년설삼 같은 기물의 도움 없이는 단시간에 성장이 불가능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학관에는 그만 한 기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있다고 해도 평범한 재능을 지 닌 이들에게 주어질 가능성은 전무 했다.

“후훗, 그 힘을 꼭 육체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잖아.”

“그게 무슨?”

“전장에서 미쳐 날뛰는 철기병들을 떠올려 봐. 그들은 우리보다 육체적 인 능력은 떨어지지만 전장을 지배 해. 왜일까? 그건 그들이 몸에 철갑 주를 두르고 있기 때문이야.”

“그 말은 우리 보고 철갑주라도 걸 치란 거야?”

남궁벽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분명 철기병들은 철갑주를 입음으 로써 그 힘이 크게 배가된다. 멀리 서 날아드는 화살이나 가까운 곳에 서 들이치는 병기를 튕겨 낼 수 있 어서다. 하지만 그것은 전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나 적용되는 얘기였 다.

사실 내력을 쌓은 무인들을 상대로 철갑주를 입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철갑의 무게가 발을 느리게 하고 무 인들의 공격에 의한 충격이 살가죽 이 아닌 그 안쪽에 직접적으로 전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외공의 고수들이 내가기공을 익힌 이들에게 고전하는 것과 비슷 한 이치였다.

“쯧쯧, 네 녀석은 생각이 너무 단 순해서 탈이란 말이야. 철갑주는 그 냥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로 든 거 고 실제 너희들에게 주고자 하는 건 바로 이 옷이야.”

설우진이 무복 하나를 꺼내 보였 다. 무복은 짙은 흑색을 띠고 있었 다. 색이 짙은 것 빼고는 별다른 특 징이 없어 보였다.

“문표, 네가 원하던 힘이야. 한번 입어 봐.”

설우진이 홍문표에게 무복을 건넸다.

홍문표는 무복을 이리저리 살피더 니 이내 군말 없이 갈아입었다. 미 리 입을 사람을 생각하고 옷을 지었 는지 몸에 딱 맞았다.

“이제 뭘 하면 돼?”

홍문표가 설우진에게 물었다. 이에 설우진은 남궁벽으로 하여금 홍문표 의 가슴을 베라고 지시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저깟 옷이 내검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궁벽이 언성을 높였다. 설우진의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부아가 치민 것이다. 하지만 설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너, 내가 만든 뇌력침 기억해?” “…….”

“그것과 비슷한 원리로 만든 옷이 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마음껏 휘둘러도 돼.”

설우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답했 다. 이에 남궁벽은 신경질적으로 검 을 뽑아 들었고 잔뜩 굳어 있는 홍 문표를 노려보더니 이내 눈부시게 빠른 쾌검을 구사했다.

쉬익.

허공을 내지르는 파공음. 홍문표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남궁벽의 검 이 그의 가슴을 사선으로 베고 지나 갔다.

그런데 옷은 너무나 멀쩡했다. 분 명검이 지나가는 걸 봤는데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질 않았다.

‘이, 이게 말이 돼? 저 괴물 같은 놈이 대체 옷에 무슨 조화를 부린 거야!’

남궁벽은 검을 휘두르는 마지막 순 간에 속도를 줄였다. 옷은 베더라도 홍문표가 다치는 걸 막기 위함이었 다.

그의 배려 덕분에 검은 무복의 겉 면을 스치듯 베고 지나갔다. 한데 손아귀에 은은한 탄력이 전해졌다. 무복이 검의 날을 튕겨 낸 것이다.

“우진아, 대체 저 옷 뭐로 만든 거 야? 혹시, 그 비싸다는 천잠사를 쓴 건 아니지?”

조인창은 놀라움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설우진을 쳐다봤다.

“인마, 천잠사로 이 정도의 옷을 지어 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아마 네 집을 팔아도 모자랄 거야.”

“그럼 어떻게…?”

“몸 안의 내기를 실처럼 꼬아서 만든 거야.”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저 옷이 만들어졌지. 하지만 단점도 있어. 일단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심력이 크고, 시간이 지나면 내기로 만든 실이 스스로 풀 려 버려.”

설우진은 낙양에서 서안으로 돌아 오는 길에 마천과 맞설 방법을 고민 했다. 물론 전면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 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서안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쉴 새 없이 바느질을 했다. 그 바느질 에 실제 실은 쓰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기로 바느질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결과로 그는 내기무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고되고 힘든 작 업이었지만 충분히 보람 있었다. “이 옷들을 정말 우리한테 주는 거 냐?”

남궁벽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자식이 보기보다 예리한 구석이 있다니까. 아무리 너희가 내 식구라 고해도 이런 귀한 옷을 그냥 줄 수 는 없지. 다들 금자 오십 냥만 내.”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인마, 원래 친한 사이에는 거래를 더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야! 그리 고 목숨에 비하면 금자 오십 냥은 거저 아니냐?”

설우진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이에 남궁벽도 더는 불만을 토로하지 못 했다.

“저어…………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 게 해?”

여창위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는 철사자회의 회원들 중 가장 곤궁한 처지에 있었다.

“음, 그럼 할부로 사.”

“할부가 뭔데?”

“돈을 나눠서 내는 거야. 능력이 되는 사람은 십이 개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육십 개월까지 기간을 늘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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