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9화 : 낭왕 징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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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9화 : 낭왕 징벌 (2)


낭왕 징벌 (2)

황보민은 도무지 이 상황이 납득되 질 않았다.

집안의 어른들은 자신이 황보세가 의 전성기를 이끌 인재라고 했다. 게다가 권왕삼절의 하나로 손꼽히는 맹호철권까지 전수받았다.

한데 지금 그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후훗, 넋이 나간 얼굴이네. 하기야 너보다 강한 상대하고 붙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사람은 말이야, 쇠와 같아서 정으 로 두들길수록 질겨지고 강해지는 법이거든. 근데 네 녀석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 담금질을 너 무 소홀히 했어. 지금 네가 겪고 있 는 이 상황이 바로 그 증거지.”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내 말이 틀렸다면 그 주먹으로 증 명해 봐.”

설우진은 기세를 더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두 주먹에 뇌기를 빠르게 응축시켰다. 폭뢰의 준비 단계였다.

‘그래, 네놈 말대로 증명해 주겠어, 이 황보민이 우리 황보세가의 제일 권법가라는 걸.’

황보민은 마지막 남은 내력까지 모 두 쥐어짰다. 큰 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부서져!”

황보민이 전력으로 맹호철권을 전개했다.

주먹 끝에 아지랑이 같은 권기가 사납게 휘몰아쳤다.

쾅!

이윽고 사나운 굉음과 함께 연무장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고 그 사이로 하나의 인영이 튕겨 져 나왔다.

“민아!”

일단의 무리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평소 황보민을 추종하고 따르던 신 입 관도들이었다.

“크아악!”

바닥에 널브러진 황보민이 오른팔 을 부여잡고 찢어질 듯한 비명을 쏟 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오른팔은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폭뢰가 터지면서 전해진 반탄력에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러진 것이다. 

“다들 비켜 보지. 우리 잘나신 후 배님한테 아직 볼일이 남았거든.” 

설우진은 황보민의 곁에 모여 있던 신입 관도들을 쫓아낸 뒤 그 앞에 바짝 다가섰다. 그의 얼굴은 방금 전에 격전을 치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이, 이…….”

“흥분하지 마. 괜히 또 덤볐다가 남은 팔까지 아작 나면 어떻게 하려 고.”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후훗, 비무 중에 생긴 불가피한 사고였어. 고의로 널 다치게 한 것 도 아닌데 내가 왜 겁을 내야 하 “지?”

맞는 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정당하게 치른 비무였다.

설우진은 암수를 쓴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주먹을 맞대서 승리를 쟁취했다. 이것을 가지고 보복 운운하 는 건 어린아이의 투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게 강호라는 세계였다.


“빌어먹을. 대체 무슨 짓을 벌인거냐?”

설우진의 앞에 한껏 얼굴을 일그러 뜨린 맹철기가 나타났다. 그는 학사 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황보민 곁에 붙여 둔 부하의 보고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길이었다.

‘황보 장로가 손자 사랑이 지극하 다고 하더니 말 잘 듣는 똥개를 놔 두고 떠났군.’

설우진은 한눈에 맹철기가 황보준의 사람임을 알아봤다.

그가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 야 이런 사소한 일에 관여할 리 없 었기 때문이다.

“뭣 때문에 이렇게 열을 내시는지 는 모르겠지만 비무 중에 생긴 우연 한 사고일 뿐입니다.”

“사고치고는 과해 보이던데? 혹, 일부러 그런 것 아니냐?”

맹철기는 은연중에 투기를 발산하 며 설우진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 기죽을 설우진이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학관의 학사님도 아닌 무사님이 왜 이 일에 나서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린놈이 강단이 보통이 아니군. 이거 오랜만에 선배 흉내 좀 내야겠 는걸.”

“난 맹의 무사이기 이전에 너보다 앞서 이곳을 졸업한 선배다. 이 정 도면 이번 일에 간섭할 자격은 충분 하다고 보는데.”

맹철기가 선배라는 점을 내세우자 예나 지금이나 선후배 관계는 엄격 하기에 설우진도 더는 그의 개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거 일이 귀찮게 흘러가는데. 성 질대로 받아 버릴 수도 없고……?’

설우진은 맹철기를 보며 살짝 인상 을 찌푸렸다.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 니라 자신의 무공이 까발려지는 것이 껄끄러웠다.

“맹호철권을 상대로 그만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보통의 무공은 아닐 텐데, 황보민의 팔을 부러뜨린 무공 의 정체가 뭐지?”

예상대로 맹철기가 설우진의 무공 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연이 닿아 얻

게 된 무공입니다.”

“이름이 뭐지?”

“뇌력혼입니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스승께선 강호에 출도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 이름이 알려졌을 리가 없지요.”

설우진은 무공의 출처를 숨겼다.

마공이란 게 알려지면 당장 마천의 간자로 몰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없는 자의 무공이 황보세 가의 맹호철권을 꺾었다? 아무리 생 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는데.”

“하면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 까?”

“내게 그 무공을 펼쳐 봐라.”

‘빌어먹을. 이자를 상대로 벽뢰진 천의 마기를 숨길 수 있을까? 그렇 다고 억지로 뇌기를 억제하고 싸울 수도 없고………..?’

설우진은 짧은 순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벽뢰진천을 쓰지 않고선 아 까와 같은 신위를 보일 수 없기 때 문이다.

“부담 가질 것 없어, 이것도 단순한 비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비무를 핑계 삼아 황보민의 보복 을 하겠단 심산이군.’

설우진은 그 속내가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에겐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비무 중에 다치기라 도 했으면 이를 핑계로 거부했을 텐 데 그의 몸은 너무 멀쩡했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몇 대 맞아 줄 각오로 비무에 나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 뜻밖의 구원자가 등장했 다. 

“다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낯익은 얼굴의 등장에 관도들은 소 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막 비무에 나서려던 두 사람도 경직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적 학사님!” 

맹철기가 먼저 적사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맹철기, 예나 지금이나 제멋대로 인 건 여전하군. 우리 관 출신이면 외부인과 허락 없이 비무를 치러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텐 데?”

“졸업생인 절 외부인으로 취급하시 다니, 섭섭합니다.”

“외부인이 아니면 왜 정당하게 끝 난 비무를 가지고 시비를 건 거지?” 

“그, 그건…….”

맹철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우진과 황보민의 비무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대꾸할 말 이 없는 것이다.

“네놈이 누구한테 꼬리를 흔들든 난 상관 않는다. 하지만 네 지저분 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우리 관이나 내 제자들을 이용하는 건 절대 용납 할 수 없다.”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전 창우대의 십 조장입니다!”

“후훗,맹에서 일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은 모양이지? 불만 있으면 그 창 들고 덤벼, 투정은 얼 마든지 받아줄 테니.”

설우진과 맹철기의 대결 구도가 적 사호의 개입으로 묘하게 흘러갔다.

맹철기는 적사호의 말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는지 수하로부터 창을 건 네받고는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학사님을 꺾고 사과를 받겠습니 다.”

“그럼 네가 지면 저 녀석에게 정식 으로 사과해라.”

맹철기의 도발에 적사호는 물러서 지 않고 응수했다. 이에 맹철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적사호, 십 년 전의 내가 아니다. 네놈이 저 애송이들과 여유로운 시 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난 피나는 수 련을 멈추지 않았다. 네놈을 꺾어 내가 창우대의 대주에 어울리는 자 라는 걸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다.’

“만약 제가 진다면 학사님의 말씀 에 따르지요.”

“그럼 길게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

적사호가 철봉을 손에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발끝에 힘이 많이 실렸는 지 그가 비무대를 지나자 뼈대가 되 는 기둥들이 요란한 신음을 냈다. 

‘힘 하나는 여전히 대단하군. 하지 만 십 년간 갈고닦은 내 창의 정교 함에 비할 바는 아니야.’

간격이 좁아지자 맹철기는 질풍처 럼 창을 정면으로 쏘아 보냈다. 날 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창두가 적사 호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가 익힌 섬전창은 찌르기에 특화된 창법이었기에 그만큼 빠르고 정 교했다. 수백 개의 나뭇잎이 흩날리 는 중에 표적으로 삼은 단 하나의 잎만을 노려서 꿰뚫을 수 있을 정도 였다.

그런데 맹철기의 창은 마지막 순간 에 옆으로 미끄러졌다. 간발의 차이 로 철봉이 날아들어 창두의 예봉을 옆으로 꺾어 버린 것이다.

“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창의 기세나 빠르기 는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지 몰라도 공격하는 방식은 그대로거든.”

적사호는 맹철기의 버릇을 지적했 고 이에 맹철기는 흠칫했다. 이런 말을 들은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 대주도 일전에 그런 말을 했었는데. 내 공격은 너무 정직하다고, 그래서 눈에 훤히 읽힌다고.’

“네 녀석이 맹에서 한자리한다고 기고만장해 있는 것 같은데, 그 실 력으론 마천의 일개 무사들도 제대 로 상대하지 못해.”

창두를 떨쳐 낸 뒤 적사호가 매섭 게 철봉을 휘둘렀다. 보이기엔 그렇 게 빠르지도 변화무쌍하지도 않은데 맹철기는 힘겨운 표정으로 철봉을 밀쳐냈다.

몇 합 겨루지 않았지만 이미 승부 가 결정 난 듯 보였다.

이에 맹철기는 쓸데없는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패배를 인정했다. 적사호는 이미 그의 다음 행동 을 예상했는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철봉을 거뒀다.

“아까 일은 내 사과하지.”

맹철기는 처음 약속했던 대로 설우 진에게 다가가 사과의 말을 전했다.

‘무식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얍삽 하기가 영락없는 너구리군. 이 악연 은 앞으로 꽤나 오래 이어지겠는걸’

설우진은 맹철기의 유연한 대응에 혀를 내둘렀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은 상대하기 쉽다. 단순한 만큼 예상되는 행동도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철기는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인물이었다.

생긴 것과는 영 딴판이라서 영 뒷맛 이 개운치 않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네 녀석을 도우려고 나선 건 아니다.”

“뭐, 그래도 결과적으론 도움이 됐 지 않습니까.”

“그럼 네 녀석이 사용한 그 무공에 대해서 얘기해 봐라. 어떻게 누구한 테 얻었는지.”

‘이것 참,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 를 만난 꼴이네. 뭐, 이제는 더 피 할 수도 없는 문제긴 하지만.’

적사호의 직설적인 물음에 설우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 길 들었을 때부터 그의 입에서 벽 뢰진천의 얘기가 나올 것을 어느 정 도 예상하고 있었다.

“제가 익힌 무공은 벽뢰진천입니 다. 무공을 남긴 이는 벽력신마로 한때 강호를 좌지우지했던 마인이라 고 하더군요.”

“혹시나 했는데…….”

적사호의 얼굴에 허탈한 감정이 스쳤다. 원래는 자신이 얻었어야 할 무공이니 그럴 만도 했다.

“벽력신마가 잠든 그 비동은 본래 다섯 수호 가문 중 하나인 통천문에 서 관리하던 곳이었다. 내가 대제자의 자격으로 그것을 얻을 예정이었지. 한데 내가 그곳에 들어갔을 때 비동은 텅 비어 있었다.”

“많이 아쉬우셨겠네요?”

“그래, 일찍이 그것만 얻을 수 있 었다면 역천지계가 그리 틀어지지도 않았을 테니 많이 아쉬웠지.”

“절 원망하십니까?”

설우진은 솔직하게 물었다. 최악의 경우 그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일 각오도 했다.

“처음엔 많이 원망했다. 죽이고 싶…….”

적사호의 두 눈에서 살의가 번뜩였다.

‘이, 이거 장난이 아닌데…………?”

설우진은 순간적으로 그 기세에 압 도당했다. 제때 뇌기를 끌어 올렸기 에 망정이지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 도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을 뻔했다. 

“너무 겁먹을 것 없다, 이젠 다 부 질없는 일이 되었으니.”

“그게 무슨……?”

“어른들 세계의 일이니 쓸데없는 호기심은 버려라. 괜히 휘말려서 좋 을 게 없다.”

적사호는 경고했다. 소란에 휘말리 는 건 그 또한 원치 않는 일이었기에 설우진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지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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