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20화 : 역풍 (2)
역풍 (2)
남궁훈은 남궁벽과 나이가 같았다. 지만 그보다 두 달 늦게 태어난 람에 삼남으로 서열에서 밀리고 았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엔 뜨거운 형제 대신 차가운 적의가 흘렀다. 단 만 붙여 놓으면 어김없이 싸움으 이어질 정도였다.
세가의 수련장 안, 꼭 닮은 두 개 얼굴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콧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 있는 쪽 이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헌, 상대 적으로 미끈한 쪽이 삼남 남궁훈이 었다.
“미우나 고우나 네 형이다. 부득이 한 상황에만 무력을 쓰도록 해라.”
“형님은 그 자식을 형제로 인정하 시는지 몰라도 전 아닙니다. 하니 더는 왈가불가하지 마십시오.”
남궁훈이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 힘이 과하게 실렸는지 애 꽃은 목각 인형의 팔이 몸에 떨어져 나갔다.
“아직도 그 녀석이 미운 게냐?”
“…….”
“나도 처음엔 너와 같은 맘이었다. 녀석을 데려온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한데 어느 날 그 녀석이 아버지께 소리치더구나, 이 지옥 같 은 곳에서 제발 나가게 해 달라고.”
남궁헌이 처음 듣게 된 동생의 진 심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억지로 화해하라는 말은 하지 않 으마. 대신 그 검을 뽑을 때는 세 번 이상 고민해라. 감정에 치우친 행동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를 낳게 될 수도 있다.”
남궁헌이 진심 어린 충고를 남기며 연무장을 떠났다.
“크큭, 맞아요. 그 자식도 괴로웠겠 지요. 근데 난 놈이 느꼈던 절망보 다 더한 절망을 느꼈어요. 뭐에 절 망했냐고요? 바로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자질의 벽이었죠.”
남궁훈이 품고 있던 악의의 근원은 열등감이었다.
남궁훈의 재능은 결코 나쁜 편이 아니었다. 평균적인 기준에서 놓고 봤을 때 위쪽에 위치할 정도는 됐 다.
문제는 그 비교대상인 남궁벽의 재 능이 너무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도저히 따 라갈 수가 없었다. 그가 밤낮을 잊 어 가며 수련에 매진했는데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저만치 앞서 가 있었다.
그때마다 가문의 어른들은 천한 핏 줄보다 못해서야 되겠느냐며 질책했 고 또래의 아이들은 면전에서 대놓 고 비웃었다.
어린 그가 견디기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면서 남궁훈의 마음은 병들어 갔다. 그리고 그 마 음의 병이 깊어질수록 남궁벽에 대 한 증오는 더욱 커져만 갔다.
“남궁벽, 이번 기회에 네놈과의 지 긋지긋한 악연을 끊겠다! 너 하나만 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한 내 검 을 어디 한번 받아 봐라!”
강한 결의를 다짐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동 시에 검광이 사납게 번뜩이며 목각 인형의 허리를 사납게 훑고 지나갔 다.
쿵.
단 일격에 목각 인형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허리의 단면에는 마치 화탄이라도 터진 듯 거친 흔적이 남 아 있었다.
이 날 오후, 남궁훈은 운검대원 열 을 대동하고 호북 무한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가 합비의 경계를 벗어날 무렵 남궁벽이 남궁세가의 권역 안 으로 들어섰다.
묘한 엇갈림이었다.
“여긴가?”
설우진이 봇짐을 메고 문밖에서 서 성였다. 그가 찾아온 곳은 철사자회 가 정식으로 자리 잡은 비상장이었 다.
하지만 장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 었다. 안에 사람이 없는지 문을 두 들기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 인기척 이 없었다.
“이거, 시기를 잘못 맞췄나? 애들 하고 반갑게 재회주라도 하려고 술 이랑 안주를 잔뜩 챙겨 왔는데…….”
설우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문 앞에 봇짐을 내려놨다.
그는 일품점 일이 어느 정도 매조 지하자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처음엔 남궁룡의 일부터 처리하려 했다, 당하고는 못 사는 게 그의 성 미였기에.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상대는 남궁세가의 부가주였다. 무 작정 싸움을 걸기엔 힘의 격차가 너 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 에 남궁룡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미 약했다.
남궁룡은 철저히 예도상단의 소단 주인 예명한을 전면에 내세워 일을 벌였다.
이런 경우 일품점에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해도 예도상단에서 유야 무야될 공산이 컸다. 그래서 설우진 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일전에 경험한 남궁룡의 성격상 또다시 수 작질을 걸어올 것이라 판단한 것이 다.
“어, 오는 건가?”
이각여 정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설우진의 시선이 정면의 내리막길로 향했다.
굴곡진 길 너머로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음? 우리 애들이 아닌데.
설우진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눈에 비친 얼굴들이 생소하기도 했고 무 엇보다 그들이 뿌려 대는 기세가 심히 거슬렸다.
‘이건 뭐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고 있잖아. 아직 정식으로 문도 안 열 었는데 벌써부터 불청객이 찾아들다 니, 이런 걸 두고 호사다마라고 하 는 건가?”
설우진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들 을 응시하며 문 앞에 천신장처럼 버 티고 섰다.
잠시 후,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정 도로 커다란 코가 인상적인 청년이 었다.
“이곳이 철사자회의 본거지가 맞느 냐?”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철사자회의 둥지 인 건 맞다.”
설우진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하면 네놈도 철사자회의 일원이 냐?”
“어이, 주객이 전도됐잖아. 손님으 로 찾아왔으면 그쪽의 정체부터 밝 혀야지.”
설우진의 날선 반응에 주먹코 사내 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무리의 끝자락에는 낯익은 얼굴, 남궁훈이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가 그 자식의 동료 아니랄까 봐 건방진 것까지 빼다 박았군. 난 운 검대의 대주 남궁훈이다. 이곳의 회 주와 담판을 지으러 왔으니 그대로 말을 전해라.”
남궁훈이 스스로 자신의 신분과 이 름을 밝혔다.
순간 설우진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 러졌다.
‘아직 대외적으로 내가 철사자회의 회주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을 텐 데………. 남궁룡, 그자가 나에 대해 이렇게 깊숙이 알고 있었던 건가?’
설우진은 남궁훈이 찾아온 상대가 자신이라고 오해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양쪽 모두 오 해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철사자회는 남궁벽의 사조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를 제 외하고는 딱히 강호에 알려진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우진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일품점의 일을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했기 때문이다.
“뭘 담판 짓겠다는 거지?”
“일개 문지기와 나눌 사안이 아니 다. 하니 냉큼 안으로 가서 회주를 불러와라.”
“그건 못 들어주겠는데. 본회의 회 주는 얼치기들을 일일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거든.”
설우진의 냉소 어린 대꾸에 분위기 가 험악해졌다. 특히 처음 그에게 말을 건넸던 주먹코 사내는 콧김까 지 사납게 발산하며 앞으로 나섰다.
“네까짓 게 감히 대주님의 말을 무시하다니. 이 남궁불회, 대주님을 대신해 네놈을 징치하겠다.”
남궁불회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의 검은 유난히 검신이 두껍고 폭이 넓었다.
파팟.
어지럽게 흙먼지를 날리며 남궁불 회의 신형이 설우진의 정면으로 치 달았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남궁불회는 곧장 파산검의 삼 초식 붕천파공을 전개했다.
파산검은 방계에 전수되는 대표적 인 중검의 일종으로 강한 힘으로 상 대를 찍어 누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부웅.
설우진의 머리 위로 남궁불회의 검 이 떨어졌다.
내력이 실려 있지는 않았지만 검 끝에 실린 기세는 거칠고 사나웠다.
‘잔뜩 얼어붙었구나. 대주님이 보 는 앞에서 피를 보일 수는 없으니 호구를 부수는 선에서 끝내 주마.’
남궁불회는 설우진이 당연히 자신 의 검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확신 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힘을 빼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데 그게 실수였다.
설우진은 천뢰도를 빼지도 않고 남 궁불회의 검을 한순간에 무력화시켰다. 힘의 축이 되는 남궁불회의 왼발을 기습적으로 참과 동시에 앞으로 고 꾸라지는 그의 얼굴을 향해 오른쪽 팔꿈치를 정확히 꽂아 넣은 것이다. 물론 설우진도 이번 공격에 내력을 싣지 않았지만 팔꿈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남궁불회의 코는 처음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 졌다.
충격이 큰지 남궁불회는 거친 신음 만 내뱉을 뿐 좀체 일어서질 못했 다.
‘방금 전의 움직임은 철저히 계산 된 것이었어. 저건 재능을 타고났거 나 무수한 실전을 경험하지 않고선 보일 수 없는 것인데…………….’
남궁훈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처음엔 단순한 문지기라 생각했다. 고수라 판단하기엔 그 기세가 너무 평범했고 내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태양혈이 너무 밋밋했기 때문 이다.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다짜고짜 검부터 들이대다니, 이걸 내가 어떻 게 해석해야 하지?”
설우진이 남궁불회의 등판을 사뿐 히 지르밟으며 물었다.
이에 발끈한 운검대원들이 반사적 으로 허리의 검병으로 손을 가져갔 다.
그런데 검을 빼 들려는 찰나 남궁훈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상대는 혼자다. 다수의 힘으로 소 수를 핍박하는 건 남궁의 이름을 더 럽히는 짓이다.”
“크큭, 지금 이 상황에 그 말이 어 울린다고 생각해? 하여간 정파 놈들 뻔뻔스러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설우진은 남궁훈이 보이는 작태가 우스웠다.
전생에 그는 이번과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목도했다. 천중오가는 자 신들에 반하는 세력을 그냥 두는 법 이 없었다.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그 행동은 이율배반적이었다.
“싸우러 온 거면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덤벼. 이 이상은 나도 못 참을 것 같거든.”
설우진이 대놓고 선전포고를 했다. 뒤로 이에 남궁훈이 운검대원들을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왜? 한꺼번에 덤비라니까.”
“건방진 소리 마라. 방심한 운검대 원 하나 제압했다고 우리 운검대가 우스워 보이나 본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남궁의 검을 보여 주마.”
남궁훈이 검을 뽑아 들었다. 얼마 나날을 자주 갈았는지 검 전체에서 스산한 예기가 전해졌다.
‘이놈은 확실히 진짜배기군. 검신 일체, 검이 손의 연장선상에 있어.’
설우진은 한눈에 남궁훈의 무위를 짐작해 냈다.
잠시 후, 남궁훈이 선공을 취했다.
중검이라는 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 도로 그의 손놀림은 경쾌했다.
설우진은 뒷걸음질을 치며 천뢰도 를 뽑았고 남궁훈의 속도에 맞춰 손 목을 흔들었다.
채채챙챙챙.
눈 깜짝할 사이에 열 합의 공방이 지나갔다.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팽팽한 접전이었다.
한데 둘의 표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이거 기대 이상인데. 확실히 명문 가의 핏줄이라는 건가.’
‘대체 이자는 누구지? 오 성의 제왕검으로도 압도하지 못하다니…?
초조한 쪽은 남궁훈이었다.
그가 펼치고 있는 검법은 남궁가의 직계자손에게만 전수되는 제왕검이 었다.
제왕검은 제왕검형에서 비롯된 검 법으로 중검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 한 검리를 담고 있었다.
그 궁극은 만류귀종.
제왕검을 익히면서 남궁훈은 잃었 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런데 지금, 그 자신감이 다시 뿌리 째 흔들리고 있었다.
‘남궁벽도 아니고 그 밑에 있는 놈한테 이리 무너질 수는 없어!’
남궁훈은 마음을 다잡고 제왕검의 후반 검식을 전개해 나갔다. 아직까 지 깨달음이 온전치 않아 긴 시간 펼칠 수는 없었지만 열 합 정도면 충분히 본연의 위력을 낼 수 있었 다.
우우웅.
남궁훈의 검이 웅휘한 검명을 터뜨 렸다. 그리고 검신 전체에 푸른빛이 감도는 강기가 맺혔다.
잠시 후 남궁훈의 신형이 설우진의 정면으로 치달았다. 검강을 머금은 그의 검은 날카롭게 설우진의 빈틈 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확실히 검법의 위력은 대단해. 하 지만 이건 어린아이 손에 명검을 쥐 어 준 것이나 진배없어.’
간발의 차이로 야수안을 빗겨 가는 남궁훈의 검을 보면서 설우진은 단 전의 뇌기를 깨웠다.
전신에 맥동하는 벽뢰진천의 뇌기. 설우진은 옆구리로 파고드는 검을 천뢰도의 넓은 도신으로 빗겨 쳤다. 하지만 힘에서 밀렸는지 남궁훈의 검은 단번에 떨어져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설우진의 두 다리가 휘청거 렸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남궁훈은 남은 내력을 쥐어짜 천뢰도를 위로 쳐올렸다. 힘에서 밀린 천뢰도는 설 우진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남궁훈의 입가에 진한 미 소가 번졌다.
그런데 반전은 그 이후에 벌어졌 다. 천뢰도를 놓친 설우진은 자유로 워진 양손으로 남궁훈의 손목을 틀 어쥐었다.
“싸움은 상대가 쓰러지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야. 네놈처럼 상대가 병기를 잃었다고 해서 그렇게 긴장 을 풀어 버리면 당할 수밖에 없어.”
설우진이 섬뜩한 살소를 보이며 남 궁훈의 손목을 거칠게 비틀었다. 우드득.
압도적인 힘에 손목이 그대로 돌아갔다.
믿기 힘든 상황에 멍하니 그 모습 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훈은 뒤늦게 밀려오는 고통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