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7화 : 선택의 기로 (4)
선택의 기로 (4)
남궁룡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 이 떠올랐다. 아무리 힘을 주고 뿌 리치려 해도 설우진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되레 팔의 통증만 가중될 뿐이었다.
“집법전의 사람이면 누구보다 맹규 에 대해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잘못 이 있으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서 집 행을 해야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이렇게 폭력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
“일 더 키우지 말고 조용히 나가시죠. 저는 그리 인내심이 깊지 못합 “니다.”
설우진이 남궁룡의 귓가에 대고 속 삭이듯 협박했다. 남궁룡은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이상 황에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건 그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남궁벽의 멱살을 쥐고 있던 오른손에 힘을 풀었다. 남궁벽 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설우진도 남궁 룡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오늘의 이 수모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남궁룡이 원독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설우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 정도 에 기가 죽을 그가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입 니다. 앞으로 제 눈에 띄지 마십시 오. 그때는 이 손이 어깨가 아닌 목 을 짓누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뒤 끝이 남는 관계를 무척 싫어했다. 실제로 낭왕 시절에 그와 악연을 맺었던 이들은 한결같이 묻혔다. 여 기서 묻혔다는 것은 강제 은퇴를 당 했다는 뜻이다.
남궁룡은 설우진의 얼굴을 한참 동 안 노려보다 이내 방을 나섰다.
“괜찮냐?”
“멀쩡해, 목이 좀 아픈 걸 빼면.”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왜 하필이 면 서자라는 골치 아픈 자리에 태어나서.”
“이젠 팔자려니 생각한다. 충분히 적응하기도 했고.”
남궁벽은 달관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이런 수모를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철이 든 이후로 그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십 수 번 이 넘었다.
“아까 나간 그 인간이 남궁휘 그놈 의 아비지?”
“응.”
“핏줄은 못 속인다더니, 하는 짓이 꼭 닮았네.”
설우진은 황보민에게 들러붙어 제 사촌형을 죽이려 했던 남궁휘의 행 태를 힐난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셈이냐, 학 관도 한동안은 문을 닫을 것 같던 데?”
남궁벽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전해 들은 바로 황룡 학관은 마천 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운영을 잠 시 중단한다고 했다.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인력도 턱없 이 부족하고 안전상의 문제도 고려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쌍룡맹과 마천 그리고 역 천회가 어우러져 한바탕 큰 전쟁이 벌어질 거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진다고 이럴 땐 잠자코 있는 게 최고야.’
설우진은 이번 전쟁에 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전생에 그는 전쟁 통에 수도 없이 죽을 뻔한 위기를 맞았었다. 전쟁을 치르는 그들에게 낭인은 언제든 필 요하면 버릴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돈이 궁해서 전쟁에 뛰어 들었지만 지금은 주머니도 빵빵한데 굳이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지, 암.’
잠시 고민하던 설우진은 이내 속시원하게 답했다.
“난 내일 감숙으로 떠난다.”
“감숙 혹시 누란국에 찾아갈 생각이냐?”
“응, 아무래도 자스민이 불안하거 든. 왕권 다툼만큼 지저분한 싸움판 도 없으니까.”
“혼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하지 않 겠냐? 마천 놈들이 또 움직일지도 모르는데.”
“이곳에 있는 것보단 차라리 더 안 전할걸. 솔직한 말로 이 안에 마천 의 눈과 귀가 숨어 있을지 누가 알 아.”
마천은 간교한 집단이다. 겉보기엔 힘만 믿고 설쳐 대는 것 같지만 그들은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인다. 설우진이 여기서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그 의심 많은 마천이 역천회의 정보망만 믿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 는 점이다.
‘역천회와의 연계가 끊기기는 했어 도 분명 맹 내에 놈들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정보망이 있을 거야. 역천회 의 것보다는 크지 않겠지만 내 행적 을 알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테 지.’
설우진은 쌍룡맹 안에 머무는 것보 다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안전하다 판단했다. 남궁벽도 그 얘기에 동의 하는지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 았다.
“넌 집으로 돌아가냐?”
이번엔 설우진이 남궁벽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 봐야 반겨 줄 사람도 하나 없으니.”
“그럼, 나대신 애들 모아서 철사자 회를 정식 문파로 한번 만들어 봐라.”
“그때 한 말 농담 아니었냐?”
남궁벽이 놀란 눈빛으로 설우진을 쳐다봤다.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봤냐! 자금은 넉넉히 준비해 뒀으니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 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이대로 전쟁이 심화되면 강호는 극심 한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럼 치 안이 불안해지고 도적들이 날뛰겠 지. 철사자회는 바로 놈들로부터 내 사람들을 지키는 든든한 방벽이 될거야.”
설우진이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이에 남궁벽은 화끈하게 그 청을 수락했다, 부회주 자리는 내 것이라 는 말과 함께.
“으아악!”
남궁룡이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울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탁자의 물건 들을 거칠게 쓸자 이에 요란한 소리 와 함께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진정하십시오.”
구릿빛 피부에 태산준령처럼 짙은 눈썹을 지닌 중년 사내가 놀란 얼굴 로 소리쳤다.
평소에는 청수한 모습만 보여 주던 남궁룡이었기에 그의 놀람은 어느 때보다 컸다.
“설우진・・・・・・ 그 새파랗게 어린놈에 게 철저히 무시를 당했다.”
“형님이 내민 손길을 뿌리친 것입니까?”
“뿌리친 정도가 아니다. 아예 걷어찼다.”
남궁룡이 두 눈에서 귀화를 뿜어댔다. 설우진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기세였다.
“어차피 그리해 주길 원하고 계시 지 않았습니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시죠!”
“자신은 있는 게냐?”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일품점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했다곤 하 지만 아직 십대 상단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특히 판매하는 품목이 한정돼 있어 물건이 나가는 길만 막 아 버리면 스스로 고사하게 될 것입니다.”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내는 가 장 최근에 십대 상단에 이름을 올린 예도상단의 후계자 예명한이었다.
예도상단은 조선과 왜의 중계 무역 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조선과 왜에서 넘어오는 물 건들을 중원에서 나는 물건들과 바 꿔 그 차익을 챙겼다.
바다를 건너오는 물건들 중에서 예 도상단에 가장 큰 돈을 안겨 준 건 조선의 인삼이었다.
조선의 인삼은 고관대작들 사이에 서 인기가 높았다. 들여오는 족족 비싼 값에 팔렸고 없어서 못 팔 정 도였다.
한데 최근 들어 인삼의 공급량이 뚝 떨어졌다. 인삼을 거래하던 조선 의 상인들이 예도상단에서 취급하는 물건 대신 일품점의 옷을 받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바다 건너 조선에까지 일품 점의 명성이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 으나 그 인기는 조선 상인들의 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반드시 일품점을 이 손에 넣어 형 님이 큰 뜻을 이루시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마.”
남궁룡이 예명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