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13화 : 구출 작전 (2)
구출 작전 (2)
결국 계승식 당일에 사달이 벌어졌 다. 뮬란이 병사들을 이끌고 궁을 점거한 것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수적 인 열세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 다.
“보고 싶지 않니, 그 사람?”
치료가 끝난 뒤 아슬라가 자스민을 붙잡고 물었다. 순간 자스민의 커다 란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약해지면 안 돼. 자스민, 지금 언니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건 너뿐이 야!’
“언니, 미래를 약속한 낭군도 아니 고 그냥 몸과 마음이 통해서 사귄 사이일 뿐이야!”
“너, 거짓말하면 왼쪽 눈이 씰룩거 리는 거 모르지?”
“……”
“걱정 마. 조만간 뮬란이 이곳으로 찾아올 거야. 내게 왕권을 계승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 까.”
“설마 바흐만의 심장을 언니가 가지고 있는 거야?”
“응. 바로 여기에.”
아슬라가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바흐만의 심장은 누란의 왕을 상징 하는 반지다. 중원의 황실에서 사용 하는 옥새와 같은 것인데 금빛 테두 리 한가운데 태양을 닮은 붉은 자수 정이 박혀 있다.
“설마, 그걸 삼킨 거야?”
자스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거든.”
“언니도 참…….”
“뮬란이 오면 바흐만의 심장을 내 주는 대가로 널 밖으로 데려가라고 할 거야.”
“뮬란 언니가 과연 그 약속을 지킬 까?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는데 자스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가슴속엔 뮬란에 대한 배신 감이 크게 응어리져 있었다. 다른 언니들보다 유독 그녀를 더 따랐었 기에 뮬란이 자신에게 서슴없이 칼 끝을 돌렸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기 분까지 들었다.
굳건한 믿음이 깨져 버린 지금 그 녀에게 남아 있는 뮬란에 대한 감정 은 불신과 증오뿐이었다.
“이곳이 사막의 신비라 불리는 누란 왕국인가?”
나스리를 앞세운 설우진이 누란 왕국에 들어섰다.
왕국으로 통하는 입구에는 수십 명 의 병사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나스리의 손짓 한 번에 그들은 시원하게 길을 열었다. 생각보다 왕국 내의 그에 지위는 높은 듯했다.
입구를 지나자 중원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건물들이 줄지어 눈에 들어 왔다.
목조가 아닌 흙으로 뼈대를 세운 건물들이 많았다. 그리고 특이하게 지붕이 둥근 모양이었다.
마을을 지나자 아스라하게 보이던 누란의 왕성이 조금씩 그 형태를 갖 춰 가기 시작했다.
자금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누란의 왕성도 무척이나 크고 화려했 다. 특히 황금을 칠해 놓은 듯 화려 하게 반짝이는 성벽이 시선을 확 사 로잡았다.
잠시 후 나스리가 일행을 성문 앞 에 멈춰 세웠다.
성문 입구에는 황금색 갑주를 걸친 병사들이 하늘의 신장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태양군 소속, 나스리! 임무를 마 치고 돌아왔습니다.”
“뒤에 서 있는 저자는 누구지?”
수문위장이 설우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간적으로 나스리는 고 민했다. 여기서 그의 존재를 알려 버릴까 하는 충동이 인 것이다.
왕성의 문을 지키는 이들은 아지르, 즉 태양의 전사로 불리는 정예 병이었다.
태양군이 누란군 병사들 중 으뜸이 라면 그들은 누란의 전사들 중 으뜸 이었다.
문을 지키고 있는 아지르의 숫자는 셋. 적은 숫자지만 그들이 힘을 합 친다면 눈앞의 저 괴물을 충분히 제 압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막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뒷덜미에서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 다.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네 가 입을 여는 것보다 뒷덜미에 닿아 있는 바늘이 숨통을 끊는 게 더 빠를 테니까.
설우진의 살기에 금황침이 나스리 의 살 속으로 조금씩 파고들었다. 이에 나스리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중원에서 찾아온 상인입니다. 여 왕님의 즉위식에 도움을 주고 싶다 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흠, 소문이 빨리도 퍼졌군. 들어가 라.”
성문 양쪽에 대기하고 있던 아지르 들이 문을 안쪽으로 밀었다.
왕궁의 속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 작했고 설우진은 나스리의 뒤에 바 짝 붙어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왕권 다툼의 여파가 남아 있 는 것인지 시선이 마주치는 자들마다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목적지인 금뇌고의 입구는 왕궁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특이 하게도 입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 었다.
“옥장님은 금고 안쪽에 머물고 계십니다.”
“경비들은?”
“이곳은 따로 경비를 두지 않습니 다.”
“왜지?”
“금뇌고 안에는 수십 가지의 기관 과 함정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경비 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거,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겠 는걸.”
설우진은 살짝 불안감이 일었다.
그는 사부인 팽천호처럼 기관진식에 능통하지 못했다.
황룡학관에 다니면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일부 배우기는 했지만 알지 도 못하는 기관을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기관은 어떤 식으로 발동되지?”
“그건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이곳 에 대한 관리는 전적으로 옥장님이 맡고 계셔서…..”
“좋아, 그럼 앞장 서.”
“저, 저도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 까?”
나스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의 감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옥장이 무작정 기관을 발동시켜 버리면 곤란하잖아. 그러니까 네 녀 석이 방패막이가 돼 줘야겠어.”
설우진은 나스리의 뒷덜미를 잡고 금뇌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스리 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안간힘 을 썼지만 설우진의 악력을 이길 수 는 없었다.
천뇌고 안은 길을 알려 주듯 천장 에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덕분에 횃불이 없이도 걸음을 옮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두 번째 문이 보였다.
이번에도 사람은 없었다.
설우진은 철저히 나스리를 꼭두각 시로 부렸다. 어떤 기관이 발동될지 모르기에 문을 열고 길을 찾는 작업 을 모두 그에게 일임했다.
두 번째 문을 열자 아래로 내려가 는 계단이 나왔다.
이번에는 야명주가 천장이 아닌 계 단 한복판에 박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 나스리의 신경은 한껏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 번째 문에 당도할 때까지도 기관은 작동 하지 않았다.
“저 문 너머에 옥장이 있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옥장은 얼마나 강하지?”
“타후란 님은 은퇴 전까지 누란 최 강의 용사로서 그 무용을 떨치셨던 분입니다. 아마 당신이라도 그분만 큼은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디 실력을 확인하러 가 볼 까!”
설우진이 과감히 세 번째 문을 열 었다.
밝은 빛과 함께 넓은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두꺼운 철 창으로 둘러싸인 방이 보였고 그 앞 에 거구의 사내가 석상처럼 버티고 앉아 있었다.
사내를 발견한 나스리는 순간적으 로 설우진의 손길을 뿌리치며 앞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타, 타후란 님!”
나스리의 외침에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타후란은 황야를 누비는 한 마리 사자처럼 황금빛의 머리칼에 두 눈이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굵직한 목소리가 뇌옥 안에 울려 퍼졌다.
“저는 태양군 소속의 나스립니다.”
“그럼 저자는?”
“죄수를 노리고 들어온 외인입니 다.”
나스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특히 설우진에게 붙들려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됐다는 얘기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한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 타후란의 커다란 손이 나스리의 얼굴을 통째 로 잡아챘다.
“외인을 끌어들인 자는 즉결 처형 이다.”
짧은 선고와 함께 그의 손가락이 나스리의 얼굴을 찍어 눌렀다. 퍼석.
수박이 깨지듯 나스리의 머리통이 타후란의 손아귀 안에서 터졌다. 허 연 뇌수와 붉은 핏물이 뒤섞여 사방 으로 튀었다.
‘저놈 얼굴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건 짐승 그 이상이군. 이 거 생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겠어.’
설우진은 타후란의 잔혹한 손 속에 적잖은 긴장감을 내비쳤다.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을 괴물이라 칭한다. 그들에겐 인간에 게 통용되는 감정들이 존재하지 않 기 때문이다.
쿵.
타후란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 고는 한쪽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도 끼를 집어 들었다. 그 도끼는 서역 에서 자주 쓰인다는 쌍날 도끼였다.
“누군지는 묻지 않겠다. 그냥 죽어 라.”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타후 란이 한 마리 비조처럼 날아서 설우진의 가슴팍으로 쌍날 도끼를 휘둘 렀다.
‘살짝만 스쳐도 뼈마디가 날아가겠군.’
설우진은 도끼가 날아드는 궤적에 서 반 보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다는데 갑자기 도끼날이 늘어났다. 아니, 늘 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황급히 뒤로 몸을 젖혔다. 간발의 차이로 도끼날이 이마를 스치고 지 나갔다.
이마가 뜨끈했다. 만져 보니 손끝 에는 피가 선연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가슴 어름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궤적의 변화가 없었는데.’
설우진은 방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 으로 복기했다.
정상적인 궤적을 따라 움직이던 도 끼가 마지막 순간에 뛰쳐나왔다. 분명 보폭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 고 도끼를 손에서 놓은 것도 아니었 다.
그가 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 타후 란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도 도끼는 번번이 궤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까처럼 넋 놓고 당하지만 은 않았다. 벗어날 궤적마저 예상하 고 미리 대처한 것이다.
카카칵.
가슴으로 짓쳐 들던 도끼날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설우진이 천뢰도의 넓은 도신을 사 선으로 기울여 도끼날을 빗겨 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 다.
타후란의 도끼가 품고 있는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결국 막다가 지 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 운데 뜻밖의 인물이 그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안겨 줬다.
“타후란은 유가밀공의 전수자요.”
뇌옥 안쪽에서 또렷한 한어가 들려왔다.
유가밀공. 그것은 서장에서 은밀히 전해지는 비공이다.
포달랍궁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 기는 하나 그 진실은 아직까지 밝혀 진 바가 없었다.
유가밀공은 변용에 특화된 무공이다.
그 말인즉슨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 의 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랬군. 놈의 비밀은 도끼가 아니 라 몸에 있었어.’
설우진의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 다. 이제까지 당한 것을 되갚아 주 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놈은 공격을 전개하는 마지막 순간에 손목을 늘리는 방식으로 궤적 을 어긋나게 만들었어. 그래서 도끼 날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던 거고.’
타후란의 비밀이 풀렸다.
답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수세 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설우진이 천뢰도에 뇌기를 싣고 달 렸다.
타후란은 우습다는 듯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리며 재차 도끼를 휘둘렀 다.
‘유가밀공이 발휘되는 순간을 노린 다.”
설우진은 아까와 같이 도끼의 궤적 을 좇는 척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 섰다. 하지만 그의 눈은 도끼가 아닌 도끼를 쥔 오른손을 향하고 있었 다.
이윽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설 우진의 몸이 도끼의 궤적에서 살짝 벗어난 때에 거짓말처럼 타후란의 손목이 늘어난 것이다.
그걸 본 설우진은 되레 앞으로 몸 을 내밀었다. 그리고 궤적에서 벗어 나려는 도끼를 천뢰도의 칼등으로 쳐올렸다.
순간적으로 타후란의 몸이 열렸다. 설우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 쪽으로 쇄도해 들어가 천뢰도를 휘 둘렀다.
거리가 완전히 좁아진 상황이라 피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한데 타후란의 몸이 거짓말처럼 휘어졌다.
‘아주 몸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군. 하지만 내기의 흐름이 막혀도 그럴 수 있을까?’
설우진이 천뢰도에 모아 뒀던 뇌기 를 사위에 폭출시켰다. 천뢰도는 피 했지만 그 뇌기만은 타후란도 피하 지 못했다.
타후란의 몸으로 파고든 뇌기는 내 기의 흐름을 방해했고 그 여파는 고 스란히 유가밀공에 미쳤다.
‘모,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 아.’
가슴으로 밀려드는 천뢰도를 느끼 며 다급히 유가밀공을 전개했던 타 후란의 얼굴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내기의 유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늘어져야 할 몸이 제자리 에 굳어 버린 것이다.
사아악.
천뢰도가 무방비로 노출된 타후란 의 가슴을 그대로 훑고 지나갔다. 뇌기를 머금은 천뢰도의 칼날은 거 칠고 무자비했다. 이에 역한 노린내 와 함께 타후란의 가슴이 쩍 갈라졌 다.
쿵.
타후란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