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16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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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16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

아직까지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 었지만 군데군데 찢긴 옷 사이로 혈 흔이 내비쳤다.

‘안 돼, 이대로 내 형제들을 잃을 순 없어!’

모상운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던 마음의 벽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마, 말하겠다.”

모상운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이에 설우진은 가휼에게 전음을 보 내 공격을 멈추도록 명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조금만 더 밀어 붙이면 끝나는 싸움인데?

-승부는 이미 났어. 그리고 그쪽이 원하는 건 돈 되는 물건이지 사냥개 들의 목이 아니잖아.

-나중에 이들이 우리의 목을 물려 고 할 수도 있소!

-그건 걱정 마. 놈들에게 아주 튼 튼한 목줄을 채울 참이거든.

설우진이 가휼을 반강제로 설득했 다.

가휼은 끝까지 납득하지 못하는 눈 치였지만 설우진의 뜻을 거스를 수 는 없기에 묵설야를 내버려두고 수레 쪽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감천경이 다급히 수 하들에게 외쳤다.

“놈들을 막아라! 절대 물건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핼쑥해진 얼굴로 감천경은 다시 태 도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 라 움직이는 묵설야는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주님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이야.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간에 쌓았던 모든 공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될 터.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들을 막아야 해.’

감천경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아껴두었던 마지막 삼 할의 내력까지 모 두 짜냈다.

물빛의 도기가 태도를 휘감았다.

우격다짐으로 만들어 낸 십성의 묵룡도기였다.

그런데 그가 막 앞으로 치고 나가 려는 찰나,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길목을 막아섰다.

“운아.”

감천경이 놀란 눈으로 모상운을 쳐다봤다.

모상운은 그를 볼 면목이 없어 힘 없이 고개를 떨궜다.

“싸움은 끝났어, 모두 검 버려.”

설우진이 묵설야에 통보했다.

감천경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다 이내 모상운에게 말 을 건넸다.

“미안하다, 운아! 이 빚은 다음 생 애 꼭 갚으마.”

감천경이 기습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가며 설우진의 정면으로 묵룡도기 를 쏟아 냈다.

묵룡출해.

묵룡야도의 마지막 초식이다. 용의 기세를 머금은 도기가 빠르게 들이닥쳤다지만 설우진은 이미 그의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 모상운을 옆 으로 내던지고 곧바로 폭뢰를 전개 했다.

제뢰의 단계가 이미 완성 지경에 이르러 단전의 뇌기는 순식간에 천뢰도의 칼끝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두 개의 기운이 격돌했다. 그런데 초반의 기세가 무색할 정도 로 한쪽의 기운이 삽시간에 휩쓸려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감천경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묵 룡도기에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본래 묵룡도기는 거칠고 무겁다. 그 말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는 뜻 이다.

한데 눈앞에서 묵룡도기가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이 현상이 알려주는 단 하나의 진 실, 그것은 눈앞의 사내가 자신은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저놈 때문에 목숨 건진 줄 알아. 놈하고 한 약속이 아니었으면 이 칼 이 단박에 그 목숨을 끊어 버렸을 거야.”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설우진이 그 의 오른쪽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 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철그랑.

감천경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싸움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물건은 모두 그쪽에서 처분해.” 

“그래도 되겠소?”

“어차피 정상적인 경로론 팔 수 없는 것들이잖아. 적당한 가격에 넘기고 돈만 따로 보내.” 

“돈은 어디로….?”

“무한의 철사자회.”

“철사자회의 식구였소?”

가휼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철사자회를 알아?”

“이쪽 바닥에선 벌써 소문이 자자 하오, 검귀 남궁벽이 공식적으로 분 파를 선언했다고.”

“그럼 순전히 그 녀석 때문에 이름 이 알려진 거네?”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오. 그리고 이를 두고 남궁세가가 어떤 움직임 을 보일지 많은 강호인들이 주목하 고 있소.”

“남궁세가가 왜?”

“비록 서자이기는 해도 남궁벽은 가주의 아들이오. 철사자회가 들어 선 곳이 안휘성이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겠지만 호북 무한은 그쪽 도 잘 아시다시피 제갈세가의 권역이 아니오.”

“음, 자칫하면 남궁벽이 제갈세가 밑으로 들어갔다는 인상을 줄 수 있겠군.”

“바로 그 점 때문에 항간에는 벌써 남궁세가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뜬소문까지 돌고 있소.”

“설마 그쪽에서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명색이 명문세가인데?”

설우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난 솔직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오.”

“그래도 아들이 세운 곳인데.” 

“핏줄보다 앞서는 게 가문의 이익 이오. 세가의 원로들이 철사자회가 없어지는 게 가문에 득이라 판단을 내린다면 남궁세가주도 그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요.”

‘이거 야단났군, 간판 올린 지 며 칠 되지도 않았는데 존폐 유무를 걱 정해야 하다니. 이번 일이 해결되는 대로 철사자회부터 찾아가야겠어.’ 

가휼과의 독대를 마친 설우진은 근 처 의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상을 입은 묵설야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고 그들 옆에는 무 거운 표정의 모상운과 감천경이 앉 아 있었다.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밖으로 좀 나오지, 곁에 있어 봐 야 크게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데.”

설우진이 두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은 적의 어린 시선으로 그 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 로 나왔다.

설우진은 둘을 데리고 의원 뒷마당 으로 향했다.

뒷마당에는 잘 손질된 약초들이 따 사로운 햇살 아래 진한 향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말해 보지, 너희들 뒤에 누 가 있는지.”

“…….”

“이런 식이면 곤란해. 아무리 목숨 을 걸고 칼을 맞댄 사이라도 약속은 지켜야지.”

설우진이 뒷짐을 지고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한참의 망설임 끝에 감천경이 입을 뗐다.

“그분에겐 우리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그림자들이 있다. 네가 그분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그림자들 이 모두 네 게 검을 겨눌 것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죽기 싫으면 이쯤에서 관심 끊고 꺼져라?”

설우진이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반 문했다. 이에 감천경은 긍정도 부정 도 하지 않았다.

“크큭, 날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 마운데 너희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그건 내가 네놈들 주인 을 모르듯 네놈들도 날 모른다는야.”

설우진이 정곡을 찔렀다.

실제로 그들은 설우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아는 건 산적치고는 엄청난 무공을 지녔 다는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감천경은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장난질은 이제 그만하지. 이 이상은 나도 못 들어 줘. 저기 누워 있 는 놈들 송장 치르고 싶지 않다면 어서 얘기해. 이게 마지막 경고야.” 

설우진이 정색하며 발끝으로 천뢰 도를 차올렸다.

말하지 않으면 베겠다는 무언의 표 시였다.

결국 감천경은 형제들을 위해 전음 으로 야주의 이름을 알렸고 그 이름 을 듣는 순간 설우진의 표정이 사납 게 일그러졌다.

‘남궁룡, 설마 이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남궁룡과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 한 것은 지난번 쌍룡맹에 들렀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앙갚음을 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까 남궁룡에게 너희와 같은 사 조직이 여러 개 있다고 했었지? 대 체 그 작자 무슨 꿍꿍이 속이지? 원칙적으로 가주의 허락 없이는 사 조직을 만들 수 없게 돼있을 텐데.” 

“일개 그림자가 어찌 주인의 뜻을 알겠느냐!”

더 이상 말을 않겠다는 분명한 의 사표시였다.

이에 설우진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날 오후, 설우진은 말을 타고 곧장 무한으로 향했다.


무한 시내에서 조금 외곽으로 벗어 나 동쪽으로 쭉 걷다 보면 최근 화 제가 되고 있는 장원을 하나 볼 수 있다.

한때 비상장이란 이름을 지녔던 이 장원은 석 달 전에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새 주인은 냉막한 인상의 젊은 청 년으로 항상 허리에 검을 차고 다녔 다.

“벽아, 우진이는 언제 오는 거야?” 

장원의 맞은편에 자리한 넓은 공 터, 그곳에는 비슷한 또래의 두 청 년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 이사를 마친 남궁벽과 조인창이었다.

“일품점에 사달이 난 걸 들었다면 조만간 이곳으로 들이닥치겠지.” 

“우리가 안 나서도 될까?”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에 중 원 상계를 뒤흔든 일품점이야. 괜한 걱정 말고 수련에나 힘 써, 어쩌면 일품점보다 우리가 더 문제일 수 있으니.”

남궁벽의 얼굴에 그늘이 어렸다. 이틀 전 그에게 가문의 전령이 찾 아왔다. 전령은 그에게 가주의 직인 이 찍혀 있는 한 통의 서신을 건넸 는데 그 안에는 분가를 허락할 수 없으니 당장에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서신을 읽고 남궁벽은 잠시 고 민했다. 자신 때문에 철사자회가 해 를 입는 걸 원치 않아서였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 은 정면 돌파였다. 자신이 빠진다고 해도 세가에선 철사자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 다.

“벽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일품점보 다 우리가 더 문제라니?”

“그냥 노파심에서 해 본 말이니까 신경 꺼. 그보다 애들은 언제쯤 이 곳에 합류하기로 했지?”

“아마 늦어도 열흘 안으론 다들 도 착할 거야.”

두 사람은 무한으로 내려오기 전 철사자회 식구들을 다 집으로 돌려 보냈다.

신중하게 판단해서 합류 여부를 결 정하라는 의미였다.

다행히 마음이 바뀐 회원은 없었 다. 모두 서신을 통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럼 그 전에 마무릴 지어야겠네.”

“뭘 마무리 짓는다는 거야? 공사는 이미 끝났잖아.”

“내 개인적인 문제야. 며칠 자릴 비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알 고 있어.”

남궁벽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철사자회에 피해가 가는 것만은 막기 위해서 세가로 찾아가 담판을 지 을 생각이었다.

그날 저녁 남궁벽은 철사자회의 둥 지를 떠났다.


“점주님, 큰일 났습니다. 벽라점과 대복점, 홍미점에서 잇따라 무한 진 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허어,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던 사람들 같군.”

설무백의 얼굴은 한 달 사이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악재가 쉴 틈 없이 몰아치니 아무 리 모진 풍파를 겪어 온 그라도 감 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마땅한 대응책이 있는가?”

설무백이 창백한 얼굴의 고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후유증 으로 사흘 내내 침대 신세를 져야만 했다.

오늘도 의원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출근을 감행했다.

그 여파로 그의 등판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일단은 바닥까지 떨어진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매출을 늘려야 합 니다. 이를 위해선 가격을 원가 수 준으로 낮추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그 방법밖에 없다면 따라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하면 단기적으로 판매량은 늘겠지만 손해는 날로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각오도 없이 어찌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가겠는가. 내 개인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자금을 마련할 터이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 주게.”

고심 끝에 설무백이 최후의 패를 꺼내 들었다.

물건값을 후려쳐 판매량을 늘리는 것은 최하책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날, 일품점의 간판을 단 가게 들이 일제히 옷의 가격을 대폭 할인 했다.

평소 판매하던 가격의 오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에 꿈쩍 않던 손님들이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격적인 가격에 모십니다. 어서 들 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일품점의 본점 앞, 안에 있어야 할 점원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입구에는 넓게 좌 판이 깔려 있고 그 위로 옷들이 가 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그리고 고지된 가격은 사고가 일어 나기 전과 비교해 절반 이상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여론이 나빠져서 장사가 안 됐던 것이지 옷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 었기에 저렴해진 가격표는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이 옷 한 벌만 줘요.” 

“난 이거!”

“이건 내가 먼저 찍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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