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30화 : 진실 공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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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30화 : 진실 공방 (1)


진실 공방 (1)

“정말 오는 거 맞아?”

관도들은 초조한 얼굴로 당문초를 쳐다봤다.

“흑연을 날린 지 한 시진도 안 지 났어.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침착하게 기다려. 분명 올 테니까.”

당문초가 관도들을 안심시켰다. 하 지만 속이 타기는 그도 매한가지였 다.

‘이것들은 대체 왜 이리 굼뜨게 움직이는 거야? 흑연을 봤으면 재깍 달려와야지.’

연줄을 쥔 당문초의 손이 급해졌고 그 손길에 흑연이 요란하게 몸을 떨 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짙은 흑의에 까마귀 가면을 쓴 사내가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그의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흠, 당유성 어른이 아니로군요.”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께 서 주셨다.”

“좋습니다. 그럼 누굴 죽여 드릴까 요? 비용은 표적의 가치에 따라 다 르게 매겨지니 참고하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건 남궁벽의 죽음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게 검귀 남궁벽입니까?”

“그래. 그놈을 깔끔하게 죽여 줬으 면 한다.”

“칠흑야 내에서도 상급으로 분류가 되어 있는 자이니 비용이 많이 청구 될 것입니다.”

칠흑야의 전령은 돈 문제부터 거론 했다.

“돈은 걱정할 것 없다. 아버지께서 내 대신 처리해 주실 것이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저희 칠흑야 는 선금을 받고 움직입니다. 물론 의뢰에 실패하면 선금은 그대로 돌 려 드릴 것입니다.”

‘누가 돈에 미친 놈들 아니랄까 봐.’

“얼마를 원하지?”

당문초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구 체적인 액수를 물었다.

“상급의 인물은 보통 금자 일 천냥 내외로 수행 대금이 정해져 있습니 다. 그렇지만 남궁벽의 경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칠백 냥만 주십시 오.”

“너무 비싼 거 아니냐?”

“칠백 냥도 당유성 어른과의 친분 을 감안해 많이 깎아 드린 겁니다. 그 이상은 곤란하니 금액이 부담스 러우시다면 저는 이쯤에서 물러가겠습니다.”

‘빌어먹을. 그 돈이면 천상에서 한 달 열흘을 놀아도 남을 것이거늘….’

당문초는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궁벽이 용인문에 들어오면 그 돈 을 쓸 기회조차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문초는 관도들을 불러모았다. 그 러고 칠흑야에서 원하는 액수를 전 했다. 처음엔 다들 격한 반응을 보 였다. 그런데 황보민이 남궁벽의 이 름을 내세워 압박하자 나중엔 순순 히 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고맙다.

당문초는 황보민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전했다.

-선배님, 우린 한배를 탄 사입니 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한번 조부 님과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네. 조부님께선 젊은 인재를 아끼 십니다. 당 선배 정도면 분명 조부 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황보민은 당문초를 확실한 자기 사 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정도면 곁에 둬서 나쁠 게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특히 깔끔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칠흑야와의 계약은 순조롭게 이뤄 졌다. 전령은 이 밤이 가기 전에 남 궁벽의 목을 따 오겠다고 약속하며 조용히 사라졌다.

“선배님들, 축하주나 한잔하러 가 시죠. 사람 죽이는 데 이골이 난 칠 흑야가 나섰으니 남궁벽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어도 살아남기는 힘들 겁니다.”

전령이 떠난 뒤 황보민이 술자리를 제안했다. 다들 초조한 마음에 목이 말랐던지라 반색하며 황보민을 따라 나섰다.


야음이 내려앉은 관도 위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설우진과 남궁벽 그리고 북리강이었다.

북리강은 설우진의 등에 업혀 있었 다. 남궁벽이 업겠다고 나섰지만 설 우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무슨 속내가 있는 듯 보였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면 되지?” 

설우진이 북리강에게 길을 물었다. 서협은 그도 초행길이었던지라 용인 문과 친분이 있는 북리강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저 앞쪽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돌 아 쭉 올라가면 된다.”

북리강은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 로 길을 알렸다. 설우진은 뻔히 보 이는 그 속내에 실소를 머금으며 걸 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막 갈림길로 들어서려는 찰 나, 그의 신형이 뒤로 밀렸다. 어둠 속에서 솟구치는 검을 본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검이 콧잔등을 스치 고 지나갔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얼굴이 썰렸을 아찔한 공격이었다.

“웨, 웬 놈들이냐?”

북리강이 설우진의 등에 고개를 처 박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에 반해 설우진은 태연했다, 마 치 공격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호들갑 그만 떨어. 상대는 살행에 특화된 전문가야. 네가 아무리 외쳐 물어도 답을 할 리가 없단 말이지.” 

“대체 누가?”

“뻔한 거 아니겠어? 우리보다 먼저 용인문에 도착한 놈들이겠지.”

“우리가 어찌 살아 돌아올 줄 알고?”

“우리보다는 저 녀석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 봐, 놈들이 저 녀석을 중 점적으로 노리고 있잖아.”

설우진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어 둠 속에서는 쉴 새 없이 검이 날아 들고 있었다. 그 검들이 향하는 곳 에는 남궁벽이 열심히 분전하고 있 었다.

칠흑야의 살객들이 어둠 속에 철저 히 몸을 숨긴 채, 남궁벽의 빈틈을 노렸다. 검 끝에 푸른빛이 감도는 것이 독까지 묻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남궁벽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사위에서 짓쳐 드는 검들을 쳐 냈다.

벽을 뛰어넘으면서 그의 감각은 전 에 비할 데 없이 예민해졌다. 이 예 민해진 감각은 시야가 어두운 밤에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남궁벽은 청각을 이용해 검이 날아 드는 위치를 정확히 읽어 냈다. 덕 분에 살객들의 공격은 번번이 무위 로 돌아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살객들과 검을 섞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좀 체 공격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지금이라는 생각에 검을 뻗으면 살 객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되레 등 뒤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남궁벽 은 좀체 반격을 취할 수가 없었다.

“계속 지켜만 볼 거냐?”

위태위태해 보이는 남궁벽의 모습 에 북리강이 초조한 얼굴로 설우진 을 불렀다.

이에 설우진은 근처에서 나뭇가지 를 꺾었다.

그의 거친 손길에 나뭇가지들은 속 절없이 제 몸을 내줘야만 했다. 

“가볍게 불장난이나 해 볼까.” 

설우진은 손에 뇌기를 끌어 올려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강한 화기 를 머금은 뇌기에 나뭇가지는 금세 활활 타올랐다.

설우진은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앞 으로 내던졌고 북리강은 그의 행동 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 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붙은 나뭇가지가 어둠을 밝혔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날아간 방향에 놀랍게도 살객이 몸을 숨기고 있었 다.

남궁벽은 설우진이 만들어 준 기회 를 놓치지 않았다.

살객의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남 궁벽의 검이 세차게 허공을 갈랐다. 살객들은 암습에 능할 뿐 실제적인 무력은 떨어지기에 남궁벽이 내지르 는 검에 속절없이 가슴을 내주며 쓰 러졌다.

‘이것들 뭐야?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놈들 같잖아. 나이는 비슷한데 무슨 놈의 실력이………….’

화려하게 전개되는 설우진과 남궁 벽의 합격술을 보면서 북리강은 혀 를 내둘렀고 그사이 싸움은 끝이 났 다.

피해가 커지자 살객들은 깔끔하게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이다. 남 궁벽의 주변에는 까마귀 가면을 쓴 살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설우진은 살객들의 시체를 쭉 둘러 보더니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살 객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독단을 깨물었는지 살객의 입 주변 에는 검붉은 빛깔의 피거품이 묻어 있었다. 임무에 실패한 살객들에게 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때 설우진이 기행을 보였 다. 이미 숨이 끊어진 살객의 발끝 을 툭툭 건드리며 일어나라고 말을 건 것이다.

그 모습에 북리강이 어이없다는 듯 이 말을 뱉었다.

“시체한테 무슨 짓이냐? 흔들어 깨 운다고 저승길을 건너던 놈이 이승 으로 돌아오기라도 할 것 같으냐!” 

“후훗,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이놈 은 돌아올 걸.”

“……?”

“사람들이 살객들에게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 중 하나가 바로 목 숨을 초개처럼 여긴다는 거다.” 

“그 말은 저놈이 살아 있다는…..?”

“그래. 살객도 다 밥 벌어먹고 살 자고 하는 짓이다. 그 말인즉슨 살 기 위해 그 직업을 택했을 뿐 제 목숨이 귀한 건 놈들도 마찬가지란 뜻이지. 왜 살객들이 기초로 귀식대 법을 익히는 줄 아느냐? 그건 살아 남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숨소리 를 감추면 사람들은 감쪽같이 죽은 줄 알거든.”

설우진이 오른발을 들어 살객의 가 슴 한복판을 지그시 찍어 눌렀다. 가슴에 가해진 압박은 서서히 심장 을 조였고 시체라 여겼던 살객의 목 덜미를 붉게 물들였다.

결국 살객은 더 버티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그 모습에 북리강의 두 눈은 놀란 토끼 처럼 크게 부풀었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사부님께 전해 들었다. 성격은 더 럽지만 머릿속에 든 건 많은 양반이거든.”

설우진은 은연중에 팽천호를 언급 했다.

팽천호는 귀신같은 칼 솜씨만큼이 나 풍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저변에는 젊은 시절에 수료한 고 급 교육 과정과 후일 낭인으로 떠돌

면서 익힌 다양한 경험들이 깔려 있 었다.

“자, 우리 대화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설우진이 살객과 눈을 맞췄다.

살객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제 밑으로 딸려 있는 식구만 열이 넘습니다.”

“책임질 식구도 많은 양반이 왜 이 런 일을 해?”

“살객 일이 위험하긴 해도 열 식구 를 책임지려면 어쩔 수가 없었습니 다.”

살객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늘 어놨다.

“뭐, 그쪽 사정은 대충 알아들었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고. 저 녀석을 죽이라고 의뢰한 사람이 누구지?”

“그건 모릅니다. 살객들은 표적에 대한 정보가 넘어오면 살행에 집중 할 뿐 그 외의 것에는 관심을 가지 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그 정보인 데 그럼 널 살려 둘 이유가 없잖아.”

설우진이 두 눈에 살기를 돋웠다. 

“워, 원하신다면 알아봐 드리겠습 니다. 마침 유객 중 하나와 친분이 있습니다.”

“유객?”

“의뢰를 물어 오는 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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