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26화 : 망종 재회 (1)
망종 재회 (1)
다음 날 아침, 설우진은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책맹을 달라는 살라만 더의 성화 때문이었다.
그는 살라만더에게 연신 욕을 해 대면서도 책맹이 많이 출몰하는 우거진 들판의 수풀로 향했다.
파드득.
둘이 들판에 발을 내딛자 사방에서 책맹들이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날 아올랐다.
그런데 웬일인지 살라만더는 책맹들을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어제 와 같은 전투적인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기껏 데려왔더니 뭐 하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잡아서 네 입에 넣 어 달라는 건 아니겠지?”
설우진이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소리쳤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목이 라도 따 버릴 기세였다. 다행히 살 라만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우진 의 화를 달랬다.
‘대체 뭐가 문제야?’
설우진은 살라만더가 원하는 바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아냈다.
“저걸 익혀 달라는 거냐?”
설우진이 책맹을 손가락으로 가리 키며 물었다. 이에 살라만더는 기다 렸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네놈이 무슨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냐? 화식을 하게! 하여간 내가 내 발등을 스스로 찍었다니까. 저런 걸 뭐에 쓴다고 데려와서는………….”
설우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살 라만더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뒤 늦은 후회였다.
결국 그는 살라만더가 원하는 대로 책맹을 구워 주기로 했다. 대신 책 맹을 잡는 건 살라만더에게 맡겼다. 책맹 구이를 먹을 생각에 살라만더 는 그야말로 들판을 제 집처럼 누비고 다녔다.
녀석이 꼬리로 후려칠 때마다 기절한 책맹이 설우진의 발아래로 우수 수 떨어졌다.
“아아악!”
설우진과 살라만더가 한참 책맹 사 냥에 열중하고 있을 때 청월 자매의 집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마당에서 무쇠솥을 닦고 있던 청미 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집 안으 로 뛰어 들어갔다.
“미, 미야, 황 할머니 좀 불러 줘.”
청월이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
“언니, 아이가 나오려고 해?”
“으, 응, 배가 당겨서 가만있을 수 가 없어.”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달려가 서황 할머니 모셔 올게.”
청미는 발에 땀나도록 뜀박질을 했다.
황 할머니는 열채 건너에 사는 산파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보 니 아무도 없었다. 아이를 받을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 안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곳에 아이를 받으러 간 듯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청미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무슨 방법이 떠올랐는지 성 도 중심가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각 여쯤 지났을까, 땀 으로 범벅이 된 얼굴의 청미가 거대 한 장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원 입구에는 신룡당가라는 글귀 가 선명하게 새겨진 문패가 걸려 있 었다.
청미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문위사를 붙잡고 간절히 외쳤다.
“기 공자님을 만나 뵙게 해 주세 요.”
하지만 수문위사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얘길 하게 하느냐! 공자님은 지금 출타 중이시다. 다음에 미리 약속을 잡고 오너 라.”
“어떻게 매번 제가 찾아올 때마다 자리를 비울 수 있어요? 제발 기 공자님께 말만이라도 전해 주세요.” “크흠,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 냐?”
수문위사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언니가 아까부터 산통을 겪고 있 어요. 책임지라는 말은 안 할 테니 제발 산파만이라도 보내 달라고 전 해 주세요. 이대로 두면 언니도 아 이도 위험해요.”
순간 수문위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청미의 아혈을 제압했다.
이에 청미는 언니와 아이를 살리겠 다는 일념 하나로 수문위사의 다리 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모습에 수문위사도 마음이 약해 졌는지 공자님께 말을 전하겠다고 약속하며 그녀의 아혈을 풀어 줬다.
“감사해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됐다. 그런 공치사는 필요 없으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산모 곁이 나 지켜라.”
수문위사는 청미를 집으로 돌려보 냈다.
한데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그는 한참 동안 청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계집의 동생이 찾아왔었다고?”
화려하게 꾸며진 침소 안, 당세기 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문위 사에게 물었다. 그의 발치에는 빈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수문위사는 청미와 만났던 일을 자 세히 고했다.
챙그랑.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세기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던졌 다.
애꿎은 화풀이에 술병은 산산이 부 서졌다.
“이 빌어먹을 계집들이 누구 발목을 잡으려고! 그 어린 계집은 지금 어디 있지?”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보다 더 늦기 전에 산파를 보내시지요.”
“산파? 이 새끼, 날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야! 그 계집이 애를 낳으 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될 것 같아? 가뜩이나 집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 아예 내쳐질 수도 있어!”
당세기가 수문위사의 멱살을 거칠 게 틀어쥐며 한껏 악을 내질렀다. 그는 쌍룡무회에서 치욕스러운 기 권패를 당한 이후 가문의 신뢰를 완 전히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황룡 학관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겨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그는 정처 없이 방황했고 청 월을 만나게 된 건 바로 그쯤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