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19화 : 역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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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19화 : 역풍 (1)


역풍 (1)

“이제 어떻게 해요?”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 냐!”

“무슨 그런 무책임한 말이 다 있어 요. 오라버니가 이번 일을 주도했잖아요!”

“내가 억지로 손을 붙잡은 것도 아 니잖느냐. 그리고 이번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우리다. 당장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고성만이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벽라점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일품점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한에 무려 세 개가 넘는 지 점을 냈다.

급하게 일을 진행한 터라 예상했던 것보다 자금이 더 많이 소요됐다. 한데 어렵게 문을 연 지점들은 하나 같이 파리가 날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금력이 탄탄하다 소 문난 벽라점이라도 도산이라는 최악 의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봉합하지? 내 사재를 모두 털어 낸다 해도 무 리하게 자금이 동원된 상태라 이자 막기에도 버거울 텐데…………’

고성만은 눈앞이 캄캄했다.

현재 벽라점의 재정 상태는 최악이 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건물 매입을 위해 끌어 쓴 고리채가 문제 였다.

고리채는 단시간에 자금을 융통하 는 데 있어서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상환해야 하는 이자가 높기 때문에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 다.

한데 고성만은 그 고리채로 무려 황금 일천 냥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 했다.

그 고리채에 대한 이자는 정확히 원금의 사 할이었다.

벽라점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자를 부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드르륵.

세 사람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 머리를 앓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 이 열렸다.

그 소리에 이끌려 뒤를 돌아봤던 고성만의 두 눈이 격렬하게 흔들렸 다.

“둘은 오랜만이고, 하나는 처음 보 는 얼굴이네. 아무튼 다들 반가워, 너희 연놈들 덕분에 집에 돌아오자 마자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했거든.”

설우진이 세 사람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밝은 목소리와 달리 두 눈은 차가운 살의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의 소재를 쉽게 파악 했다. 나름 얼굴이 알려진 인사들이 다 보니 그들을 목격한 이들이 꽤나 많았던 것이다.

“다들 상황이 꽤나 곤란하지?”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들이 매입한 가게들은 지금 문 닫기 직전이잖아. 어떤 멍청이는 고리채까지 끌어다 썼다고 하던데.”

“네,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제 발이 저렸는지 고성만이 되레 언성을 높였다.

“호오,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니 아직까진 살 만한가 보네. 뭐, 좋아. 그쪽은 제쳐 두고. 거기 둘! 파리 날리고 있는 건물들 나한테 넘길 생 각 있어?”

설우진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 에 홍설과 제춘명은 한참을 고민하 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득 될 게 없는 건물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고 넘기는 게 나았다.

곧바로 흥정이 이어졌다.

설우진은 처음부터 가격을 후려쳐 제시했다. 두 사람이 구매한 가격의 딱 절반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크게 반발했다.

아무리 아쉬운 입장이라도 그 가격 엔 넘길 수 없다며 완강하게 버텼 다. 이에 설우진은 한발 양보해 처 음 제시했던 금액에 이 할을 더했 다.

‘이놈, 의외로 무른 구석이 있는데.’

‘좀 더 가격을 끌어올려 볼까?” 

설우진의 양보에 두 사람은 전에 없던 욕심을 부렸다. 본전 생각이 난 것이다.

“동생, 일 할만 더 얹어 주면 안 될까?”

홍설이 교태 어린 몸짓을 보였다. 그녀의 손끝이 지나간 자리엔 깊게 패여 들어간 쇄골이 그 아찔한 자태를 뽐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쇄골을 바라 보는 설우진의 눈빛엔 한 점의 욕념 도 깃들질 않았다.

“계집, 그쯤하고 옷 제대로 걸치지. 네년이 온갖 교태를 부려도 내 눈엔 늙은 암캐로밖에 안 보이거든.” 

설우진이 싸늘한 눈초리로 홍설에 게 쏘아붙였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 게 물들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춘명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젊은 친구가 말이 너무 심하군.” 

“심한 건 내가 아니라 너희 연놈들 이지.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일품점을 위기에 빠뜨린 건 물론이고 버젓이 무한 시내 한복판에 지점까지 내려 고 했잖아.”

“그, 그건…….”

“이제 협상의 여지는 없어. 무한 땅을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다면 처 음 제시한 금액에 건물들 넘겨.” 

“아까는 분명 칠 할에…….”

“그 기회를 걷어찬 건 네놈들이야. 투자금의 절반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신중하게 판단해.”

푹.

설우진이 천뢰도를 뽑아 술상에 내 리꽂았고 그 충격으로 상다리가 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냥 칠할에 넘기라고 할 때 넘 길걸.’

두 사람은 뒤늦은 후회를 하며 건물 증서를 설우진에게 넘겼다.

설우진은 미리 준비해 온 전표로 셈을 치르고 두 사람을 먼저 내보냈 다.

이제 방 안에는 설우진과 고성만 두 사람만 남게 됐다.

“나, 나도 오 할에 건물을 넘기겠 다.”

홀로 남게 되자 덜컥 겁이 났던 것일까. 고성만이 자발적으로 오 할 의 가격에 건물을 넘기겠다고 나섰 다.

하지만 설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넌 이번 일의 주모자야. 아까 그 연놈들하고 똑같이 취급할 순 없지.”

“그, 그럼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음, 아무래도 죽여서 묻는 게 여 러모로 깔끔하기는 하겠지.”

설우진이 상에 박혀 있던 천뢰도를 다시 뽑았다. 그리고 장난치듯 칼을 휘둘렀다.

눈앞에 칼날이 왔다 갔다 할 때마 다 고성만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 쳤다. 결국 고성만은 건물을 스스로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에 우리 쪽에서 매입한 건물 들을 모두 일품점에 무상으로 양도 하겠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뢰도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 그 말 믿어도 되겠지?”

“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증서를 내 줄 수도 있다. 하니 제발 그 흉측한 물건 좀 치워라.”

고성만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에 설우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 며 천뢰도를 허리로 갈무리했다. 

“여기 우리 쪽에서 매입한 건물 증서다.”

설우진이 칼을 거두자 고성만도 약 속대로 세 장의 건물 증서를 넘겼 다.

“빌어먹을, 이게 다 예명한 그놈 때문이야. 그 자식의 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막대한 손해를 입지는 않았을 텐데………….”

증서를 넘기면서 고성만은 억울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예명한의 이 름을 언급했다.

“잠깐, 지금 누구라고 했지?”

‘새끼, 귀도 밝네. 아, 가만, 예명한 그놈하고 이 자식을 싸움 붙이면 어 떨까? 이놈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예 도상단의 후계자한테 비할 바는 아 니잖아.’

고성만은 순간적으로 음흉한 생각 을 떠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실천으 로 옮겼다.

“사실 일품점을 위기에 밀어 넣은 건 내가 아니라 예명한이란 자다. 난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번 일의 진정한 배후 는 예명한이다?”

설우진이 물었다. 이에 고성만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달리 설우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전혀 다른 이름 이었다.

‘남궁룡, 아주 작정하고 일을 꾸몄 구나! 예도상단을 끌어들여 아버지 에게 애꿎은 누명을 씌운 것으로도 모자라 이 연놈들까지 부추겨 일품 점을 벼랑 끝까지 몰려 해! 조금만 기다려라, 네놈의 그 추잡한 작태를 천하인들이 다 알게끔 까발려 주마!’

설우진의 두 눈이 사납게 이글거렸다.


“이번 일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남궁가의 핏줄이 어찌 제갈세가의 영역에 분파를 세운단 말입니까?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 는 일입니다.”

“가주님, 당장 남궁벽 그 아이를 불러들이십시오!”

이른 아침부터 남궁가주의 집무실 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검은 머리칼보다는 흰 머리칼이 많 아 보이는 자들은 원로회의 장로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장로인 남궁 창인이 있었다. 그는 예순이 훌쩍 넘는 나이에도 두 눈에 정광이 흘러 넘쳤다. 시선을 마주하고 있기가 부 담스러울 정도였다.

“가주, 뭐라 말을 좀 해 보시오. 침묵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 잖소.”

남궁창인이 언성을 높였다. 이에 남궁대현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자리 에서 일어섰다.

“대장로, 벽이는 이 남궁대현의 핏 줄입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그 아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소. 지금이라도 잘못된 걸 바로 잡지 않는다면 우리 가문의 기강이 흐트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안줏거리가 될 게요.”

남궁창인은 남궁대현의 진심 어린 호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좋게 말하면 강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외골수적인 성품의 소유자였 다. 그래서 한번 마음먹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관철시켰다.

‘흠, 이거 일이 어렵게 됐군. 대장 로가 이리 강경하게 나오는 걸 보면 필시 누군가의 입김이 닿은 것일 텐데….’

남궁대현은 남궁창인의 완고한 태도에 얼굴을 굳혔다.

천중오가와 같은 커다란 세력들은 가주의 권한이 절대적이지 않았다.

혈족 중심의 구조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문의 어른들로 구성된 원로회의 입김이 셌기 때문이다.

남궁세가도 예외일 수 없었다. 대장로 남궁창인은 남궁대현의 숙 부였다. 게다가 전대 창궁십검의 수 좌로 검술에 있어서만큼은 아직도 남궁대현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 다.

여러모로 상대하기 골치 아픈 상대 였다.

-숙부님, 마음을 돌리실 수는 없겠 습니까? 이건 가주가 아니라 조카로 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벽이 한 놈으로 인해 네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너도 잘 알지 않느 냐, 룡이 그 녀석이 호시탐탐 네자 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 아이가 제게 처음으로 먼저 찾아와 한 부탁입니다. 한데 아비가 돼서 어찌 그 마음을 저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넌 그 녀석의 아비이기 이전에 대 남궁세가의 가주다. 이 숙부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남궁창인이 최후통첩을 했다.

결국 남궁대현은 고심 끝에 원로회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됐지?”

남궁룡이 술잔을 걸치며 맞은편에선 남궁위와 눈을 맞췄다. 남궁위는 방계 출신으로 꽤나 오래 전부터 그 의 수족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철사자회를 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형님이 그걸 순순히 받아들였단 말이냐?”

“대장로께서 직접 설득하셨다고 합 니다.”

‘쳇, 아깝게 됐군. 그 인간이 거기 서 고집을 부렸다면 장로들의 마음 을 내 쪽으로 더 돌릴 수 있었을 터인데.’

남궁룡이 아쉬운 얼굴로 대화를 이어 갔다.

“무한에는 누가 가기로 했지?”

“운검대입니다.”

“호오, 운검대라. 이거 형제간의 재미난 싸움이 벌어지겠군.”

남궁룡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운검대는 남궁세가의 무력대 중 하 나로 전원이 약관 전후의 젊은이들 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그 운검대의 대주는 남궁대현의 삼남 남궁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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