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6화 : 선택의 기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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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6권 – 6화 : 선택의 기로 (3)


선택의 기로 (3)

그렇게 비무의 장이 마련됐다. 세 사람은 사이좋게 후원으로 향했 다. 그곳은 맹주와 그 친인들의 출 입만이 허락된 공간이었다.

너른 공터에 설우진과 황수아가 마 주 섰다.

두 사람은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 며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허리로 가 져갔다.

생사를 겨루는 상황이 아님에도 두 사람 사이엔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 정면으로 치고 나 갔다.

선공을 취함으로써 초반의 기세를 가져오겠다는 심산이었다.

먼저 불을 뿜은 건 황수아의 검이었다.

정면으로 쇄도하는 그녀의 검은 내 공의 기질과 꼭 닮아 있었고 한마디 로 거칠었다.

허공을 찢어발기며 들이치는 검격 에 설우진은 두 눈으로 그 궤적을 읽어 내며 침착하게 천뢰도를 휘둘 렀다.

내기는 실려 있지 않았지만 그의 강인한 손목의 힘이 더해진 도격은 묵직했다.

캉!

두 자루의 도검이 한가운데서 맞닥뜨렸다.

‘이거, 여자의 탈을 쓴 사내 아니 야? 뭔 놈의 힘이 이리 세!’

‘조부님의 말이 과장됐다 여겼는 데, 내 천력기에 맞서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다니……………’

한 차례 도검을 맞댄 뒤 두 사람 은 서로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놀람의 정도는 황수아 쪽이 더 컸다.

그녀가 익힌 천력기는 사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력이 떨어지는 여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보타암의 비전심 법이었다.

검술에 재능이 있는 여인들에게만 전수되는 것인데, 그녀는 입문과 동 시에 천력기를 전수받았다.

현재 그녀의 화후는 팔성에 근접해 있었다. 보타암 역사상 최고의 성장 세였다.

팔성의 천력기면 이백 근짜리 참마 도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었다. 

“탐색전은 이만하고 제대로 한번 붙어 봅시다.”

설우진이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 빛을 보내며 천뢰도에 왼손을 보탰 다. 양손으로 상대하겠다는 의미였 다.

이에 황수아도 왼손을 검으로 가져 갔다.

타앗!

설우진이 짧은 기합과 함께 그녀의 검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이어진 공격은 인정사정없 었다.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도 잊은 것인 지 설우진은 전심전력으로 천뢰도를 휘둘렀다.

찌르고, 베고, 쳐올리고. 정신없이 이어지는 연격이었다.

한데 놀라운 건 그 공격을 황수아 가 모두 받아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 다.

설우진이 기세를 끌어올릴 때 그녀도 천력기를 극대화했다. 힘을 아껴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둘 사이에 정신없이 불똥이 튀었다.

무공의 기질이 비슷하다 보니 대결 의 양상은 시간이 가도 크게 바뀌질 않았다.

‘승부욕이 대단한 여자네, 이쯤 했 으면 손목에 꽤나 무리가 갔을 텐 데.’

설우진이 살짝 인상을 쓰며 손목을 바라봤다.

손목이 뻐근했다. 당장에 공격을 멈춰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 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이에 설우진은 결판을 짓기로 했다.

“어이, 소저, 이번 한 번으로 승부 를 냅시다, 이 이상은 피차 무리일 듯싶으니!”

“바라던 바예요. 하지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이번 공격으로 그 칼을 손에서 놓게 될 테니.”

황수아가 천력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었지만 그녀의 두 눈엔 강한 자신감이 엿보 였다.

두 사람은 잠시 떨어졌다가 이내 다시 맞붙었다.

황수아의 검이 천뢰도를 단박에 부러뜨릴 듯이 위에서 아래로 쇄도했 다.

휘몰아치는 검풍, 이에 설우진도 반 반자 늦게 천뢰도를 사선으로 들 어올렸다.

기세에선 황수아의 우세가 점쳐지 는 상황이었다. 한데 도검이 부딪치 는 순간 설우진의 손이 도병을 살짝 틀었다.

이에 꼿꼿하게 서 있던 도신이 비 스듬하게 기울어졌고 그 위에 떨어 진 황수아의 검이 제대로 힘을 쏟아 내지 못하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황수아가 뒤늦게 검의 방향을 틀어 보려 했지만 이를 눈치챈 설우진이 천뢰도를 강하게 밀어 올려 그녀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졌어요.”

황수아가 검을 내리며 패배를 시인했다.

한데 진 것이 어지간히 분한지 손 등에 힘줄이 도드라지게 검을 움켜 쥐었다.

‘이야, 승부욕 하나는 인정할 만하 네. 한데 왜 전생에는 그 이름이 알 려지지 않았지? 내가 기억하기로 분 명 보타암도 마천 쟁투에 참전을 했 었는데.’

그가 기억하는 보타암은 마천 쟁투 에서 꽤 큰 활약을 했었다.

백 명도 되지 않는 적은 인원이었 지만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마천의 무사들이 목을 움켜 쥐고 쓰러져 있었다.

한데 그 대단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보타암의 여고수들 중 그녀의 이름 은 한 번도 언급된 바가 없었다. 

“내 손녀의 무례한 부탁을 들어줘 서 고맙네.”

“하하, 아닙니다. 전부터 보타암의 검이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많은 것 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우진이 겸양을 표하며 황수아 쪽 을 슬쩍 쳐다봤다.

그녀는 방금 전의 패배가 많이 분 했던지 고운 입술을 앙다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착각하지 마요. 오늘 대결에서 패한 건 보타암의 검이 약해서가 아니 라 내가 미숙했기 때문이에요. 조만 간 다시 대결을 펼쳐 그 사실을 증 명할 테니, 절대 나와의 대결을 피 하지 마요.”

“언제든 환영이니, 찾아오십시오.” 

설우진은 그녀의 재대결 신청을 흔 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선택 이 불러올 후폭풍을.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맹주전에 있습니다.”

“빌어먹을, 음흉한 맹주 늙은이가 먼저 선수를 쳤군.”

화려하게 꾸며진 방 안. 낯익은 얼굴들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 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이는 북리철이었다. 그는 최근 강경파의 실세로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맹주 암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은 인자중하고 있었는데 마천이 발호하 면서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부랴부랴 세를 끌어 모았다. 대외적인 활동만 자제했을 뿐 은밀 히 모임을 이어 나가고 있었기에 세 의 결집은 빠르게 이뤄졌다.

“장로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놈의 그간 행적을 조사해 봤더니 돈을 꽤 밝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럼 돈으로 놈을 끌어들이자는겐가?”

“돈으로 회유할 수만 있다면 그리 해야지요. 어차피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도 아니잖습니까!”

북리철의 맞은편에서 남궁룡이 진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차기 장로 자리를 노리고 일찍부터 북리 철에게 줄을 대고 있는 자였다. 남궁가는 맹 내에서 중도파에 속해 있었다.

이는 가주인 남궁대현의 영향이 컸 다. 그는 맹 내에서 일어나는 세력 다툼에 대해 철저히 방관했다. 어느 쪽으로도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데 그 덕분에 세력 간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 다.

현재 맹 내 세력 구도를 살펴보면 강경파 쪽에는 북리가와 황보가가, 온건파 쪽에는 모용가와 제갈가가 각각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럼 쌍룡맹의 한축인 삼사보는 어 떨까?

그들은 최근 천중오가와 갈라설 움 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마천 쟁투가 끝난 뒤로 삼사보가 중심이 된 사파 는 지속적인 견제로 그 세가 많이 줄고 있었다.

권력의 축이라 할 수 있는 장로원 에도 겨우 다섯 명만이 이름을 올렸 을 뿐 나머지는 모두 천중오가에 내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대 무력대의 지 휘권을 빼앗긴 것이 컸다. 검호대를 비롯한 오대 무력대는 정기적으로 비무를 통해 대주의 자격을 시험했 다. 쌍룡맹의 선봉에 설 세력들인 만큼 강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본 것 이다.

사실 거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강한 자가 대주가 되면 그만큼 무력 대의 힘도 강해지기에.

한데 문제는 그 비무로 인해 삼사 보 출신의 인물들이 모두 대주 자리 에서 밀려났다는 데 있었다.

삼사보는 머릿수에서 천중오가를 압도하지만 개개인의 무력을 놓고 봤을 때는 천중오가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삼사보 는 두 눈 빤히 뜨고 자기 걸 빼앗 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삼사보는 자구 책을 마련하기 위해 은밀히 모였지 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쌍룡맹에 붙어 있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회유가 안 되면 어쩔 텐가?”

북리철이 가지런히 기른 턱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에 남궁룡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말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그 다리를 부러뜨려야지요.”

“무력을 쓰겠다는 겐가?”

북리철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남 궁룡을 바라봤다. 그 방식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가 정의로운 인물이라서 그 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주 변의 이목이 신경 쓰인 것이다. 

“하하,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저도 드러내 놓고 힘을 쓸 생각은 없습니 다.”

“하면?”

“놈이 가족을 끔찍이 여긴다고 하더군요. 그쪽으로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호오, 가족들을 이용해서 놈의 손발을 묶겠다?”

“네, 물론 우리의 존재가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릴 대신해서 움직여 줄 세력이 있으니.”

남궁룡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 졌다.


방 안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 다.

그 근원지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마주한 남궁벽이었다.

“숙부님이 이곳엔 무슨 일입니까?” 

“시건방진 말투는 여전하구나. 하 기야 그 더러운 피가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니………….”

순간 남궁벽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끓어오르는 살심을 애써 참아 내는 모습이었다.

그는 남궁벽이 상대하기 버거운 위 치에 있었다.

남궁가의 부가주이면서 맹 내에서 집법전의 부전주직을 겸임하고 있었 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 으로도 아직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 

“네 친구는 지금 어디 있느냐?” 

남궁룡이 의자에 걸터앉으며 설우 진의 소재를 물었다.

“우진이는 왜 찾는 겁니까?”

“이번에 마천의 청랑대를 상대로 꽤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해서 인재를 아끼는 이 몸이 녀석을 거두고자 몸소 찾아온 게다.”

“그런 목적이시라면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남궁룡이 날선 눈빛으로 물었다. 남궁벽은 거기에 위축되지 않고 자 기 할 말을 그대로 이었다.

“녀석은 이미 발톱이 다 자란 맹호 입니다. 한데 그 맹호가 승냥이 밑 으로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순간 남궁룡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 랐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승냥이 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를 리가 없 었기 때문이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남궁룡은 기습 적으로 남궁벽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남궁벽은 그 손길을 피하려 급하게 보법을 밟았지만 역부족이었 다.

남궁룡은 남궁벽의 멱살을 틀어쥔 채 그대로 밀어붙였다.

어찌나 미는 힘이 강했던지 벽이 움푹 패여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봐라, 아예 그 혀를 뽑아 줄 테니.”

“크큭, 원한다면 몇 번이고 더해 드리죠. 당신은 승냥이 무리 중 하 나일 뿐입니다. 우진이를 품기엔 그 가슴이 너무도 작단 말입니다.”

“놈!”

멱살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숨통이 막혀 오는 와중에도 남궁벽은 독하게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 다.

바로 그때 설우진이 방으로 돌아왔 다.

그는 벽에 처박혀 있는 남궁벽을 보고는 가볍게 손을 뻗어 남궁룡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손 놓으시죠!”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돌아가시죠, 저희도 소란이 커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난 집법전의 부전주 남궁룡이다.”

“후훗, 저흰 쌍룡맹의 맹도가 아니라 황룡학관의 관돕니다. 당신이 학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면 모 를까 집법전이라는 이름은 저에게 아무런 위협이 못 된다는 말이죠.”

“유유상종이라고 하더니 버릇없고 건방진 건 둘이 똑같구나. 내 강호 의 어른으로서 네놈들의 버릇을 단 단히 뜯어고쳐 주마.”

남궁룡은 설우진의 손을 거칠게 뿌 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 간 그의 어깨를 쥐고 있던 설우진의 손가락에 강한 악력이 실려 근육이 짓눌리고 뼈마디에 강한 통증이 전 해졌다.

‘어, 어린놈이 무슨 힘이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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